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아주 커다란 바구니 속 어린왕자들(2)
시후네 부모님은 의외란 듯이 우리 남매를 쳐다보신다.
- 주현씨네도 내일 별 보러 가기로 하셨어요? 유성우.
“윤스리랑 옵바두 보러 가기루 해써여. 별이가 뚝~! 뚝~!”
윤슬이는 시후네 부모님을 바라보며 별이 떨어지는 모양을 흉내내듯이 손가락을 공중에서부터 땅 아래로 슉- 슉- 그어댄다.
그 모습을 보고 시후도 히죽 웃더니-
- 나두 엄마 아빠랑 가기루 해써. 별이 뚝! 뚝!
그대로 따라한다.
평소에는 나이대에 비해 의젓하면서도 이럴 때 보면 영락 없이 어린 아이다.
“시후랑 윤스리랑 가치 손으루 떨어뜨리는 만큼이나 마니마니 떨어졌으므는 좋케써.”
- 응! 마니마니 떨어지면 엄청 멋있잖아.
아이들의 천진한 모습을 바라보는 어른들.
그때 시후 아버님이 어깨를 으쓱이신다.
- 식당은 내일 하루 휴무인가요?
“원래 내일이 정규 휴무일이거든요.”
- 아아... 내일이! 타이밍이 딱이네요?
“그쵸, 사실 저희한테 별보러 오라고, 날이 이렇게 잡혔나 싶더라니까요.”
- 그러게요. 운이 좋네요. 이번에 떨어지는 유성우가 흔히 볼 수 있는 규모는 아니라던데. 애초에 유성우 현상이 흔치 않지만요.
“저도 직접 보면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고. 윤슬이가 워낙 보고 싶어하기도 하고. 여러 모로 꼭 가야겠다 싶어서요.”
“윤스리가 워나기 보고 싶따구.”
이번엔 시후가 우릴 보고 다급하게 묻는다.
- 주혀니 형아! 어디루 가기루 해써여?
“우리는 아직 어느 쪽으로 갈지 정하진 않았는데. 우선 이왕 보러 가는 거 서울 근처에 산지로 갈 계획이거든.”
- 오오! 산? 우리 가족이랑 똑같네.
시후의 말을 어머님이 보충 설명하신다.
- 가평 쪽으로요. 춘천이랑 붙은 쪽까지 올라가다보면 산지대가 있는데, 서울에서 멀지도 않은데 공기가 꽤 맑아서 좋더라구요. 혹시 괜찮으시면 주현씨네도 저희랑 같이 가시겠어요?
“가족 간에 가시는 건데 괜찮으시겠어요?”
- 그럼요. 주현씨한테는 신세도 졌으니까요.
“신세랄 것까지야....”
- 아뇨, 그땐 정말 여러 모로 감사했어요. 덕분에 그 아이를 잘 보내준 것 같아서. 윤슬이랑 주현씨한테는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해요.
- 그럼요, 나이는 주현씨가 저희보다 아직 어리시지만. 그때 많이 배웠습니다. 만약 주현씨 없었더라면 저희 아이 보내줄 때, 동물병원이나 전전했을지도 몰라요. 그랬다면 분명 마지막엔 후회했을 겁니다. 해줄 수 있는 게 없었을 테니까요. 반대로, 마지막 추억을 어떻게든 만들어준 것 같아서...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했습니다.
시후 아버님까지 거드신다.
두 분 모두 시온이라는 이름을 직접 언급하진 않는다.
두 꼬맹이를 위해서인 것 같다.
그럼에도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는 알 것 같았다.
- 그러니까 오히려 주현씨네만 괜찮으시다면. 저희랑 같이 가시죠.
- 주혀니 형아! 윤슬아! 같이 가자!!
“윤스리, 아주 조아. 대챤성. 가치가 조아.”
5세가 대찬성하는 일에다가, 시후네 가족이 저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거절할 수도 없었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부탁함미다!”
그리하여 유성우를 보러가는 길엔 시후네 가족과 함께하기로 했다.
**
터널.
터-널.
터--널.
서울 밖으로 차를 끌고 나오면, 터널이 가득하다.
“옵바, 옵바. 왜 불이 주항색이야?”
“터널 안에 불 말하는 거야?”
“웅.”
그딴 거 나도 모르겠다.
내가 판 땅굴도 아닌데, 어떻게 알겠는가.
이럴 땐 특수스킬을 사용해야 한다.
“글쎄, 한 번 윤슬이가 알아맞춰볼까?”
“쿠이즤~?”
“너, 제대로 발음할 줄 알잖아. 퀴즈.”
“잉? 옵바가 이제 안 속아써.”
