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먼 곳의 벗을 그리다(2)
돼지 목살은 뒷전이었다.
냉장고에 넣어두고는 병원으로 향했다.
한 손은 윤슬이를 꼬옥 잡고 있고.
다른 한 손은 비어있다.
먀앙-!
'어두워! 지퍼, 지퍼 쪼끔만 열어줘.'
"알겠으니까, 조용히 해줘 시온. 병원에서는 시끄럽게 굴면 안돼. 쫓겨나니깐."
미야....
'알고 있다니깐.'
시온은 지금 가방 속에 들어있다.
뒤로 매는 책가방이다.
가게에 어떤 손님이 두고 가서는 영영 안 찾아가는 물건 중 하나인데 잠시 빌리기로 했다.
"옵바, 시오니가 병언에 들어가므는 안대?"
"아무래도 그렇지. 다른 환자분들이 놀라시잖아."
"움... 그러쿠나. 그치만 이번에눈 어쩔 쑤가 업써."
"응, 이번만이야."
원래 병원 같은 곳에 고양이를 데리고 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이란 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시온의 사정을 듣고 시후에게 데려가지 않을 수는 없었다.
최대한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해서 잘 데리고 가기로 했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시온이 인간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이후.
이 녀석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니양니양- 거리며 울음소리를 내는 것뿐인데 그 의미가 번역되어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윤슬이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다시 병원에 도착했다.
최근에 많이 들락날락해서인지 접수처의 간호사분들과는 면식이 있는 상태였고.
이미 시후 부모님께서 우리한테 고양이를 발견하면 연락을 달라고 말씀해두신 상태여서인지.
시후 병실로 향하는 면회가 금세 허락되었다.
그동안 시온은 가방 속에서 힘든지 낑낑거리며.
먀앙...
'메스껍다. 빨리 해라.'
라고 보챘는데.
윤슬이는 안타까운 얼굴로 가방 겉을 슬슬 문질러주었다.
"쪼꿈만 힘내, 시오니. 곧 시후 보러가니까는."
냥- 냥-
'오, 그래. 거기. 더 만져봐. 거기. 아아... 이거얏!'
"조용히 해줘... 들키면 안 된다니까."
몇 번 울어대기는 했지만 워낙 병원 로비가 어수선한 까닭에 들키진 않았다.
그것만큼은 다행이었다.
면회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우린 시후의 병실로 향했다.
운 좋게도 개인 병실이었다.
만약 다인실이었다면 함부로 시온을 꺼내어 보여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시후! 우리 와써."
병실에 도착해 미닫이 문을 열자마자 헐레벌떡 하고 시후에게 달려가는 윤슬이.
시후는 놀랬는지 어깨를 흠칫 떨고는 우리를 쳐다본다.
- 아, 안녕.
"몸은 좀 어때?"
- 괜찮아여. 아파서 온 건 아니니까.
그 옆에 계신 부모님은 우리를 반겨주시면서도 표정이 긴장하듯 굳어있었다.
- 시온. 찾으신 건가요?
"네, 찾았어요."
시온을 찾았다는 말씀을 드리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두 분.
시후만큼이나 두 분도 시온을 아껴주신 것 같다.
접수처에서는 "찾으시던 물건을 찾아서 그것에 대해서 알려드리려고 들렀다."라고 전해드렸으니 마음이 들떠계실 거다.
내가 가방을 열며 서프라이즈를 하려고 했는데 윤슬이가 불쑥 뛰어오르며 스포일러를 한다.
"시오니랑 가치 와써!"
- 응? 같이 와써?
시후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리고 내가 그에 맞춰 가방을 열자 거기서 시온이 고개를 빼꼼 내민다.
자신이 주인공이란 걸 스스로도 아는 것이다.
미양-!
'이 몸 등장!'
시온이 튀어나오자 부모님 두 분은 놀래기보다도 우리에게 고개를 푹 숙이며 감사를 전하셨다.
우연히 발견하게 되어서 데리고 왔다고 말씀 드리니, 우리에게 돈을 건네주시기에.
"사례금 같은 건 됐어요. 다음에 식사나 한 끼 하러 오세요."
라고 말씀드렸다.
- 고맙습니다... 다음에 꼭 들려볼게요!
