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개와 고양이와 5세의 언어 (2)
"근데 그렇다기엔 고양이 목에 뭐가 걸려있는데."
딸랑딸랑-
은은하게 소리를 울리는 방울이다.
평범한 길고양이는 아닌 듯하다.
- 글쎄, 그렇긴 한데. 원래 고양이들은 바깥을 나돌아다니지 않잖아. 이 근처 상권에서 밥 챙겨주는 분 계신 거 아냐? 그분이 채워줬다던가.
"그럴 수도 있겠네."
수영이 말에도 일리는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가능성도 떠오르긴 한다.
가령 어느 집에서 이쁨 받고 자라던 고양이인데 창문이 열린 잠깐 사이에 집에서 뛰쳐나와, 그대로 길을 잃었다던가.
그것도 아니라면 더 최악의 경우.
유기묘.
별로 그런 가능성까지 생각하고 싶진 않다.
먀아아아앙...
방울을 단 고양이가 울음소리를 길게 빼며 앞쪽으로 걸어나오더니 이번엔 내 발목 부근에 제 목을 비빈다.
가까이서 보니 털에 윤기가 흐르진 않는다.
약간 퍽퍽한 편.
나이가 조금 있는 것 같다.
고양이의 목덜미를 약하게 긁어주자 골골-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걸 듣고 윤슬이의 어깨가 흠칫 떨린다.
"움? 이게 무슨 소리야?"
- 골골송.
"골골쏭?"
- 응, 고양이들이 기분 좋을 때 저렇게 소리를 낸다고 하더라. 윤슬이는 처음 들어봤구나?
"오오... 그치만 루이는 저런 소리는 안 내자나."
- 그래서 고양이랑 개가 다른 거지.
지아가 윤슬이 눈 높이에 맞춰 잘 설명해준다.
확실히 개와 고양이는 인간에게 친숙한 동물이란 것을 빼면 서로 다른 부분이 많다.
미신이지만 서로 마주치기만 해도 싸운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니 말이다.
그런 미신이 무색하게도 실제로 고양이와 개는 한집에 합사하면 잘 지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고양이 목을 한참을 긁어주는데 갑자기 꼬록-! 하고 어디선가 배꼽 소리가 난다.
관성적으로 윤슬이를 지긋이 쳐다보았다.
"배고파?"
"윤스리 아니거둔... 방금 냥이 뱃속에서 났자나."
"사실 알고 물어봤는데."
"이잉! 그르지마!"
그런 장난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5세였다.
곧바로 앙탈을 시전한다.
- 사장님, 고양이 배고픈가보네요. 어떻게 해야 돼요?
"그러게... 일단 뭐라도 좀 먹일까."
사실 들고양이라고 한다면 가게에 오래 데리고 있어서 좋은 일은 아니었다.
계속 우리 가게로 와서 밥을 달라고 해도 곤란하고.
또, 다른 손님들이 계실 때 고양이가 가게로 불쑥 들어오게 되면 그것대로 곤란하다.
강아지 못지 않게 고양이들은 털을 휘날리고 다니니까.
하지만 우리 가게에서 배를 주리는 일은, 설령 고양이라도 없었으면 좋겠다.
돈은 없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한때의 행복을 선사하는 고양이다. 먹을 것 조금 챙겨준다고 누가 벌을 주진 않겠지.
"옵바! 루이랑 같이 냥이두 챙겨주자."
"그래, 아까 수영이랑 지아 먹을 때 루이한테 고구마 조금 주니까 잘 먹던데. 고양이한테도 줘볼까?"
"그게 좋케써."
주방으로 들어가 고구마를 넉넉히 네 개 정도 찐다.
두 개는 루이랑 저 고양이 것.
나머지 두 개는 우리끼리 반씩 잘라서 나눠먹으면 되겠지.
내가 고구마를 찌고 있을 때 윤슬이가 루이의 엉덩이 쪽을 베고 드러눕는다.
그러자 고양이도 윤슬이의 배에 기대어 눕는다.
쪼꼬미들 둘이 기대어 있자하니, 루이가 여간 듬직해보이는 게 아니다.
"루이야, 너눈 우리 식당 자주 와야지 대."
뭉?
"우리 옵바랑 윤슬이가 맨날 너 올 때마다 마싯는 거 주는 거 알구 있찌? 수영이 언니눈 이런 거 안 주자나. 그치?"
뭉...
"그래, 그래. 알구 이써. 그니깐 자주 오라구. 윤스리가 꼭 옵바한테 말해서. 루이 머글 거는 구해놓을 테니깐."
니야아아앙...
"너두 자주 올 거니?"
니야앙-
"근데 너는 어디에서 온 거니?"
냐앙.
"잉, 멀리서 왔네. 어뜨케 여기까지 와써."
