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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굴러들어옴-121화 (121/200)

121화: 오른팔과 요리교실(3)

"움... 우리 옵바처럼 요리가 레잔드여야 대."

-  레, 레잔드??

"웅! 디게 조은 거라구, 옵바가 그래써."

얼마 전에 배운 어휘라고 금세 써먹는 5세였다.

-  요리를 잘해야 댄다는 거야?

"그러타."

-  으윽...

윤슬이는 잘 나가는 CEO마냥 자신감 있고, 표독스럽게 대답한다. 턱끝엔 힘이 들어가 자글자글 주름이 졌고, 굳게 팔짱을 낀다.

저게 5세가 생각하는 보스의 이미지인 것 같다.

반면 유민이는 보스의 대답을 듣고는 다소 기가 죽어버렸다. 요리하는 것에는 자신이 없는 모양이다.

-  우리 엄마는... 요리 몬하는뎅.

엄마가 요리를 못하니, 그녀의 아들인 자신도 요리에 소질이 없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 듯하다.

시후도 마찬가지다.

뒤통수를 긁적이며 곤란한 듯한 표정을 짓는다.

윤슬이 포함, 두 아이가 요리를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래 봐야 예닐곱 살 된 애들이 무슨 요리를 한다는 말인가.

끽 해봐야 컵라면을 끓이는 정도일 것이다.

-  그거 말구는?

"움... 업써. 윤스리 오른팔 할라므는 요리가 레잔드여야 한다!"

완강한 5세였다.

레전드라는 단어를 괜히 가르친 게 아닌가 약간 후회가 되기도 한다.

-  .... 어뜨카지?

-  우우...

6세와 7세는 곤란하다.

윤슬이의 오른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경쟁을 하려고 했으나.

그녀가 경쟁 주제로써 선정한 것이, 두 사람 모두 자신이 없는 분야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무를 수도 없을 것이다.

포기한다는 것은 패배를 인정한다는 것.

패배한다는 것은 윤슬이의 오른팔 자리를 박탈당한다는 것.

6세와 7세는 윤슬이에게 어지간히도 호감을 사고 싶은지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어보인다.

두 아이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엄마들이 이야기 중인 테이블로 다가가 묻는다.

-  엄마... 나 요리...

아들들의 기어가는 목소리를 듣고 엄마들은 수다를 떨다말고 깜짝 놀라 이야기를 들어준다.

그러나 이어진 결과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

-  아들, 너도 알잖아. 엄마가 알려줘봤자 뭣도 안 된다는 거.

-  응... 알어.

-  이 녀석이! 빈말이라두 아니라구 하면 어디가 덧나나.

유민이는 끝내 간지럼 공습에 겨드랑이가 폭격당하고 말았다.

-  시후야... 엄마두 요리엔 별로 소질이 없어.

-  응... 맞찌.

대화를 엿들어봤는데, 시후네 집안에서는 아버지가 요리를 전담한다고 하신다.

그러나 업무가 바쁘시고, 집에선 주로 휴식을 취하시니 아빠한테 요리를 배우는 것도 다소 무리가 있다는 흐름이 되었다.

결국 6세와 7세는 소득 없이 터덜거리며, 윤슬이 앞으로 되돌아왔다.

그 모습을 보더니 윤슬이는 되려 당황해버렸다.

시후와 유민이가 실망한 듯해보여서 썩 유쾌한 기분이 아닌 것 같다.

"잉...? 이럴라구 그런 게 아닌뎅."

"그럼 어쩔 계획이었는데?"

"움... 그게..."

"그냥 별 생각 없이, 맛있는 음식이 좋으니까 말해본 것뿐이구나."

"어뜨케 아랐찌?! 이게 바루 고굼마 아저씨가 말하든 독씸술!"

"윤슬이 한정으로는 그럴지도 모르겠다."

"역씨 옵바가 대다내."

5세는 이상한 방향으로 납득해버렸다.

"움...!"

그러다가 무언가 떠올랐는지 의자에서 폴짝 뛰어내려 유민이와 시후의 어깨를 붙잡는다.

6세와 7세의 몽글거리는 눈망울이 자신을 향하자 5세는 손가락으로, 이번엔 나를 가리킨다.

"옵바가 있짜나! 우리 옵바가 요리를 아주 잘해!"

-  엇...!

-  그러고 보니!

뭔가 예감이 좋지 못하다.

"시후랑 유미니가 우리 옵바한테 요리를 배우므는 대게써."

-  오!

-  그러면 대겠다...!

내 의사와는 관계 없이, 셋이서 결정을 지은 모양이다.

심지어 내 앞으로 다가오는 본새가 거의 협박하러 오는 큰 형님 포스다.

숨이 막혀온다.

눈에 익은 두 남자.

내 앞을 가로막는, 그 두 남자의 걸음이 평소보다 다섯 배는 무겁게 느껴진다.

거리가 좁아진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  주혀니 형아...!

