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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굴러들어옴-101화 (101/200)

101화: 5세는 고구마가 싫다 (1)

지글지글-

부드러운 버터의 유분기와 고구마가 불판 위에서 조화롭게 섞인다.

풍기는 달달하고 향긋한 냄새.

5세는 마치 봄날의 꿀벌처럼 이끌린다.

몸을 비틀거리다가 내 허벅지 쪽에 약하게 박치기 한 방.

콩-

"옵바, 옵바."

"왜 그러세요, 아가씨."

"지금 모를 만들길래 그러케 마싯는 냄새가 나나여?"

"뭐를 만들고 있을까요? 한 번 윤슬이가 맞춰보실까요?"

"그거눈 너무 어렵다. 이거눈 처음 맡아보는 냄시야."

"고구마로 만들고 있는데."

"으윽!"

고구마.

그 단어에 격하게 반응하는 윤슬이.

입술을 오므리며 인상을 찡그린다.

"고구마... 시러."

"왜 그래? 고구마도 맛있게 만들면 얼마나 괜찮다고."

"윤스리 어제 고구마 머그다가 목 맥혀서 힘드러써."

"그랬지, 참."

주방 안쪽엔 고구마 박스가 두 상자나 쌓여있다.

모두 할머니가 보내주신 것이다.

[외할머니: 주현아. 이번에 김가댁이 고구마 잘 익었다고 우리 집에 보내줬다. 근데 너무 많이 남아서 너희 가게 주소로 보낸다. 윤슬이랑 나눠먹어라.]

이런 문자와 함께 배송되었다.

한 달 정도만 느지막이 와서 가을철에 먹었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지금 먹어도 충분히 맛있다.

어제 브레이크 타임 즈음에 도착하길래 마침 잘 됐다 싶어서 맛도 볼 겸 윤슬이한테 쪄서 먹여봤는데.

방금 직접 동생님께서 말했듯이 목이 멕혀서 힘들어했다. 사이다를 하나 따줘야만 했다.

'우억... 윤스리 쥬거여...! 숨이 맥힌당.'

그래서일 거다.

고구마를 조리한다는 얘기를 듣고 기겁하는 것은.

몇몇 손님들은 그런 윤슬이의 모습을 보고 웃음 짓는다.

고구마를 먹고 목이 막혔다는 얘기를 하면서 자기 목을 약하게 죄고 있으니.

리액션이 풍부한 아이는 언제, 어떻게 보아도 귀엽다.

"그럼 이거 되게 맛있게 만들 건데. 윤슬이는 못 먹겠네? 고구마 먹으면 목이 맥히니까."

"그거눈 아니지!"

"그거는 아니야?"

"옵바가 만드는 거눈 마싯다는 게 이미 정해져 이써. 그니깐 목이 멕혀도 윤스리는 먹어볼 꺼야."

"만약에 오빠가 안 준다고 하면."

콩콩-

콩콩-

내가 장난을 치려는 낌새를 풍기자 윤슬이는 눈매를 좁힌다. 그리고 바로 데미지 0의 박치기를 시전한다.

허벅지 쪽에.

"알겠어, 알겠어. 줄게. 조금만 기다릴까?"

"웅. 혹씨 모르니깐 싸이다를 꺼내놔야지 대게써."

윤슬이는 쫄래쫄래 나가서 냉장고 문을 힘겹게 열고 사이다를 하나 품에 대기시킨다.

고구마와 전투할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다시 고개를 돌려 디저트 메이킹에 집중한다.

고구마로 만든 간식.

그 이름은 달달 고구마를 줄여 '달구마'로 하자.

찜기에 두고 푹 찐 고구마를 껍질을 벗긴다.

그리고 채에 걸러 입자를 곱고 이쁘게 가다듬는다. 채에 거르면 섬유질이 뭉개지기에 더욱 부드러워진다.

그 상태에서 버터와 생크림, 꿀을 넣고 약불로 천천히 섞어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퍽퍽하고 달달한 고구마 무스가 완성된다.

아무리 버터와 생크림을 넣었다고 해도 결국에 유지되는, 이 퍽퍽함.

역시 고구마다.

"미리 이걸 사두길 잘했네."

주방 밑 서랍에서 짤주머니를 꺼낸다.

그 안에 고구마 무스를 가득 넣고 쭈욱- 짜내리면 물결 모양이 내리치며 서양 과자 같은 느낌이 되는데.

이걸 프라이팬에 그대로 넣고 뚜껑을 덮은 채로 굽는 것이다.

