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아주 커다란 바구니 속 어린왕자들(4)
짝-!
짝-!
짝, 짝!
연이은 박수소리에 절로 눈이 떠졌다.
적당히 노곤한 몸을 뒤척인다.
아직 온전한 밤이 아닌 터라 푹 숙면하지 못한 탓일까.
금방 깬 것만 같다.
[21:22]
스마트폰의 시계를 확인하니 2시간이 지나있었다.
이 정도면 꽤나 꿀잠을 잤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해보니 뭔가가 이상했다.
지금 귓가에서 맴도는 박수소리는 십중팔구 윤슬이가 벌레를 잡고 있는 소리일 텐데.
2시간 동안 5세가 벌레잡이를 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일반적인 성인이라도 한 가지 일에 50분 이상 몰두하기 어렵다고 하는데. 하물며 다섯 살이면 어떻겠는가.
복잡한 심경으로 눈매를 좁히며 몸을 일으킨다.
짝!
짝!
앞에는 허공에 대고 박수를 치는 5세.
그리고 그 옆에서 5세를 보조하는 7세가 함께 있었다.
저 너머에서 어깨동무를 하곤 하늘을 바라보는 시후네 부모님도 눈에 띤다.
“움? 옵바가 인나써.”
- 윤슬아, 지금 그거 주혀니 형아한테 보여조! 되게 좋아할 거야.
“그게 좋케써.”
윤슬이는 뽈뽈- 다가오더니 내게 양손을 펼쳐보여준다.
“.... 이건.”
날벌레들의 아비규환(阿鼻叫喚).
이라고 밖엔 표현할 수 없는 참상이다.
나한테 이렇게까지 벌레를 잡아보라고 하면, 솔직히 자신 없다. 뭉개진 시체들이 꽤나 겹쳐있었으므로 족히 백마리는 넘을 것이다.
“10월인데 벌레가 이만큼이나?”
아마 요근래 며칠 내내 따듯했던 게 원인인 것 같다.
특히 산의 한복판이다보니 벌레들의 본거지인 것도 문제일 것이다.
같은 생명으로서 안타깝긴 하다.
허나 그들의 생명은 어차피 불살라질 운명이었다.
숲에서 가만히 있던 벌레들을 아이들이 학살한 것은 아니고. 우리가 쉬고 있는 텐트 근처로 돌진해 와서 몸을 비벼댔으니 어쩔 수 없는 처사다.
콧잔등에 벌레가 앉으면 치워내는 게 자연스런 이치 아니겠는가.
우리가 불교를 믿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윤스리가 다 잡아써.”
- 저도 도와줘써여.
시후도 장갑을 낀 손을 펼쳐서 보여준다.
윤슬이만큼은 안 되지만 제법 많이 잡았다.
텐트 근처에 이렇게나 많은 벌레들이 있었다는 게 쉽게 믿기진 않지만.
아마 2시간 내내 잡았으니, 이 정도나 모인 것 같다.
두 손을 모아 합장한다.
“다음 생엔 조금 더 가늘고 길게 살 수 있길 바랄게.”
“움?”
윤슬이는 날 그대로 따라하다가 다시 한 번 벌레들을 짓이기고 말았다.
“....”
두 꼬맹이의 장갑에 묻은 벌레들은 한 군데에 묻어 명복을 빌어주었다.
아직 유성우가 떨어지기 시작할 것으로 예고된 시각까진 1시간 정도 남아있었다.
시후네 부모님은 둘이서 오붓하게 이야기를 나누시는 듯했다. 아이들이 박수를 치며 재밌게 노는 줄로 착각하고 계신지도 모른다.
두 분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아이들을 데리고 텐트 안으로 들어왔다.
이곳 안까지는 벌레가 들어오지 않으므로 상대적으로 평온하다. 나란히 놓여있는 릴렉스 체어에 셋이서 나란히 앉았다.
두 꼬맹이는 신장이 한참 모자란 탓에 발이 땅에 닿지 않아 둥둥 떠있다.
그 꼴이 웃음을 유발한다.
“너희 그거 알아?”
“몬데?”
- 뭐여?
“이따가 유성우 떨어질 때 소원 빌 수 있어.”
“소언? 생일 때두 빌었짜나.”
“응, 맞아. 근데 별이 떨어질 때도 소원 빌면 이뤄진다는 얘기가 있어.”
- 진짜루여? 별 떨어지는 거 보구. 소원 빌면 이뤄져여?
시후는 흥미롭단 듯이 릴렉스 체어의 등받이로부터 벌떡 몸을 일으키며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간이 텐트 천정에 붙은 조명에 비추어 눈이 초롱거린다.
“글쎄. 이뤄질지는 나도 확신해줄 순 없지만. 적어도 소원을 빌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해. 자기가 뭘 원하는지 마음 속에만 담아두고 있으면 아무도 몰라주잖아. 그러니까 이런 기회가 올 때마다 자기가 뭘 원하는지 세상에 요구해보는 거야.”
“움! 옵바 말이 맞따. 윤스리두 맛짱짱이가 좋다구 옵바한테 말하지 않았으므는 머그지 못했을 꺼야.”
