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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굴러들어옴-120화 (120/200)

120화: 오른팔과 요리교실(2)

"옵바! 옵바! 일루 와바! 이것 쯤 봐쥬!!"

"뭔데 그래?"

윤슬이가 어쩐 일로 다른 손님들에게 들릴 정도로 쩌렁쩌렁 나를 부른다.

이런 일은 좀처럼 없다.

다치기라도 했는가 싶어 재빠르게 윤슬이 쪽을 쳐다보니.

"우우... 어때...!"

"뭐가."

"윤스리 키... 유미니랑..."

"누가 더 크냐고?"

"웅...!"

윤슬이는 유민이와 등을 딱붙이며 키를 재보고 있다.

그 와중에 최대한 키가 커보이고자 등을 꼿꼿이 세우느라 힘이 들어간 모양이다.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게 여기까지 보인다.

이걸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

솔직히 저렇게 재지 않더라도 누가 큰 지는 뻔히 보인다.

그래서 더 문제다.

윤슬이에게 사실대로 말했다간 단어 그대로 팩트 폭행이 되어버린다.

여린 5세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고 싶지 않은 나는.

"글쎄~? 서로 비슷해서, 오빠 눈에는 잘 안 보이는데."

필살! 말돌리기술을 시전했다.

-  응? 딱 봐도 우리 아들이 3센치는 더 큰 것 같은데?

그러나 사회적 풍파에 휩쓸려 슬슬 감성이 무뎌질 나이대인 삼십대 중반 미정 쌤.

최근 우리 가게에 들리지 않았던 터라 윤슬이의 감정을 이해할 리가 더욱이 없었고.

결국 팩트가 가슴 언저리에 꽂힌 윤슬이는.

".... 추, 츙격!"

눈이 콩알만해져서, 가게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버렸다.

그걸 본 미정 선생님과 유민이는 되려 당황한다.

-  왜 그래?!

-  유, 윤슬이?!

"으아..."

묵묵히 식사 중인 손님들도 이게 뭔 일인지 싶은 눈치다. 윤슬이와 미정 쌤 모자를 은근히 번갈아 쳐다본다.

나는 재빠르게 미정 쌤의 귀를 빌려 사태를 간단명료하게 설명했고.

-  아아! 잘 보니까 윤슬이가 우리 아들이랑 키가 똑같은 거 같은데? 우리 윤슬이가 아직 다섯 살인데도 키가 엄청 크네!!

재빠르게 사태 수습에 돌입하셨으나.

"그짓말."

-  윽.

"윤스리 안 속아여."

-  크흡... 저, 정말이야.

"그러믄 왜 말을 더드머여. 윤스리 다 알어!"

꼭 이럴 때만 눈치가 빠른 5세였다.

물론 거짓말이 너무 티가 났던 것도 사실이지만 말이다.

다행인 것은 윤슬이의 마음이 풀리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금방 배가 고팠는지 벌떡 일어나 주방 안으로 들어와

"옵바, 윤스리 슬펐떠니 배가 고파져써."

라며 점심 식사를 요구했다.

"그럼 우리 윤슬이한테 평소보다 더 맛있게 만들어줘야겠네?"

"웅. 아까 우동이가 마시써 보여써."

볶음 우동을 말하는 것이다.

오늘의 메뉴다.

최근에는 한국적인 재료와 이국의 재료를 섞어 판매하는 것에 도전 중이다.

저번에 팔았던 치킨 인 헬이 매출에 꽤 도움이 됐던지라 우리나라에서도 꽤 인기가 좋은 음식 중 하나인 우동에 도전하게 되었다.

자가제면까지 하긴 어렵겠지만 꽤 질 좋은 우동들이 인터넷에서 판매되고 있는 요즘 세상인지라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조리 방법도 간단하다.

마늘, 양파와 함께 볶인 우동 위에 멸치액젓과 간장, 굴소스, 후추를 섞은 소스를 붓고 볶아주면 끝이다.

이때 면을 삶을 때 나온 면수를 아껴두었다가 조금씩 뿌려 농도를 맞춰주는 게 포인트다.

유화 현상이 일어나며 면의 적당한 수분감을 살려준다.

"후루룩-! 우물우물... 꿀꺽- 움, 만족."

다행히도 윤슬이는 만족스럽게 식사를 시작했고, 배가 차서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나 유민이에게 대하는 태도가 평소와 조금 달랐다.

짜증을 내거나 틱틱대진 않았으나.

"유미니 이거 바바."

-  응?