그땐 일부러 속인 거였냐고! 저번에 운좋게 2등하게 된 모바일 퀴즈쇼가 잠깐 동안 떠오른다.
“움... 움... 그거눈. 시후야, 모니?”
- .... 나두 몰르겠는데. 아빠 모야?
- 글쎄, 아빠는 운전하느라 그런 생각하면 안 될 것 같아. 옆에 앉아계신 엄마? 뭔가요?
- 음, 저도 한 번 생각을 해봐야겠는데. 주현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
한 바퀴 돌아서 제자리걸음인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요?
시후네 가족과 함께 가평으로 떠나는 차도.
나름 화목한 분위기로 떠나는 중이다.
운이 좋게도 시후네 가족은 꽤 커다란 중형 SUV를 소유하고 계셨고.
자연스레 얻어탈 수 있었다.
이 자동차와 마주치곤 윤슬이는 2번 연속으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첫 번째 흥분 타임.
“오오...! 옵바, 이거눈 첨 본당. 쌔끈... 하구먼? .... 이럴 때 쓰눈 거 맞으나?”
“맞긴 한데, 그런 말은 되도록 안 쓰는 게 좋겠지.”
꽤 예전 일인데, 동대문 쪽에 차를 구경하러 갔을 때 윤슬이가 한 번 주워들었던 말이다.
그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 줄이야.
아무튼 시후네 가족의 차종은 꽤나 고급진 느낌의 외제차였고, 높은 속도로 달리더라도 안정감이 좋아 멀미가 덜했다.
이어지는 두 번째 흥분 타임.
“이, 이게 모여?!”
“윤슬이를 위해서 상석을 준비해주셨대.”
“사, 상서기!”
“대단하지? 저기 앉아서 이제 벨트 꽁꽁 매고 있으면 윤슬이가 왕이겠네?”
“후후! 그러타!! 윤스리가 왕이당!!”
라고 스무스하게 속아넘어간 5세였다.
사실 윤슬이가 앉게 된 곳은 아동용 시트다. 시후가 윤슬이보다 조금 더 어렸을 때 쓰던 것인데, 안전 상의 문제나 여러 이유로 시후네 가족이 배려 차원에서 꺼내주신 것이다.
그러나 평소에 보여주는 5세의 성격이라면 본인이 앉게 되는 곳이 ‘아동용 시트’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윤스리 애기 아니야!!!”
라며 분개할 것이 눈에 선했고.
나는 인지의 오류, 즉 맹점을 찌르기로 했다.
꿈보단 해몽 아니겠는가.
유아용 시트는 명백히 다른 좌석들과는 결이 다른 외형을 보이고 있다. 그나마 캐릭터 상품이었다면 이런 거짓말을 칠 수 없었겠지만 디자인 자체는 굉장히 평이했다.
그 덕에 나는 유아용 시트를 ‘왕좌’로써 속이는 데 성공했고. 5세는 오히려 기분이 매우매우 좋아졌다고 볼 수 있겠다.
동생의 심리를 완벽히 파악한 나의 전략적 승리다.
아니나 다를까, 윤슬이는 유아용 시트에 앉더니 곧장 벨트를 스스로 매더니.
“옵바! 이러니까는 경기 부릉부릉! 하눈 거 같애. 레이씽 선수 같애! 그치? 디게 머싰따!”
라며 빵실빵실 웃는 게 아닌가.
나는 엄지 손가락을 치켜 올리며 따봉을 보내주었고, 간악한 미소를 지었다.
“크크큭... 그렇네. 정말로 그래. 윤슬이 말이 모두 옳아.”
덧붙이자면 그때 좋아진 기분은 지금까지 유지 중이다. 아직까지 왕의 자리에 앉아계시니, 여간 기분이 좋은 게 아니다.
그 말의 뜻은, 어지간한 일은 얼버무릴 수 있다는 것!
“윤슬아, 사실 터널에 불빛이 주황색인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어.”
“움? 몬데?”
“사실은 터널을 만드는 사람들도 평범하게 흰색 조명으로 할 계획이었다고 해. 그런데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던 거지.”
“마음이? 왜여?”
“터널이 되게 되게 길잖아? 어떤 건 짧기도 하지만. 긴 터널은 한 번 지날 때 10분 넘게 걸리는 것들도 있다고.”
“웅. 안 가바서 몰루지만 알게써.”
“근데 터널에 있으면 태양을 볼 수가 있을까?”
“터널에 있으므는 태양을 볼 쑤가 업찌. 그 정도눈 윤스리두 알어.”