적확한 예시다.
윤슬이가 맛짱짱 우유를 들고 몇 번씩이나 편의점에서 고민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그 공모전에 참여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랬더라면 상금도 못 받았을 것이며, 날마다 우유를 배달받지도 못했을 것이다.
- 그럼 소원 빌면 꼭 나를 위해서여야 대여?
“그런 건 아니지. 시후가 생각하기에, 시후보다 더 소중한 사람이 있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위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그 사람을 위해서 소원을 빌어도 괜찮아.”
- 응... 알게써여.
시후는 가만히 앉아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다. 옆에서 윤슬이는 내 말을 곧장 받아들 듯이.
“윤스리눈 윤스리 말구 따른 사람 소언 빌 거야.”
“그럴 거야? 누군데 그래?”
“그거눈 아무리 옵바라두 비밀이거둔.”
“그럼 어쩔 수 없지.”
내심 기대하게 된다.
나를 위해서 빌어주지 않을까?!
우리 착한 동생이라면.
자기 말고 다른 사람이라면 분명 나를 먼저 떠올리겠지.
아니면 할머니라던가.
- 저는.
그때 시후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내 소매를 꾹 붙잡는다.
- 어린 왕자가 행복했으면 좋게써여.
“어린 왕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 네, 왜냐면 어린 왕자는 저기 멀리 별에서 혼자 살자나여. 그럼 외로워여. 친구가 있는 게 조아여. 주혀니 형아나 윤슬이처럼. 친구가 이써야 행복할 수가 이써여.
이어서 그 옆에 있던 윤슬이의 소매까지 붙잡는다.
- 그니깐 저는 저 말구, 어린 왕자를 위해 소원 빌게여. 저는 이제 친구가 이쓰니까.
“움! 시후는 윤스리 칭구.”
윤슬이가 믿음직스럽게 고개를 끄덕인다.
시후가 친구 얘기를 꺼내니, 다시 한 번 시온의 기억이 눈 앞을 스친다.
그녀는 자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도 시후를 위해 움직였다.
틀림 없이 시후가 사귀었던 최고의 친구다.
허나 그녀와 시후가 만나기 전까지는, 아마도 시후는 외로운 아이였을 것이다.
면역체계에 문제가 있는 탓에 유치원에 가지 못했다고 하니까 말이다.
집에서 요양을 하고, 아주 가끔이나마 산책하며 보내는 나날들.
결코 어린 아이의 감정으로 견뎌낼 수 있을 만큼 쉬운 일상은 아니다.
권태감과 무료, 허무, 공허 등등.
부적인 감정들이 가슴 한 켠을 찬찬히 갉아먹을 테니 말이다.
아마 시후는 그토록 고단했던 한 때의 자신과 어린 왕자를 겹쳐보고 있는 것만 같다.
반면 이 아이가 이토록 의젓하게 자라날 수 있던 것은 시온과 부모님이 곁을 오래도록 지켜주었던 덕이리라.
“그럼 시후야. 형도 어린 왕자를 위해 소원 빌어줄게.”
- 형아두여?
“그래. 난 지금 충분히 윤슬이랑 시후 덕에 행복해서, 소원이 남아돌던 참이거든. 그니깐 나도 시후 소원에 힘을 보태줘도 문제 없어.”
- 진짜여?
“그럼.”
“히힝! 옵바눈 윤스리가 완조니 행복하게 해주고 이쓰니깐 그러눈 거거둔. 그니깐 윤스리 덕뿐이야.”
벌떡 일어나서 똥배를 내미는 퍼포먼스를 보이는 윤슬이. 보드라운 머릿결을 가만히 쓰다듬어주고는 두 꼬맹이의 손을 붙잡는다.
“이제, 나가자. 곧 시간 되겠다.”
별이 떨어질 시간이다.
비처럼.
주륵주륵-
**
아주 어둡고도 맑은 도화지에 선을 긋는다.
주우욱----------
잠시 멈춤.
다시
주우우우우욱--------
들넓은 밤하늘, 그 위를 형광펜이나 찬란한 신의 발걸음이 훑는 것은 아니다.
다만 떨어지는 것은 별이라 불리는, 돌맹이들의 찌꺼기.
먼지들의 찌꺼기.
그것을 우린 별이라 부른다.
떨어지는 별을 보며 유성우라 부른다.
아릅답다고 이른다.
경건한 마음으로 소원을 빈다.
누군가의 행복.
혹은 부나 명예.
그것도 아니라면 둘도 없이 사소한 것.
누군가에겐 그다지도 하찮은 것.
- 사실 유성우는 별이 아니라 대기권에 들어오는 우주 쓰레기나 먼지들이 타들어가는 것이라고 하네요. 저도 우주 과학에 박식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먼지들이 이런 데서 보면 이토록 아름다우니. 자연이란 참 신비하네요.
낭만과 과학 사이의 발언.
시후 아버님의 설명이다.
우주 차원에서 보면 쓰레기지만.
우리에겐 소중한 추억의 순간이자 소원을 빌 대상이라는 게 어색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시후 아버님이 무엇을 떠들고 있던.
