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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굴러들어옴-110화 (110/200)

110화: 먼 곳의 벗을 그리다(1)

"음마... 이 고영이두 가치 집 가자."

엄마 이 고양이도 같이 집 가자.

"미안해, 시후야. 너 아직 몸이 다 안 나아서, 안돼. 대신 다 나으면. 그때 데리고 오자, 응?"

"웅...."

니야아앙-! 냐앙!

'이걸 놔라 닝겐, 뭐하는 거냐.'

시후는 드러누워있던 시온을 멋대로 들어올려 끌어안았다. 성인이 그랬다면 시온도 성깔을 내며 물거나 할퀴었겠지만 시후는 아이였다.

그래서 조금 억지로 들어올린다고 해도 폭력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아이들을 보호하는 것, 그건 하나의 생명으로서의 매너니까.

시후는 어린 데다가 면역 체계가 다른 아이들보다 약했다. 그래서 길고양이를 함부로 만지는 행동마저도 시후의 엄마한테는 걱정되는 행동 중 하나였다.

의사는 외출을 자주 하면서 바깥 환경에 시후를 접촉시키는 것을 권고했기에,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문제는 시후가 시온을 너무도 맘에 들어한다는 점이었다.

다른 고양이들에겐 그다지 반응을 보이지 않던 시후는 시온만 보면 달려들어서 껴안으려 했다.

냐아앙-!

'오늘은 멋대로 안으려 들지마라 닝겐. 아무리 꼬마라도 봐주지 않겠...'

꼬옥-

니양??!

'이럴 수가?! 꼬맹이 주제에 왜 이렇게 잽싸?'

또, 꼼짝 없이 안겨버렸다.

"웅... 음마, 이 고양이 넘무 입뿌다."

음... 엄마, 이 고양이 너무 이쁘다.

"시후야... 너 그러면 안돼. 그 고양이도 힘들어하잖아. 놔주자, 응?"

"흐응, 알게써."

그런 흐름이 몇 번이나 반복될 정도로, 시후와 시온은 자주 만나게 되었다.

시후의 산책 코스는 늘 일정하고, 시온이 떠돌이 길고양이였음에도 말이다.

냐앙-

'오늘은 그 꼬맹이 안 오려나.'

어느 하루, 시온은 시후를 기다리고 있었다.

결코 다른 이유는 아니다.

냐아- 니야앙

'그 꼬맹이가 와야, 그 맛있는... 뭐더라. 냥르인가 뭔가 하는 걸 갖다주는데.'

미양...

'절대루. 보고 싶어서 그러는 건 아니라고.'

시온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시후를 그리고 있었다.

구름은 먹먹히 차올랐고.

머지 않아 비가 내렸다.

그제야 시온은 깨달았다.

날이 좋지 않으니 산책을 나오지 않은 것이라고.

후두두두두둑...

쏴아-

비가 떨어졌다.

그다지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곧 근처에 물웅덩이가 생겨 약간, 흙탕이겠지만 마실 물이라도 건질 수 있다는 것은 좌우지간 호재였다.

그러나 그날따라 분명 여름이었는데도 제법 쌀쌀했다.

먀아-

'뭐 이래 춥냐. 여름인데. 이게 그 닝겐들이 떠들던 지구 온난화인가 뭐시기 때문인가.'

몸이 슬슬 떨렸지만 버틸만은 했다.

나름 길고양이 생활을 10년 이상 해온 시온이다.

자기보다 어린 고양이들도 몇은 목숨을 잃고야 말았다.

길바닥의 환경은 생명에게 잔혹하다.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덥다.

태풍이 불기도 하고, 폭설이 내리기도 한다.

그만큼 혹독한 삶을 살아온 시온으로선 날씨 정도야 어떻게든 견디면 되는 일이었다.

"고영이... 치즈 고양이야!"

그러나 시후에겐 그렇게 생각되지 않았다.

냐아앙?!

'꼬맹이, 날도 추운데. 왜 여기까지 나왔어?!'

시후의 품에는 작은 박스가 들려있었다.

그리고 그 뒤를 열심히 따라오는 시후의 엄마의 품엔 우산이 들려있었다.

"시후야... 우산은 쓰고 가야지!"

"고영이가 위험하자나. 다 젖으먼 어뜨케 해."

"그럼 넌 젖어도 되니? 어휴! 진짜."

시후는 털이 축축하게 젖어가는 시온을 상자에 넣고는 우산을 씌워주었다.

검고, 상자를 온전히 덮어줄 만큼 큰 우산을.

냐앙...

'꼬맹이, 너 어깨가 다 젖었다. 빨리 엄마한테 돌아가.'

"고영이야. 아프면 안대. 그럼 주사두 맞아야 대구. 약두 먹어야 대. 아주 맛이 업써. 알겠찌?"

