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스토커는 아닙니다, 진심으로(2)
불고기거리를 손에 가득 들고, 식당으로 되돌아왔다.
이제 점심 장사 밑준비를 할 타이밍이다.
"옵바, 윤스리가 조물조물 도와줘이지 대?"
"아니, 오늘은 괜찮아."
"알게쏘."
홀 구석에 있는, 서랍에서 모형 자동차를 꺼내어 테이블 위에서 굴리며 노는 동생.
내가 놀아주지 못할 때, 윤슬이가 혼자 노는 방법이다.
우리 가게엔 여러 이유로 가지고놀만한 장난감들이 널려있다. 그 덕에 5세가 지루할 틈은 그다지 없다.
제육 밑작업은 익숙해졌으니, 혼자 하면 되고.
중요한 건.
"대파 불고기 밑작업."
처음 선정한 오늘의 메뉴이지만 간단하고, 확실한 맛을 보장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냥 불고기라고 하면 되지만 굳이 앞에 대파를 붙인 이유는, 대파도 고기만큼 맛있게 만들어서 선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불고기보다 대파 작업을 우선시한다.
뿌리를 떼어낸 대파를 일정한 간격으로 잘라둔다.
대략 5cm.
그렇게 자른 뒤 멀리서 혼자 놀기를 시전하고 있는 5세에게 눈대중으로 대본다.
"이게 스물 한 개 있으면, 딱 우리 집 꼬맹이만하구만."
세로로 잘린 대파를 일렬로 세운 뒤 위에서부터 칼집을 촘촘히 내어준다. 고되고, 지루한 반복 작업.
그러나.
"이렇게 하면 식감이 살아나니까."
귀찮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휴가에서 복귀하여 장사를 다시 시작하는 첫날이다.
공들인 메뉴를 선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다.
특히 이 대파는 겉면을 조금 태우듯이 구워 가니쉬에 가까운 느낌으로 그릇에 내어드릴 것이다.
더욱 신경 쓰고 싶은 마음이다.
불고기는 제육과 비슷하다.
적당한 한 입 크기로 잘라 간장과 설탕에 잠시만 재워둔다.
여기에 들어간 설탕이 불고기 거리로 쓰인, 우둔살의 긴장감을 풀어준다. 그리하여 식감을 부드럽게 만들어준다.
점심 장상 밑준비를 마치고, 가게를 오픈할 때쯤.
가게 문 바깥에서 기웃거리는 손님이 유독 눈에 밟힌다.
오픈 시간까지는 5분 정도 남았지만 굳이 매몰차게 무시할 필요도 없으니.
"윤슬아, 저 손님 들어와서 안에서 기다리라고 말씀 좀 전해줄래요? 밖은 덥잖아."
"윤스리 임무 받아써!"
호다닥-
윤슬이는 당당하게 경례하고는 자동차를 내려두고, 가게 출입문 쪽으로 향한다.
식당 내부에는 에어컨이 틀어져있고, 바깥은 8월 날씨니 이렇게 해드리는 편이 땀을 덜 흘리겠지.
"안으루 드러오세여!"
- 응? 아직 오픈 안 됐잖아.
"갠차나! 드러오세여! 옵바가 그래두 댄다구 그래써여."
- 옵바? 아, 안에서 재료 손질하고 계신 게 사장님인가보네. 그럼 실례 좀 할게. 애기야.
"애기 아니구 윤스리."
- 그래, 윤슬이. 음... 윤슬이? 이름 되게 좋네. 메모... 메모...
머리가 덥수룩한 남자 손님이 스마트폰에 무얼 바삐 적으며 가게 안쪽으로 느긋하게 걸어들어오신다.
손가락 놀리는 속도가 꽤나 빠르다.
"어서오세요."
- 넵, 어서 왔습니다. 으아, 에어컨 바람 시원해! 살 것 같다.
개성적인 인사다.
말하면서도 눈은 스마트폰 쪽에 가있는 게 마치 지하철에서 이동할 때에도 그것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사람이랑 비슷해보인다.
"주문 미리하시겠어요?"
- 오오, 네. 그렇게 하면 제가 1등으로 먹을 수 있는 거죠?
"그렇게 되겠죠. 아무래도."
바깥에서 대기 중이던 분은 이 손님뿐이니까.
아직 정오도 안 된 시각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몰리는 시간대는 아니다.
정오에서 5분 정도 지나야 회사원이나 이 근처에 직장이 있는 분들이 몰려오기 때문에, 그때부터 바빠진다.
- 그럼 오늘의 메뉴로 해주세요. 이 식당이 요근처에서 되게 유명하다고 하더라고요? 사장님이 요리 솜씨 좋기로.
"아아... 그 정돈 아닌데. 최대한 맛있게 해드릴게요."