그럼 적당히 부드럽고, 식감이 살아있는 '달구마'가 완성된다.

모양도 이쁘장하니 제법 인기가 좋을 것 같다.

윤슬이와 더불어 식사 중인 손님들 테이블에 두어개씩 담아 올려드린다.

"서비스입니다. 이번에 고구마를 조금 얻게 돼서요. 한 번 드셔보세요."

-  와! 진짜요? 방금 주방에서 엄청 좋은 냄새 나던데, 이거 만드신 거구나.

-  오... 쩐다. 역시 오누이 식당 사장님이 리얼 금손. 이런 걸 어떻게 만들지?

"별로 안 어려워요. 그냥 하다 보면 됩니다."

-  방금 발언 리얼 전문가 포스.

손님들에게 먼저 챙겨드린다.

어차피 두 박스나 되는 고구마를 우리 남매 둘이서 먹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이렇게 손님들에게 점수 따두는 것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 가게 수익에 플러스 요인이 될 것이다.

또, 최근 디저트 만드는 연습을 조금 하고 있다.

머지 않아 디저트도 한정 수량으로 판매해볼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그렇다.

이건 휴가 가기 전부터 조금씩 염두에 두던 사안이긴 한데. 근래 거의 확정이 되었다.

카페처럼 오래 먹고 마실 수 있는 디저트보다는 호텔 레스토랑에서 마지막에 입가심으로 내어주는 정도의 디저트를 판매할 계획이다.

"움... 기다려쏘."

"드실 준비는 됐소?"

"준비 돼쏘! 윤스리 입에 너어주시오."

윤슬이 차례가 되었다.

간장 종지만한 크기에 담긴 달구마.

윤슬이 입에 쏘옥 넣어준다.

엄지 손가락 한 마디만한 크기이기 때문에 어른이든 아이든 한 입에 삼킬 수 있는 정도다.

"우물우물... 이거눈!"

"어때?"

어떠냐고 묻는 내 말에 대답도 하지 않고, 의자에서 폴짝 뛰어내린다. 사이다를 품에 안은 채 종종걸음으로 냉장고까지 다가간다.

그리고 사이다 캔을 다시 넣어둔다.

"이거눈 싸이다가 필요가 업써. 목이 안 맥혀."

"맛은 어떤데요?"

"맛은 당연히 체고지여. 옵바가 만들어쓰니깐여."

"그럼 나도 하나 먹어봐야겠다."

간을 몇 차례 보긴 했지만 그래도 맛이 궁금해진다.

입에 넣자 버터와 생크림의 향이 은은하게 입천장을 감싼다.

또, 식감이 굉장히 재미있다.

후라이팬의 바닥에 닿아있던 부분은 바삭하다.

반면 그 반대 편은 꾸덕하고, 이에 감긴다.

식감이 다양한 음식은 언제나 인기가 많은 법이다.

"이 정도면 돈 받고 팔아도 되겠네."

"움? 6억?"

"그건 무리고."

"치이, 초코..."

저번에 그 악마 대공님의 수익이 윤슬이 뇌리에 박힌 듯하다.

**

브레이크 타임이 찾아왔다.

오늘은 밑준비를 조금 분주하게 끝내두었다.

윤슬이가 꼭 읽어줬으면 하는 동화책이 있다고 했으니 말이다.

어제 황치호씨가 추천해준 동화책이다.

-  윤슬아 이거 책 한 번 읽어볼래?

'움? 이거 몬데여?'

-  동화책. 윤슬이가 동화책 많이 읽는다고 그래서, 내가 한 번 괜찮은 거 가져와봤어.

'윤스리 주는 거야?'

-  으응... 주는 건 아니고. 빌려주는 거. 도서관에서 갖고 온 거라 다시 반납해야 되거든.

'그러믄 윤스리가 꼭 읽어보께! 아저씨가 읽어보라구 준 거니깐.'

-  아, 아저씨...? 주현씨는 오빠인데 왜 나는 아저씨니. 심지어 백수인도 언니잖아. 나도 오빠라고 해줘.

'우움... 그거눈 아니지. 왜냐믄 옵바는 저기 이짜나. 아저씨는 아저씨.'

-  스물일곱이면... 아저씨?!

점심식사를 우리 가게에서 떼우기 위해 찾아온 황치호씨와 윤슬이는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그때 건네받은 동화책이다.

반납 기한이 있으니까, 그때까지 읽고 돌려드려야 하기에 다른 책들에 비해 우선순위가 높다.

"옵바! 기대댄다. 윤스리 누구한테 책 추천받은 거눈 처음이야!"