-  요리 알려주세여.

내 앞치마 자락을 붙잡고는 강렬한 눈초리로 노려본다.

두 꼬마가 이토록 절박해진 이유는 무엇인가.

그 부분이 신경 쓰인다.

어차피 보스라느니 조직이라느니 아이들이 편의적이고 독특한 설정을 짜서 노는 것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그 '오른팔'이라는 자리를 그렇게까지 탐내는 이유가 무엇인가.

물론 놀이에 그만큼 진심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오히려 고마워해야할 부분이다.

윤슬이랑 놀아주는 데에 이 친구들이 그만큼이나 진심이라는 얘기일 테니.

하지만 왜일까.

저 두 꼬맹이.

6세와 7세와 마찬가지로 나도 수컷이기 때문일까.

내 유전자 깊숙한 곳에 박힌 Y염색체가 이른다.

이것은 그리도 단순하고 천진한 이유가 아니라고.

귀엽고, 깜찍하고, 사랑스러운 우리 가게 간판 꼬맹이 5세에 대한 연모의 마음이 단 1%도 섞여있지 않다면.

이 정도의 격렬한 집착을 보일 수는 없을 것이라고.

저 똘망한 눈빛을 보라.

동공에 비추는 것은 나, 송주현이지만.

그 너머엔 장윤슬이 있다. 어려있다.

마치 유럽 성당 속 스테인드글라스의 신성한 빛깔처럼 감돌고 있다.

"난 아는 게 없다. 너희에겐 요리를 가르쳐줄 수 없다! 돌아가~!"

그 지점까지 생각이 미쳤다면.

여기선 단박에 거절을 하는 게 오빠이자 보호자로서의 도리 아니겠는가...!

이건 하찮은 시기나 어른답지 못한 질투 같은 것이 결코 아니다.

그래.

이건 매너다.

모름지기 오빠란 여동생에게 접근하는 수컷들을 한 번쯤 밀쳐내는 법이다.

그 아무리 초등학교에도 취학하지 못한 꼬맹이라 하더라도 차별은 없다.

혹은 기회일 수도 있다.

이 기회에 꼬맹이 둘의 근성을 한 번 시험해보는 것이다.

-  사부로 모시겠씀니다!

-  송, 쏭사부!

"크읏... 아무리 사부라고 해도 안 되는 건 안돼. 가르쳐줄 생각 없다. 돌아가."

내가 완강히 거절하려 하자.

윤슬이가 내 뒤로 쏙 들어와서 도망칠 수 없게 만든다.

"옵바야, 윤스리두 궁금허다."

"뭐가 궁금한데."

"옵바가 가르쳐주므는 유미니랑 시후도 요리 잘할 쑤 있눈지가 궁금허다."

"음... 그래도 안돼."

"추, 츙격! 옵바가 윤스리 말을 안 들어주다니! 이러눈 일은 거의 업써."

윤슬이가 주춤거리며 두 걸음 물러선다.

확실히 동생 말이 맞긴 하다.

이 정도 부탁이라면 사실 충분히 들어줄 수 있다.

윤슬이 오른팔이 된다고 해서 남자친구가 된다는 것도 아니고.

해봤자 아직 아이들이니 말이다.

분위기에 휩쓸려 조금 엄격히 거절해버렸지만, 실제로 유민이와 시후에게 요리를 가르쳐줄 수 없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게 훨씬 더 중요한 이유다.

"시후야, 유민아. 형이 생각했을 때 너희는 아직 요리를 배우기엔 위험해."

-  위험해여?

-  으응... 불 때무네?

"그렇지, 유민이가 맞췄어. 요리를 하려면 불도 써야 되고. 칼질도 해야돼. 그것 말고도 혹시나 너희가 다칠만한 일들이 적지 않아요. 그러니까 요리는 조금만 더 크고 나서부터 배울까?"

-  그럼 학꾜 들어가면 주혀니 형아가 아르켜줘여?

"그러게. 학교 들어가서 공부 열심히 하면 형이 알려줄게."

시후는 내년 이후에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우리 가게에 자주 들러줄 생각인지.

미래 얘기를 꺼낸다.

-  웅... 나는 아직 학교 멀어써.

"대신 유민이는 그만큼 윤슬이랑 더 오래 볼 수 있잖아. 학교 들어가면 학교에 있는 친구들 사귀고, 숙제도 하느라 바빠져."

-  응... 그렇다! 주혀니 형아 말이 맞어여.

유민이도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니까 유민이랑 시후 우선은 화해하고, 오른팔은 다음 기회에 정하는 걸로 할까?"

"움! 그게 좋케써. 윤스리 오른팔이 그러케나 하구 시프믄. 윤스리가 오른팔 두 개 하께!"

그건 좀 어떤지 싶은데.

아무튼 윤슬이가 오른팔이 두 개 있는 것으로 합의를 보며. 시후와 유민이는 악수한다.

그렇게 극적으로 타협하는 듯했는데.

