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생이 굴러들어옴-125화 (125/200)

125화: 파괴신이 굴러들어옴(3)

20XX년 10월 X일.

제1차 남매회의 발발.

장소: 오누이 식당

참가 인원: 2명

주제: 현재 장윤슬의 몸에 일어나고 있는 불가사의에 대하여.

진행 시간: 답이 나올 때까지(이런 상황에서 장사를 지속할 수 없으므로 오늘은 임시 휴점이다.).

“윤스리가 생각이 이씀미다.”

“넵, 무슨 생각입니까.”

“여러 가지 시험해보므는 어떨까여?”

“시험?”

“이것두 만져보구, 저것두 만져보구 하므는 모가 반갈죽대는 건지 알 수가 있짜나.”

“흠...”

틀린 말은 아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오누이에게 빠르게 연락하여 당장 반갈죽 능력을 없애달라고 하는 것이지만.

스마트폰 내 어플이 감쪽 같이 사라졌으므로 우리끼리 능력을 규명하는 수밖에는 없다.

잠자코 기다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는 있지만.

우리끼리 최소한의 능력 발동 기준이라도 알아두지 않으면 매우 곤란해진다.

윤슬이가 무얼 만지던, 부서지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이 드니까.

또, 지금 윤슬이가 갑자기 훌쩍 커버린 것도 그 이유를 확실하게 알 수 없었다.

여러 가지가 불확실한 상태.

“그럼 우선 그렇게 해볼까?”

“움!”

첫 번째.

윤슬이가 만지는 물건이 반으로 잘려버리는 이유와 그 기준에 대해.

우리는 여러 가지를 실험해보았다.

오누이 식당 내부에는 다행히도 잘라도 괜찮은 식재료들이 다수 구비되어 있었고.

손으로 몇 번 만져보는 과정을 통해서 그 기준을 확인해볼 수 있었다.

“.... 모야.”

“아무 것도 반갈죽 안 되네.”

식재료들을 만지는 것만으로는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내 몸에 닿아도 마찬가지.

식당의 문을 열거나 가볍게 물을 마시려 컵을 드는 것에서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렇다면...”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윤슬이가 어제 반으로 갈라버린 물건들과 냉장고, 그것들 간의 공통점을 캐치해보았다.

“윤슬아 한 번 붕붕이 3호를 들고 이쪽으로 와볼래?”

“움? 운전 말구 들어서?”

“응, 손으로 들어서.”

윤슬이는 자신의 체격이 커진 것을 둘러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감 있게 성큼성큼 붕붕이 3호 쪽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힘차게!

“읏짜!”

터더덩-

깔끔하게 반으로 갈려버린 붕붕이 3호.

“우... 우아!!! 3호!! 3호!!! 안대...”

5세, 오열.

“역시.”

반갈죽 당하는 기준을 알아냈다.

물건들이 반으로 잘리는 것은, 바로 윤슬이가 힘자랑을 하고 싶을 때다.

냉장고의 예가 대표적이고.

어제 수건과 드라이기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무언가를 자신의 힘으로 해내었다는 성취감과 더불어, 그 성취를 내게 보여주고 싶을 때.

손에 닿은 물건이 반으로 잘리는 게 아닐까.

지금으로서는 그렇게 추측된다.

오열하는 윤슬이를 쓰다듬으며 진정시킨다.

어차피 수리 센터에 맡기면 금방 수리된다는, 거짓을 말한다.

윤슬이가 방금 붕붕이를 들어올리려 할 때, 깨달은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붕붕이 3호에 안전장치를 설치해두길, 정말 잘했다.

모든 것이 원상복구될 미래가 간단히 그려진다.

“옵바, 진쨔지? 진짜루 3호 수리할 쑤가 있찌?”

“그럼. 당연하지. 원래대로 다 돌아올 거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옵바 말이니까는... 믿을께. 훌쩍.”

동생이 훌쩍거리며 눈물을 흘리는 것은 마음이 아프지만. 붕붕이 3호로 실험했기 때문에 오히려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만 하는지 알아냈으니.

차라리 다행이라고 볼 수 있겠다.

“우선 밖에 좀 나가볼까?”

“움? 오늘은 일하는 날이자나.”

“괜찮아. 오늘 장사 안 할 거야.”

“진짜루? 갠짜나?”

