소설리스트

동생이 굴러들어옴-97화 (97/200)

97화: 스토커는 아닙니다, 진심으로 (1)

찌르르르-

찌르르르-

여름의 무더운 대기를 가르는 페달 소리.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니 기분이 새롭다.

도로를 옆에 낀 성북천의 풍경도 3주 전과 은근히 달라진 모습. 풀이 더욱이 무성해졌다.

매암- 매암-

매미 소리도 경쾌하다.

듬성이 심긴 가로수들 사이에 매미들이 숨어있을 것이다.

"므잉 므잉 므잉므잉 미이이이이잉-"

내 등에 찰싹 들러붙어 매미 소리를 따라하는 5세.

의외로 비슷해서 놀랍다.

멀찍이서부터 우리 가게가 보인다.

허나 이전과는 형태부터가 다르다.

목재형 발코니가 툭 튀어나와 차도 쪽으로 한 발짝 더 전진해있다.

마침 자전거를 묶을 만한 난간도 발코니쪽에 붙어있으니 일석이조다.

"우아! 모가 생겨써. 옵바야, 이게 다 모야?"

"이제 여기 발코니 쪽에서도 손님들이 식사하실 수 있어. 그러니까 손님들이 더 오실 수 있겠지?"

"오오! 그러믄 조은 거네? 옵바 음식을 더 마니 먹으니깐?"

"그럼요, 아가씨."

윤슬이는 달라진 가게의 풍경이 낯설고도 반가운지 기웃거리며 목재 발코니를 만져도보고 톡톡 때려도보고.

핥아도 보고?

"윤슬아, 그거 지지인데. 핥는 거는 그만두자."

"아라써. 마시가 궁금해써."

별 게 다 궁금한, 호기심 많은 5세다.

가게로 들어가 간단히 장사 준비부터 시작한다.

앉은뱅이 칠판에 그려둔 낙서를 지우며 오늘의 메뉴를 기입해둔다.

[대파 불고기]

그 사이에 윤슬이한테는 멋대로 난간을 핥은 죄목으로 양치를 시켰다. 괜히 바이러스 삼켰을까봐 걱정되어 예방책을 둔 것이다.

이것저것 만지는 사이 입가에 치약거품을 묻힌 다섯 살이 뽈뽈- 걸어나온다.

그걸 물수건으로 얌전히 닦아준다.

"궁금한 게 생겼슴미다."

"뭐가 궁금하십니까."

"움... 저기 바깥에 손님들이 오므는 어뜨케 요리를 받어? 옵바는 주방에 있짜나."

"아아... 그거는."

"잠깐! 윤스리는 정답을 알고 이따."

본인이 물어봐놓고 정답을 알고 있다는 우리의 5세.

뉴타입 답정너인가.

"정답이 뭔데."

"윤스리가 옵바한테 쟁반 받아서, 이케.. 이케.. 들어서 옮기는 거야."

"오오! 훌륭한 오답이다."

"치이... 그러믄 몬데."

"잠깐만 기다려봐."

나는 윤슬이 손에 진동 호출 단말기를 쥐어준다.

그리고 진동이 오게끔 버튼을 누르면.

우우우우웅-!

우우우우웅-!

"우앗! 이게 모야. 흔들리자나."

"이제부터 그거 사용할 거야. 밖에 계신 손님들한테는."

가게 일손이 부족한 것을 고안한 방법이다.

현재 가게 내 테이블 수는 1인 업장치고 적지 않다.

윤슬이까지 더하면 1.5인 업장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실제로 0.5인은 그닥 노동적으로 도움이 되진 않는다.

홀쪽에 네 테이블.

바 테이블에 앉아 계신 손님들은, 연결된 주방에서 곧바로 요리를 내어드리면 되니까 논외.

다만 야외 발코니 쪽에 두 테이블이 이번에 추가되었다.

홀은 그나마 동선 상 멀지 않으니, 빠릿하게 금방 가져다드리면 문제 없지만.

발코니는 너무 멀다.

그래서 고안한 것이 진동형 호출 단말기다.

대형 카페에서 종종 사용되는 그것.

카페 같은 경우 서빙 알바를 이용하는 경우가 좀처럼 없으니 이런 시스템을 차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작은 식당에서는 우리 가게가 처음이지 않을까.

불편하긴 하겠지만 충분히 감수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발코니 쪽에서 보는 경치가 생각보다 좋으니까."

"움? 경치?"

발코니 쪽으로 윤슬이를 데리고 간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세워 바깥을 보게 한다.

"오오! 저기 물 흐르는 거가 다 보인다."

"되게 좋지? 그래서 손님들이 아마 이 자리 많이들 좋아하실 걸?"

