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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굴러들어옴-112화 (112/200)

112화: 먼 곳의 벗을 그리다(3)

오누이 식당이 있는, 이 근처 동네는 기본적으로 주거지인 터라 콘크리트 담이나 공터가 드물게 보인다.

집들이 옹기종기 모인 길을 지나다보면 처음 듣는, 그러나 낯설지 않은 생활음이 귓가를 스친다.

미양- 미양-

'하아... 이거야. 이 콘크리트 담의 감각. 발바닥에 거칠게 찍히는데, 이게 은근히 중독된다니까.'

"움?"

윤슬이는 시온의 말을 알아듣고 호기심이 생겼는지 콘크리트 담의 표면을 손으로 슥삭 문지르다가 인상을 찌푸린다.

"우우... 까칠하자나. 우리 옵바 수염보다두 더 까칠해."

"그래서 맨날 면도하잖아."

"면도 안 하므는 윤스리는 옵바한테 뽑뽀두 안 해줄 꺼야."

"으윽."

뽀뽀를 안 해준다니!

가뜩이나 잘 안 해주는 건데.

어차피 가게에 출근하기 위해서는 수염을 깎고, 세면세치를 하는 게 기본이지만.

면도를 나날이 해야하겠다는 다짐이 더욱 굳어진다.

-  수염?

시후는 수염에 흥미가 있는지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리고 다시 돌담 위를 흥겹게 걷고 있는 시온을 쳐다본다.

-  주혀니 형아보다 시온이 더 길다. 형아는 거이 없는데.

"수염 말하는 거야?"

-  네, 수염.

냐앙-

'흥, 인간 따위의 수염이랑 이 몸의 수염을 비교하지 말아줬으면 해.'

문득 궁금해졌다.

저런 생각을 하는 것은 시온뿐인 건지.

아니면 대다수의 고양이가 저런 식으로 생각하게끔 두뇌의 메커니즘이 짜여있는 건지.

"우리 옵바두 수염 갠찮거둔. 우리 옵바 무시하지 마러."

먀아앙...

'너도 수염 별로라며. 내로남불이니?'

"옵바한테 모라구 해두 대는 건 윤스리뿐이야."

윤슬이의 괴상한 논리와 함께 1일차의 산책은 종료되었다. 별다른 의미 있는 일은 없었지만 아직 시온이 기운 있어 보여서 마음이 놓였다.

이튿날은 성북천으로 향했다.

보통의 길거리보다 사람이 북적북적하여 어제보다 산책의 걸음걸이가 약간 늦어졌다.

그 인파 중에서도 우리 일행은 단연 눈에 띤다.

귀여운 꼬맹이 둘과 고양이 한 마리가 나란히 걷고 있는 조합은 좀처럼 볼 수 있는 게 아니니 말이다.

-  야, 저거 봐봐. 고양이가 산책을 하는데?

-  그러네. 애기들 둘이 고양이 산책시키나봐!

그런 의견들에 반박하듯 신경질을 부리는 시온.

먀아아앙-! 미양!

'산책이라니? 이런 꼬맹이들이 이 몸을 산책시킬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내가 얘들을 데리고 다니는 거라고.'

허나 그런 항변따위 다른 사람들의 귀에 들릴 리가 없었고.

-  방금 우리 쪽 보면서 대답한 거지?

-  그런 듯. 꼬마 둘이 산책 시켜줘서 좋다고 그러나봐. 고양이 너무 귀엽다.

의도치 않은 오해를 낳아버린 시온은 20% 정도 절망했다. 그렇게 축처진 시온을 보며 시후는 혹시나 건강이 안 좋아졌을까 걱정했다.

-  시온... 어디 아파? 괜차나? 이제 들어갈까?

냐앙-

'아프긴! 이 정도로는 끄떡 없지.'

시온의 맑은 울음소리를 듣고서야 시후는 긴장을 풀었다. 그런 심정이 이해되어 우리 남매는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조금 더 잦아드는 속도로 성북천 산책을 완주했다.

셋째 날.

어느 높은 빌딩 위에 올라가보았다.

관광용으로 지어진 빌딩은 아니고, 여러 사무실들이 층마다 줄지어있는 건물이었는데.

오누이 식당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였고.

높이가 23층에 달했다.

먀아아앙-

'노, 높으니깐 쫄리는구먼.'

"우어어... 옵바 넘모 높으당. 바라미 넘무 마니 부러서... 시언해."

