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그리고 모험은 다시 시작된다(1)
고영희씨(시온)가 우리 가게 직원이 되고는 많은 것이 변했다. 우선 홀이 상대적으로 쾌적해졌다.
손님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일간 매출은 늘고 있다는 말이지.”
배달 서비스를 시작하게 되자 몇몇 손님들은 자신들의 회사 혹은 자택에서 주문하여 드시게 된 것이다.
그에 더해 본래 우리 가게까지 걸음을 옮기기 귀찮았던 손님들까지 배달을 이용하게 되면서 매출이 전체적으로 증가한 모양이다.
만약 매출이 줄어들었고, 홀에 손님까지 비게 되었다면 그건 홀이 ‘쾌적’해졌다기보단 ‘한가’해졌다고 표현해야 옳을 것이다.
“그래도 아직 더 매출 추이를 살펴보긴 해야겠지만.”
고영희씨가 우리 가게 직원으로 정식 채용된지 아직 한 주 정도밖에 되지 않은 시점이다. 이전부터 배달 서비스를 원하던 손님들이 많이 이용해주셔서 다행이긴 하지만.
배달을 시작한 것에 대해 무조건 낙관적으로 보긴 어렵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고 우리 식당이 배달 서비스를 한다는 것이 널리 알려지면 장기적으로 이익이 더 커지지 않을까, 예상 중이다.
[달님: 결과적으로 시온씨를 채용한 것은 좋은 선택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햇님: 저도 동의해요. 주현 오라버니가 상황을 잘 해결해주신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이네요.]
오누이도 이렇게 말하니까 말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시온이 배달부로서 일하는 게 지명도에도 긍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 덕에 시온이 되살아난 것으로 지명도에 손실이 온다는 얘기는 쏙 들어가버렸다.
여러 모로 다행이다.
- 크으... 힘들다아...
“움! 영히씨 갠짜나?”
점심 장사 타임이 끝나고 브레이크 타임이 되자 고영희씨는 발코니 쪽 목재 테이블에 널부러져버렸다.
낮게 신음하는 소리가 마치 귀신처럼 들리기도 한다.
엄살 같아보이기도 하지만, 지금껏 일하지 않던 고양이 팔자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배달하려니 깨나 고될 것이다.
윤슬이는 그런 마음을 이해하는지 영희씨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담아준다.
원래는 ‘시오니’라고 불렀지만, 손님들과 더불어 내가 그녀를 ‘영희씨’라고 부르는 까닭에 윤슬이도 ‘영히씨’라고 부르게 되었다.
- 응... 거기, 선배. 더, 더 쓰다듬어줘... 오오, 그래 거기, 거기.... 시원허다.
“어때? 윤스리 선배 같으지?”
- 그렇네, 완전 멋있는 선배 같아. 그러니깐 쓰다듬는 김에 저기 가서 사이다도 한 캔만 꺼내다주라.
“움! 알게따, 선배가 해주께.”
반대로 고영희씨는 윤슬이를 ‘선배’라고 부른다.
이 호칭은 소소한 에피소드로부터 탄생하게 되었다.
며칠 전에 수영이와 지아가 오랜만에 가게로 들려주었다.
슬슬 날씨가 추워지는 까닭에 교복 위에 코트를 걸치고 다니는데, 그게 불편해서 학교 다니기가 싫다나.
핑계 섞인, 그 친구들다운 불평을 뱉으며 처음으로 고영희씨를 만나게 된 것이다.
고영희씨가 앞으로 우리 가게에서 포장 및 배달 업무를 도와줄 거라고 설명했더니 윤슬이랑 번갈아서 쳐다보던 수영이가 이렇게 말했다.
- 그럼 윤슬이가 선배인 거 아냐? 영희 언니보다도.
‘움? 선배가 몬데.’
- 더 먼저 일하거나 공부하기 시작한 사람을 선배라고 부르는데. 윤슬이랑 주현 오빠가 이 가게에서 먼저 일하기 시작했잖아. 주현 오빠는 사장이고, 윤슬이는 직원이니까. 윤슬이가 선배잖아.
‘몬지눈 몰르겠눈데. 조은 건가?’
- 그럼,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야... 후배보다 선배가 낫지?
‘수영이 언니가 좋다구 그러는 거므는 맞겠찌. 영히씨! 앞으루 윤스리는 선배라구 불러조쓰믄 좋케써.’
대략 이렇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윤슬이는 정확히 선배와 후배 간의 관계성이나 그 개념에 대해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지 못하였다.
그 탓에.
- 선배? 나 물 한 잔만 떠다주라.
- 윤슬 선배? 나 등 가렵다, 좀 긁어봐.
이런 고영희씨의 잔심부름에 대해 거절하지 못하고.
