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생이 굴러들어옴-129화 (129/200)

129화: 아주 커다란 바구니 속 어린왕자들(3)

우리는 캠핑장에 도착했다.

꽤 높은 지대인데도 정식적으로 허가를 받은 캠핑 장소가 있는 까닭에 간이 텐트를 설치하거나 취사를 할 수 있었다.

- 사실 저희 가족이 캠핑을 가끔 가는데, 여기에도 저번에 왔던 적이 있거든요. 지난 번에 좋게 놀다간 기억 있어서 다시 오게 됐어요.

이렇게 시후 아버님은 설명하셨다.

높은 지대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경치나 머리카락이 적당히 날릴 정도로 간간이 부는 바람이 자연에 다가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캠핑장으로썬 더할 나위 없다고 볼 수 있겠다.

날은 어둑해질 기미만 보이고 있다.

아직 수평선 너머로 주홍빛 태양이 혀내밀 듯 불룩 튀어나와 있다. 그 덕에 고지대 캠핑장의 낮고 듬성한 잡초들은 주황색으로 물들어있다.

“옵바! 저거 바바. 핸님이 이제 바구니로 들어간당.”

“그러게. 햇님도 쉬다가 와야지. 그래야 내일 아침에 또 떠서 열심히 일하지.”

우리 대화를 듣더니 옆에서 시후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 .... 바구니?

“우리 옵바가 알려조써. 저기 산 너머 음~청 멀리에눈 바구니가 있따구 그래써.”

- 그런 게 이써?

“웅, 윤스리두 안 바바서 몰라. 근데 옵바가 이런 걸루 설마 그짓말은 안 했겠찌.”

가슴 한 켠이 유아용 포크에 푹! 찔린 듯한 느낌.

미안하다.

굳이 따지자면 거짓말이었다.

“이~~~따망큼 큰 바구니가 이써서. 저기 너머루 떨어지는 거 몽땅 받아준다구, 옵바가 그래써. 그러믄 안 다치자나.”

- 엥?! 저기 너머에는 그럼 절벽이 있는 거야? 그래서 절루 넘어가면 다 떠러져?

“그러타구 옵바가 그래써. 높이서 떨어지므는 다치니까눈 착하구 음~~청 큰 바구니가 다 받아준다구 그래써. 그래서 햇님두 바구니가 받아주눈 거야. 옵바가 그래쓰니깐 맞겠찌!”

- 응, 그렇네. 주혀니 형아 말이면 믿을께!

시후도 일곱 살이니까 그런 말은 의심하거나 아예 믿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순순히 믿어준다.

유치원을 다니지 않은 탓에 조금 순진한 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일곱 살도 아직 한참 어리거나.

둘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뒷골이 땡기며 현기증이 났다. 약간의 죄책감이 들던 탓이다. 나는 못들은 척하며 재빠르게 시후 부모님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느새 두 분은 간이 텐트를 설치 중이셨다.

빠르게 도와드리려고 하니, 시후 아버님이 고개를 절레 저으며 말리신다.

- 이런 건 엄마 아빠가 해야죠.

- 주현씨는 시후랑 윤슬이 좀 봐주세요. 부탁드릴게요.

“저도 어른인데 뭐라도 도와야죠.”

두 분께만 맡기는 것은 너무 죄송했다.

아무리 접이식 간이 텐트라고 해도, 캠핑 중에 가장 힘든 작업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텐트 설치다.

내가 죄송스런 표정을 짓는 게 티 났는지 시후 어머님은 부드럽게 웃으시더니 입을 여신다.

- 그럼 주현씨는 저녁밥 좀 지어주실 수 있어요?

“아, 저녁밥이요?”

스마트폰 시계를 확인한다.

[18:23]

어느새 저녁 시간이 되어있었다.

- 그렇네. 저번에 우동 레시피도 주현씨가 알려주신 거잖아. 오늘도 솜씨 좀 기대해도 되는 거 아니에요?

“.... 그럼 밥 맛있게 지어드릴게요. 텐트 쪽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시후네 아버님까지 거드시니까 거절하기 어려워졌다. 거듭 좋은 분들인 게 느껴진다.

시후는 자상하신 부모님 밑에서 자라는구나 싶어 가볍게 미소 짓는다.

차의 트렁크에서 내가 갖고온 식재료들을 내리고는 아이들 쪽으로 향한다.

아이들을 데리고 텐트 근처에 설치해둔 캠핑용 버너 쪽으로 왔다.

“옵바가 요리해?”

- 다행이다.

시후의 다행이란 말에 가시가 있는 듯하지만 부모님을 생각해 추궁하지 않기로 했다.

