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10월의 개미취(2)
[햇님: 그러니까 윤슬이가 소원을 빌어서, 시온씨가 되살아났다는 거겠네요? 캠핑장에서 별다른 일이 벌어질 거란 생각을 안했어서. 두 분을 굳이 화면으로 관찰을 안 하고 있었는데. 그런 일이 있었을 줄이야.]
[나: 높은 확률로 윤슬이가 소원을 빌어서 그렇게 된 게 아닐까?]
[햇님: 이건 합리적으로, 윤슬이한테 몰래 심어진 능력과 관련이 있다고 보는 게 맞겠네요.]
[나: .... 그렇지, 아무래도.]
[햇님: 확신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요.]
햇님이는 확신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번 건에 대해서만큼은, 난 확신했다.
윤슬이가 소원을 빈 덕에 시온이 이곳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그때, 귓가에 방울소리가 울리고.
스마트폰이 이상하게 진동하던 때에.
오누이 타이쿤 어플이 아닌, 다른 배너가 스마트폰 화면에 전시되었다.
그리고 거기엔 빈칸이 숭숭 뚫린 문장이 적혀 있었다.
그때가 마침 윤슬이가 유성우를 바라보며 소원을 빌고 있던 타이밍이란 걸 감안했을 땐.
그 배너의 문장이 힌트가 될 것 같다.
그러나 더 이상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 문제였다.
또, 너무 순식 간에 스쳐지나간 터라 정확히 기억나지도 않았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아마 햇님이도 사뭇 진지해졌을 거다.
윤슬이의 숨겨진 능력에 대해서는 꽤 오랫동안 함께 조사해오고 있으니 말이다.
[나: 달님이는 뭐하고 있어?]
잠깐 분위기를 전환하기로 했다.
[햇님: 오라버니는 지금 우울한 상태에요.]
[나: 달님이가? 별 일이네.]
[햇님: 그렇지도 않아요. 헬스장 출입 금지를 당했잖아요.]
[나: 아하... 그런 거구나.]
평소에는 장난끼 많은 달님이지만 운동에만큼은 진심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프로틴이 어쨌느니 운동법이 어쨌느니 하는 얘기를 질리지도 않고 해대는 녀석이니 말이다.
지난 번엔 그 누구도 원치 않는 서프라이즈(욕망의 똑딱이 건이다.)를 일으키는 바람에 햇님이에게 강력한 제재를 받게 되었다.
약간 불쌍하단 생각이 든다.
[나: 이제 슬슬 봐주는 게 어때?]
[달님: 정말이에유?]
불쌍하단 마음이 갑자기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햇님: 주현 오라버니가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달님: ㅋㅋ 이건 못 참지. 당장 와이레이즈 조지러 간다.]
대단한 열정이다.
와이레이즈라니, 그건 대체 무슨 운동이야.
**
“움...! 진쨔루 시오니가 있짜나.”
- 그럼 진짜로 있지. 내가 말했잖아. 내일 보자고.
다음날, 우린 평소와 같이 부랴부랴 출근했다.
시온이 오누이 식당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조금 부지런히 출근하는 게 옳은 행동이었지만.
솔직히 너무 피곤했다.
캠핑을 마치고 늦게까지 운전을 했던 데다가 오누이와도 채팅을 주고 받았으니 말이다.
또, 오늘 아침 5세의 피부는 아주 빤딱빤딱하다.
과장 보태서 햇빛에 반사되어 윤이 날 수준이다.
평소 식당의 바닥을 청소하는 노하우를 살려서 열심히 씻겨보았다.
어젯밤 제대로 씻지도 않고 잠든 결과였다. 출근하기 전에는 약간 툴툴대기도 했다.
‘옵바가 넘무 빡빡 씻기자너!!’라고.
- 윤슬이 요즘 잘 먹는구나? 떼깔이 곱네?
“윤스리눈 원래 고우거든.”
- 뭘 먹는데 그래?
“옵바가 만드러준 걸루 머거.”
허리춤에 손을 얹고 당당히 자신의 본래적 ‘고움’을 주장하는 5세였다.
시온은 발코니 쪽 테이블에 웅크려 앉아있던 몸을 쭈욱 기지개키더니 벌떡 일어나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바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더니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역시나 인간의 모습으로 변했을 때, 원래는 할머니였으나 지금은 젊은 모습이었다.
그때와는 영판 다른 외모다.
- 놀랄 것 없다. 회춘했다구.
“보통 그런 걸 회춘이라고 부르진 않아.”
“윤스리 해추니가 몬지 알어. 절머지는 거자나. 저번에 안경 할부지한테 배워써.”
기억력이 좋은 5세였다.
자신이 대단한 기억력을 선보였음에도 내가 별 반응을 하지 않자, 성이 났는지 볼을 부풀리더니 내 손을 가로채더니 자기 머리 위에 얹는다.
