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오른팔과 요리교실(4)
탁탁탁탁탁-
도마와 거칠게 부딪히는 식칼.
어머니 두 분이 나란히 배추를 썰어내린다.
내가 말씀드린 정도의 양을 썰어서 보여주신다.
- 어때, 주현아.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데?
"나쁘진 않네요. 근데 배추가 살짝 삐뚤어진 느낌이 강해요."
- 어차피 배에 들어가면 똑같잖아.
"거의 그렇긴 하죠. 그래도 지금은 요리를 맛있게 만드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잖아요? 되도록 일정한 크기로 썰어주시는 게 보기에도 좋고, 먹을 때도 좋아요.
특히 배추 같은 경우는 씹을 때 단단한 감이 있다보니까, 굵게 썰리면 아이들이 먹기에는 부담스러울 수 있잖아요."
- 그건 듣고 보니 그렇네. 오오, 송주현. 완전 프론데?
"나름 반 년째 음식점 하고 있거든요."
이어서 시후 어머님 쪽을 확인해드린다.
미정 선생님과 마찬가지다.
배추를 잘 썰어내기는 했지만, 간격이 일정하지 못하다.
- 이게 똑같은 크기로 썰어내리는 게 되게 어렵네요, 주현씨.
"원래 쉬운 작업은 아니에요. 고급 레스토랑 같은 데만 봐도, 처음에 막내 들어오면 칼질부터 시키거든요. 이게 제일 기본이고, 제일 힘든 부분이죠. 그래도 두 분 다 잘하셨다고 봐요. 이 정도면."
양배추는 은근히 단단하고, 심도 억센 편이라 자르기 어려운 채소 중에 하나다.
요리 초보를 자칭한 것치곤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다.
역시 두 분 모두 30대 중반이다보니, 이 정도는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는 모양이다.
마음 속으로는 별 기대 안 하고 있었는데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 오오...! 엄마가 칼루 빡빡 썬다.
- 나두 이런 거 마니 못 봤는데.
시후랑 유민이는 엄마가 도마 위의 양배추를 되도록 가지런히 써는 모습이 신기한지 눈을 떼지 못한다.
"시후네 아쥼마는 요리 마니 안 해조?"
- 우리는 아빠가 마니 해줘.
"우리 집두 옵바가 해주는데!"
윤슬이를 비롯한 아이들에게 주어진 역할은 채소 씻기다. 이번 요리 교실에서만 활용할 채소를 냉장고에서 따로 빼두었기에 그걸 잘 씻어야만 했다.
구입한지 얼마 되지 않은 채소에는 흙이나 먼지 등이 묻어있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지금 썰고 있는 배추들도 시후와 유민이가 깨끗하게 씻어다준 것이다.
- 엄마! 이거 양파두, 갖구 와써.
- 우리 아들이 양파를 씻어서 왔네? 눈 안 따거웠어?
- 응! 괜차나써.
유민이를 자랑스럽다는 듯이 칭찬해주는 미정 선생님.
6세 차유민군도 내심 기쁜 듯이 배실배실 웃는다.
채소를 씻는 데에서는 윤슬이가 함께하며 상세히 알려주는 중이다.
유민이와 시후는 아무래도 이런 작업을 해본 적이 없을 테니 말이다. 반면 윤슬이는 식당에서 어깨 너머로 본 것도 있을 테고, 내가 몇 가지 알려준 것도 있다.
그 덕에 채소 정도는 씻을 줄 안다. 너무 강한 힘이 필요한 작업도 아니니, 아이들에게도 방법만 안다면 충분히 가능한 부분이다.
유민이와 시후가 엄마들에게 재료를 조달하는 사이 나는 몰래 윤슬이한테 따봉을 세워 보여준다.
"움...!"
윤슬이도 고개를 끄덕이며 따봉으로 받아친다.
요리교실에서 이뤄진 남매 간의 협업.
나쁘지 않은 작업 분담이다.
남은 채소들도 모두 썰어 준비해두고는 이제 본격적으로 조리하는 순서를 알려드린다.
채소를 불에 익힐 때 주의해야할 점은 두껍고, 잘 안 익는 녀석들부터 먼저 팬에 넣는 것이다.
그게 정석이며 그것만 지켜도 채소가 덜 익거나 탈 걱정을 덜 수 있다.
- 주현씨, 그럼 여기 있는 채소들 중에선 배추부터 넣는 게 맞겠네요?
"그렇죠. 양파랑 다진 마늘도 있지만, 배추부터 넣어서 조금 익힌 다음에 양파랑 마늘을 넣는 게 순서 상 제일 좋아요."
