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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굴러들어옴-131화 (131/200)

131화: 10월의 개미취(1)

놀란 마음을 한풀 추스르고는 다시 캠핑장으로 걸음을 서둘렀다.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는 5세의 머리카락을 마구마구, 흐트러질 정도로 문질러야만 했다.

“우우... 윤스리 꺼... 맛짱짱이가...”

“대신 집 가는 길에 하나 더 사가면 되잖아.”

“힝, 그러믄 그때까지만 참아보께.”

캠핑장으로 복귀하자 시후네 가족은 멀찍이서부터 우리를 발견하시곤 손을 흔드셨다.

대체 무슨 일로 캠핑장 밖으로 뛰쳐나갔느냐.

넘어지진 않았느냐.

다친 데는 없느냐.

걱정스레 물어주시는 것엔 감사했지만.

거짓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대로 말했다가는 더 큰 혼란을 야기할 것이 뻔했기에.

“윤슬이가 뭘 좀 잘못본 모양이더라고요.”

“마, 마자여. 윤스리가 잘못봐쪄.”

어색한 연기로 5세도 도움을 준다.

“평소에 친하게 지내는 강아지가 있는데, 루이라고. 걔가 저 멀리서 지나가는 줄 알고 반가워서 달려갔대요. 혹시 몰라서 가봤는데 강아지가 아니라 고라니더라고요.”

“뀨에에에에엥!”

윤슬이는 생동감을 살리려고 고라니 울음소리까지 따라해준다.

다섯 살밖에 안 되는 녀석이 어디서 고라니 울음소리를 배웠는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주 높은 확률로 황치호씨가 알려줬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즉흥적으로 생각해낸 터라 꽤나 작위적이고 어색한 변명이었으나.

- 암튼 어두운데도 무사히 돌아오셨으니까, 됐죠 뭐.

시후 아버님이 자상하게 웃으며 그 어색함을 무마해주셨다.

혹은 굳이 구구절절 따지기 애매한 문제였을 수도 있다.

어차피 캠핑장 너머의 풀숲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한 것은 다섯 살짜리 어린 아이니까 말이다.

이 나이대의 아이들이 저지르는 행동을 일일이 이해하려고 드는 어른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만큼 엉뚱한 것이 유아들 아니겠는가.

다만 이번 경우만큼은 사정이 달랐다.

대화가 일단락되고는 다시금, 흐르는 유성우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었다.

- 아까 윤슬이 말 듣구 생각해밨는데, 너 말이 맞는 거 같아. 꼭 바구니에서 만나서. 어린 왕자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따.

“웅, 꼭 만날 쑤 있을 꺼야.”

윤슬이와 시후는 이런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시후는 윤슬이가 해주었던 말에 어지간히도 마음이 놓였는지.

윤슬이의 두 손을 붙잡고는 한동안 놓아주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다소 분노할 뻔했지만, 심리적으로 그럴 여유는 없었다.

시온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했던 탓이다.

심야가 되기 전, 우리 일행은 캠핑 물품을 정리하고 다시 서울로 되돌아왔다.

피곤했지만 시후네 가족도, 우리 남매도 내일의 일정이 있었기에 캠핑장에 그대로 묵는 것보다는 집으로 돌아가는 게 더 낫겠다고 판단했다.

서울로 되돌아가는 길에는 나를 포함한 어른들끼리 운전대를 바꿔가면서 잡고, 무사히 귀가할 수 있었다.

밤길 운전은 조금 걱정되었지만 어떻게든 사고 없이 귀환해냈다.

집에 도착한 5세는.

“옵바, 윤스리 쥬금.”

그런 세 어절을 유언으로 남기고는 현관에서 쓰러져버렸다. 물론 진짜로 죽은 것은 아니고 잠 들어버릴 테니 자신을 침대로 옮겨달라는 비유적 전언이다.

차 안에서 자라고 해두었지만 시후랑 조금 더 얘기를 나누고 싶은 나머지 눈을 부비면서 어떻게든 깨어있었던 터라 피곤할만도 했다.

고로롱-!

심지어 쓰러지자마자 코를 곯아대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눕자마자 코를 고는 사람이 있다고는 하는데 그게 내 동생이었을 줄이야.

원래도 잠을 잘 자는 5세이긴 하지만 이 정도로 빠르진 않았는데 말이다.