"그렇네. 어떤 책일까."

윤슬이를 무릎 위에 올려두고는 책의 표지를 한 번 살펴본다.

[바쁘다, 바빠! 개미 이야기]

동화책이라기엔 어딘가 현대인들의 삶을 투영한 듯한, 기묘한 애환이 느껴지는 제목이다.

그럼에도 개미가 일벌레라는 것은 공공연한 상식이니 나름 센스 있는 제목인 것 같다.

"옵바, 개미눈 바뻐?"

"응... 개미에 따라 다르긴 한데. 일개미들은 바쁘대."

"그럼 안 바쁜 개미는 모야?"

"여왕 개미는 안 바쁘겠지? 아무래도 맡은 임무가 일하는 건 아니니까."

"그러믄 윤스리는 여왕 개미 할게."

"뭐야, 윤슬이는 바쁜 거 별로야?"

"웅, 왜냐믄 바쁜 거보다는 딩굴딩굴 노는 게 더 조아. 옆에 초코도 마니 쌓아두고 옵바 무릎에 앉아서 레이싱 보는 게 체고야."

벌써부터 돈 많은 백수를 꿈꾸는 우리의 5세.

이 책에서 나오는 개미를 보고 조금 더 성실한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도록 바란다.

책을 펼친다.

많은 전래동화가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이란 상투적인 문구로 시작하는 것과 달리 이 동화책의 첫 문장은 이랬다.

[우리 인간들이 사는 세상, 그 밑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요?]

아이들 사이에선 논쟁이 될 법한 주제다.

[매일 같이 열심히 일하는 개미들이에요.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또, 바람이 많이 부는 거친 계절을 버티기 위해 개미들은 매일 같이 식량을 모으느라 땀을 뻘뻘 흘려요.]

"움! 일을 열씨미 하는구나. 우리 옵바처럼."

윤슬이의 인식 속에선 내가 개미처럼 열일하는 사람인 듯하다.

괜히 뿌듯해진다.

[그런 개미들 사이에서도 유난히 일을 열심히 한다고 소문 난 개미가 있어요. 앤디라고 하는데요. 앤디는 몸이 약한 여동생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다른 개미들보다 더욱 힘을 내어 식량을 챙긴답니다.]

"몸이 약한... 여동생?! 우우... 윤스리는 건강해서 다행이야."

윤슬이가 눈매를 좁히며 몰입하기 시작한다.

동화책의 문장들에서 비극의 냄새가 솔솔 풍기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날이었어요. 앤디는 언제나 그렇듯이 열심히 식량을 챙겨 개미굴로 돌아왔어요. 여동생, 애니를 생각하면서 일을 하는 것은 앤디에게 늘 즐거운 일이죠. 그런데 갑자기 개미굴의 중심이 소란스러운 게 아니겠어요? "이게 무슨 일이지?" 앤디가 그곳에 도착하자 여왕 개미를 중심으로 수많은 일개미들이 모여있는 모습이 보여요.]

"옵바는 윤스리 생각하믄서 일하는 거야?"

"응... 그것도 있지. 근데 오빠는 워낙에 요리 만들고 나서 누가 먹어주는 걸 좋아해. 그래서 요리하는 게 즐거워."

"움... 앤디랑은 쪼꿈 다르네. 그리구 윤스리는 건강하니깐 옵바가 별루 걱정을 안해."

"그렇지. 앞으로도 건강해야돼?"

"당연!"

[여왕개미는 앤디를 보더니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어요. "앤디야, 애니 못 봤니?" 앤디는 금방 일에서 돌아오는 길이었죠. 그래서 이렇게 말했어요. "지금 집에 있을 텐데요." 하지만 애니는 집에 없었어요. 다른 개미들이 애니를 오랫동안 찾았지만 발견되지 않았거든요.]

"으어어... 애니 어뜨케 댄 거지? 이러믄 앤디가 걱정하자나. 빨리 집에 돌아와!"

몰입도 급상승.

같은 여동생의 입장이기에 더욱 공감이 되는 듯하다.

[앤디가 말했어요. "하지만 여왕님, 저는 지금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에요. 그 전까지 애니는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았는 걸요?" 앤디의 말을 듣던 여왕개미의 근위병은 한숨을 푹 내쉬어요. "이런... 애니가 아무래도 개미굴에서 나간 모양이야."]

"움?! 애니는 몸이 약하자나. 근데 개미굴에서 왜 나갔찌?"

맥거핀이 아니라면 비극의 전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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