가게 홍보는 이럴 때 하는 거다.
잠재적 단골의 냄새가 난다.
반면 시후는 뽀록뽀록- 눈물을 흘렸다.
알고 있었을 것이다, 시온이 집을 나갔다는 사실을.
그러니까 내심 걱정되었을 텐데, 이렇게 시온의 얼굴을 다시 보니 그 얼었던 마음이 녹아내린 듯하다.
시온은 시후의 품으로 당당하게 뛰어오르고.
시후는 치즈 색깔 고양이를 껴안고 조용히 흐느꼈다.
- 시온.... 시온....
미양-! 냐앙-!
'뭘 우는 거야. 누가 보면 내가 집이라도 나간 줄 알겠어! 내가 길을 얼마나 잘 찾는데.'
시온은 열심히 항의하고 있었지만.
그런 항변따위 알 턱이 없는 시후는 고양이를 열심히 타일렀다.
다시는 그러면 안 된다며.
그럼 절교라며.
아, 아니 역시 절교는 안 되고.
화낼 거라며.
시후는 오랫동안 시온을 안고 있었다.
그리고 시후의 얼굴에 미소가 돌아오며 우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올 때쯤.
윤슬이와 나는 눈을 마주쳤다.
서로의 동공은 올곧지 못하고, 미세하게 떨렸다.
앞으로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시후가 얼마나 시온을 아끼는지, 그리고 시온이 얼마나 시후에게 고마워하는지.
그 두 사실을 직접 목격한 우리 남매로서는 장차 도래할 미래가 두렵지 않을 수 없었다.
"저...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망설임을 이겨내고 내가 입을 열자 윤슬이가 내 바짓자락을 꾹- 잡으며 고개를 숙인다.
나도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이걸 전하지 않으면, 저 가족은 영문도 모른 상태로.
아무 것도 준비되지 않은, 무방비한 마음으로 시온의 최후를 맞이해야만 한다.
그보다 더 재해 같은 일은 없으리라.
그래서 반드시 전해야만 하는 사실이다.
"세 사람 다 아시죠? 시온이, 조금 나이가 많은 거."
- 응... 우리 시온이 별루 나이 안 많은데.
시후는 시온을 변호하고 싶은가보다.
그러나 부모님 쪽은 알고 계신 듯 고개를 끄덕인다.
침착하게, 사실과 거짓을 섞어 설명한다.
"사실은 여기 도착하기 전에 혹시 몰라서 동물 병원에 데려가 봤는데요...."
담담하고, 최대한 침착하게 전달했다.
시온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병실의 공기는 차게 얼어붙었다.
**
- 엥? 뭐야, 주현씨. 이번주부터 가게 일찍 닫아요?
"아... 치호씨. 미안해요. 그렇게 됐어요."
가게 마감 청소를 하던 중에 황치호씨가 느지막이 가게로 들어선다.
원래 이 시간대라면 식사를 할 수 있긴 하다.
평소보다 마감을 한 시간 정도 일찍 하게 되어서 이런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우우... 고구마 아저씨."
- 안녕! 윤슬이.
"절루 가여. 오늘 옵바랑 윤스리눈 시오니랑 시후 보러가야 댄다구여. 다음에 와여."
- 시후랑 시온이?
"자세한 건 다음에 설명드릴게요. 오늘은 밥 못 차려드릴 것 같아요."
- 에잉, 어쩔 수 없죠. 원래 더 빨리 오려고 했는데. 이게 원고가 마감이 안 나더라고요... 칫. 대신 다음에 곱빼기로 얹어줘야 돼요?
"그 정도야 해드리죠."
치호씨는 뒷머리를 매만지며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간다.
미안하게 됐지만 어쩔 수 없다.
우리 남매는 시온이 무지개 다리를 건널 때까지 그 둘과 함께하기로 했다.
매일 같이 시후네 집에 들러 밤 산책을 나가는 것이다.
시온이 곧 목숨을 잃게 될 거란 말을 듣고, 그날 병실의 공기는 얼음 속에서 영원히 정지한 듯했다.
그러나 오히려 부모님 두 분께서는 이미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듯했다.
- 워낙 길고양이로 오래 살았던 아이라... 그랬군요. 죄송합니다. 병원까지 데려가주시고.
