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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굴러들어옴-136화 (136/200)

136화: 그리고 모험은 다시 시작된다(2)

“움? 안저내?”

고양이의 발언에 의문을 갖는 5세였다.

저건 종족 특성인 것 같다.

박스만 보면 매우 들어가고 싶어한다.

원래는 출퇴근할 때를 고려해 케이지를 하나 따로 장만하려고 했는데, 고영희씨가 ‘난 저 박스가 좋다, 이의는 받지 않겠어.’라며 배달용 도시락 가방을 가리켰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그 결과, ‘시온 도시락’이 완성되었다.

도시락 가방에서 빼꼼하고 얼굴만 내밀고는 내 가슴팍에 매여있는 시온은 꽤나 매력적이다(평소 배달시에는 뒤로 매는 가방이지만 출퇴근할 때에는 뒤에 윤슬이가 타는 바람에 앞으로 가방을 매야만 한다.).

뒷좌석에는 5세.

운전석에는 나.

그리고 내 가슴팍에 매인 시온.

이렇게 붕붕이 1호는 세명을 태우고 출퇴근 길을 달리곤 한다.

- 뭐야, 고양이랑 애기를 자전거에 태우고 타네? 조합 개사기다.

종종 이런 반응도 들려오긴 하지만.

퇴근할 때에는 그런 사람들의 반응을 일일이 신경쓰기 힘들다. 피곤하니까.

“윤슬이 춥지 않아?”

“갠짜나. 영히씨는?”

- 여긴 따듯하고, 안전하다고. 상자 안이잖아. 짜릿해, 최고야.

엄밀히 따지면 가방이다.

슬슬 11월인 터라 바람에 볼이 아려오기도 한다.

윤슬이는 그나마 후드를 입히곤 모자를 씌워놓아 괜찮긴 하겠지만. 얼마 안 가 중순이 되면 자전거 출퇴근은 현실적으로 어려워질 것 같다.

“차가 먼저인가, 집이 먼저인가.”

최근 불어나는 통장 잔고를 보고는 그런 행복한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출퇴근 시에 차가 있으면 편할 것 같긴 하지만.

차를 구매하지 않으면 윤슬이랑 영희씨와 함께 더 좋은 집에서 생활할 수도 있다.

조금 더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아직 장사한 지 반 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런 고민을 할 정도라면 분명 순조롭게 일이 진행되고 있단 생각이 든다.

11월의 서늘한 공기를 헤집고, 집에 도착했다.

다행히도 동물을 키우는 것이 가능한 이 빌라는 당당히 시온을 데리고 들어갈 수 있다.

- 주현, 기억하고 있지?

“뭐를?”

- 나 어제 씻은 거.

“아아... 샤워할 때 같이 씻었던가?”

“윤스리가 뽀득뽀득 이뿌게 씻겨조써. 윤스리두 기억하구 있거둔.”

시온은 짤막한 앞발로 윤슬이를 가리킨다.

- 그래! 우리 윤슬 선배도 기억하네. 그러니깐 나 오늘 건들지마. 바로 잘 거야.

“그래, 약속은 약속이니까.”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시온은 엄포를 놓더니 사뿐한 발걸음으로 침대로 들어가버린다. 그리고는 몸을 말아 엎드리며 자기 애착방석 한 가운데를 차지한다.

우리 집에서 생활할 때의 규칙이다.

시온은 사흘에 한 번씩 씻기로 했다. 어제 씻었으니 오늘은 씻지 않겠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매일 씻었으면 좋겠지만 자기 나름대로 시간이 남을 때마다 그루밍을 하는 것 같으니 봐주기로 했다.

“옵바눈 윤스리랑 씻으자.”

“그래야 되겠다.”

반면 우리 남매는 사람이고, 일을 할 때 땀을 흘렸으니 샤워를 들어가야 했다.

평소처럼 샤워를 마치고 잠자리에 든다.

더블 사이즈 침대에 셋이 눕는데.

잠꼬대가 심한 동생을 벽쪽에 두고, 내가 바깥 쪽에 눕는다. 그리고 그 위에 시온의 애착 방석을 두어 우리의 머리 맡에 고양이가 누워있는 것이다.

더블 사이즈 침대면 사실 둘이서 쓰기에도 그닥 쾌적한 크기는 아니다. 그러니까 셋이서 꽤 알뜰하게 공간을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그나마 나를 제외한 둘이 꼬맹이라서 다행이다.

불이 꺼진 방에서 가만히 누워있다.