“그래서 주황색으로 한 거야. 태양색에 가깝잖아. 원래 사람은 태양을 오랫동안 못 보면 우울해지기도 하는 법이거든. 운전하는 사람들을 배려해서 주황빛으로 한 거지.”
회심의 거짓말.
은근히 잘 구성한 거짓말에 감수성 한 스푼을 떨어뜨렸다. 이 정도면 유아가 아니라, 가히 청소년이라도 속을 수준이다!
- 어어? 그런 거였다구요?
- 몰랐는데, 그런 거였구나.
왜 시후네 부모님이 속고 계신 거지?
“윤스리두 알게써.”
“오빠가 알려줘서 이해를 한 거야?”
“우웅, 아니야.”
“아니라고?”
“옵바가 몰라서, 그짓말치는 거라는 걸 알아써. 그니까는 이제 별루 안 궁금해져써.”
충격.
심지어 이럴 때만 눈치가 빨라지는 5세는 속지 않았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시후네 부모님은 작게 헛기침을 하더니 머쓱한 표정으로 창문을 내렸다.
고속도로의 먹먹한 바람이 차 안으로 뚫고 들어왔다.
그렇게 잔잔하게 대화를 주고받으며.
가평에 도착했을 즈음.
아직 태양은 높게 떠있다.
차체는 점점 고지대를 향해 달리고 있다.
귀가 잠깐씩 먹먹해지기도 하여 귀를 만지작거렸더니 윤슬이도 마찬가지인지.
자기 검지손가락에 침을 발라서 귓구멍을 푹푹 찌르다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래도 먹먹한 귀를 스스로 뚫어낸 모양이다.
“움... 옵바두 해주께.”
라며 다시 한 번 검지 손가락에 침을 바르더니 이번엔 내 귓구멍에 집어넣는다.
축축하다.
심지어 손가락이 얇아서 엄청 깊게 들어간다.
깊이 축축하다.
심히 축축하다.
“으윽... 고맙다.”
먹먹함이 가시지 않았을뿐더러 축축해지기까지 했다.
그런데 내 고맙다는 말을 듣고는 유아용 시트에 꽁꽁 싸매인 채로 앉아있는 5세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는다.
‘윤스리 업쓰믄 안 대겠지!’
라는 듯한 표정이다.
이윽고 5세의 관심은 내 옆에 앉아있는 7세에게까지 향한다.
“시후두 해주까?”
- 으응, 나는 괜차나.
시후는 내 표정을 살짝 살피더니, 내키지 않았는지 곧바로 발을 뺀다. 현명한 선택이었다.
슬슬 공기가 차게 느껴진다.
10월의 중순인 터라 제 각기 나름 두께가 있는 외투를 입고 있음에도 찬 공기가 생생하게 느껴지는 듯했다.
시후는 자기 볼을 두 손으로 문지르고.
윤슬이는 창문을 손으로 짚어보곤 어깨를 흠칫 떤다.
“움...!”
히터를 방금 틀었던 터라 아직 차내가 온전히 덥혀지지 않은 탓이다.
“확실히 높은 지대로 올라오니까 갑자기 온도가 확 변해버리네요.”
- 그러게요. 산 위는 원래 온도도 그렇고 날씨도 그렇고 변덕이 심하잖아요. 다행인 건 구름이 거의 없다시피 하네요.
시후네 아버님 말씀이 맞았다.
산 중의 날씨는 변화무쌍하다.
갑자기 안개가 끼거나 비가 와도 이상하지 않다.
다만 오늘의 일기예보에선 온전히 맑을 것으로 예상했으므로 그런 걱정은 거의 없었고.
방한 대책이나 철저히 했으면 됐다.
“우우... 웁부...”
“가만히 있어보세요, 아가씨.”
“이구눈... 쪼꿈... 구루치...”
“윤슬이 감기 걸리면 큰 일이잖아. 조금만 참을까요?”
“구래두... 구루치... 이구눈...”
윤슬이는 오늘 후드를 쓰고 왔다.
그 위에 얇은 패딩 점퍼를 입혔는데.
지금 막 윤슬이한테 후드를 씌운 뒤에 끈까지 꽁꽁 조여준 참이다.
그래서 발음이 다소 어눌해지고.
볼이 조여 빵빵한 볼살이 후드 너머로 슬며시 튀어나오려 한다.
“푸러... 조쓰므는... 조켔다...”
5세의 간곡한 요청을 수리하여, 사진 몇 방을 찍고 풀어주었다.
분노한 5세는 차에서 내린 뒤에 내 엉덩이를 사정 없이 깨물었다.
그러나 이가 뭉툭한 까닭에 그닥 아프진 않았다.
“이거눈 해치지 않눈다는 뜨시 아니거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