진심으로 의사소통이 되고 있는 건가 신경 쓰여서 계속 듣고 있다가 하마터면 고구마가 다 뭉개질 뻔했다.
고구마가 다 익었다.
그걸 테이블에 우선 내려놓는데, 성질 급한 수영이가 손을 경솔하게 댔다가.
- 으뜨!
- 권수영 바보임? 당연히 방금까지 찜기에 있었는데 뜨겁지.
- 야! 꼬구마는 원래 이렇게 손 데이면서 먹는 게 맛이야. 네가 뭘 알아.
- 그러면서 왜 찔끔찔끔 눈물 흘리냐.
- 눈물 안 나거든...
괜한 자존심을 부리다가 절친에게 들켜버린 권수영.
심통을 내며 화장실로 도피해버린다.
윤슬이는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고구마로 향하는 손을 멈추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펄펄 끓던 기름에 튀긴 가지를 입에 넣었다가 입천장이 까지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윤슬이는 학습하는 법을 익힌 것 같다.
역시 애들이 자라는 건 한 순간이다.
"옵바가 해주겠찌여?"
"그럼요. 해드려야죠."
식칼을 들고 와서, 고구마가 상하지 않을 정도로만 껍질을 한 바퀴 둥글게 깎는다. 가운데 금이 그어진다. 그대로 고구마 껍질을 벗기면 한 번에 벌거벗는다.
- 오, 생활의 지혜네요.
"그럼, 당연하지. 오늘 팔고 있는 달구마도 고구마로 만든 건데. 그거 일일이 손으로 까고 있었겠니."
미리 밑준비를 하며 고구마 무스 반죽을 준비하는 과정은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린다.
그 사이에 일일이 뜨거운 고구마를 손으로 직접 까고 있다면 분명 오픈 시간까지 준비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잡기술을 최대한 활용하는 게 1인 업장을 능률적으로 유지하는 비결이다.
고구마가 벗겨지자 김이 폴폴 난다.
에어컨 바람이 이쪽으로 향하자 김이 다른 방향으로 휙 휙 꺾여 미미한 온기가 느껴진다.
겨울에 먹었으면 더욱 맛있었겠지.
그 냄새를 맡았는지 방울 고양이와 루이가 멀찍이서 벌떡 일어나 이쪽을 바라본다.
윤슬이가 이리 오라는 듯이 손짓하자 신기하게도 알아듣고는 이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근데 냥이야. 너눈 왜 루이 등에 타구 있니."
니양-
"거기가 편한 거니? 윤스리두 아직 한 번두 안 해봤눈데."
뭉...
방울 고양이는 의기양양한 듯한 표정.
그리고 루이는 뭔가 억울해보인다.
고양이와 개의 관계는 대략 저런 느낌일 것이다.
윤슬이는 루이 뒤에 타고 있는 게 내심 부러운지 방울 고양이를 은근히 흘긴다.
고구마를 식칼로 한 입 크기로 잘라 둔다.
그러자 다시 한 번 김이 폴폴 올라온다.
뜨거워보인다.
"윤슬이, 먹을 때 조심해야 되는데. 알지?"
"그거눈 윤스리두 알지. 그러믄 냥이랑 루이한테두 쪼끔 이따가 줘?"
"그게 낫겠지요."
"알겠슴미다!"
그나마 에어컨을 틀어놔서인지 고구마가 금방 식는다.
- 사장님, 근데 강아지랑 고양이한테 고구마 줘도 된대요? 저는 안 키워봐서 잘 모르는데.
"되는 걸로 알고 있어. 근데 생고구마는 동물들한테 별로 안 좋대. 왜냐면 고구마가 익기 전 상태면 독성이 있는 경우가 있어서. 오히려 먹고 탈 날 수도 있다나."
어디 책에서 본 적이 있다.
아마 이것도 헌책방에서 얻은 지식인 것 같다.
"우리 옵바눈 다 알거둔. 그니깐 우리 옵바가 갠찬타구 하는 거는 다 갠차나."
윤슬이가 더 신이 나서 내 자랑을 한다.
나를 깊게 믿어주는 것 같아서 뺨이 느슨해진다.
고구마를 하나 집어 입술에 대어보자 얼추 식은 듯하다.
한 입 베어물어도 괜찮은 수준이었다.
"이제 먹자."
"웅! 윤스리는 이거 루이한테 먼저 줄게."
먹자는 말을 기다렸단 듯이 벌떡 일어나 고구마 하나를 집더니 루이한테 다가간다.
그리고 잘게 잘라진 고구마를 루이 입에 넣어주려는데.
덥썩-!
"아앗! 냥이가 뺏어머거써."
루이의 울상이 한층 심해진다.
그걸 보고 윤슬이도 마음이 아팠는지 하나를 다시 집어 루이 입에 넣어주려는데.