"그르네! 루이두 여기 이쓰믄 좋아할 거 같어."

루이.

권수안씨네 안내견.

그 아이에게도 적격의 장소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안내견이 식당 내부로 들어오면 언짢게 생각하는 손님들이 가끔 있다.

개들이 털 날리는 것은 사실이니까.

그런데 발코니 쪽에 있다보면 홀 쪽과는 분리되어 있으니 그나마 털이 덜 날릴 것이다.

"청소해야 되는 부분이 늘긴 했네."

그럼에도 발코니 석에 추가로 손님을 받을 걸 고려하면 수익적인 부분이 더욱 좋아질 것이다.

그걸 생각하면 청소쯤이야 얼마든 참을 수 있다.

이 진동벨 시스템이랑 가게 정리정돈 관련해서 3주 휴가 중에 몇 번 가게를 들른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정민구씨도 발코니 쪽 경치에 대해 호평이었다.

-  앞으론 가끔 바 테이블 말고, 발코니 쪽에서 먹어야겠어요. 여기서 바깥 구경하면서 밥 먹으면 좋겠다. 바람도 솔솔 불고.

발코니 구경을 끝마치고 가게를 잠시 나선다.

불고기거리를 구매하러 가기 위해서.

직판장에서 따로 주문할 수도 있었지만 오랜만에 시장도 들를 겸, 그쪽 정육점에 가기로 했다.

[성래 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채소를 판매 중이신 할머님들이 우리 남매를 또 반겨주신다.

그러나 오늘은 그 인사법이 과격하시다.

뱅글뱅글-

빙글빙글-

평소에 장난끼 많던 할머니 두 분이 우리 앞을 막아서며 제자리에서 천천히 춤추듯 빙글빙글 회전한다.

"움? 함모니들..."

-  우리 윤슬이가 와가지구 한 번 따라해보는 거지~.

-  패쎤쑈!

"으아...."

일전에 저잣거리 한복판에서 선보였던, 그 봉인된 개인기의 기억이 되살아난 윤슬이.

패닉에 빠져서 입을 떡 벌리고 몸을 비틀거린다.

추스르기 위해 번쩍 안고 시장 안쪽으로 들어간다.

"윤슬이가 그 얘기만 하면 가끔 이렇게 정신을 놔요. 많이 파세요, 할머니들."

-  그려, 다음엔 하나 사주고 가!

참 정겨운 곳이다.

일전에 들렀던 주문진의 수산시장과는 분위기가 영판 다르다. 굳이 따지자면 이곳이 내 취향이다.

정육점에 닿기 전에 윤슬이가 다행히도 정신을 차리곤 내 승모근 쪽에 콩알펀치를 시전한다.

콩콩콩콩-

"이잉!"

"쑥쓰러웠어?"

콩콩콩콩콩-

"이이잉!"

"어이구, 그랬구나."

오히려 안마가 되어서 힐링이 되는 건 기분 탓일까.

데미지가 0에 수렴하는 것이 아니라, 양수의 영역이다.

체력이 더 차오르고 있다.

아아, 힐링 펀치.

더 때려줘.

그래, 거기!

더더욱 힘을 내어 정육점으로 전진!

정육점에 도착하자 익숙한 빨간 빛이 고깃덩어리들을 비추는, 판매대가 눈에 띤다.

그리고 그 뒤쪽에서 우리를 맞이해주는 노부부.

-  윤슬이랑 주현이! 오랜만이네?

"잘 지내셨어요?"

-  우리야 늘 똑같지. 저 양반이 고기 썰고. 나는 고기 팔고.

"저희는 이번에 휴가 다녀왔어요. 강릉으로."

-  아이구마, 좋았겠네. 윤슬이, 수영했어?

"윤스리는 상어 옷 입구 잠수두 해써여."

-  잠수를 해? 하하하! 거 대단하네.

정육점 할머님께서 호탕하게 웃으며 좋아해주시자 덩달아 신이 난 5세. 코를 막으며 그때 어떻게 잠수했는지 직접 시범을 보인다.

할머님은 한참 좋아시다가도 돌연 한숨을 쉰다.

-  으휴, 나두 죽기 전에 저기 어디 해변에라두 놀러 가서 물장구를 좀 쳐야 쓰겠는데. 저 양반이 놓아주지를 않으니...

-  아니, 뭐 자기만 일하나! 이짝에서 고기 써는 거 안 보여?

-  그니깐, 여름에 휴가 한 번 내자니까! 이 양반은 워낙 고집불통이라서 자기가 휴가 나가면 고기는 누가 써냐고. 온통 고집을 부려싸.

-  이짝 저짝에서 찾아와갖구 고기 달라구 하는데. 그럼 손님들은 어뜨케 하나? 올해만 여름이야? 내년에도 오자네.