“자랬따~! 자랬따~! 윤스리 똑또캐.”
내 손을 이용하여 셀프 칭찬하는 5세였다.
괜히 안쓰러워서 번쩍 들어올려 무릎에 얹히곤 머리를 마저 쓰담아주었다.
“맞아, 맞아. 우리 동생이 제일루 똑똑해. 다섯 살 중에서 제일로 똑똑하다~.”
“쿠쿠쿡... 알거둔.”
- 너네 둘도 여전하구만.
시온은 쓴 웃음을 짓는다.
- 좀 뜬금없긴 한데. 너희가 나 좀 데리구 살어야 되겠다.
시온의 말대로 굉장히 뜬금 없으면서도 자의적인 발언이었다. 누가 고양이 아니랄까봐.
이에 윤슬이는 인상을 찌푸리며 주먹 쥔 양손을 번쩍 들어올린다.
그 탓에 턱 아래에 어퍼컷을 맞을 뻔한 걸 가까스로 회피했다.
“잉...?!! 시오니는 시후한테 가야지 대. 안 그르므는 시후가 슬퍼.”
- 나도 알아. 시후가 어떻게 생각할지.
“그러문... 왠데.”
이젠 의기소침해졌다.
윤슬이가 생각하기에도, 시온이 시후의 마음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래서 잠자코 이유를 듣기로 한 모양이다.
-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야. 애초에 너희가 없었더라면 이렇게 다시 되돌아올 수도 없었어.
“그 부분을 조금 더 설명해줬으면 우리가 더 이해하기 좋을 것 같은데.”
- 그래야지. 우선적으로 못 박아두자면, 난 너희 없이. 그리고 이 식당 없이는 이 세계에 존재할 수 없게 되어버렸어...
시온은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혀를 내둘렀다.
뒤통수를 긁는 게 마치 고양이 앞발로 슥슥 쓸어내리는 것 같기도 하다.
- 나를 다시 이곳으로 되돌려버린, 호랑이 녀석이 그러더라고. 오누이? 라는 녀석들의 지명도를 빌려서 세계에 현현시켜주는 거니까. 너희한테 반드시 붙어있어야 된다고.
“움? 오누이?”
윤슬이는 오누이라는 말에 반응하더니 벌떡 내 무릎 위에서 일어나서는.
보디빌더들이 곧잘 짓는 포즈를 지어 이두를 잔뜩 모아본다.
“몸쨩!”
이라길래 5세의 팔뚝을 만져봤더니
물컹-
역시나 물렁살이다.
아무래도 시온의 말에 따르면 단순히 윤슬이가 소원을 빌었기 때문에 이곳으로 되돌아올 수 있던 것은 아닌 듯하다.
최근에 우리 식당의 지명도를 차근차근 쌓아나가며 지명도를 드높이고 있는 오누이의 힘을 빌렸다는 얘기 같은데.
[햇님: 도둑 고양이! 왠지 어제부터 뭔가 지명도 게이지가 이상하더라니!!]
아니나 다를까 스마트폰이 부들거리며 [오누이 타이쿤!] 어플에 메시지가 한 줄 떠오른다.
시온에게 보여주자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 내가 원해서 이렇게 된 건 아니라고, 물론 싫다는 건 아니지만. 그 호랑이 녀석한테 따져줘...! 솔직히 도둑 고양이는 심하잖아. 적어도 멋있는 이름으로 해달라고. 해적 고양이! 라던가.
이상한 부분에서 트집을 잡는 시온이다.
이전부터 시온은 블랙 유머에 소질이 있던 것 같다.
- 아무튼 그렇게 돼서 너희 옆에 붙어있지 않으면 존재가 점점 희미해진다고 하대. 그래서 시후 집에 얹혀살 수는 없게 됐어.
“움... 그거눈 어쩔 쑤가 없눈... 건가?”
5세는 이해하기 어렵단 듯이 고개를 갸웃- 갸웃- 거린다. 윤슬이가 온전히 내용을 이해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시후의 집에서 함께 살 수 없게 됐단 점은 정말로 아쉽다. 하지만 다시 세상에 내려오지 못했더라면 시온과 시후는 영영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차라리 우리와 함께 지내면서라도 시후를 만날 수 있게 된다면 오히려 큰 경사인 셈이다.
그건 좋다.
그건 좋긴 한데.
“근데 시후는 우리 식당 되게 자주 오는데, 윤슬이 보러. 만약에 우리 식당에서 시후랑 마주치면. 그땐 어떡하게?”
시온은 지금도 고양이의 모습과 사람의 모습을 왔다갔다 할 수 있는 듯하다.
평소엔 고양이 모습으로 있을 테고, 그 고양이의 외모를 시후가 목격한다면 단박에 알아볼 것이다.