혹은 나의 요리를 좋아해주는 것일 수도 있겠다.

오늘 선보일 요리는 간단한 녀석이다.

라면!

내 손에 라면이 들려있는 것을 보며 윤슬이가 의외란 듯이 눈썹을 까딱인다.

“라면 오랜만에 머근당.”

“그렇지? 근데 캠핑장에선 라면 먹어야 돼.”

“왜여?”

“그건 약속 같은 거에요.”

“잉... 그렇쿠나.”

라면만큼 조리하기 간단하면서도 맛있는 음식은 드물다. 상쾌한 자연 속에서 먹게 되면 그 맛이 두 배가 된다는 속설이 있으며(물론 사실 무근일 가능성이 현저히 높다.).

국물이 있는 점이 또 중요하다.

캠핑에 나오게 되면 아무래도 실내보다야 체온이 떨어지게 돼있다.

따듯한 국물을 마시게 되면 높은 열량으로 체온을 보존할 수 있으니, 여러 모로 적합한 음식이라고 볼 수 있겠다.

“또마토마또마토마~”

윤슬이는 우리가 챙겨온 식재료 중 하나인 토마토를 들고는 흥겹게 말장난을 잇는다.

오늘 준비할 메뉴는 토마토 라면이다.

추억이 돋는다.

이 메뉴를 갖고 호연 형님한테 인정 받은 덕에 오누이 식당을 차릴 때 많은 도움을 받았던 것이 문득 떠오른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분명 맛있게 완성될 것만 같다.

다만 칼질로 토마토 껍질은 제거하는 것으로 한다.

평지대보다 고도가 높은 수준이니 괜히 설익어서 맛을 망칠게 걱정되었다.

타다다닥-

간이 테이블 위에 도마를 올려두고 토마토를 써는데 꼬맹이 둘이 떠드는 게 들려온다.

“이따가 별 보눈 거 기대댄다. 그치 시후?”

- 응, 나는 월래 별 조아해.

“시후 별 조아? 왜?”

- 쩌번에 너튜브에서 바써.

“모를?”

- 별엔 어린 왕자가 산다구 그래써.

“어리니 왕쟈?”

- 응. 집만한 작은 별에서 사는 어린 왕자가 있다구 그래써. 그래서 별을 보면, 그 별에 혼자 사는 어린 왕자를 보는 거 같아서. 조아.

시후가 저런 말을 하니 괜스레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시후도 시온을 만나기 전까지는 오래도록 혼자 있어야만 했으니 말이다.

“움... 그러쿠나.”

윤슬이는 납득했단 듯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인상을 팍 쓰더니

움-

움-

하고 낮게 신음한다.

그리고 몰래 내게로 다가와선 귓속말을 한다.

‘옵바, 옵바.’

“왜 그래? 갑자기.”

‘근디 어뜨케 해.’

“.... 뭐를?”

‘이따가 별이 마구마구 떨어지자나.’

“그렇지.”

‘그러믄 큰 일이야. 어리니 왕쟈가 큰일나자나...!’

“아...”

그러니까 지금 5세는 이렇게 말하고 싶은 거다.

유성우 = 별이 떨어지는 것

별 = ‘어리니 왕쟈’가 사는 곳

별이 떨어지는 것 = ‘어리니 왕쟈’가 사는 곳이 떨어지는 것

결과: ‘어리니 왕쟈’의 큰 부상...!

“글쎄 괜찮지 않을까?”

“움?”

“바구니가 있잖아.”

“잉! 맞따! 바구니.”

윤슬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시후에게로 되돌아간다. 방금 나와 무슨 얘기를 한 거냐고 시후가 묻지만 윤슬이는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아무래도 5세는 시후가 충격받을 게 걱정되었나보다.

그래서 시후가 좋아하는 어린이 왕자가 다치지 않길 바라기에 내게 물어보러 왔던 게 아닐까 싶다.

간이 텐트가 완성될 때에 맞춰 라면도 끓여졌다.

라면 스프와 함께 토마토 국물이 먹음직스럽게 조화를 이룬다.

김이 모락모락 나고.

휴대용 버너를 가운데에 둔 채로 다섯이서 둘러 앉았다.

토마토 라면은 아주 호평이었다.

- 이거 가게에서 팔아도 되는 거 아니에요? 다른 메뉴들도 맛있긴 하지만, 이런 것도 좋네요.

- 후... 이건 라면보단 그냥 맛있는 음식인데? 약간 양식 느낌도 나고 되게 좋네요.

각각 시후 어머님과 아버님의 반응이다.

오랜만에 만들었지만 손이 조리법을 기억하고 있던 터라 맛을 그때와 거의 유사하게 낼 수 있었다.

