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5세는 고구마가 싫다 (2)
[앤디는 근위병에게 물었어요. "근위병님. 혹시 애니가 개미굴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직접 보신 건가요?" 걱정스런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근위병 개미는 이렇게 대답해요. "응, 내가 봤어. 앤디, 너를 찾고 있는 것 같더라고."]
동화의 그림엔 입꼬리가 말려내려간, 앤디의 얼굴이 보인다. 동생, 애니에 대한 걱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앤디는 너무 놀란 나머지 개미굴의 중심에서 잠시 벗어나 굴의 입구 쪽으로 되돌아갔어요. 이런... 역시나! "곧 비가 올 것 같은데." 하늘이 어둑어둑. 구름이 몰려와요. 앤디가 뛰어나가 깜짝 놀란 근위병 개미가 뒤따라왔어요. "어딜 가는 거야, 앤디. 곧 비가 올 거라고. 여왕님께서도 널 걱정하셔."]
"으윽... 설마 애니를 찾으러 나가는 거는 아니게찌. 그러믄 윤스리 가슴이 넘무...!"
답답한 듯 가슴을 쥐는 윤슬이.
표정이 썩 좋지 않다.
마치 고구마를 먹고 목이 메인 듯한 얼굴.
우선 이야기는 결말을 보아야 하므로 계속해서 읽는다.
[앤디는 근위병 개미의 말을 듣고도 고개를 저어요. "근위병, 저는 애니를 위해서 지금껏 열심히 일했어요. 그런데 애니가 이 비에 휘말려 다치기라도 한다면 전 너무 마음이 아플 거예요!"]
이어지는 동화책의 그림.
저 너머로 이어지는, 떼 지은 구름.
그 우중충한 하늘 아래로 앤디가 비장하게 걸어나간다.
여동생을 찾기 위해.
[개미굴 바깥으로 나온 앤디. 그러나 앞길이 막막해요. "어디로 가면 애니가 있을까?" 개미굴도 길고 넓지만, 그 바깥의 세상은 그보다도 훨씬 넓어요. 거대한 인간들의 세상. 그곳에서 애니를 찾기란 너무도 힘든 일일 거예요. 그러나 하늘이 거무죽죽한 게 곧 비가 내릴 것 같네요. 앤디는 서두르기로 해요.]
"으윽, 제발! 애니 나와줘. 이러다가 앤디가 비에 마자서 다치게써!! 개미는 물에 젖으므는 아프다는 말이야."
윤슬이는 볼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도리도리 흔든다.
도저히 이 상황을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전개를 빠르게 하기 위해 읽는 속도를 조금 더 올렸다.
[넓은 들판에서 앤디는 한참을 돌아다녔어요. 나뭇잎에 맺힌 이슬이나 사마귀가 두려웠지만 앤디는 꿋꿋하게 나아가요. 동생을 찾아야하니까요. 그러나 한참을 찾아도 애니가 보이질 않네요? 앤디는 지쳐서 주저앉고 말았어요.]
"으악! 고구마를 묵은 거 같아. 싸이다! 싸이다!"
윤슬이는 재빠르게 무릎에서 뛰쳐나가 냉장고에서 사이다를 꺼낸다. 그리고 품에 소중히 안고 내게 돌아온다.
"이게 업쓰믄 안 대겠다."
"너무 답답해서 힘들 뻔했어요?"
"네, 진짜루 고구마 먹은 거보다 더 답답해써여."
쑤욱... 틱!
쑤욱... 틱...
"옵바, 까쥬."
"오냐."
얇디 얇은 손가락을 캔의 따개에 걸어 움직여 보지만 자꾸 실패한다.
원래 우리 집 5세는 사이다를 까지 못한다.
그래서 대신 까주었다.
"꿀꺽... 쁘흐...! 목꾸멍 따끔쓰."
윤슬이가 만족스런 표정을 지은 관계로 다시 동화 리딩에 착수한다.