-  뭐야? 송주현의 요리 교실 안 하는 거야?

-  아쉽네요... 저도 한 번 주현씨한테 요리 배워보고 싶었는데.

또 다른 문제가 발생.

"애들한테 어떻게 요리를 가르치겠어요. 그건 좀 힘들죠, 위험하기도 하고요."

-  응? 이 선생님은 애기가 아닌데.

-  저도 애기라고 부르기엔 무리가 있죠.

미정 선생님과 시후 어머님이 갑자기 흥미진진한 얼굴로 주방까지 다가온다.

그리고는 각자 아이들을 품에 끌어안고는 주방 안으로 들어오신다?

-  키즈와 함께하는 송주현의 요리교실?

-  저는 수강할 준비가 됐습니다, 송주현 선생님!

"으으아."

"옵바, 이거눈 어뜨케 거절할 쑤가 업써."

윤슬이가 어깨를 으쓱한다.

게다가 유민이와 시후가 기대감에 부푼 듯한 얼굴을 하는 게 유독 눈에 띤다.

-  엄마랑 같이!

-  우아... 엄마랑 가치 요리하는 거 첨이다.

그런 모습을 보니 윤슬이 말대로 거절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진다.

시후와 유민이네 가족 사정을 알기 때문이다.

유민이는 싱글맘인 엄마가 학교에서 일을 하느라 보통 이런 식으로 함께 시간을 보낼 시간이 극히 적을 것이다.

시후도 마찬가지다.

여지껏 몸이 안 좋아서 가족과 시간을 오래 보내기야 했겠지만, 이토록 활동적으로 요리를 배워본다던지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나름 좋은 추억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 어쩔 수 없죠. 그럼 시작할까요?"

-  송주현의 요리교실!

-  스따트!

왠지 꼬맹이들보다 엄마들이 더 신이 나신 듯하다.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어차피 이제 브레이크 타임인데다가 오늘의 메뉴는 그다지 밑준비가 필요 없는 종류다.

그렇다면 이 정도 잠깐 짬을 내는 것쯤은 시간적으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  주혀니 형아 체고!

-  형아 체고!

"옵바 체고! .... 움? 윤스리두 체고라구 해조."

아이들의 힘찬 응원과 함께 요리교실이 시작되었다.

누군가를 제대로 가르쳐본 적은 없지만, 적어도 지금의 내 요리 실력이라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요리의 길(LV. 4)- 숙련도 32%]

[LV.4 – 중급 요리인]

"혹시나 해서 그런데 유민아, 엄마가 평소에 요리 많이 하셔?"

-  별루 안 해여. 사서 머거여.

-  야, 주현아. 나한테 물어보면 되지. 왜 그걸 애한테 물어보고 그래.

"선생님한테 물어보면 솔직하게 대답 안 하실수도 있잖아요."

시후는 자신에게 질문이 돌아올 것을 예상했는지.

-  우리 엄마는 라면을 잘 끓여!

"라면을 잘 끓이시는구나."

-  네! 근데 라면만 잘 끓여요.

"라면만 잘 끓이시는구나."

시후 어머니는 크게 헛기침하시며, 뻘쭘했는지 도마 위를 손으로 더듬는다.

-  저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기보단, 그만큼 일을 해서 맛있는 걸 사주자는 주의라서요.

"그런 거라면 충분히 이해하죠. 요즘은 배달 어플도 잘 되어있고, 밀키트도 맛있는 게 많으니까."

미정 선생님도 옆에서 손을 들더니 자기도 비슷한 부류라고 동조한다.

요리교실을 진행하는 과정은 고될 것만 같다.

"먼저 배추부터 썰어보실까요?"

-  무슨 메뉴 알려줄 건데?

"오늘 팔고 있는 볶음 우동 알려드릴게요."

-  오오! 우동 맛있던데.

"면은 따로 인터넷에서 주문해서 끓이기만 하면 되니까 간단하기도 하고. 소스를 두 개 알려드릴 건데. 그럼 상대적으로 자주 해먹을 수 있잖아요. 맛이 다양하니까."

-  좋지, 좋아. 면 한 번 끓여서 두 끼를 해결할 수 있겠군.

"면을 한 번 끓이면 제 때 먹어야지, 쟁여둘 생각이세요?"

-  냉장고에 놔뒀다가 다시 데우면 그럭저럭 먹을 만하던데.

"흐음..."

그렇게 먹어도 탈은 안 나겠지만, 수분이 달아나거나 면의 식감도 달라질 것이다.

왜 유민이가 엄마 음식이 맛 없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는 지점이다.

미정 쌤은 음식의 맛을 느끼기보단 생존하기 위해 먹는 타입의 인간인 게 아닐까.

"우우... 유미니 힘내."

-  웅...

그런 유민이가 가여웠는지, 윤슬이는 등을 토닥여준다.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윤슬이가 복받은 환경에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적어도 식문화에 한해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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