-  으이구, 그렇게 다음해, 다음해 미루다가 팔순 잔치하겠소.

여전히 화목한 정육점 노부부.

절로 웃음꽃이 피어난다.

-  그래서, 주현이. 오늘은 무슨 고기루 줘? 저 양반이 화나게 해싸서 안 되겠다. 오늘은 서비쓰 평소보다 더 얹어주께. 빨리 조용히 말해봐.

조용히 말해보라면서 본인 목소리는 안 줄이시는 할머님.

-  으이구~! 고기 써는 건 이짝인데. 지 맘대루 더 주는 건 저짝이네!!

신세한탄을 하신다.

사이가 참 좋으시다.

"오늘은 불고기 거리 사려구요. 오랜만에 영업하는 거니까. 평소보다 많이는 못 사가고... 일곱 근 정도? 면 될 것 같은데."

-  그려, 그러면 여덟 개 반으로 다가 줄게. 가져가.

"아니, 그렇게 많이 주실 필요까지는..."

-  안 팔리믄 윤슬이랑 나눠서 먹어. 주는 대로 받아가자. 저 양반 또 승내기 전에.

-  이미 승 다 났어! 여편네야!

화는 화대로 내시면서 할머님 말씀대로 불고기 거리를 꺼내주시는 할아버님.

이 성래 시장에 계신 정육점 부부가 두 분이라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할아버님은 츤데레의 끝판왕이다.

묵직한 고기 여덟근 반을 일곱근 가격으로 받아든다.

엄청난 이득!

그 이득의 양만큼 무게가 느껴지지만 오히려 기분은 좋다.

-  근데 요즘 장사가 좀 잘 되냐? 주현아.

"요즘요? 저희 이번에 휴가 3주 동안 다녀오느라 한 푼도 못 팔았어요."

-  아아, 그래? 저번에 이쪽 시장에 몇 명 젊은 사람들 기웃거리더라고.

"뭐, 젊은 사람들이야 널렸으니까요...?"

-  그치, 아니 젊은 사람들이 널리기는 했는데, 그 사람들이 글쎄 너희 가게 찾는 것 같던데.

"저희 가게면, 오누이 식당이요?"

-  그래, 오누이 식당. 우리 정육점 들른 건 아닌데. 저짝 붕어빵 가게 있지? 거기 가서 묻더랜다. 너네 가게가 어디쯤에 있느냐고. 그래서 대답해줬다던데... 그게 일주일인가? 전쯤이니까. 그때는 식사를 못 했겠구만.

"그러네요. 아쉽게 됐네요, 엄청."

-  너네 가게 맛이 궁금한 모양이던데. 한 번 우리도 시간 날 적에 들러서 먹어봐야 되겠어.

"그러문 윤스리가 싸이다 가져다줄 쑤 있눈데."

-  그래? 싸이다? 그러면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꼭 들려봐야겠네.

"그러세요. 다음 번에 들리시면 사이다든 다른 음료든 서비스해드릴 테니까."

-  그래~ 약속이다!

훈훈한 약속으로, 식자재 준비를 완료했다.

그나저나 시장까지 흘러온 젊은 사람들이 우리 가게가 어디 있는지 위치를 물어봤다는 건...

"지명도 레벨이 오른 덕이겠지."

그것 말고는 생각할 수 없다.

이제 지역 맛집에서 서울시 맛집으로 레벨업 된 게 아닐까? 젊은 사람들이 맛있다는 소문을 SNS 등에서 접하고 찾아와주는 것이다.

물론 그런 쪽에 특별히 홍보 비용을 쓴 적은 없다.

그래서 더욱이 '지명도 레벨'이란 개념의 효과를 톡톡히 느낀다.

아직은 쉽게 예상할 수 없지만, 지명도 레벨이 오른 것과 동시에 발코니 쪽 좌석이 확장된 것은 행운적 요소가 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그쪽 좌석까지 확장되었기에 더욱 손님들을 받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앞으로는 웨이팅 대기열을 가게 앞에다가 적어둘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해둬야 되려나?"

"웨이팅? 그게 모야?"

"우리 가게에서 밥 먹고 싶어서. 다른 손님들 다 빠져나갈 때까지 기다려주시는 거야. 되게 감사한 거지."

"근데 그러문 심심하게따."

"그럴 때 윤슬이가 등장해서 놀아주면 되게 좋아하실 텐데? 손님들이."

"아앗! 그렇다. 우리 식당에는 옵바두 있찌만 윤스리두 있따. 윤스리만 미더."

오누이 식당에서 웨이팅을 하고 계시면 우리 명랑한 5세가 심심하지 않게 도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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