“응, 우리 윤슬이 붕붕이 3호가 고장나서 심란할 테니까. 같이 동네 돌아다니면서 놀아볼까?”

“놀은다구?! 옵바랑?”

동생은 내심 좋은지 실실 웃으면서도 좀처럼 발은 떼지 못한다. 매일 관성처럼 일을 하다보니, 이렇게 출근까지 해놓고는 놀러나가는 게 불안한 모양이다.

그러나 내 추측이 맞다면 오늘은 출근해서 일할 필요따윈 전혀 없으며.

심지어 더 과감한 짓을 저질러버려도 문제 없을 것이다.

결국 설득당한 윤슬이는 경쾌한 걸음으로 가게 밖으로 걸어나왔다.

가게 바깥의 풍경은 평소와 소름끼칠 정도로 똑같았다.

“오늘은 오빠가 하고 싶은 놀이가 있어.”

“몬데?”

“윤슬이가 얼만큼 쎄졌는지 알아보는 거야. 지금 몸이 이따만큼 커졌으니까, 훨씬 더 무거운 것들도 들 수 있고. 평소에 못하던 것들도 할 수 있잖아.”

“움...! 오!! 옵바 말이 마저. 그게 좋케써.”

윤슬이는 흥분하며 자신의 힘을 과시할 생각에 콧김을 뿜는다.

이후의 전개가 기대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익숙한 길을 따라서 으슥한 골목으로 걸어들어갔다. 주택가 사이를 가로막는 벽이 높게 솟아있다.

이 벽이 있는 탓에 출근할 때 시간이 2-3분 정도 더 소요되곤 하는데, 근처 주민들도 이 벽 탓에 한 번쯤 길을 돌아가게 된 적이 있을 것이다.

“여기는 왜 와써?”

“윤슬아, 한 번 저거 부셔볼래?”

“.... 옵바, 아무리 그래두 그러치. 윤스리가 이만큼 컸따구 쩌거를 어뜨케 뿌셔.”

웬일로 윤슬이가 날 어이없단 듯이 쳐다보며 현실성 있는 발언으로 내 부탁을 논파한다.

“한 번만 해봐. 그럼 생각이 달라질 걸?”

“움...”

동생은 내 부탁이니까 마지못해 해보겠단 듯이 밍기적거리듯이 걸어간다.

그리고는 마음을 다잡듯이 고개를 몇 번 흔들고는 진지하게 임한다.

안 될 것 같다고 해서 쉽게 포기하지 않는 것이 우리 집 5세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번 하기로 하면, 제대로 진지하게 임하는 것.

윤슬이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골목을 가로막는 벽에다가 콩알펀치를 시전하였고.

그 결과.

콘크리트가

쩌적-

부서지진 않고, 그냥 반으로 갈리기만 했다.

선명하게 금이 생겼다.

사실 상 사람들이 오고 갈 수 있게 된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내 가설은 거의 증명된 것이나 다름 없다.

그리고 5세는 무언가를 깨달았단 듯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내게로 헐레벌떡 달려온다.

“옵바! 깨달으는 거 같어.”

“깨달았다고?”

“반갈죽! 어뜨케 하는지 알아내써!!”

5세도 자신이 반갈죽을 해내는 방법을 체득한 것 같다.

우리 남매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씨익-

하고 악당처럼 웃는다.

공교롭게도 서로 똑같은 생각을 동시에 해버린 모양이다.

“이 능력만 있으면.”

“아무도 우리를 마글 쑤가 업따!”

스위치 On.

윤슬이 말대로다.

이제 아무도 우리 남매를 막을 수 없다.

**

키키킥-

키키킥-

악랄한 웃음 소리가 두 갈래로 골목 어귀를 장악했다.

그곳에 홀로 우뚝 서있는 가로등은 불안했다.

그 불안이 체념까지 이어지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이윽고 직감해버린 것이다.

지난주 자신의 대가리에 달린 황색 전구를 갈아주던 수리공의 얼굴을 떠올리며, 가로등은 잠자코 최후를 맞이하기로 했다.

“윤슬아! 반갈죽!”

“히힝-! 간당~.”

서슬퍼런 기세로 달려오던 5세의 손바닥이 닿은 순간.

쩌적-

가로등은 무참히 반으로 갈라졌고.

그렇게 생을 마감하였다.

그 대가리에 달려있던 나사가 눈물 방울처럼 또르르- 떨어지고 말았다.

