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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굴러들어옴-109화 (109/200)

109화: 맑은 하늘 우산(5)

지금 돌이켜보면 추측할 만한 단서가 전혀 없던 것은 아니다.

시온 할머니는.

아니, 시온은 스스로를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자칭했다.

고양이보다 그 어구에 잘 어울리는 동물은 손에 꼽을 것이다.

또, 고구마를 먹었던 적이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고.

그 고양이가 노묘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할머니와 고양이가 동일한 존재일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아무리 오누이란 존재를 곁에 두고 있는 나라도 쉽게 추론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었다.

"옵바, 어뜨케 된 거지?"

".... 글쎄. 미안해, 오빠도 잘 모르겠다."

가게로 되돌아가는 길.

구워먹을 고기 반 근을 들고 가는 중이다.

목살을 구워먹을 생각에 들떠있어야 하는데, 기분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아무래도 찜찜했다.

전직 대학 교수였던, 그 할아버지는 수호령이니 뭐니 말씀하셨지만 실상은 전혀 그런 것이 아니라, 그저 고양이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시온이 어떤 경위로 인간의 모습을 하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달님: 글쎄요. 평범한 일이 아니긴 하지만 저희라고 뭐든지 다 알아낼 수 있는 건 아니라서요.]

[햇님: 원래 이 세상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종종 일어나곤 하잖아요. 그런 걸 '폴터가이스트 현상'이라고 하던가요?]

오누이도 정확한 전말은 모르겠다고 하니, 본인에게 묻는 것이 아니라면 알아낼 방법은 전무했다.

그리고 그 고양이가 어디에 있을지는 현재 아무도 모르는 상태이다.

시후가 훌쩍이던 그 순간.

부모님이 걸어오셨다.

눈을 휘둥그레 뜨시며 어찌 된 일이냐고 물으시길래 설명하는 데 꽤나 애를 먹었다.

'시온 함모니가... 아니, 시오니가... 시후 알려조서. 친해지구 시퍼서. 말 걸어써여. 미아냉...'

윤슬이가 부족한 어휘를 최대한 활용하며 변명하는데, 그 모습이 너무도 귀여워서 금세 두 분의 뺨이 느슨해졌다.

내 다리 뒤에 숨어서 쭝얼거리는 모습은 토끼나 다람쥐 같았다.

동시에 시온의 이름이 윤슬이 입에서 나온 게 의외셨는지 우리에게 물어보셨다.

-  혹시 시온을 봤니? 어디서?

우리 남매가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가게에 훌쩍 들어와 고구마를 얻어먹고 나갔다는 것을 설명했더니 되려 우리에게 고개를 숙이셨다.

-  미안하게 됐네. 시온은 우리 가족인데, 챙기지를 못했어. 보다시피 검사 때문에 우리 아들이 병원 신세를 지고 있어서.

시온을 표현할 때 '키우는 고양이'가 아니라 '우리 가족'이라고 칭하신 점이 호감이었다.

동물을 소중히 대해주실 듯한 분들처럼 느껴졌다.

그때 직감했다.

적어도 시온을 멋대로 유기한 것은 아니란 걸.

시후의 부모님은 차분히, 또 간략하게 설명하셨다.

시온은 시후 가족과 함께 살던 고양이였다.

그런데 시후는 본래 몸이 안 좋은 아이다.

최근에는 그나마 증상이 호전되었고, 현재의 건강상태를 정확히 체크하기 위해 당분간 입원을 하게 되었다.

그동안 시온을 잘 챙겨줄 수 없었기에 집이 가까운 친척 집에 맡기게 된 것이다.

그리고 며칠 뒤, 시온이 그 집의 창문을 열고 멋대로 탈출했다고 한다. 그렇게 자기 마음대로 거리를 활보하게 된 것이다.

탈출했던 타이밍은 일주일 전쯤으로,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고 한다.

어제 운 좋게 시온을 길거리에서 발견했는데, 건강해보였다고 말씀드리자 시후도 그렇고, 그 부모님도 그렇고 엄청 좋아하셨다.

다음에 발견하면 꼭 잡아서 다시 그 친척집에 되돌려놓겠다고 말씀 드렸더니 시후가 나른해보이는 몸을 이끌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나와 윤슬이의 손을 하나씩 꼬옥 잡더니.

-  우리... 시온. 차자주세여. 부탁할게여...