“움!! 알게따, 선배만 믿으라구.”
‘선배’라는 호칭에 홀랑 넘어가 척척 들어주게 된 것이다. 정말 누가 선배고 누가 후배인지, 행동만 보면 파악하기 어렵다.
지금 사이다를 가지러 윤슬이가 열심히 뽈뽈- 뛰어가는 것도 선배 활동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겠다.
유감이랄까, 귀엽달까.
오빠로서는 복잡한 심정이다.
“영희씨랑 윤슬 선배. 간식 하나 만들어줄게. 둘 다 먹을 거지?”
“해쥬! 먹을꺼야!”
- 나도... 윤슬 선배가 갖다준 사이다랑 같이 먹어야겠다. 아, 선배 갖고 왔어? 그럼 마저 쓰다듬어줘야지.
“웅! 선배만 믿으라구.”
땀을 흘려가며 영희씨의 머리와 턱을 번갈아 쓰다듬고 있는 5세를 뒤로 한 채 주방으로 돌아왔다.
두 사람에게 만들어줄 음식은 섞어국수다.
원래부터 있는 음식은 아니고, 내가 멋대로 이름 붙여보았다.
일본에서 마제소바라고 불리는 음식인데.
거기서 아이디어를 차용해보았다.
원래는 우동면이나 라멘에 활용되는 면발 등을 이용하여 그 위에 얹어지는 고명, 짭짤한 소스와 비벼먹는 음식이다.
거기서 면만 우리나라의 면발인 중면으로 바꾸어 만들어볼 계획이다.
“사실 소스가 포인트지.”
위에 올라가는 고명은 의외로 별 게 없다.
김가루와 잘게 썰린 부추, 그리고 생달걀의 노른자나 파 정도. 거기다 땅콩 부스러기처럼 견과류를 넣으면 식감이 살아나긴 하지만, 결국 맛을 좌우하는 것은 소스다.
“이것 때문에 마침 다 떨어지던 두반장까지 사왔으니까.”
다짐육과 마늘을 볶고 맛을 내기 위해 간장, 중국 향신료인 두반장, 굴소스를 적당한 비율로 배합한다. 그리고 물을 넣어 걸죽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럼 돼지고기 다짐육이 일명 소보로라고 불리는 느낌을 내며 눅진한 소스가 완성된다.
간이 된 육수에 삶아진 중면을 곱게 그릇에 담고, 그 위에 소스, 고명을 둥그렇게 얹으면.
“완성.”
비주얼은 면발만 제외하면 거의 일본식 마제소바와 같은 느낌이다.
2인분을 한 그릇에 담고 쟁반에 올려, 직원들이 꽁냥대고 있는 발코니 쪽 테이블로 갖고 간다.
내가 눈앞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윤슬이의 고영희씨에 대한 서비스는 계속되었다.
영희씨는 노곤하면서도 나른한 듯, 흐물거리는 몸을 어떻게든 일으킨다.
- .... 킁킁.
냄새를 맡고는 눈썹을 까딱이더니 눈을 부릅- 뜬다.
- 이, 이건.
“뭐야?”
- 분명히 짜고, 맛있고, 짜고, 맛있는 음식!
어휘력이 극도로 빈곤한 영희씨.
그러나 짜다는 표현을 2번이나 섞는 데는 따로 이유가 있다. 상대적으로 고양이들이 섭취하는 음식은 저염식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인간들이 먹는 음식을 먹게 되면 짜게 느끼는 것인데, 지금은 어차피 고양이도 인간도 아닌지라 사람 먹는 음식을 먹게 해주고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영희씨는 지극히 만족하는 중이다.
“잘 먹게쑴미다!”
두 직원은 각자 유아용 포크와 성인용 포크를 들고는 섞어국수를 휘휘- 저어 섞는다.
그리고는 식사를 시작한다.
윤슬이와 마찬가지로 전직 고양이는 젓가락질이 서투른 탓에 아직까지는 포크로 음식을 먹어야만 한다.
후루루룩-
쪼로록-
....
후룰루룩-
쪼로록-
입에 뭘 물려놓으면 이렇게 조용해진다.
영희씨나 윤슬이나 내버려두면 가끔은 소란스러울 때도 있는데 말이다.
후루룩-
후룻...!
“움...”
- 음...
한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이 호록호록 면발을 흡입하던 도중 서로 같은, 한 가닥의 면발을 입에 물게 된 것이다.
마치 막대과자 게임을 하는 것처럼 한 가닥 면발의 양끝이 각각 영희씨와 윤슬이의 입 안에 들어와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끊어 먹으면 될 문제지만.
후룻...! 무무무무무!
(이고 윤스리 꺼야! 선배한테 양보해이지대.)
