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생이 굴러들어옴-127화 (127/200)

127화: 아주 커다란 바구니 속 어린왕자들(1)

문득, 그날의 별하늘을 떠올린다.

고층 빌딩 위에서 시후와 윤슬이와, 이제는 우리 곁을 떠난 시온과 함께.

서울의 경치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날.

내 품에 안겨, 높은 난간에 팔을 걸쳐두곤 저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던 윤슬이는 내게 물었다.

‘옵바, 저기에눈 모가 이써?’

‘저기? 어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하늘과 땅이 만나는 지점이었다.

지평선이라고 불리는 지점.

보통 도심 속의 지면을 밟고 있다보면 고층건물들이 시야를 가려 좀처럼 볼 수 없는 곳이다.

그러나 고층에 올라왔기에 산봉우리가 하늘과 맞닿은 곳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리고 고민에 빠졌다.

지평선 너머엔 무엇이 있는가.

여러 대답을 할 수 있었다.

지도 어플을 살펴, 그쪽 방향엔 어느 동네가 있는지 알려줄 수 있었고.

높은 산에는 어떤 생명체가 살고 있는지 알려줄 수도 있었고.

혹은 더 멀리.

저 산봉우리 너머에, 그리고 훨씬 더 멀리에.

바다까지 건너면 우리와 전혀 다른 생김새를 보이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말해줄 수도 있었다.

‘저기엔 바구니가 있어.’

그러나 아직 다섯 살인 윤슬이에겐 조금 결이 다른 대답이 어울리지 않는가 싶었다.

‘움...? 바구니?’

‘응, 되게 되게 큰 바구니.’

‘쩌기에 바구니가 왜 이써?’

‘떨어지는 것들을 받아주려고. 저 산 너머엔 아무 것도 없거든.’

‘잉...! 그러믄 쩔루 가므는 위험하자나. 털썩! 하구 떠러져. 그러믄 다쳐.’

윤슬이는 난간을 놓더니 다시 내 팔뚝을 움켜쥐었다.

옷 소매가 잔뜩 구겨졌다.

고층 빌딩의 아래편을 무심코 보고 만 것이다.

저 지평선 너머엔 아무 것도 없어서, 만약 떨어진다면 이 고층 건물에서 낙하하는 것보다 더 깊게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상상을 한 것 같았다.

‘그치? 그럼 되게 크게 다치잖아. 다치면 아프구. 그러니까 그렇게 되지 않도록 세상이 자상하게 감싸주는 거야. 되게 되게 큰 바구니로.’

‘바구니루 떨어지므는 안 다쳐?’

‘그럼, 푹신한 바구니거든.’

‘우앙... 그러쿠나. 그러믄 엄마랑 압빠두 저기에 있나? 바구니.’

‘글쎄, 그러려나.’

그 질문에는 명료하게 대답할 수 없었다.

내가 그날 왜 윤슬이에게 그렇게 대답했는지.

그러니까 지평선 너머에 거대한 바구니가 있다고, 답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세상은 우리가 짐짓 대중 잡는 것보다야 훨씬 자상하다고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시온을 곧 잃어야할 때였기 때문에, 더욱이 그랬던 것 같다.

**

“오오...! 이게 모야?! 디게 싱기하다...”

- 그치? 멋있지?

“웅... 해워니 언니가 보여준 거 중에 젤루 머시써.”

- 크흠, 그건 좀 유감이구나. 미안하다, 이 언니가 노잼이라서. 원래 결혼하고 나면 사람이 좀 노잼이 되기도 하는 법이야.

“움? 노재미가 모야?”

- 재미가 별로 없다는 뜻이야. 혹시 모르니까, 오빠한테는 비밀로 해줘. 이런 거 너한테 알려준 거 들키면 언니 혼난단 말야.

“아라써, 윤스리가 비밀루 해주께.”

윤슬이는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대고는, 입술을 닭똥집처럼 오므린다.

그걸 보고 혜원씨는 그대로 따라하지만.

“윤슬이는 비밀로 해줘도, 오빠는 이미 다 들어버렸는데?”

“앙! 들켜버려쪄!”

- 으악 들켜버렸어!

문제는 바로 내 앞에서 두 사람이 대화했던 내용이라는 점이다.

요즘 점점 윤슬이가 신조어에 익숙해지는 것 같아서 심경이 복잡하다.

모름지기 말이라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그 형태가 변하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어릴 적부터 신조어에 절여진다는 것은 보호자로서 조금 걱정되기도 한다.