붕붕이 3호에 타더니 가게 안쪽의, 그나마 넓은 베란다 쪽을 활용해 폭풍후진을 보여준다!

"윤스리 이런 것두 할 쭐 안다구."

-  오오! 머시써.

"그치!"

-  역씨 보쓰야, 대다내.

"히힝-"

괜스레 유민이에게 자신의 장기를 보여줌으로써 자존감을 되찾으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는 행동마저도 되게 사소하고, 뽀짝뽀짝하여 귀엽게는 느껴졌으나.

한편으로는 유민이가 윤슬이 마음을 헤아려 챙겨주려는 게 아닌가 싶어.

그 배려가 여섯 살치곤 꽤나 디테일하고, 섬세하고, 스윗하지 아니한가 싶어.

그랬다가는, 이대로 가다가는, 먼 훗날 유민이와 윤슬이가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망상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까닭에.

심정이 복잡해졌다.

-  야, 주현아. 망상 스탑.

"티 났어요?"

-  응, 대체 어디까지 상상하는 거야. 쟤들 아직 초등학교도 안 들어갔다.

"그, 그건 그렇죠."

그런 복잡한 심정은 얼굴에 곧바로 티가 났는지, 미정 선생님에 의하여 빠르게 진압되었다.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실 정도면 나도 좀 정신을 차려야하는 게 아닐까.

자기객관화 해본다.

그날 장사를 마치고 집으로 되돌아가는 길.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윤슬이는 유민이랑 시후보다 키가 작아서 기분이 영 찜찜했어?"

"찜찌미여써."

"근데 유민이랑 시후는 윤슬이보다 쪼금 더 일찍 태어나서 키가 더 클 수도 있는 거잖아."

"그거눈 윤스리두 알어..."

"그런데도 별로 기분이 안 좋았다는 말이야?"

"웅. 왜냐믄 윤스리가 보쓰인데 키가 작으믄 어뜨케 해! 면모기가 업써."

"면목이 없어?"

"넹..."

윤슬이만의 기준이 있는 것 같다.

적어도 나나 다른 어른들보다 자신이 키가 작다고 해서 기분 상해하진 않는다.

반면 시후와 유민이는 각각 일곱 살, 여섯 살이지만 또래에다가 친구 사이다.

그 점이 신경쓰이는 모양이다.

"오빠는 윤슬이가 조금 더 천천히 컸으면 좋겠는데."

".... 왜여?"

"왜냐면 지금 이만한 윤슬이는 오늘내일밖에 못 보잖아."

"움?"

윤슬이는 이해할 수 없단 듯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까 아침에 키 쟀던 거 기억나지?"

"옵바랑 가치 재써. 지난 달보다두 커져써. 쪼끔이지마는."

"그렇지? 그럼 지난달만큼 키가 작았던 윤슬이는 다신 못 보는 거잖아."

"움...!"

"그리고 다음달이 되면, 또 그만큼 커진 윤슬이가 있을 거 아냐. 그렇게 커진 윤슬이도 오빠는 너무너무 좋아하지만. 지금 이만큼, 아직 안 큰 윤슬이도 좋아."

"별루 안 큰 윤스리두 조아?"

"그럼! 크던 안 크던, 오빠 동생인데."

"히히힝..."

윤슬이는 멋쩍게 웃으며 몸을 배배 꼰다.

확실히 낯간지러운 소리를 하긴 했다.

하지만 좀처럼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윤슬이 아니던가.

키 문제로 괜히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라도 말해주면 마음의 짐을 덜지 않을까 싶다.

"그니까 윤슬이는 키를 못 크는 게 아니라. 오빠를 위해서 조금 천천히 커주는 거야."

"옵바를 위해서?"

"그렇지. 더 빨리 무럭무럭 클 수도 있는데. 오빠가 아직 덜 큰 윤슬이도 기억 속에 간직할 수 있게끔."

".... 웅. 알게쏘."

윤슬이는 고개를 연신 네다섯 번 정도 끄덕여준다.

쑥쓰러운 건지.

아니면 내 말에 동의한 건지.

그 마음만큼은 알 수 없었으나 적어도 한 가지만큼은 확실했다.

윤슬이 입꼬리가 올라간 것으로 보아, 내 말에 설득당해준 것 같다.

그 정도면 더 무얼 바라겠는가.

**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위기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찾아온다.

가령 큰 사고가 나는 사례들도 그렇지 않은가.

위험하다고 경고된 것에 대해선 어느 정도 누구나 예상할 수 있기에 조심하기 마련이다.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기에 대형사고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번 사례가 딱 그렇다.