- 저 완전 기대 중이니까. 기대감 배신하면 안 돼요. 그럼 다들 하차하거든요.
"하차요?"
- 아, 그게 아니라. 그냥... 헛소리였어요.
"아, 넵."
보통 하차라는 표현은 차에서 내릴 때 사용하는 것 아닌가. 무슨 말을 하고 싶던 걸까.
그게 아니라면, 연재 작품을 도중에 그만 보는 행동을 하차라고 하는 것 같기도 하던데. 그쪽을 이야기 하고 싶던 걸까.
이해하기 어렵다.
바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도 줄곧 스마트폰을 만지고 계신다.
우선 주문대로 음식을 만들기 위해 재워두었던 불고기를 꺼내어 옆에 놔두고 파를 먼저 볶는다.
5cm로 잘린 파를 기름 두른 팬에 올려 굴리다보면 마이야르와 함께 갈색으로 먹음직스럽게 올라온다.
더불어 파기름이 향긋하다.
그 위에 불고기를 함께 넣어 볶으면 완성.
재워둘 때 불고기에다가 후추를 함께 섞었기 때문에 칼칼한 맛도 날 것이다.
대파 불고기가 그렇게 완성되었고.
손님 상에 내어드리자.
- 오오, 장난 아닌데 비주얼. 사진 찍어도 돼요? 괜찮죠?
"네, 편히 찍으세요."
편히 찍으라고 말씀은 드렸는데.
찰칵-
찰칵-
찰카닥-
다각도로, 또 몇 번은 연속촬영으로 찍으신다.
처음엔 블로거인가 싶었다.
- 비주얼이 파에서 완성이 되네. 불고기는 그냥 불고기 느낌인데. 파가 이렇게 뭉텅뭉텅 잘려있고, 갈색으로 그을리듯이 올라와있으니까. 그것 때문에 더 맛있어 보이는 느낌?
"하하. 맛있게 드세요."
눈썹을 까딱이며 들뜬 목소리로 음식을 평가하는 손님.
이런 활기찬 분은 좀처럼 없는데, 확실히 특이하다.
"우리 옵바 음식이 체고긴 하지. 뭐를 쫌 아는 아저씨네!"
옆에서 윤슬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곤 먹어보고 싶단 듯이 입맛을 다신다.
"윤슬이는 이따가 배고프면 말해. 이거 요리해줄 테니까."
"굿."
굿이라는 유창한 영어와 함께 1 따봉 적립되었습니다.
식사하는 모습도 게걸스러우면서도 재빠른, 손님.
루이에게 사과 채를 주었을 때가 떠오른다.
음식을 사진으로 다 찍고 난 뒤 곧바로 젓가락과 숟가락을 양손에 들고 흡입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한 입 먹을 때마다 감탄사 연발하는 게 신기하다.
대파 우적우적.
- 음! 대파! 왜 이렇게 부드러?
고기 쩝쩝.
- 오오... 고기 좋은 거 쓰나? 잡내가 하나도 없네. 리얼 맛집.
혼자서 오셨는데도 말이 참 많으시다.
원래 윤슬이가 혼자 온 손님이 계시면 은근슬쩍 옆으로 가서 몇 마디 걸어주기도 하는데.
오늘따라 그런 게 없다.
혼자서도 중얼거리면서 만족스럽게 식사하는 분이니 말이다. 오히려 선뜻 다가가기도 부담스럽다.
그렇게 혼자서 만족하면서 먹던 손님은 숟가락을 들기 시작하여 5분만에 한 그릇을 뚝딱 비워버린다.
우리 식당 최장시간 단독 식사 기록은, 대식가 백수인씨가 보유 중인데.
이분은 최단시간 식사 기록을 보유하게 생겼다.
- 음! 맛있게 먹었습니다. 사장님, 진짜 진짜 맛있어서 그런데. 혹시 한 가지 부탁드려도 괜찮을까요?
"네, 무슨 일이세요?"
- 어디부터 말씀을 드려야할까... 혹시 이거 대파 불고기 있잖아요. 특허 내거나 하시진 않았죠?
"그럴 리는 없죠, 보통. 원래 음식 조리법에는 저작권도 없는 걸로 아는데요."
- 그쵸, 저도 그런 걸로 알아요. 그래서 말인데요. 이거 대파 불고기 레시피 알려주시면 안 돼요?
"레시피를요?"
- 넵! 어떻게 하면 이런 식감이랑 맛을 내는지 궁금해요.
손님은 두 손을 가운데로 모으고 고개를 숙인다.
예의가 없는 느낌은 아니었으나, 어딘가 풋풋해 나이가 궁금하다.
그때 옆에서 윤슬이가 불만스럽게 팔짱을 끼고 입술을 삐죽 내민다.