“윤슬이 그런 말은 초등학교 들어가고부터 쓰자.”

“노재미?”

“응, 그거.”

“알겠쏘!”

대답은 잘하지만.

앞으로 어찌 될는지.

장난스레 혜원씨 쪽을 쏘아보자, 그 옆에서 미안한 기색을 보이는 것은 오히려 남편인 천연우씨 쪽이다.

저번에 연락을 주신대로 우리 가게 음식이 그리웠는지 시간을 내어 들려주셨다.

아직까지 바쁘시다는 것 같던데, 그런 와중에도 이렇게 찾아와 식사를 해주시는 것은 식당 주인장으로서 감사해야 마땅할 일이다.

윤슬이에게 ‘노잼’이란 말을 가르친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그런데 방금 혜원씨가 보여주신 영상 되게 예쁘긴 하네요. 웬 밤하늘이에요?”

- 아아, 어젯밤 뉴스에서 본 따끈따끈한 영상인데. 너튜브에도 업로드됐길래 가져와봤어요. 한 번 주현씨도 보실래요?

신혜원씨는 스마트폰 화면을 내 쪽으로 180도 돌려서 보여주신다.

너튜브에 게시된 뉴스의 제목은 이렇다.

[오리온자리 유성우가 비처럼 떨어져요! 다들 우산 하나씩 드세요.]

너튜브에 올리기 위해 약간 부드러운 뉘앙스를 감이한 제목인 듯했다.

[아나운스: 바로 내일모레입니다. 10월 xx일. 국내에서도 우주의 신비, 유성우를 관측할 수 있다고 합니다. 무려 시간 당 최대 150개의 유성을 볼 수 있을 전망인데요. 분당 2개 이상의 엄청난 양이죠?]

“유성우?”

영상에는 별이 수놓은 밤하늘에 띄엄띄엄 떨어지는 유성들이 비쳤다.

재빠르게 선을 긋듯이 공중을 긁어내리는 유성들이 마치 잦아드는 빗방울처럼 간간이 어두운 하늘을 장식했다.

그 풍경은 순수하게 아름답다.

[아나운스: 본래 유성우라고 하면, 8월과 12월에 관측할 수 있는 페르세우스자리 유성우와 쌍둥이자리 유성우. 그리고 사분의자리 유성우가 연중 3대 유성우로 꼽힙니다. 그만큼 시민들 눈에 잘 보일 정도로 규모가 크다는 얘기인데요.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10월에 떨어지는 오리온자리 유성우인데도 규모가 꽤나 큰 편이라고 합니다.]

과연.

어째서 뉴스 제목에서 우산을 쓰라고 했는지 이제야 이해가 됐다.

유성우는 유성이 비처럼 많이 떨어진다는 표현이니까.

그만큼 많은 유성이 내일 밤 떨어질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뉴스인 것 같다.

영상 시점이 엊그제 밤이니까, 내용대로라면 내일 밤 관측되는 것이다.

1분마다 2개가 넘게 떨어진다는 것은 단번에 납득하기 어려운 숫자 감각이지만.

아무튼 밤하늘에서 움직이는 별을 확실히 관측할 수 있는 수준이지 않을까 싶다.

“움... 이거눈 노재미가 아니겠따.”

“저건 노잼이 아니겠어?”

“웅.”

방금 노잼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공언해놓고는 곧바로 어겨버리는 5세였다.

그러나 핀잔을 줄 겨를도 없다.

윤슬이의 시선은 뉴스에서 재생되는 유성우에 말 그대로 ‘꽂혀’ 있다.

- 별 떨어지는 게 이쁘다. 그치?

“웅... 디게 멋찌다.”

연우씨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윤슬이를 바라보고 있다. 그러다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눈썹을 까딱이더니 다시 내쪽을 바라본다.

- 내일이 오누이 식당 휴일 아니던가요?

“그쵸, 내일이 원래 정규 휴일이죠.”

그리곤 다시 빙긋- 미소 짓는 연우씨.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것 같았다.

“윤슬이, 오빠랑 내일 같이 별 보러 갔다올까요?”

“움...!”

윤슬이는 대답 없이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엄지 손가락을 바짝 치켜올린다.

“쥰비대써.”

“무슨 준비가 됐는데?”

“마음에 쥰비.”

“그것도 중요하긴 중요하지.”

하지만 마음의 준비만으로는 안 될 것 같다.

서울처럼 공해가 심한 대도시에선 별하늘을 제대로 관찰할 수 없을 테니.