[곧 있으면 빗방울이 떨어질 거예요. 먹구름이 무시무시하게 앤디를 노려보네요. 동생을 찾지 못해 실망한 앤디. 이대로라면 몸이 약한 애니는 정말로 위험할 수도 있어요. 포기해야 하는 걸까요? "아니, 그럴 수는 없어. 동생을 위해서라면." 앤디는 다시 일어서며 기지를 발휘해요. 더듬이를 꺼내어 방향을 확인하는 거죠.]
"움? 더듬이?"
"개미들은 더듬이가 있어."
"윤스리는 말꼬랑지가 이써."
개미와 비슷하다고 주장하고 싶은 걸까.
윤슬이는 길다란 말꼬랑지를 앞으로 기울여 더듬이처럼 쫑긋거려본다.
[앤디는 더듬이를 움직여 신호를 보내봤어요. 만약 애니가 이 근처에 있더라면 더듬이로 똑같이 신호를 받아 자신을 알아채줄 거라 믿어요. 그리고 잠시 뒤. "애니가 신호를 돌려보냈어!" 앤디의 더듬이로 애니의 신호가 되돌아왔어요.]
"오오...! 이제 애니랑 앤디랑 만나는가부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 탓일까요? 비가 내리기 시작하네요. 보슬보슬. 아직 빗줄기가 거세지 않아 버틸만해요. "시간이 더 걸렸다간 진짜로 애니가 위험하겠어!" 앤디는 빠르게 달려 애니가 있는 곳으로 향해요.]
"앤디 조심해..."
윤슬이가 사이다를 벌컥이며 이야기에 더욱 몰입한다.
["오빠!" 저 멀리서 애니가 보여요. 드디어 애니를 만났어요! 커다란 나뭇잎 아래 애니가 비를 피하고 있네요. 앤디는 곧장 달려가 애니를 품에 안았어요. "애니... 왜 개미굴 밖으로 나온 거야. 비가 내려서 위험하잖아."
동생은 미안한 표정으로 오빠에게 사과해요. "미안... 오빠, 곧 비가 올 것 같은데 오빠가 돌아오질 않아서 걱정했어. 그래서 이걸 들고 찾으러 나왔어." 애니의 손에는 커다란 나뭇잎으로 만든 우산이 들려있네요?]
동화책에 그려진, 애니의 손에 들려있는 나뭇잎 우산은 정말로 거대하다. 애니와 앤디 두 사람, 아니 개미가 들어가도 공간이 넉넉히 남을 정도다.
"우움? 옵바, 저거 몬가 이상해."
"뭐가 이상해?"
"어뜨케 몸이 약한데. 애니가 저따만큼 큰 우산을 들어? 저거눈 앤디라두 힘들 거야."
"아아... 저게 아마도 개미들이 힘이 쎄서 그럴 거야."
"개미눈 힘이 쎄?"
"엄청 쎄. 개미는 자기 몸보다 20배 무거운 것도 거뜬히 든다고 하더라고."
"헤엑... 근데 비를 몬 이겨?"
"그러게. 그건 왜 그럴까."
곤충을 잘 아는 것은 아닌지라.
그 모순만큼은 어찌 답할 방법이 없다.
인간의 생태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어찌 개미들이 생태까지 이해하겠나.
[애니는 앤디와 함께 커다란 나뭇잎 우산을 써요. 그랬더니? 두 개미는 전혀 비를 맞지 않게 되었어요! "애니, 네가 나뭇잎으로 이 우산을 만든 거야?" 앤디의 물음에 애니가 웃으며 답해요. "응! 왜냐면 오빠가 일을 나갔을 때 비가 내리면 위험하잖아. 그래서 내가 오빠 주려고 만들었어."]
애니를 찾기 위해서 떠난, 기나긴 여정.
드디어 해피 엔딩 각이 떴다.