““우아... 재, 재밌땅!””

하룻밤 사이 극악무도해진 남매는 다음 타겟을 찾아나섰다. 발견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다음 타겟은 성북천의 냇가 안에서 오래도록 물길을 방해하던 돌덩이다.

남매는 바지를 걷고 들어가 마치 무림의 고수처럼 내공 충만한 자세를 잡는다.

“윤슬아! 다시 한 번 반갈죽!”

“후후... 에잇!”

장윤슬은 마치 태권도를 연마한 무술인이 송판을 격파하듯 큰 돌맹이를 내리쳤고.

깔끔한 절단면을 보이며 돌맹이가 반으로 잘리긴 했으나.

“우우... 넘무 쌔게 쳐써... 아푸다.”

5세는 불필요하게 쎄게 쳐버렸고 손날이 빨갛게 달아올라버렸다.

그러나 이 정도로 반갈죽 놀이를 그만둘 수는 없었다.

단순한 이유.

너무 재밌다.

그렇게 남매는 동네 주변을 돌아다니며 반갈죽 놀이에 푹 빠져버렸다.

마음 속 깊은 곳에 감춰져있던 파괴 본능이 발현된 것이다.

그 다음 타겟은, 남매가 자주 들르는 정육점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정육점 내부에 진열된 고기덩어리들이었다.

- 뭐야? 주현이랑 윤슬이가 도와준다구? 윤슬이는 어느새 그리두 커버렸어?!

정육점에서 손질을 담당하고 계신 할아버지는 의외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이 단골 손님이긴 하지만, 손님들 중에 정육을 도와주겠다고 선뜻 말을 꺼낸 사람들은 이 둘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움! 윤스리가 해볼께!”

5세는 뼈째로 도륙된 고깃덩어리를 앞에 두고는.

“반갈죽!!”

다시 한 번 기세 좋게 손으로 내리쳤고.

쩌적-!

커다란 고기덩어리가 반으로 깔끔하게 잘라져버렸다.

할아버지는 실소하고 말았다.

- 아니... 정육을 해야지. 고기를 반으로 갈라버리믄 어쩌자는 거여. 이러믄 무슨 의미가 있어? 그리구 이거를 손으루 어뜨케 한 거여?!

““키키킥!! 도망쳐!””

당황스런 정육점 할아버지.

태클 걸만한 곳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 사이 남매는 부리나케 도망가버렸다.

그리고 정육점에서 벗어나, 마주치게 된 사람은.

“후후... 고굼마 아저씨.”

- 응? 주현씨랑... 그쪽은 윤슬이? 나를 고구마 아저씨라고 부르는 건 윤슬이밖에 없는데. 왜 이렇게, 몸이 커졌지.

황치호였다.

그리고 그는 결코 알 수 없었다.

현재 남매는 반갈죽 파워에 사로잡혀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심지어 5세는 황치호와 화해는 했음에도, 굳이 따지자면 그를 선호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하앗! 반갈죽!!”

- 으악!

황치호는 반으로 갈라져버렸다.

그러나 피가 튀기거나, 순대가 흘러내리진 않았다.

잘린 단면은 마치 찰흙처럼 촘촘히 메워져있었다.

“아아... 다행히 19금 처리는 잘 되어있다는 설정이구나.”

“움? 설쩡?”

- 설정이라뇨?

“심지어 몸이 반으로 잘린 채로 말까지 하게 만들어버렸네.”

- 그러게요! 몸이 반갈죽 당한 기분은 제법 신선하군요. 다음 소설 소재로 써먹을 수 있겠는데요? 메모... 메모...

성격까지 잘 구현된, 이 세계에 대하여 송주현은 슬슬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폭주기관차처럼 놀고 말았다.

다소 도를 지나친 것 같기도 하지만.

이때가 아니면 언제 이런 무법자스러운 짓거리를 벌이겠나 싶어 작게 실소한다.

그리고 자켓 안주머니에 들어있던, 검은색 똑딱이를 꺼내어 손에 가볍게 쥔다.

“아마 내가 지금껏 꾼 꿈 중에 제일 미친 꿈인 것 같다.”

“움? 꿈이라구?!”

달칵-

똑딱이의 빨간 버튼이 눌리고.

꿈의 세계가 붕괴한다.

남매는 잠에서 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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