미양...!

'.... 알겠으니까. 네 몸부터 챙기라고.'

인간의 말을 할 수 있다면 힘껏 꾸짖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시후의 맑은 하늘보다 더욱이 맑은 미소를 보니, 그럴 순 없었다.

대신 시후의 어머니가 잔뜩 야단쳤다.

안 그래도 또래보다 몸이 약한 시후가 멋대로 뛰쳐나가거나 비 오는 날에 집밖으로 나가겠다고 고집을 피우니 말이다.

엄마의 입장에선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시후와 어머니가 떠나고 시온은 혼자 남겨졌지만.

혼자 남겨진 듯한 기분에 빠지진 않았다.

길고양이 생활을 하며, 이토록 따듯한 기분을 느꼈던 적이 있는가.

시온은 우산 아래, 작은 상자에서 고요히 반추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온은 시후의 집에 들어가게 되었다. 가족이 된 것이다.

동물 병원에 가서 각종 예방접종을 받아야 했고, 생전 느끼지 못한 고통(뾰족한 주사 바늘...)을 느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치즈 고영이!"

미야아앙-!

'난 치즈 고영이가 아니야. 날 음식 취급하지 말아줘.'

꼬맹이 시후와 같은 집에서 살게 됐다는 게 좋았다.

이제 길고양이가 아니라 집고양이였다.

지붕은 뻥 뚫린 하늘이 아닌지라 비가 내리치는 일이 없었고.

바닥은 아스팔트가 아닌지라 피부가 쓸릴 일이 없었다.

무엇보다 시후와 그 가족들은 너무도 친절했다.

길고양이에게 시온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시후와 남매처럼 지낼 수 있기를 바라며, 같은 '시'자를 이름에 붙여준 것이다.

몸이 안 좋은 시후는 유치원을 가지 못했고, 자연스레 친구가 없었다.

그런 시후에게 시온은 좋은 친구가 돼주었다.

특히, 고양이와 잦은 스킨십은 의외로 면역체계에 긍정적인 영향이 되었다.

이는 의사의 소견이다.

-  원래 잦은 스킨십은 면역체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거든요. 태아와 산모를 최대한 붙여두는 것도, 그런 이유죠.

시온과 함께 지낼수록 시후는 더욱 건강해졌고.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시온... 고마워. 나랑 친구해줘서."

미양-

'당연히 고마워해야지.'

"옛날에는 친구가 업써서 되게 외로웠따? 근데 시온이 있어주잖아. 그래서 이젠 갠차나."

먀앙-

'흥, 빨리 건강해지기나 해. 내년엔 학교 가야 된다며.'

시후는 부모님에게보다 시온에게 속을 터놓는 경우가 많았다. 일곱 살짜리 아이에게도, 그런 얘기를 엄마 아빠에게 드렸다가는 두 분이 마음 아프리란 것쯤은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후에겐 시온이 둘도 없는 친구였다.

다만 문제는 늘 그렇듯 시간이 흐른다는 점이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시후와 시온에게 각자 다른 의미였다.

시후에게는 성장.

그리고 시온에게는 사그라듦, 줄어듦, 빠져나감, 말라감, 앞이 점차 흐릿하게 보임, 목소리가 먹어가듯 들림, 몸이 무거워짐, 맛이 덜 느껴짐 등등.

온전히 잔인한 방향이다.

니야아...

'곧 뒤지겠구나... 아니, 닝겐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무지개 다리를 건너겠군.'

건강 상태를 가장 빨리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다.

시온은 죽음을 직감했다.

지병을 앓고 있기 때문.

혹은 심한 외상을 입었기 때문.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그저 시간이 흐르기에, 자연스레 생명이 흩어져가는 것이다.

그건 이 세상의 어떤 존재로서도 막을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시온... 나 병원에 오랫동안 이써야 된대. 그동안 잘 지내야 대. 알겠찌?"

니야앙!

'너나 잘 챙기셔. 내가 문제냐? 네가 문제지.'

"응! 다녀올게."

그리고 며칠 전.

시후는 건강 상태 점검을 위해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후네 친척집에 맡겨진 시온이었지만.

냥!

'시간이 없다.'

시후가 언제 돌아올지는 시온도 몰랐다.

그리고 시온의 생명줄은 길어야 한 달 정도 남은 상태.

마냥 친척집에서 시후가 돌아오는 걸 기다릴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목숨을 잃고 세상을 떠나게 되면 시후는 혼자 남는다.

부모님이 계시고,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들어가겠지만.

시후는 또래 친구를 사귀는 방법을 잘 모른다.

미야앙! 미양!