또 다른 준비들이 필요할 것이다.

다른 지역까지 떠날 준비 같은 것들 말이다.

기차나 버스표를 끊거나, 잠깐 동안이지만 캠핑을 위해 가벼운 짐을 싸야 할 것만 같다.

“혜원씨나 연우씨는, 바쁘시죠?”

- 네... 으휴. 저도 남편이랑 간만에 오붓하게 가고 싶었는데. 요즘 웬일로 주문이 끊이지를 않아서요. 괜히 밤 중에 저거 보러나갔다가 다음날 실신하게 생겼어요.

꽤 현실적인 문제였다.

혜원씨의 눈밑에 옅은 다크서클이 늘어진 것을 봐선 피로가 꽤 누적되신 것 같다.

- 그러니까 저희 대신 구경하고 와주세요. 동영상 촬영도 잊지 마시고요.

“그래야겠네요. 파이팅!”

위로의 말은 어울리지 않았다.

서로 장사하는 입장이니까 알 수 있다.

저 피로에 칭얼거리는 것은 오히려 사치다.

그만큼 손님들이 많이 찾아주시는 줄 알고 일에 전념해야만 한다.

“대신 윤스리가 해워니 언니랑 여누 아저씨 대신 마니마니 보구 와서. 알려주께. 사진두 찌거서 보여주께.”

- 그래? 우리 윤슬이가 직접 사진 찍어다줄 거야?

“그러쏘!”

- 그럼 언니 진짜로 기대하고 있는다?

“웅.”

두 사람은 새끼 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나눈다.

혜원씨네 부부가 식사를 마치고 식당에서 떠나가시고, 저녁 장사가 시작되었을 때.

이번엔 시후네 가족이 다 같이 들러주셨다.

마침 집에 쌀이 다 떨어졌는데 주문하시는 것을 잊어버려서 우리 가게에서 식사하기로 하셨다고 한다.

- 주현씨. 저번에 우동 알려주신 거 잘 먹었어요. 시후도 좋아하고, 남편도 잘 먹더라고요.

- 그거 주현씨가 알려주신 거라고 했죠? 제 입맛에 꽤 잘 맞더라고요. 다음에 기회 되시면 또 와이프한테 하나 알려주세요. 뭣하면 저한테 알려주셔도 되고요.

두 분은 저번에 알려드린 볶음우동이 마음에 드셨는지 자리에 앉자마자 그 이야기부터 꺼내신다.

“저희 가게 조금 더 자주 들러주시면 한 번 생각해보고요.”

너무 레시피를 많이 공개하면 단골을 잃게 될 수도 있으니 약간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기로 한다.

어른들끼리 가벼운 인사를 나눌 때, 윤슬이는 테이블에 놓여있던 내 스마트폰을 들고서는 시후에게 보란 듯이 들이민다.

- 이게 뭐야?

“이거 바바. 디게 머시써.”

- 응...? 아무 것두 안 나오자나.

“우우... 잔깐만...”

윤슬이는 인상을 잔뜩 찡그리며 내 스마트폰의 화면을 막 휘젓다가.

휘젓다가.

한참 휘젓다가.

휘- 휘-

“.... 옵바 해조!! 도움!!”

본인이 원하는 걸 찾아내는 데 실패한 것 같다.

윤슬이가 무얼 찾고 싶어하는지는 뻔히 알고 있다.

아까 혜원씨네 부부가 보여주신 동영상을 틀어 윤슬이에게 건네준다.

“움! 만죡.”

만족하셨다고 한다.

두 손으로 스마트폰을 받아들어 마치 자랑하듯이 시후에게 보여준다.

“디게 머시찌? 이거 하늘에서 별이 마구마구 떨어진다구 그래써.”

- 응. 멋있다. 이거 나두 봐써.

“시후두 봐써?”

- 어제 뉴쓰에서 하길래. 엄마랑 아빠랑 같이 봐써.

“잉...”

5세, 유감.

아무래도 본인이 보여준 것이 처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약간 뚱한 표정을 짓는다.

허나 금방 표정을 피고는 내 바짓자락을 쥔다.

“옵바랑 가치 보러가기루 해써.”

- 응? 별 보러가기루 해써? 주혀니 형아랑?

“웅! 옵바가 가치 보러가자구 그래써.”

- 나두... 주혀니 형아랑, 윤스리랑 가구 싶다.

시후는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부모님에게 묻는다.

- 엄마, 이번에 별 보러 가는 거 윤슬이랑 주혀니 형아랑두 같이 가면 안대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