동생을 침대에 눕히고는 물티슈로 손발만 닦아주었다. 몸에 흙이 묻어있을 게 확실하지만, 하룻밤 정돈 괜찮겠지 싶다. 내일 아침에 빡빡 씻겨야지.

나도 피곤한 나머지 평소보다 대충 씻고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스마트폰 화면을, 최소 밝기로 낮추고, 켰다.

[오누이 타이쿤!]

[햇님: 뭔가 주현 오라버님이랑 윤슬이 주변에선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네요.]

햇님이가 먼저 오누이 타이쿤 어플에 메시지를 보내두었다.

[나: 그러게 말이다. 설마 시온이 되살아날 줄이야.]

[햇님: 글쎄요. 정확히 말하자면 되살아났다고 보긴 어렵죠.]

[나: 그럼 어떤 표현이 올바른데?]

[햇님: 다른 존재가 되었다. 라고 하는 게 맞는 표현 같아요. 제 사견은 그래요.]

하긴, 일반적인 생명체라면 죽은 뒤에 되살아날 수 있을 리가 없다.

햇님이의 표현이 차라리 적확하다고 할 수 있겠다.

[햇님: 사실 지난 번 사건 때부터 시온씨에 대해서는 은근히 주목하고 있었어요. 원래는 평범한 고양이였는데도 갑자기 사람의 모습이 되었다던가. 그런 게 흔히 있는 일은 아니잖아요?]

[나: 흔히 있는 일이 아니다. 라고 말할 수준이 아니잖아.]

아예 비현실이다.

나 같은 경우는 그나마 오누이라는 비현실적인 존재들에 접하고 있으니 상대적으로 무난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만약 시후네 가족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아찔했을 것이다.

그동안 쌓아온 상식과 개념이 순식 간에 뒤틀리는 것이니 말이다.

[햇님: 아무튼 그래서 제 나름대로 조사를 해봤는데. 누가 시온씨에게 접촉한 건지는 명확히 알아냈어요. 인세에서 김현감호라고 불려요.]

강씨 아저씨네 헌책방에서 아주 오래전 읽었던 기억이 있다. 내 지식이 정확하진 않지만 호랑이와 인간의 사랑 이야기였던 것 같다.

호랑이가 김현이라는 남자를 너무도 사랑하여, 그를 돕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는 내용이다.

신라 때의 이야기인 만큼 다소 옛된, 혹은 구시대적인 감성이긴 하다.

[햇님: 시온씨의 사정과 조금 비슷하지 않나요?]

[나: 어느 부분이?]

[햇님: 시온도 자신의 마지막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시간을 투자했던 거잖아요. 시후의 친구를 찾아주기 위해서. 그렇게 시간을 투자해서 윤슬이와 주현 오라버니를 만나게 된 거구요.]

[나: 아... 그런 해석이구나.]

시온의 경우 희생이라기보단 친구를 위해주던 신중한 선택에 가깝다.

김현감호 설화의 호랑이는 김현이라는 남자와 남녀 간의 사랑을 나눈다는 점에서도 약간 차이가 있지만.

중요한 건 시온과 그 호랑이 두 쪽 다 누군가를 위해서 사건을 벌였다는 점이다.

[햇님: 네, 그래서 그 호랑이는 시온을 순수한 의도로 도와준 거라고 해요.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게 해준 것까지는요. 호랑이나 고양이나, 같은 고양이과잖아요. 동질감이 들었다나 뭐라나.]

[나: 동질감... 그럼 시온을 인간으로 변신시켜준 것 말고, 그 이후에 되살려준 것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는 얘기야?]

[햇님: 아뇨, 또 다른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애초에 그 호랑이가 일으킬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거죠. 이래 봬도 저랑 저희 오라버니는 저승에서도 꽤 높은 급에 속해요.

자연물 중에서도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해와 달의 이름을 받았으니까요. 또, 저희의 이야기가 대중들한테 널리 알려져있는 것도 한 몫하고요.]

오누이는 힘이 ‘지명도’라고 하는, 얼마나 유명한지, 그 척도에 따라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한다면 김현감호 같은 다소 매니악한 설화보다야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쪽이 유명한 것은 당연한 얘기다.

[햇님: 그런 저희마저도 죽은 동물을 다른 존재로 변형하여 인세로 되돌려보내는 행동은 불가능해요. 그러니까 별개의 힘이 개입했다고 보는 게 옳겠죠.]

[나: 아무래도 우리... 때문인 것 같은데?]