여전히 치즈 색깔의 털을 자랑하는 시온이니까 말이다.
“사람 모습으로 있어야겠지?”
시온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한 바퀴 뱅글- 돌아본다.
그 모습을 보고 윤슬이는 영감을 받았는지 눈을 부릅-! 뜨곤 내 무릎 위에서 폴짝 점프해서 바닥에 착지한다.
뱅글-
뱅글-
뱅글-
제자리에서 세 바퀴 돌더니.
“패쎤쑈!”
잠시간 봉인해두었던 스킬을 발동!
“아, 앗... 나두 모르게 해버렸따. 시오니 따라서 해부려써. 이거 안 할라구 했눈데. 치이...”
제자리에서 도는 시온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시전한 듯하다. 볼을 발그레 물들이더니 내 무릎에 얼굴을 폭- 하고 묻어버린다.
수치심에 젖은 5세를 품에 안고 등을 토닥여준다.
“확실히 지금처럼 사람 모습으로 변해있기만 한다면야 별 문제는 없을 것 같긴 해.”
시온이 사람으로 변할 수 있단 사실은 애초 우리밖에 모르는 비밀이었다.
물론 전 대학교수셨던, 그 할아버지가 관련된 장면을 우연히 목격하신 듯했지만 아마 지금쯤이면 새하얗게 잊으셨을 거다.
- 그치? 이러구 있으면 감쪽 같으니까, 별 문제 없을 거야.
[햇님: 뭐가 문제가 없어요?! 저 고양이가 계속 우리 식당에 있으면 지명도 파워를 공유하게 되는 거라구요. 저희 입장에선 손해가 만만치 않아요...!]
햇님이가 웬일로 적극적으로 반대한다.
웬만하면 우리가 벌이는 일을 응원해주는 아이인데도 말이다.
허나 햇님이 입장에선 자연스런 주장일지도 모른다.
애초 오누이가 우리와 동행하는 이유는 식당의 지명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일종의 계약관계.
그 계약의 기초가 되는 지명도가 깎여나가서야 계약의 근간을 뒤집는 것이다.
오누이 입장에선 굉장히 큰 손해가 발생하는 상황이다.
“우우... 그래두 시오니가 다시 나타나서 다행이야.”
윤슬이는 시온에게 다가가 그녀의 무릎에도 얼굴을 부빈다. 그런 상황이 시온은 낮뜨거운지 머리만 살짝 살짝 손으로 만지작거린다.
그 모습을 보니 시온이 다시금 무지개 너머로 되돌아가는 것은 그다지.
아니, 그다지가 아니다.
굉장히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강하게.
[나: 그래도 시온을 도로 하늘로 올려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달님: 글쎄요. 그건 시온 쪽 사정이라서요. 저희는 완전히 도둑 맞는 입장이라고요. 주현이 형도 아시잖아요? 저희는 웬만하면 형님 편 들어드리는 거. 강필중 아저씨 건 때도. 진호연 아저씨 건 때도. 또, 권씨 남매 건 때도.
저희는 주현이 형 아이디어에 맞춰서 여러 모로 편의를 봐드렸어요. 기억하시죠?]
그건 틀림 없다.
오누이는 좋은 녀석들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결국 내가 저 둘의 수요에 맞는, 지명도를 지속적으로 제공해주고 있기 때문.
철저히 자기 실속은 챙기는 편이 오히려 계약 관계로서 믿음직스럽기도 하다.
- .... 혹시 오누이라는 애들이 불만이 있는 건가?
시온은 내가 계속 스마트폰을 쳐다보는 것을 보고 곧바로 눈치를 챈 듯하다.
“응, 그런가본데?”
“이익! 모가 불마니야! 모가! 윤스리눈 화가 나!”
5세가 대노(大怒) 직전이었다.
- 그럼, 돌아가야 하는 건가. 다시.
시온이 쓸쓸한 얼굴로 입꼬리만 미세하게 올리며, 쓴웃음을 짓는다.
그런 시온을 보며 마음이 아픈지 윤슬이는 입술을 잔뜩 내민다. 그리고는 나를 쳐다보며.
“이잉... 옵바...”
낮게 신음한다.
머리를 굴려야 할 때였다.
모두가 만족하는 결말을 위하여.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핀다.
멀리 본다.
가게 유리문 너머 주차된 내 자전거가 보였다.
붕붕이 1호던가.
“.... 시온, 너 길은 잘 알지?”
- 길?
“응, 골목 골목 많이 다녔을 거 아냐?”
- 당연한 소리. 길찾기는 내 전문이라고. 허투루 길고양이 생활 10년한 건 아니거든. 근데 그건 왜?
시온 녀석은 10년이나 길바닥에서 살던 길고양이니까 요 근방의 지리라면 빠삭할 것이다.
본인도 저렇게 장담하고 있다.
그래, 그렇다면 전혀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