그렇게 부탁했다.

윤슬이보다는 나이가 많아보였지만, 아직 초등학생도 되지 않은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이토록 필사적으로 부탁하는데 매몰차게 거절할 수는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움... 시오니가 어디 이쓸까."

"그러게. 찾는다고 해도 동네방네 찾아다니기도 힘들고."

오늘은 산책겸 돌아다니며 시온의 행방을 찾아다닐 수도 있다.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오늘 아침, 시온이 상자째로 사라졌다는 것을 감안하면 틀림 없이 사람 손을 탔다는 것이다.

차라리 경찰서나 어딘가 공기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빠를지도 모른다.

"일단 밥부터 먹구 찾을까? 배가 고프면 아무 것도 못하잖아."

"움... 그거눈 그러치! 꼬기 맛있게 먹구. 한 번 시오니를 찾아보자."

"그러자."

선 식사, 후 수색.

그렇게 결정한 터라 오누이 식당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목살을 천천히 음미할 시간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라고 생각했는데.

식당 앞에 도착하자, 예정이 곧바로 뒤틀려버렸다.

-  늦게 왔네? 한참 기다렸다. 나 배고프니까, 고구마 갖다주라.

"시오니?!"

"시온..."

시온은 오누이 식당의 발코니 아래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맑은 하늘인데도 펼쳐진 우산을 쓰고.

그제야 확실하게 기억이 났다.

저 우산.

고양이의 박스 위에 펴있던 것과 같은 모양이다.

심지어 건강검진 날 우리를 따라왔던 때, 쓰고 있던 것과도 일치한다.

펴진 우산 옆으로 어제 시온이 사용하고 있던 플라스틱 리빙박스와 종이 상자가 나란히 놓여있다.

-  어제 이거 플라스틱 잘 썼다! 되게 좋드라. 비도 안 들어오구.

"움... 그거 갖고 오느라 옵바가 힘드러써. 고맙다구 해이지 대."

-  응, 그러게. 고마워. 고구마 두 번이나 준 것도 고마워. 그리고 한 번 더 고맙다고 할게. 오늘도 얻어먹을 생각이니까.

저렇게 말하는 걸 보면 영락 없는 고양이이긴 하다.

"일단 들어갈까?"

-  응, 그래야지.

시온은 우산을 접고 박스에 넣고는 우리가 문을 열기만을 기다린다.

두 사람과 한 마리의 고양이는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고기는 일단 주방에 두고 홀의 테이블 쪽으로 나왔다.

식사를 우선시할 수는 없었다.

-  근데 용케 내가 고양이인 걸 알아냈네. 깜짝 알려주려고 여기서 쭉- 기다리고 있던 건데. 오랫동안 안 와서 실망할 뻔했어.

"가게 앞에 휴일이라구 옵바랑 윤스리가 써놨짜나."

-  고양이가 어떻게 글씨를 읽겠니?

"움... 그렁가."

그럼 고양이가 어떻게 인간으로 변하는가.

오히려 그쪽이 더 비현실적이다.

"그럼 시온, 너는 우리한테 네가 고양이란 사실을 알려줄 생각이었던 거야?"

-  응. 좋은 애들인 것 같길래. 믿을만하겠다 싶더라고.

고마운 평가였지만.

"애초에 네가 왜 인간이 된 건데."

-  인간이 된 건 아냐. 인간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게 된 거지.

그렇게 말하며 시온은 직접 고양이로 변했다가.

다시 사람으로 되돌아왔다.

변하는 게 물론 신기했지만, 비현실적인 일을 워낙 많이 겪다보니 그렇게 큰 감흥이 오진 않았다.

오히려 바깥에서 식당 안쪽을 누군가가 들여다보다가 이 광경을 목격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아무도 못 본 것 같다.

"오오... 변신 로봇 같당."

윤슬이는 박수를 치며 좋아한다.

아직 다섯 살인 동생에겐 저 정도 반응으로 넘길 수 있는 듯하다.

-  내가 왜 사람으로 변할 수 있게 됐는지, 알려주기 전에 먼저 나랑 약속 하나만 해.

"움? 무슨 약쏙?"

-  우리 시후는 언젠가 퇴원할 거야.

"태원? 그게 몬데."

-  병원에서 나와서,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는 뜻이야.

"오오...! 시오니, 너눈 냥이인데두 디게 똑똑허당."