시후 어머님은 금방 이해하신 모양이다.
- 근데 식당 메뉴에서는 양배추 안 넣었는데, 왜 우리한테 알려주는 요리에는 넣는 거야?
"저번에 쓰다가 애매하게 남아서요. 여기서 쓰면 딱 다 떨어지거든요."
- 뻥치지마, 그런 이유라고?
"그것도 있고, 배우시는 김에 칼질 연습도 시켜드리고, 배추 들어가면 맛있으니까요. 소화도 잘 되고."
미정 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얄궂은 웃음을 지었으나.
- 엄마, 음식 남기면 안 대자나. 그니깐 주혀니 형아가 이러케 하는 게 조은 거야.
- 그렇지, 아들 말이 맞네.
금세 유민이가 내 편을 들어주어서 웃어넘기게 되었다.
볶음 우동이기에 금세 완성되었다.
채소를 볶다가 면과 함께 소스를 부어 젓가락으로 이러저리 휘저어주면 그럴싸하게 완성된다.
웍질까지 굳이 알려드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차피 집에서 간단히 요리를 만들어드시는 게 목적이니 말이다.
면수까지 간간이 부어 소스와 끈덕지게 붙은 우동면이 먹음직스러워보인다.
현재 가게에서 판매 중인 간장 베이스.
그리고 고추장과 두반장을 섞어서 만든 중화 베이스.
두 가지 소스를 알려드리고, 전자는 미정 쌤이 만드셨다.
후자는 시후 어머니가 요리하시게 되었다.
볶음 우동이 완성되자.
- 우아... 잘 되긴 한 것 같은데.
- 어찌 썩 이뻐보이지가 않네? 음식이.
두 분은 석연찮게 웃으신다.
확실히 조리 자체는 잘 되었지만 생김새에 약간의 하자가 있었다.
집에서 만들어먹었다면 틀림없이 만족했을 수준이었겠지만. 내가 주로 식당에서 손님들 내어드리는 그릇에 담자, 그 갭이 유독 눈에 띠었다.
그래서 불만족스러우신 듯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아들들의 반응이 엄마들을 미소짓게 한다.
- 엄마! 대게 싱기하다. 우리 엄마가 이런 것두 만들어써.
- 응, 나도 신기해. 주혀니 형아만큼 요리 잘 한다. 우리 엄마두.
각각 유민이와 시후의 반응이다.
아이들의 칭찬을 듣고는 더 이상 요리의 비주얼따윈 아무래도 좋은지 각자 만든 볶음 우동을 들고 테이블로 향한다.
- 아들! 오늘은 주현이 형아 말구, 엄마가 만든 요리 먹을까?
- 시후야, 오늘은 라면 아니구 우동이다. 앞으로는 엄마가 라면 말고 우동도 잘 만들어볼게.
입꼬리가 절로 올라간다.
잠깐 짬을 내어 요리를 알려드리고, 이런 모습을 볼 수만 있다면야 몇 번이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움...! 옵바, 옵바."
"응?"
"이런 거룰 훈훈하다구 하는 거라구 그래써."
"그런 건 또 누가 알려줬어?"
"고구마 아저씨."
황치호씨가 윤슬이 어휘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그 훈훈하다는 말은 이런 상황엔 적확하다고 볼 수 있겠다.
두 모자는 의자가 네 개 있는 테이블에 앉아 우동을 먹고 있다.
후후- 불어 서로의 입에 넣어주는 모습이 제법 인상적인데. 갑자기 윤슬이가 그쪽 테이블로 가더니 시후와 유민이를 부른다.
"유미니랑 시후! 이제 서루서루 만든 음식 먹여조. 시후가 유미니한테. 그리구 유미니가 시후한테."
- 응...? 그거는 쪼끔 부끄러.
"그래두 해야지대!"
시후가 쑥스럽다며 손사레치지만 윤슬이가 부추긴다.
그런 풍경이 엄마들은 그저 재미있는지 수저에 우동을 올려두며 아들들에게 쥐어준다.
"먹여조! 먹여조!"
- 먹여줘! 먹여줘!
- 먹여줘! 먹여줘!
주변 분위기가 이러하니, 6세와 7세로서는 저항할 수단이 없었고.
꼼짝 없이 서로의 입에 우동을 넣어주어야만 했다.
- 마, 맛있다...