뭔가 단단히 마음에 안 드는 게 분명하다.
"우리 가게 와서 머거여. 딴 데서 머그지 말구. 옵바가 만드는 거라서 마싯는 거거둔!"
- 아... 그게 아니야. 내가 이거 레시피를 가지고 딴 데 가서 장사를 하려거나. 집에서 먹으려는 건 아니거든.
"움? 그러믄 몬데여?"
- 그... 이거부터 볼래요? 두 사람 다.
바 테이블 위에 핸드폰을 내려둔 손님.
그곳엔 다양한 메모들이 뒤죽박죽 섞여있다.
메모된 파일들의 이름도 하나 같이 특이하다.
[캐릭터 조형법]
[인상 깊은 사이다]
[원고 플롯]
[차기작 아이디어]
"옵바, 이게 모야?"
"나도... 잘은 모르겠는데. 혹시 소설 쓰시나요?"
- 정답! 그다지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닌데, 이거 레시피 알려달라는 게 그것 때문이거든요. 제가 이번에 요리 요소가 많이 들어간 원고를 써보려고 하는데. 이 음식을 한 번 등장시켜보고 싶어서요.
뜬금 없는 이유지만 재미있긴 하다.
그다지 특별한 레시피를 차용해서 요리한 건 아니다.
그럼에도 뭔가 내가 직접 알려드린 요리법이 소설 원고에 실리면 재밌을 것 같단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마침 아직 다른 손님들이 몰리기까진 시간이 제법 남았으니 문제 될 건 없어보인다.
"알려드리죠, 뭐. 어려운 건 아니니까요."
- 오우,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방금 요리했던 과정에서 주의해야할 부분을 중점으로 설명드렸다.
파의 식감을 살리기 위해선 촘촘하게 칼집을 내어야한다는 것. 그리고 파를 태우듯이 구워야 그 향이 극대화된다는 것.
- 이야, 역시 요리는 과학이라더니. 하나하나 이유가 있는 작업이었네요? 파에 칼집 내는 건 귀찮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가끔 귀찮아지기도 하는데. 그래도 맛있게 드셨잖아요?"
- 네, 저는 완전 맛있게 먹었죠.
"그거면 됐습니다. 전 길게 보는 스타일이라서요. 손님들 만족시켜드리는 게 저 귀찮은 것보다 우선이에요."
- 크으, 멋있으셔라. 얼굴만 잘 생기신 게 아니네.
[오누이 타이쿤!]
[고객이 응대 서비스에 감동합니다.]
[판타지 웹소설 작가 황치호: 식당 만족도가 26% 상승했습니다!]
[종합 만족도: 26%]
마침 만족도도 다량으로 증가한다.
가게 분위기가 이전에 몇 번 오른 적이 있는데, 그것 덕분에 원래 올라야할 만큼보다 6% 더 오르는 것 같다.
- 저 이번에 이 근처로 이사왔거든요. 동네도 조용하고 되게 좋다고 해서.
"맞아요, 저희는 이 동네 사는 건 아닌데. 그래도 몇 달 정도 장사해보니까. 확실히 동네가 좋은 건 알겠어요. 산책할 곳도 있고. 시장도 가깝고. 대형마트도 별로 안 멀고."
- 그쵸! 진짜 잘 고른 것 같다니까요. 제가 이전에는 1층집에 살았어서, 원고 작업할 때마다 얼마나 시끄러웠는지.
이 손님, 성격은 좋은데.
다소 투머치 토커의 기질이 보인다.
성격 유형 검사를 해보면 첫 자는 E가 나올 게 분명하다. 이렇게 외향적인 성격이 소설가들 중에서 보편적이리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 아, 그리고 이거 드릴게요.
손님, 황치호씨가 주머니에서 지갑을 뒤적거리더니 상품권을 내게 주신다.
그 상품권을 유심히 살펴보니까.
"응? 이거 이 지역에서 사용 가능한 상품권 아니에요?"
- 네, 맞아요. 근데 시장에서밖에 못 쓰거든요. 이번에 정부에서 시장 상권 살리기 사업으로 발매했다던데. 저는 시장을 잘 안 가서요. 혹시 뭐, 식재료 조달하는 데 들리시거나 하면 쓰시라고 드리는 거예요. 요리 레시피도 알려주셨으니까.
이 손님.
말이 많고, 성격이 특이하지만 좋은 사람이다.
무려 5만원짜리 상품권을 이렇게 선뜻 내밀다니.
"오오! 옵바 이걸루 고기 또 사므는 대겠다."
"그렇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황치호씨가 밥값을 계산하시고, 나가려던 찰나.
멀리서부터 커다란 배기음이 들린다.
몇 번이나 들어서 그게 누군지는 나도 알고, 윤슬이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