"움..."

"음..."

두 남자가 이렇게 맞닥뜨리게 될 줄은 예상치 못했다.

오늘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마치 오래도록 얼굴을 마주했더 악우처럼.

시선이 거칠게 얽히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유미니, 시후 왜 그래?"

윤슬이가 의문스런 표정으로 다가가서 두 사람의 중재에 나선다.

그러나 유민이와 시후는 제법 완강하게 부딪히고 있다.

-  이건... 양보 안대!

-  나두 윤슬이랑 친한데.

-  나는... 시후 형아보다두 윤슬이랑 오래 봐써.

-  윽, 나는 여기 식당에서 주혀니 형아두 도와줘써.

서로의 특장점을 어필하며 자잘한 언쟁을 벌이는 중이다.

결국 두 사람이 원하는 바는 이것이다.

-  내가 윤슬이 오른팔이라구!!

그렇다.

보스: 장윤슬

조직원: 루이, 정시후, 차유민

이라고 한다면.

조직원 중 보스, 장윤슬의 오른팔을 고르시오...!

이러한 문제에 봉착한 것이다.

루이는 일단 개과니까 논외로 친다면 남은 사람은 시후와 유민이뿐이다.

이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것도 어찌 생각해보면 시간 문제일 수도 있겠는데.

누구도 예상치 못한 관계성에 의하여 돌연히 만나게 되었다.

미정 선생님과 시후의 친어머니가 사실 연락이 끊긴 대학 동창이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동네 근처에서 우연히 마주쳐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요즘 자주 들르는 식당인 우리 가게로 오게 되었다.

각자의 키즈들을 데리고.

두 분은 식사를 간단히 마친 뒤 디저트를 주문하시고는 테이블에 앉아 수다를 떨고 계신다.

마침 손님들도 다 나가신 타이밍이라 그 부분은 전혀 문제가 없는데.

오히려 그 뒤에서 키즈들이 윤슬이의 오른팔 자리를 두고 격돌 직전이라는 점이 신경쓰인다.

-  유민이, 너는 모 잘하는데?

-  나는 엄마 도와서 빨래두 잘 개어.

-  그, 그거는 쫌 대단한데.

-  그러는 시후 형아는! 모 잘하는데.

-  난 저번에 주혀니 형아한테 칭찬두 받아써. 간식 잘 나른다구.

-  앗, 그건 나두 한 적이 없는 건데.

두 꼬마는 대체 무슨 기준으로 다투고 있는 것일까.

본인의 장점 혹은 무용담을 늘어놓으며, 누가 윤슬이의 오른팔에 어울리는지 다투고 있는 듯하다.

심지어 서로의 장점을 은근히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경쟁하는 건지 서로를 칭찬해주는 건지 헷갈릴 정도다.

그 모습을 보다가 굳이 말릴 필요가 없겠다는 판단이 선 5세는 스르륵-

뒤로 빠져 주방 쪽으로 향한다.

"끼잉-!"

힘겹게 주방 냉장고 아랫칸의 문을 열어 요즘 나날이 배달되고 있는, 맛짱짱 우유를 취식하기로 한다.

"후루룰루룩-! 아직 어리구먼."

믿기 힘들지만 이 가게 내부에서 최연소인 5세 입에서 나온 발언이다.

6세와 7세는 계속 옥신각신한다.

질릴 법도 한데, 꽤 오랜 시간 동안 윤슬이의 오른팔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결론이 나지 않고 이야기가 지속된다.

그러다가 두 사람이 잠잠해지더니 무언가를 상의하기 시작한다.

-  응, 시후 형아 말이 맞어. 그게 조을 거 같애.

-  그럼 윤슬이한테 가서 물어보자.

맛짱짱 우유를 마시고 있던 윤슬이.

두 사람이 다가오자 어깨를 흠칫 떨며 놀란다.

"움? 모야?"

-  윤슬아! 물어볼 거 이써.

유민이가 선수를 쳐서 말을 건넨다.

윤슬이는 지금 바 테이블 위에 앉아서 우유를 먹고 있던 상태다.

그 탓에 유민이와 시후에 비해 높은 위치에 있는 터라 은근히 내려다보는 형국이 되었다.

구도가 미묘하다.

-  윤슬이는 모가 제일 중요해?

"움? 중요?"

-  윤슬이가 제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몬지 물어보기로 해써. 그걸 더 잘하는 사라미 윤슬이 오른팔이야.

시후가 보충 설명한다.

윤슬이는 이렇게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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