시후는 우리 말을 들었는데 모르는 척 하는 건지.
아니면 듣지 못했는지 가만히 시온을 들여다보며 눈을 마주치고 있었고.
시온과 시후는 아이컨택을 오래도록 하며 간간이 눈을 깜빡였다.
인터넷에서 본 바로는 고양이들은 아이컨택을 하며 눈을 깜빡이는 게 최고의 애정표현이라고 한다.
인간들이 입을 맞추는 것처럼 말이다.
병실의 적막한 분위기를 깨는 것은 윤슬이였다.
내 옆에 딱 붙어 앙증맞은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마치 유치원생이 발표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윤스리가 말해볼 게 이써여."
- 응?
시후가 가장 먼저 반응했다.
"시오니는 원래 길에서 마니 살았짜나. 그니깐 시오니랑 가치 산책을 다녀보므는 어때?"
- 산책?
"웅! 그러믄 시오니도 조아할 거야. 아마두."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시온은 이곳저곳 쏘다니는 걸 좋아하는 아이처럼 느껴졌다.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라고들 하지만, 시온은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자칭했다.
또, 길에서 살 때는 다양한 장소를 돌아다녔다고도 했다.
시후의 부모님은 고민하시는 듯 보였지만.
시후는 먼저 시온을 바라본다.
냐아앙-! 미야아앙-
'역시 윤슬이. 뭘 좀 아는구만? 길바닥은 내 고향이니까. 길에서 살던 고양이, 길바닥 냥생을 되돌아보며 최후를 맞이하다. 크으- 이게 낭만이지.'
낭만 고양이, 시온의 반응이 매우 극적이었다.
울음소리를 길게 빼어 환호하는 듯 보였다.
다른 병실에까지 들릴까 염려가 되어 재빠르게 시온을 진정시켰다.
그런 시온의 반응을 보고서야 시후는 마음을 굳힌 듯했다.
퇴원하고 나서는 시온과 함께 동네 주변이라도 돌아다니며 마지막 추억을 쌓기로.
- 요 며칠 간 검사 때문에 병원에 오래 누워있었으니까요. 산책하는 건 저희도 좋은 것 같아요. 무엇보다... 우리 아들딸, 시후랑 시온이 생각해줘서 감사합니다.
"히힝! 별 말씀을!"
윤슬이가 쑥쓰러워하며 다섯 살에겐 제법 어려운, 겸손을 떨었다.
물론 동그란 배를 쭈욱 내밀며 으쓱해하는 제스쳐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된 터라, 우리 남매는 식당을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닫고 시후네 집으로 가는 중이다.
시후네는 우리 집에서는 거리가 어느 정도 있었지만 가게에서는 걸어서 10분도 채 되지 않는 거리에 있었다.
나름 호재다.
띵동-
한적한 길가의 단독주택.
서울 땅에서 단독주택을 보유하실 정도면 시후네는 경제적으로 축복받은 집안일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렸다.
문앞에선 씩씩하게 신발을 신고 우리를 기다리는 시후와 시온이 마중을 나와주었다.
- 기다려써여. 윤슬이, 그리고 주혀니 형.
"움! 윤스리두 시후랑 시오니 볼라구 기다려써."
니양-! 니양-!
'이 몸도 기다리다가 목이 빠지는 줄 알았다. 아아... 목이 빠졌으면 예정보다 조금 더 일찍 뒈졌겠군.'
저놈의 고양이는 인간이었으면 블랙 코미디로 아메리카 쪽에서 꽤 이름을 날렸을 거다.
나는 양손에 윤슬이, 그리고 시후의 손을 잡는다.
시온은 우리보다 두 발짝 앞장 서서 걸음을 걷는다.
"""다녀오겠습니다!"""
시후의 부모님은 우리를 배웅해주신다.
산책을 처음 나가는 오늘은 동행하지 못한다고 하셨다. 무언가 사정이 있다며.
시간이 되는 날만큼은 반드시 참여하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집밖으로 다시금 발을 뻗은 시온은
냐앙-!
'역시 집도 좋지만, 바깥 공기가 최고지.'
간드러지는 울음소리를 길게 늘어뜨린다.
기분이 좋은 듯하다.
노묘, 시온의 마지막 모험에 동료로서 나와 윤슬이는 함께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