후룻...! 후룻! 무무무!
(넌 지금까지 맛있는 거 많이 먹었잖아. 너야말로 고양이한테 양보하라고.)
서로 면발을 놓칠 생각이 없는 모양.
어떻게 면발을 빨아들이는 소리인 ‘후룻’과 ‘무무’만으로 대화하는지는 도무지 모르겠다.
마지막 한 가닥이었으면 이해하겠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은데 양보할 생각이 없어보인다.
“내가 애를 둘이나 키우는 것 같네.”
작게 한숨 쉬며 주방에서 가위를 가져온다.
썩둑-
면의 한 가운데를 자르는 것으로 상황은 극적으로 종결되었다.
그 뒤로 똑같은 시츄에이션이 두어번 정도 더 있었는데, 그랬던 탓에 약간 후회했다.
“그냥 그릇 두 개에 나눠서 담아줄 걸.”
그리고 저녁 장사 준비가 시작되었다. 고기 손질을 하고 있던 도중, 둘이 먹고 남은 텅 빈 그릇을 설거지하던 영희씨가 물었다.
- 야, 주현아. 거기 어디더라?
“움? 거기라구 하므는 어뜨케 알지? 어딘지를 알려주야 우리 옵바가 대답을 하자나.”
5세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주었다.
- 그, 거기 있잖아. 제일 자주 시키는 곳. 뭐 뚝딱뚝딱 만들던 곳.
“뚝딱뚝딱? 거기눈 해워니 언니랑 여누 아저씨네. 나무루다가 모 만드는 곳이야.”
- 오, 맞아 거기.
5세가 다시 한 번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주었다.
아주 편리하다.
- 거기서 너희 한 번 들리면 좋겠다고 전해달라는데?
“움? 윤스리랑 옵바랑?”
“별 일이네. 놀러오라는 건가?”
- 글쎄, 놀라오라는 것도 같고. 뭔가 부탁할 게 있어보이기도 하고.
“부탁할 거가 있으므는 식땅으루 직쩝 찾아오라구 전해조!”
5세는 턱에 힘을 바짝주고는 매정하게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혜원씨와 연우씨네 목재 공방에는 한 번 신세진 적이 있어서 신경 쓰인다.
지난 번에 권수안씨의 목에 걸, 대신 눈이 되어줄 팬던트를 만드는 데 도움을 주셨으니 말이다.
적어도 어쩐 일인지는 나중에 물어보아야 되겠다.
“움! 윤스리 왜 오라구 그러눈지 알 거 같으다.”
“왜인데?”
“쩌번에두 윤스리한테 초코 줬거둔. 그니까 이번에두 초코 주라구 오라는 거가 틀리미 업써. 그치? 맞찌?”
“유감이지만 그건 아닐 듯한데.”
“힝... 그러문 안 가.”
5세는 다시 한 번 매정했다.
**
“다음엔 칼국수 면으로 바꿔볼까?”
“움?”
“아까 섞어국수 말이야.”
“윤스리눈 칼국쑤 면두 먹어보구 싶으다.”
“그럼 다음에는 칼국수 면으로 한 번 만들어볼게.”
“웅, 그게 좋케써.”
아까 두 직원에게 만들어준 섞어국수의 맛은 충분히 괜찮은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뭔가 2%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탱탱하면서도 단단한 면발이 그 소스와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이랄까. 심지어 마제소바의 정수는 면발을 다 먹고 남은 소스에 밥을 비벼먹는 것이다. 그것에 대해서도 조금 더 고려해야될 것만 같았다.
아무튼 오늘의 메뉴로 내기 위해서는 조금 연구가 더 필요하다.
- 그건 됐으니까, 빨리 집 가자. 피곤행...
나와 윤슬이를 도와 뒷정리를 마친 고영희씨는 고양이 폼으로 돌아가 귀가 준비를 한다.
가게에서 밤을 보낼 수는 없는 관계로 우리와 함께 돌아가서 잠을 잔다.
때로는 밤산책을 하고 싶다거나 오늘은 가게 앞에서 적당히 노상 취침하겠다고 말하는 날도 있긴 한데.
그럴 때는 십중팔구 그곳으로 가는 것이리라 생각하고 허락해준다.
어차피 길고양이 출신인 고영희씨(시온)가 봉변을 당할 확률은 매우 낮으니 말이다.
시온은 날렵하게 걸음을 옮겨 배달용 도시락 가방 속으로 들어가버린다.
배달할 때 포장용기를 담는 곳이기도 하지만, 시온이 출퇴근할 때 이용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영히씨 거기눈 갠짠나요?”
- 아아... 따듯하고, 아늑하고. 최고야. 매우 안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