[앤디와 애니는 우산을 쓰고, 다시 개미굴로 되돌아가요. 애니가 만든 우산은 튼튼해서 찢어지지도, 젖어서 뭉개지지도 않았답니다. "그래도 애니, 다음부터는 이렇게 위험하게 밖으로 함부로 나오지 않기야. 약속해줘." 앤디가 손가락을 내밀자 애니도 그에 맞춰서 걸었어요. "알았어... 걱정시켜서 미안해 오빠."
개미 남매는 그대로 개미굴로 되돌아갔는데. 이럴 수가? 개미굴에 있던 개미 가족들이 모두들 웃는 얼굴로 맞이해주네요. 근위병이 개미 남매를 여왕 개미가 있는 곳으로 불러들여요. 이게 무슨 일일까요?]
"모야! 그대루 끝이 아니어써."
"그러게, 뒷내용이 더 있네?"
[여왕 개미는 남매를 반갑게 맞이해요. "다행이야. 앤디, 애니. 너희가 돌아오지 않을까봐 걱정했단다." 앤디가 여왕님에게 물어요. "여왕님, 걱정해주셔서 고마워요. 근데 저희를 왜 부르셨나요?" 여왕님이 답해요. "애니, 네가 만든 우산 때문이야. 그게 있던 덕분에 너희 둘이 빗길을 해쳐올 수 있었잖니? 우리 개미들에겐 그게 필요해. 혹시 다른 일개미들을 위해 더 만들어줄 수는 없겠니?"
애니는 기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여요. "물론 좋아요! 여왕님도, 다른 일개미들도 모두 같은 개미굴에 사는 가족이잖아요."]
"오오! 여동생이 갑짜기 조은 역할루 나오게 돼써."
"그렇네. 훈훈한 결말로 이어지네."
[그렇게 며칠이 지나 또 다시 비가 오게 되었어요. 하지만 그전처럼 비가 올 걱정으로 빠르게 개미굴로 돌아올 필요가 없어졌답니다? 애니가 만든 우산이 모두에게 전달된 덕이에요.
그 덕에 개미들은 수월하게 식량 조달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앤디와 애니 남매는 개미굴의 인기쟁이가 되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완벽한 해피 엔딩!
심지어 개미들의 특징까지 아이들의 시선에서 잘 잡아내어 만든 좋은 동화인 듯하다.
그럼에도 다 읽고 난 윤슬이의 표정은 석연치 않다?
"윤슬이 왜 이렇게 표정이 안 좋아?"
내가 물었는데도 아무 대답 없이 내 무릎에서 폴짝 뛰어내린다.
그리고 앞으로 정권 지르기를 연달아
슉, 슈슉!
"왜, 왜 그래."
"윤스리 분노."
"윤슬이 분노? 왜 분노하셨어요?"
"이거 재미 이따구 그랬는데. 윤스리 보다가 답답해서 주글 뻔해써."
"아아..."
중간에 사이다를 벌컥벌컥 들이키기는 했다.
내 기준에서는 꽤 괜찮은 동화였는데 말이다.
"애니가 몸두 약한데, 옵바 걱정 시킬라구 막 밖에 나가서 돌아다녀써. 그거눈 너무 위험해."
"그 행동 때문에 화가 났어?"
"움... 그냥 개미굴에서 기다리다가 줘두 대는데. 그거를 모른다니까! 참."
꽤 현실적인 5세다.
듣고 보니 틀린 말이 아닌 점이 두 번 놀랍다.
"아무래두 윤스리 복수를 해야게따."
".... 복수? 누구한테."
"이거 가져다준 아저씨."
"황치호씨한테?"
"응! 윤스리가 고구마를 마구마구 먹게 할 꺼야. 사이다두 업씨!"
사이다도 없이 고구마를 무려 '마구마구' 먹인다니. 그건 꽤 가혹한 형벌이긴 하다.
그러나 함부로 말리려 할 수 없었다.
윤슬이가 지금 정권지르기를 내지르는 기세를 보았을 때 현재 중노(中怒) 상태이다.
소노(小怒) 정도라면 어떻게든 진정시켜보겠지만 저렇게 된 5세는 더 이상 막을래야 막을 수 없다.