'이거 내가 나서야겠군. 내 냥생 최고의 친구, 정시후. 나한테 감사하도록. 무지개 다리를 건너가기 전에, 네 친구를 하나 찾아두록 할 테니까.'

미야앙...

'그러니까. 내가 없어도. 잘 지내야 돼. 시후야.'

달이 희게 도시를 밝히는 밤.

시온은 친척집의 창을 멋대로 열고 탈출해버렸다.

다시 길바닥으로 나온 것이다.

시후의 친구가 되어줄, 마음씨 착하고 어린 닝겐을 찾기 위하여.

'냥생' 마지막 모험을 시작했다.

**

"움... 구래서 윤스리가 시후 칭구해주라는 거?"

-  그런 거지.

한 편의 서사시를 듣게 된 듯.

길고도 몰입감 있는 이야기였다.

"네가 어제 비 맞고 있던 것도 그럼 일부러 그랬던 거야?"

-  냥생은 낭만이지. 그때 내가 어떤 심정이었는지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었어. 그래서 다시 한 번 박스에 들어가서, 우산을 쓰고 있던 거라고.

말 그대로 '낭만 고양이'다.

말본새를 보아하니 쓰고 다니는 저 우산도, 그때 그 우산인 것 같다.

2년 전에 갖고 있던 우산을 아직까지 갖고 있다니.

물건을 잘 관수하는 가족이다.

-  이곳저곳 돌아다녀 봤는데, 사실 길고양이라는 게 어딜 가든 환영받지는 못하더라고. 발길질 하며 쫓아내는 곳도 있고. 어떤 개념 없는 놈들은 비비탄 총으로 쏘더라니깐, 내 참.

"힘들었겠네."

"우우... 나뿌다. 시오니 개롭히므는 안대."

여기까지 설명한다면 대략 사정은 이해가 된다.

상자와 우산을 정리하여 제 발로 우리 가게 앞까지 왔으리라는 것.

그리고 높은 나무에서 할머니가 떨어져내리는, 그 광경을 할아버지가 잘못 본 게 아니라는 것.

그건 시후를 관찰하러 간 것일 테니 말이다.

고양이 모습으로 직접 만나러 가는 선택지는 없었을 것이다. 괜히 그랬다가는 시후 부모님에게 잡혀 꼼짝 없이 친척집으로 되돌아가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었다간 시후의 친구를 찾아주겠다는 목적의, 마지막 모험이 맥없이 끝나게 되고 만다.

혹은 할머니의 모습으로 간다한들 면회가 허락되지 않을 테니 그것도 좋은 선택지가 아니다.

"거기까진 이해가 되는데. 시온, 너 어떻게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게 된 거야?"

그 지점이 가장 난해하다.

-  그건 나도 몰라. 갑자기 그렇게 되던데?

"엥? 네가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고?"

-  일부러... 는 맞지. 근데 갑자기 그럴 수 있게 됐어. 사람으로 변하는 거. 근데 나도 왜 갑자기 이렇게 된 건지는 모른다고.

"잉? 그게 모야."

-  글쎄, 낸들 알겠니.

아무래도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다.

신경쓰이긴 하지만 지금 당장 그렇게까지 중요한 부분은 아니다.

세상엔 오누이 같은 존재들도 있으니, 그런 녀석들이 제멋대로 개입했다고 생각한다면 납득 못할 것도 없다.

자세한 정황은 나중에 알아보기로 하자.

"그럼 시후한테 가자."

-  응? 무슨 소리여.

"시후, 보러 가야지. 안 갈 거야?"

-  됐어. 싫어.

할머니의 모습으로 변해있는 시온의 표정은, 고양이일 때보다 읽기 쉬웠다. 한눈에 보기에도 쓸쓸한 얼굴이다.

"왜 시룬데."

-  어차피 난 곧 떠난다니까. 만약 죽기 직전에 시름시름 앓는 내 모습 보면 시후 몸이 낫다가도 다시 아파지겠어. 그런 건 원치 않아.

"아니, 시온. 틀렸어."

-  .... 틀리긴 뭐가.

시온은 시무룩하게 얼굴을 숙이며 우리 남매 쪽을 곁눈질한다.

내가 답하기도 전에 윤슬이가 벌떡 일어나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시오니가 시후 안 보구 떠나버리믄! 그게 더 슬퍼! 시후가 엉엉 울 꺼야!!"

-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왜냐믄 윤스리두 그래쓰니까! 윤스리가 보내주기두 전에 다 윤스리한테서 떠나쓰니까!! 절때루 그러믄 안대! 마으미 아프다구!!!"

윤슬이의 강단에 시온은 완전히 쫄아버려 냅다 고양이로 변해버렸고.

나는 한 팔에 윤슬이.

그리고 다른 팔에 시온을 안아들었다.

"병원으로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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