그리고 토마토 껍질을 벗긴 것도 아주 성공적인 선택이었던 것 같다.

국물을 후룩후룩 마시다보니 껍질이 남아있었더라면 목에 툭툭 걸렸을 것이다.

“후루루루룩! 역찌 옵바 라며니... 마싯구먼... 오랜마니당.”

5세 역시 대만족하며 라면을 먹었다.

건강 생각해서 요즘엔 인스턴트를 되도록 안 먹이고 있는데, 이렇게 가끔 만들어주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다 같이 라면으로 한 끼를 섭취하고는 몸이 노곤해졌다.

완전히 컴컴해지기까진 시간이 조금 남았지만.

태양도도 고개를 지평선 아래로 집어넣어버렸고.

이제 곧 밤이라고 해도 좋을 시간대이다.

그럼에도 유성우가 보일 것이라 예고된 시각까진

[19:23]

아직 3시간이나 남아있다.

캠핑장은 적막했다.

고요함과 스산함, 그 사이를 내달리는 정적이 10월의 무른 흙바닥을 타고 흐른다.

나는 윤슬이를 무릎에 얹고는, 대여한 릴렉스 체어에 몸을 맡기고 가만히 반쯤 누워있다.

배부르고 등이 따땃하니 졸립다.

“하암-”

하품이 절로 나올 정도.

약간 차게 느껴지는 캠핑장의 온도는 외려 잠기운을 불러온다. 챙겨입고 온 바람막이 안의 훈기와 대비된다.

마치 에어컨을 틀고 이불을 덮고 있는 것과 아주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허나 내 단잠을 방해하는 요소가 있었으니.

웨에에에에엥-!

벌레들의 공습이다.

산중의 벌레들은 강적들이다.

이제 10월 중순인데다가 날도 제법 서늘한데, 아직도 그들의 존재는 건재하다.

아까 도착했을 때까지만 해도 기척을 그다지 느끼지 못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밤이 되어 램프를 곳곳에 켜두자 그 빛을 보고 모여든 것 같다.

벌레들은 빛을 보면 모여드는 습성이 있으니 말이다.

위잉-

웨엥-

스잉-

“으윽...”

눈을 감고 싶은데.

벌레들이 신경 쓰여 섣부르게 잠들 수 없다.

자고 일어났다간 뺨에 뾰루지마냥 벌레 문 자국이 남아있을 것만 같은 예감이 강하게 든다.

짝-!

그때였다.

작은 박수 소리가 내 가슴 언저리에서 들려왔다.

“옵바. 이고 바바.”

“으응?”

5세의 작은 손바닥 안에는 무려 날벌레가 납작하게 죽어있다?

“윤스리가 잡어써.”

“오오... 이건 좀 대단한데?”

가끔 기분 맞춰주느라 빈말로 윤슬이를 띄워줄 때가 있지만. 이건 순수하게 감탄했다.

산 속의 날벌레들은 야생에서 자라난 덕에 강인하면서도 재빠르다.

그런 녀석들을 손으로 잡긴 쉬운 일이 아니다.

괜히 벌레 퇴치 스프레이가 있는 게 아닌데 말이다.

그 벌레 스프레이를 한 번 쳤는데도 이렇게 뚫고 들어오는 녀석들은 개중에서도 더욱 강력한 개체들일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집 5세는 직접 손으로 잡았다는 뜻이다.

이건 재능이다.

“윤슬아. 아니 장윤슬 요원.”

“움? 왜 그러심미까. 대장님.”

5세는 순순히 상황극에 넘어와버렸다.

“지금부터 자네에게 명령을 하달하겠네.”

“하다리가 모야?”

“.... 미션을 주겠다는 뜻이야.”

“오오! 미쎤! 알겠씀미다. 맡껴만 주십쑈.”

윤슬이는 어설프게 경례하더니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벌떡 일어나서 나와 마주본다.

“지금부터 이 근처로 접근하는 벌레들을 퇴치하는 게 너의 임무다. 단, 우리에게 공격하려는 의도를 보이는 악한 벌레들만 처치할 수 있도록. 잘 수행할 수 있겠나?”

“조아써. 윤스리만 믿어조. 방금 봤짜나. 윤스리가 이케! 이케! 하므는 다 주거.”

맨손으로 벌레를 잡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나 윤슬이 손엔 유아용 폴리 장갑을 끼워둔 상태다.

심지어 큰 벌레들은 스프레이 덕에 좀처럼 가까이 오지 못할 테니 5세가 상대하게 될 것들은 날벌레들뿐이다.

아마 문제 없겠지.

듬직한 5세의 등살을 눈에 담은 채로 서서히.

아주 서서히.

눈을 감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