[햇님: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

배고프다며 고구마를 달라는 시온에게, 어떤 말을 건네야할지.

나는 고민했다.

그때 윤슬이는 내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거리더니 시온에게 조심스레 다가가서.

주머니를 뒤적였다.

“시오니... 요기... 이거 주께.”

- 응? 뭐야, 이게.

“맛짱짱이. 윤스리가 젤루 조아하는 건데. 주께. 옵바 몰래 하나 갖꾸 와써. 여기서 배고프므는 머글라구. 근데 주께. 시오니가 배고프니까는.”

우산 아래 쪼그려 앉아있는 시온에게, 윤슬이는 맛짱짱 우유 초코맛을 선뜻 건네었다.

본인 말대로 가장 좋아하는 간식인데, 아무래도 캠핑 짐을 챙기던 혼란을 틈 타서 나 몰래 주머니 속에 쟁여온 모양이었다.

여지껏 그걸 숨기고 있었다는 게 대단하게 느껴졌다.

또, 윤슬이는 그만큼 힘들게 지금까지 숨겨왔던 것을 시온이 배고프다는 이유로 넘겨주는 것이었다.

마음 착한 5세를 결코 혼낼 수 없었다.

- 호로로록-! 으음... 이걸 왜 좋아하는지 알겠네! 맛있다, 야.

“그치... 윤스리두 젤루 조아하는 거야. 근데두 시오니한테 조써.”

- 고맙네, 여러 모로.

그나마 주린 배를 채웠는지 만족스럽게 윗배를 문지르는 시온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된 거야?”

- 응? 뭐가?

“어떻게 해서 다시 돌아온 거야...?”

- 무슨 소리야. 나를 부른 건 너희잖아.

시온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적어도 내가 그러진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오누이가 벌인 일인가, 싶어 스마트폰을 다시 확인하려던 찰나.

윤슬이가 손을 번쩍 들더니 별하늘을 가르켰다.

“오오, 역씨나! 윤스리가 소언 비러써!”

“소원?”

“웅, 옵바가 그랬짜나. 별 보구 소언 빌므는 이러진다구. 그래서 소언 비러써. 시후랑 시오니를 위해서.”

시후와 시온을 위한 소원?

“시후는 어리니 왕쟈 소언 빈다구 그래써. 근데 윤스리는 시후랑 시오니가 헤어져쓰니까는 다시 만나는 게 더 즁요해. 왜냐믄 시후두 친구고, 시오니두 친구니깐. 그래서 다시 만나서 행복하게 지내는 게 조으니까는 소언 비러써.”

“시온과 시후가 다시 만나게 됐으면 좋겠다고?”

“그렇타!”

참, 장하고, 속깊은 소원이다.

자신보다 자기 옆에 있는 친구를 위해 그런 소원을 빌어줄 수 있다는 점이 아직 어리지만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소원을 빌었던 타이밍에 기가 막히게 시온이 되살아나서, 이곳 캠핑장 인근으로 굴러들어왔다는 점이다.

결코 우연이라고 생각되진 않았다.

- 뭐, 암튼 난 잘 모르겠고. 내일 보자.

시온은 그렇게 말한 뒤 고양이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수풀 쪽으로 튀어들어가는 제스쳐를 취했다.

“야! 잠깐, 시온 어디 가?”

- 내일 보자니까. 너희 가게로 간다.

“시오니! 시후 보러 가치 가야지.”

- 나도 그러고 싶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야.

그렇게 말하며 그 자리에서 도망쳐버렸다.

워낙 길고양이기도 하고, 우리 가게에서 내일 보자고 하는 시온의 말이 거짓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내심 아쉬웠다.

“시후가 보므는 조아할 텐데...”

윤슬이의 말대로다.

지금 시후를 만나러가게 된다면, 어떤 표정을 할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시후네 부모님도 굉장히 좋아하시겠지.

하지만 그 건에 대해서는 시온의 판단이 대략 옳았다.

만약 시온이 지금 시후네 가족의 곁으로 훌쩍 되돌아간다고 가정하자.

그걸 곧이 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스스로 무지개 다리 너머로 보내준, 가족이 좀비처럼 되살아났다면 그것에 대해 자연스레 납득할 수 있는 인간이란 좀처럼 없을 것이다.

“우우... 이러므는 윤스리 맛짱짱이만 먹구 시오니가 튀어버린 거자나. 손해가 이마니 저마니가 아니야....”

5세는 또 다른 부분에서 아쉬움을 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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