그래도 입에 들어온 우동의 맛이 좋았는지 쑥쓰러움도 잊고 금방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앞접시를 내어드려 서로의 우동을 나누어서 먹을 수 있게 해드렸고.
식사 시간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돌발적으로 진행되긴 했지만, 나름 성공적인 요리교실이었다.
[20만원이 계좌로 송금되었습니다.]
식사가 끝나니 시후 어머니께선 요리 레시피 값 겸 식재료를 사용한 대가라며 돈을 송금해주셨다.
멋있고, 지조 있게 거절할까 3초간 고민했지만.
거절하기엔 너무 큰 돈이었다. 이 정도면 이틀치 식재료는 사들일 수 있는 만큼의 금액이니까.
시후 어머니께서 요리를 만들어주기보단 사먹인다고 했던 이야기가 문득 떠오른다.
이 정도의 금액을 선뜻 내밀 수 있을 정도라면야, 그런 말씀을 하시는 데에 미묘한 설득력이 생기긴 한다.
그럼에도 아들에게 요리를 직접 만들어줄 기회가 생겼다는 것 자체에 시후 어머니는 크게 만족하신 듯했다.
[오누이 타이쿤!]
[고객이 응대 서비스에 감동합니다.]
[식당 만족도가 21% 상승했습니다!]
21%나 상승하다니.
현재 만족도가 어느 정도 쌓인 상태인데도 이 정도 오른 거면 상당히 많이 오른 거다.
종합 만족도가 50% 이상인 손님이 이 정도로 오르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렇게 요리 교실이 끝나게 되고, 저녁 장사 타임이 시작되기 전.
윤슬이에게 물었다.
"윤슬아."
"왜여?"
"아까 왜 유민이랑 시후한테 서로 우동 먹여주라고 그랬던 거야?"
"그거눈 윤스리 작쩐이어써."
"작전?"
윤슬이는 자신감에 가득찬 듯 개구쟁이 같은 웃음을 짓는다. 그리곤 똥배를 살짝 내민다.
"아까 유미니랑 시후랑 다퉈써. 그러믄 안대는데."
확실히, 이유는 조금 엽기적이긴 했지만.
본인이 윤슬이 오른팔이라며 작은 언쟁을 벌이긴 했다.
"그래서 유미니랑 시후랑 사이 좋게 해줄라구 그랬던 거야."
"서로 음식을 먹여주면 화해할 수 있으니까?"
"움! 그러타!"
자신만만한 윤슬이의 머리를 꾸깃꾸깃 쓰담아준다.
아직 다섯 살밖에 안 됐는데, 다른 아이들이 화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행동까지 하다니.
은근히 속이 깊다.
기억을 거슬러보면, 애초 간단하게나마 요리교실을 열게 된 것도 윤슬이가 얘기를 꺼내서이긴 하다.
'시후랑 유미니가 우리 옵바한테 요리를 배우므는 대게써.'
처음엔 시후와 유민이가 직접 나한테 요리를 배우게끔 하려고 했다.
어찌 보면 윤슬이는 처음부터 시후랑 유민이가 사이 좋게 지낼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요리 얘기를 꺼낸 것일지도 모른다.
서로가 만든 요리를 서로에게 먹여주는 그림을 그리며, 그런 얘기를 꺼낸 게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윤슬이는 농담 삼아 보스라느니 두목이라느니, 그렇게 자칭하지만.
실제로도 그런 두목의 자질을 갖추었을지도 모른다.
친구들의 사이를 중재하기 위해 제법 큰 그림을 그린 셈이니 말이다.
"우리 동생이 제법이네?"
"옵바 동생이 제법이지."
한껏 우쭐거리는 동생을 잔뜩 띄워줬다.
친구를 위할 줄 아는 행동이란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니 말이다.
"근데 옵바."
"응?"
"진짜루 오른팔은 사실 루이인데. 시후랑 유미니가 짜꾸 싸워서 말 일부러 안 해써."
"진짜 오른팔은 루이였단 말이야?!"
여기서 밝혀지는 충격적인 사실.
하지만 납득은 된다.
루이는 저번 촬영 건도 그렇고, 은근히 도움이 많이 되어주고 있다.
"그래도 유민이랑 시후한테는 비밀로 해두자."
"움... 그게 좋케써. 만약 이거를 유미니랑 시후한테 알려주므는. 루이랑두 싸울찌두 몰라. 그거는 넘무 별루야."
"그래, 그래. 우리 동생 말이 맞다."
결국 윤슬이 오른팔의 자리를 알게 모르게 차지한 것은 권씨 남매네 강아지, 리트리버인 루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