저 아래서 줄지어 걷는 사람들이, 표현 그대로 개미처럼 보인다.

난간 아래로 나는 내려다볼 수 있지만.

신장 때문에 윤슬이랑 시후는 그렇지 못하다.

내가 살짝씩만 들어서 그 아래를 보여주자 두 사람 모두 깔깔거리며 웃는다.

"으히히힝! 높으다! 완저니 높으다!"

-  오오! 아래가 다 보여!! 신기하다.

그런 꼬맹이들을 뒤에서 철 없다는 듯이 쳐다보는 시온.

미잉-

'그게 뭐가 좋다구. 그러다 떨어지면 훅 가는 겨.'

저 고양이는 노묘인 탓인지 제법 현실적이다.

그렇다기보단 다리가 덜덜 떨리는 걸 보아하니 높은 빌딩이 무서운 건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귀엽다.

시온은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야 흥미가 생겼는지 내 신발을 앞발로 쿡쿡- 누르더니.

먀앙-

'이봐 닝겐. 나도 들어줘봐.'

"왜, 보고 싶어?"

냐앙-

'그래, 그러니까 빨리. 해줘.'

난간에 앞다리를 걸칠 수 있게끔 들어주니 시온이 드물게도 고로롱- 거린다.

'웜마, 기분 좋구먼. 이러니까 부자놈들이 높은 빌딩을 사지. 나도 인간으로 살았으면 돈을 많이 벌었을 텐데.'

고양이 입에서 저런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묘해져서 다시 금방 내려놔버렸다.

그러자 시온은 불만스럽게 나를 노려보았다.

나흘째엔 시후네 집에서 놀았다.

고양이를 기르는 집답게 장난감이 아주 많았다.

그중에서도 시온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플라스틱 잠자리가 달린 낚시대다.

윤슬이는 지난 8월 강릉에서 낚시하다가 농돌이를 낚은 경험을 살려볼 계획인지 낚시대를 잡은 순간 표정이 야심차게 변한다.

"히히... 윤태공이라구 불르라구 했짜나."

"네가 언제 그랬어. 그리고 강태공 드립은 또 어디서 주워들었는데."

"움? 옵바한테."

윤슬이는 기세 좋게 잠자리가 달린 낚시대를 쥐어 공중에서 휘휘- 휘둘러보지만.

의외로 시온의 반응은 담담하다.

냐앙...

'기운이 없다.'

그 모습을 보며 시후와 그 부모님은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특히 시후가 그렇다.

-  .... 이제 힘들구나. 시온.

냐앙-

'그러게. 이제 힘드네. 썩 놀고 싶은 기분은 아니야.'

슬슬 시온의 기력이 약해지는 듯 보였고.

이날은 그저 차분하게 시온을 가만히 두고 쓰담아주었다.

미미하게 나는 골골-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아팠다.

다섯째 날엔 우리 식당에 시후네 가족을 초대해 식사를 대접했다.

대접했다기엔, 재료를 시후네 가족이 사오는 바람에 만들기밖에 안 했지만.

-  어후, 주현씨 요리 솜씨가 대박이네? 자주 먹으러 와야겠다.

-  그니깐요, 심지어 알아보니까. 이 근처에서 이 식당 꽤 유명하던데요?

"유명까진 아니고. 그냥 단골 손님 몇 분 계시는 정도예요."

시후도 부모님만큼이나 맛있게 먹어서 다행이라고 느껴졌지만.

정작 시온은 챙겨주었던 말린 황태를 다 먹지도 못하고 질겅질겅 씹고 있을 뿐이었다.

"갠차나? 시오니?"

윤슬이의 물음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시온이 답한다.

냐앙-

'글쎄. 굳이 따지면 안 괜찮은데. 그래도 나쁘진 않아.'

윤슬이의 걱정 어린 눈빛을 보고 시온이 한 마디 덧붙인다.

냐앙- 냐아-

'그래도 시후네 식구들이랑 이렇게 밖으로 나와서 밥 먹는 게. 신선해서 좋은 것 같아.'

"웅..."

시온의 눈동자는 한 테이블 떨어진 곳에서 식사 중인 가족들에게 향한다.

가족들은 시온을 옆에 앉히고 싶어했지만 자기 스스로 몇 발짝 떨어진 곳까지 걸어나와 자리를 잡았다.

그 이유와 감정에 대해선 시온밖에 모를 것이다.

다만 시온의 눈동자에 사랑이 담긴 것만은 확실했다.

그리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시후네 가족들은 충분히 시온을 걱정하고 있었다.