덥썩-!
"어엇! 또 냥이가 뺏어머거써. 어뜨케 해."
뭉...
루이가 오늘 고생이 많다.
어쩔 수 없이 내가 가서 양 손에 고구마를 들고 하나씩 입에 넣어주었다.
그제야 루이는 한 개째 고구마를 먹을 수 있었다.
"오오...! 그렇게 하나씩 주므는 대는구나. 역씨 옵바가 똑똑해."
방울 고양이는 어느새 이 환경이 익숙해졌는지 윤슬이가 주는 고구마를 잘 받아먹었다.
원래 고양이과 동물들은 경계심이 많다고들 하는데, 이 녀석은 그나마 적응력과 친화력이 뛰어난 친구인 것 같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듯 고양이들도 성격이 다르다고들 하니 말이다.
여러 입이 고구마를 나눠 먹다보니, 금방 동이 나버렸다.
모두 만족스러운 듯이 배를 문지르고 있다.
그런데 수영이를 보니까 손가락이 약간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아까 고구마를 잡다가 가벼운 화상을 입은 것 같다.
"수영이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홀의 안쪽 서랍에 들어있는 구급 키트에는 반찬고가 들어있다. 혹시나 손님들이나 윤슬이가 다칠 수도 있으니까 넣어두었는데.
이럴 때 사용해야지, 언제 쓰겠는가.
반찬고를 떼어 수영이 손에 그대로 붙여주었다.
갑자기 콧소리 섞인 애교를 부려온다.
- 주현 오빠! 수영이 감동쓰... 수영이두 주현 옵바 동생 할래!
"그런 거 하지마."
- 엥?
"그런 거 하지마. 윤슬이만 가능해. 넌 하지마."
- 크윽...
- 힘내라, 권수영. 우리도 나이 좀 먹었다.
재빠르게 철벽을 쳐둔다.
괜히 이런 거 오냐오냐 해주다간 제3자에게까지 시도할지도 모른다.
수안씨 성격 상 수영이가 저런 장난을 쳐도 봐줄 것이다. 내가 컷해두는 게 옳다.
그 장면을 본 윤슬이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다.
"움! 당연해. 옵바는 윤스리 옵바거둔. 따른 사람 옵바 아니거둔."
동생은 내 선택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그렇게 고구마를 얻어 먹고, 루이와 함께 수영이 지아는 되돌아갔다.
오랜만에 봐서 반갑긴 한데.
문제는 저 방울을 단 고양이다.
브레이크 타임 도중이라 괜찮긴 한데.
아예 자리를 잡고 가게 한쪽에 누워버렸다.
"움... 옵바. 얘눈 어뜨케 하지?"
"그러게 말이다. 내쫓기는 조금..."
마음이 아프다.
그렇다고 손님들 오실 때까지 계속 여기에 내버려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분명 사람 손을 탄 친구인 것 같기는 한데.
"그리구 얘눈 왜 자꾸 윤스리 손에 자기 손을 올려두는 거야."
그 옆에 도도하게 엎드려 자기 앞발을 윤슬이 손 위에 올려두는 고양이.
저게 무슨 뜻인지 나는 알고 있다.
- 내가 너보다 대단한 존재임.
대략 이런 뜻이었던 것 같은데.
그러니까 윤슬이는 딱히 간택당했다기보다는, 자기 밑 부하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것 같다.
동생은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앞발 밑에 깔린 손을 빼내어 다시 그 위에 올려둔다.
이젠 윤슬이 손이 고양이 앞발 위에 있다.
쏘옥- 툭.
다시 역전.
고양이가 윤슬이 손에 앞발을 올려둔다.
쏘옥- 툭.
쏘옥- 툭.
쏘옥- 툭.
그게 몇 번이나 반복된다.
"이익... 윤스리 손 좀 내비두라구."
니양!
이어지는 기싸움.
다시 재개.
쏘옥- 툭.
쏘옥- 툭.
쏘옥- 툭.
그게 질릴 정도로 반복되다가 고양이는 화가 나버렸는지 가게 밖으로 나가고 싶은지 문쪽으로 향했다.
혹시나 싶어 문을 열어주었더니 후다닥- 달려 가게 밖으로 빠져나가버렸다.
"잉! 냥이가 가버려써."
"그러게."
길이 익숙한지 어딘가로 휙휙 뛰어가는 고양이.
그 모습을 윤슬이와 함께 지켜본다.
"옵바, 옵바. 근데 있짜나."
"응?"
"냥이 방금 왜 짜꾸 윤스리 손 위에 자기 손을 올려둔 거야? 몬가 기분이 안 조아써."
".... 글쎄."
굳이 고양이의 생각을 5세에게 알려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랬다간 프라이드에 상처를 입을지도 모르니.
나름 보스니까, 신경 써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