두 아이는 별하늘을 바라보며 소원을 빈다.
“시후야, 이거눈 비밀이지마는, 몰래 말해주께.”
- 응?
“윤스리눈 어리니 왕쟈보다두 다른 사람 소언 비러써.”
- 누구?
“누군지눈 비밀이지마는. 어리니 왕쟈들은 걱쩡이 업써.”
- 걱정이 없어?
“웅, 왜냐므는 저기 산 너머에서 이~따만큼 큰 바구니가 떨어지는 별들을 받아주자나. 그럼 거기에서 어리니 왕쟈들은 전부 만날 쑤가 이써. 그러믄 다 가치 칭구하므는 대자나.”
- 다 같이 친구? 바구니에서?
“웅, 그니까눈 걱쩡 안 해두 댄다? 어리니 왕쟈두 칭구가 생기눈 거니까.”
각자의 작은 소원.
그 자세한 내용을, 구구절절 입에 담지 않아도 소박하면서도 간절한 게 느껴진다.
두 꼬마가 사뭇 진지한 것을 보고는 시후네 부모님도 작게 미소짓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
별똥별이 띄엄띄엄 떨어진다.
비가 저렇게 내렸더라면 우산을 쓰기도 애매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유성우를 비에 빗대는 것이 옳은지 약간 고민이 되지만.
그럼에도 주변의 반짝이는 하늘과 어우러지는 장관은 보석이 박힌 듯, 아름답기 그지 없다.
지잉-
“응?”
심장이 두근거린다.
몸이 떨린다.
그 탓일까?
뭔가 기묘한 진동이 우측 하복부 주변에서 느껴지는데...
스마트폰이다.
“뭐지.”
반사적으로 주머니를 뒤적이다가 스마트폰을 손에 쥔다.
그러나 손에 감각이 익지 않는다.
평소와 다른 느낌의 진동이다.
원래 내 스마트폰 진동은 디폴트 값으로 저장된, 기본 진동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말이다.
이런 타이밍에, 이런 느낌의 진동이 느껴지는 게 영 이상하게 느껴졌다.
스마트폰 화면엔 팝업 창이 주기적으로 전시된다.
지잉-
[이상 반응 감지]
지잉-
[인과율 오류 발생]
지이이이이이이잉-!
[세 - - - - - 는 – 이가 발동됩니다.]
“뭐, 뭐야. 이게.”
팝업창엔 자연스럽지 못한 빈칸이 뚫린 채로 문장이 띄어졌다.
심지어 스마트폰의 진동이 드물게도 거세어 손의 감각이 생경했고.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다시 오누이의 장난일까?
그런 합리적인 의심이 전두엽에서 굴러떨어질 때쯤.
귓가에서 익숙한 방울 소리가 들렸다.
“옵바, 큰 일 나써.”
윤슬이가 제자리에서 폴짝 뛰며 내 손을 다급하게 쥔다.
“큰 일 났다구?”
“윤스리 소언이 바루 이러져써!! 빨리 가바야지대. 달려!!”
윤슬이는 나를 급하게 끌고는 방울 소리가 들린 곳으로 내달린다.
5세의 달리기 속도야 금방 잡을 수 있었고.
손을 쥔 힘이, 언제나 그렇듯, 그다지 강하지 않아 뿌리칠 수 있었으나.
왜일까.
나도 윤슬이가 이끄는 방향으로 가야되겠다는 기묘한 의무감에 사로잡혔다.
뒤에서는 황급히 우릴 부르는 시후네 가족의 목소리가 들렸다.
“금방 돌아올게요!”
그런 말을 남기며 우린 산중의 수풀림이 감싸는 어둑함 속으로 달려나간다.
딸랑-!
울리는 방울 소리.
“윤슬아, 어디로 가는 거야?”
캠핑장에선 벗어난 지 오래.
그곳의 인공조명마저도 희미해진다.
그나마 사람이 오고간 흔적이 없진 않아 걸을만하다는 게 최소한의 위안이다.
“쩌기에서 기달리구 이써.”
“누구를?”
“윤스리랑 옵바.”
“누가?”
“시오니가.”
시오니가.
시오니.
시... 오니.
시온.
“시온?”
딸랑-!
울리는 방울 소리.
귀에 익은 방울 소리.
시온의 목에 걸려있던 자줏빛 방울 목걸이.
그 방울에서 나던 소리.
그렇게 몇 걸음을 걷자, 희안한 공터가 돌연 눈 앞에 보였다. 주변지대에 비해 한참 낮은 수풀. 듬성이 나있는 잡초 정도가 다였다.
그리고 그 공터에만 키다리 나무들이 없어 달과 별들이 청록 대지를 비추고 있었다.
그 가운데.
동그랗게 펼쳐져 있는, 역시나 눈에 익은 검은 우산.
- 뭐야? 늦었네.
그 아래 젊은 여자가 무릎을 굽힌 채로 쭈그려 앉아있다.
- 오랫동안 뭘 못 먹었더니, 나 배고프다. 고구마 좀 갖다줘...
처음 만났을 때에 비해 한참 젊어진 모습이었지만.
누군지는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