시온을 집 밖으로 내보내는 것을 몇 번이고 주저했다.

그럼에도 이렇게 함께 우리 식당까지 방문해 식사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시온을 위해서다.

일가족이 가게에 막 도착하셨을 때 시온과 시후의 어머니와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  시온이 오래 살다보니 사람 말을 잘 알아듣는가봐요. 어제.... 장난감으로 놀이할 때 기운이 많이 없는가 싶어서. 사실 오늘 식당에 안 오려고 했거든요.

'어... 시온 상태 많이 안 좋으면 안 오셨어도 괜찮은데.'

-  아뇨. 그런데 시온이 먼저 가서 현관 앞에 자리 잡고 앉아있더라구요.

-  시온이 울었어여. 냥- 냥- 하고. 밖으로 나가고 싶다구.

시후가 보충 설명했다.

그러니까 오늘, 시온과 함께 산책을 나가겠다고 약속한 지 다섯째 되는 날의 일정은 취소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시온이 원해서 이렇게 식사 자리를 갖게 된 것이다.

과연 그저 집에 있기 싫어서, 바깥으로 나가고 싶어서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우리 식당에 다시금 오고 싶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시온의 눈빛은 가족에게 보내는 것만큼 우리 남매에게도 다정했다.

"시오니... 아프믄 안대."

윤슬이의 순진한 발언에 시온은 짤막하게 답한다.

냥-

'그러게 말야.'

그리고 그 다음 날.

운명의 시간이 되었다.

약속대로 시후네 집에 방문했는데, 문을 열어주신 시후네 아버지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그때 우리 남매는 직감했다.

때가 되었다고.

발걸음마저 조심하며 거실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시온을 푹신한 방석 위에 올려두고는 시후네 어머니와 시후가 침울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우리를 보시더니 시후 어머니는 반갑게 인사해주시지만 시후만큼은 자리를 뜨지 않는다.

시선이 올곧게 시온의 목덜미에 얹힌다.

"시후..."

윤슬이가 먼저 아는 척을 하며 다가간다.

그제서야 떨리는 손으로 윤슬이의 손을 맞잡았다.

두 아이의 시선은 다시금 시온의 등어리로 떨어진다.

미이잉....

'왔나.'

사그라드는 목소리가 귓바퀴를 천천히 간지럽힌다.

나는 시온의 거칠은 털 위로 손을 부드럽게 매만지며 말을 건넨다.

"기분은 좀 어때?"

미잉-

'기분이랄 게 있나. 그냥 좀 피곤하고. 졸립고. 만사가 귀찮고. 평소랑 다를 게 없지.'

"나쁘지 않네."

미양...

'그럼. 당연하지.'

시온의 울음소리가 영화의 엔딩 크레딧처럼 느껴진다.

그렇기에 더욱 담담해야만 했다.

나도, 시온도.

그리고 시온의 가족들도.

"이제 무지개 너머루 가는 거야, 시오니?"

먀앙-

'그래. 이제 무지개로 가.'

"안 가므는 안대?"

냥.

'그건 안돼. 모든 생명의 약속이야.'

"약쏙?"

냐앙- 냥-

'이 세상에서 행복했던 만큼. 언젠가 놓아주어야 한다구, 꼬맹아.'

"... 꼬맹이 아니구."

냐앙-

'윤슬이.'

"웅. 윤스리. 시오니 그동안 고마워써. 윤스리랑두 칭구해줘서. 그리구 시오니 덕분에 시후랑두 만나구. 아줌마 아저씨랑두 만나써. 시오니 덕분이야."

시온의 떨리는 앞발이 윤슬이의 손 위에 얹힌다.

윤슬이의 것도 앙증맞도록 작지만, 시온에 비할 바는 안 된다.

미양- 먀아아앙- 미야아아앙-

시온이 토해내듯 울음을 쥐어짜낸다.

'나야 말로. 네 덕분이라고. 마지막에 가족들이랑. 시후랑. 너희랑. 동네를 산책해서 좋았어. 높은 곳도 가보고. 돌담도 밟아보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가고.

윤슬이, 네가 가족들에게 돌아가라고 하지 않았더라면 난 아마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했을 거야. 정말로 고마워.'

그런 시온의 울음소리가 격하여 시후네 가족은 어깨를 흠칫 떤다.

시후의 어머니는 눈물을 훔치셨고.

시후네 아버지는 머리를 쓸어넘긴다.

오직 고요한 것은 시후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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