그저 기도하는 수밖에.
치호씨가 고구마 폭탄에 목이 막혀, 후회의 눈물을 흘리지 않기를.
**
싸늘하다.
원래 이 식당이 이런 분위기였던가.
황치호는 등골이 오싹해질 만큼 적적한 식당 내부로 조심스레 들어온다.
어제 이 식당의 남매 중 동생에 해당하는, 5세에게 동화책을 하나 추천해주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야기의 고구마 파트를 싫어하는 5세라니!
이 얼마나 귀한 캐릭터인가.
그 모습을 직접 보거나 혹은 그에 준하는 이야기를 전해들음으로써
자신의 소설에 쓸 새로운 캐릭터 메이킹에 도움을 받고 싶던 것이다.
그래서 현재. 황치호는 기대감에 부풀어있다.
과연 어제, 그 동화책을 읽었더라면 5세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오누이 식당의 주인장에게 물어보기로 한다.
"주현씨! 저 왔어요...?!"
끝음이 날카롭게 올라가는 문장.
어느샌가 황치호의 뒤로 들어와 두 팔을 부여잡는 주인장이었다.
겉으로는 말라보였는데, 제법 근육이 있어 힘이 좋다.
평생 글만 써오던 글쟁이로선 저항하기 어렵다.
"주, 주현씨?! 왜 그래요."
"미안하게 됐습니다."
"뭐... 가요?"
"아무 것도 묻지 마세요."
"아니. 지금 뒤에서 팔을 이렇게 잡아 놓고 아무 것도 묻지 말라고 하면."
주인장은 황치호의 두 팔을 붙잡고 구석진 테이블에 강제로 앉힌다. 그 옆에는 미리 와있던 백수인이 대기 중이다.
음흉한 표정으로 황치호를 붙잡더니 팔과 다리를 꽁꽁 묶어버린다.
그리고 손으로 눈을 가린다.
"복수의 기회가 이렇게 찾아올 줄은 몰랐네?"
"야! 복수라니. 백수인... 이거 놔! 아니, 살려줘. 제발. 무슨 일이냐고."
두 눈이 가려진 황치호.
그때였다.
달달한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여지껏 많이 맡아본, 익숙하고 향긋한 냄새다.
그러나 오래도록 맡고 있자하니 물려온다.
"이건... 고구마?"
"아저씨... 복쑤야. 윤스리한테 몰래 고구마를 멕인 죄닷! 받아라!!"
푸욱-
"우웁!"
황치호의 입에 눅진하고 퍽퍽하고, 달달한 고구마가 한가득 들어온다.
적당히 식어있어, 심지어 더 퍽퍽하다.
오물오물...
관성적으로 먹다보니까, 맛있긴 한데.
목이 막힌다.
"우물우물... 물! 물 좀 주라. 적어도 물이라도 줘."
"히힝- 윤스리가 물을 줄 리가 없자나. 복쑤하는 건데. .... 아, 앗! 윤스리라구 말해버려따. 몰래 하구 있는 건데. 큰 일 나따. 다 들켜따. 이렇게 된 이상..."
푸욱-
푸욱-
푸욱-
"우웁! 우우웁!!!"
고구마가 끝없이 밀려들어온다.
[오누이 타이쿤!]
[고객이 은근히 이 상황을 즐기고 있습니다.]
[판타지 웹소설 작가 황치호: 식당 만족도가 5% 상승했습니다!]
[종합 만족도: 39%]
그 '끝 없는 고구마 형벌'로 인하여 황치호의 위장 속엔 무려 다섯 개나 되는 고구마가 사이다나 물 없이 들어가게 되었고.
황치호는 그날 밥을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배가 불러, 공짜 고구마만 먹고 귀가했다.
그리고 후회했다.
앞으론 함부로 5세에게 고구마 파트가 있는 동화는 권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한다.
후문(後聞).
당분간 황치호는 본인이 연재하는 소설에 고구마 파트를 대폭 줄이게 되었다.
또 다른 해피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