-  흐흥, 난 열네 살이나 됐거든. 웬만한 꼬맹이들보다야 똑똑하지.

"잉? 수영이 언니보다두 동생이네. 근디 왜 이러케 함모니가 돼버렸찌."

-  고양이는 원래 사람보다 오래 못 살거든.

"움.... 그거눈 슬퍼."

윤슬이의 미미한 울상을 보고 시온은 한 번 헛기침을 한다.

그리고 대화를 다시 원래 주제로 되돌린다.

-  아무튼. 내가 너희 남매한테 부탁하고 싶은 건 하나야. 특히 윤슬이.

"윤스리한테?"

-  응. 시후가 병원에서 나오게 되면, 있잖아. 친구해주라. 우리 시후랑.

"시후랑 칭구? 그거눈 부탁 안 해두 해줄 쑤 이써."

-  그래? 그거면 됐어. 고마워, 윤슬이.

"웅... 근데 그거룰 왜 시오니가 부탁해?"

-  시후가 걱정되니까. 이제 내년이면 초등학교도 들어가야 되는데. 애가 워낙 어렸을 때부터 아프다보니, 친구가 별로 없거든.

"움? 시오니가 칭구라구 그랬자나."

-  응, 맞아. 내가 친구야. 근데 곧 아니게 돼버려. 왜냐하면.... 나는 곧 무지개 다리를 건너가니까.

"안 건너가므는 대자나. 다리를."

-  글쎄. 그럴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정말로.

시온은 노묘였다.

열네 살이나 먹은.

**

길고양이 경력이 짧지 않은 시온은 의외로 박식하다.

마치 오래도록 모험을 지속해온 모험가와 같은 고양이다.

모험의 장소는 대도시, 서울.

도심 속을 걷다보면 인간들이 주절거리는 말을 주워듣고는 그대로 익히곤 한다.

지식이 필요하진 않지만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고양이는 밥벌이를 위해 머리를 써야할 일이 없으니, 그런 잡지식이라도 익히지 않으면 두뇌가 썩어간다.

그리고 그렇게 굴리고 굴려서 갈고 닦은 두뇌는 생존을 위해 이용했다.

시온은 깨달은 것이다.

괜히 위험을 감수하면서 도시의 구석구석에서 먹잇감을 찾아내는 것보다야.

인간들을 잘 구슬려 밥을 얻어먹는 게 훨씬 효율적이란 사실을!

니야앙-

길고 간드러지듯 뻗어가는 울음소리는 시온의 장기였다.

-  저 고양이 완전 개냥이 아니야?

-  배 까뒤집는 거 봐. 복슬복슬해서 귀엽다.

그렇게 반응하며 어딘가에 있는 편의점에서 고양이용 캔을 사오거나 팻 밀크, 혹은 인기 만점 간식 '냥르'를 공양하는 인간들.

그들을 보며 시온은 미미한 우월감에 젖었다.

'크큭... 하찮은 닝겐들. 너희들에게 먹이를 공양할 기회를 주마. 감사하도록.'

물론 쉬운 일만 있던 것은 아니다.

인간들은 종종 서울을 정글에 비유하곤 한다.

그만큼 먹이 쟁탈을 위한 싸움이 치열하다는 뜻이다.

그런 비유가 정말 찰떡이라고, 시온은 생각한다.

고양이를 보면 먹이를 가져다바치는 인간은 결코 적지 않았지만.

그만큼 고양이의 수도 많다는 건 큰 문제였다.

절대로 크지 않은 파이를 나눠먹는다는 뜻이니 말이다.

그런 터라 굶는 날도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물.

수분이 모자랐다.

니야아앙-

'목마르다...!'

목이 마르니, 몸이 말라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부어만 갔다. 밥은 어떻게든 챙겨 먹으니, 체내에 염분은 쌓이지만 그걸 분해할 물이 모자란 것이다.

그래서 몸이 붓게 된다.

몸도 둔해지고, 움직임도 불편해진다.

그나마 비가 오는 날엔 바닥에 고인 물을, 깨끗해보이는 것만, 핥아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런 이유로 시온은 여름을 좋아했다.

비가 자주오니까.

그리고 여름을 좋아하게 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엉? 고영이당..."

니양?!

뜨거운 여름 햇살에 완전히 패배해, 그늘에 드러누워있던 어느날.

지금보다 약간 어린 시후와 조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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