둘의 숨소리가 들려온다.

윤슬이의 숨소리는 조금 거칠다.

고롱- 고롱-

작게 코를 곤다.

시온은 숙면하기 전까지는 별다른 소리를 내지 않는다. 하지만 숨을 쉬면서 몸이 부풀었다 줄었다 하기에 침대의 머리맡이 미세하게 흔들린다.

그걸로 녀석의 호흡을 느낀다.

- 주현이, 그리고 윤슬 선배. 나 오늘은 밤 산책 좀 할게. 내일 보자.

나흘 전이던가.

시온은 그런 말을 했다.

‘잉! 영히씨, 선배랑 옵바랑 가치 가서 코오- 자야지.’

윤슬이는 붙잡고 싶어했지만, 난 굳이 그러지 않았다.

그 녀석의 떨리는 눈동자를 보았기 때문이다.

분명 시후에게 가는 것이겠구나.

시온이 직접 말하진 않았지만 그렇게 추측했다.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시후와 당장이라도 재회하고 싶을 것이다. 시온으로서. 그러기엔 너무 많은 것들을 설명해야 하기에 어려운 것이다.

우리 남매와 떨어질 수 없는 사정이 있기도 하고 말이다.

단, 12시간이 채 안 되는 하룻밤 정도는 문제 없는 듯했지만. 그게 한계인 듯했다.

시온은 아마도 시후네 집 근처에서 서성이거나 머물거나, 그 지붕 위에서 잠을 청하거나. 시후네 방 창가를 들여다보거나. 시후네 부모님의 차를 발바닥으로 매만져보거나.

그런 행동들을 하며 밤을 새웠을 것이다.

“시온...”

마음이 측은해져서, 시온의 등을 쓰다듬는다.

반드시, 지금 당장은 무리지만 시간이 흘러 조금 더 오누이가 전해주는 능력을 요령 좋게 활용할 수 있는 때가 되면.

시온을 시후네 가족 품에 돌려보내주겠다고 다짐한다.

시온은 우리의 친구이자 식구이기도 하지만 본래 시후네 가족이니까 말이다.

아주 잠시만 우리와 함께해주는 것일 뿐이다.

쓰담-

쓰담-

시온의 부드럽고 따듯한 노랑 털을 쓰다듬는다.

그릉 그릉- 식기를 약하게 긁는 듯한 소리가 시온의 쪽에서부터 들려온다.

잠이 잘 온다.

꿀잠을 잘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뿌웅-

“아....”

시온의 쪽에서부터 수상한 소리가 들렸다.

이어 수상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 크흠, 실례.

심지어 본인의 범행을 인정했다!

애석하게도 시온의 엉덩이는 내 안면과 꽤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손가락으로 코를 격하게 문지르는 것으로 어떻게든 멘탈을 회복해본다.

고롱- 고롱-

자고 있는 윤슬이의 머리에 손을 얹는다.

부드럽다.

잠이 잘 온다.

이번에야말로 진정 꿀잠을 잘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에, 에... 엣츙!!”

“아....”

5세의 재채기 세례로 얼굴이 침범벅이 되었다.

오늘따라 밤이 길게 느껴진다.

정정하자.

꿀잠을 잘 수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

이어지는 휴일.

우리 남매는 혜원씨와 연우씨네 공방으로 향했다.

[천연우: 다름이 아니라 윤슬이랑 주현씨한테 만들기 체험 한 번 시켜드리고 싶어서요. 평소에 음식도 너무 맛있게 잘 먹고 있기도 하고. 아내가 윤슬이를 좋아하니까, 한 번 이 기회에 어떨까 싶은데요.]

두 분이 우릴 초대해주신 이유는 만들기 체험이었다.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윤슬이는 공방에 가서 나무로 무언가를 조각하고 놀게 될 거라고 얘기했더니.

“움...! 무조껀 간다!”

양팔을 하늘 높이 올리며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그렇다면 가지 않을 수는 없었다.

이번 휴일은 목재 공예품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위험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지만 아마 연우씨와 혜원씨가 먼저 제안을 주신 걸 생각해보면 유아들도 할 수 있는 수준으로 무언가를 마련해두신 거겠지싶다.

공방으로 가는 길은 이미 알고 있었고, 우리 식당에서도 가까운 편이었다.

도착하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윤슬이 왔어?

“해워니 언니당. 이고 바바.”

윤슬이는 만나자마자 내 스마트폰을 들어 저번에 밤하늘의 유성우를 찍었던 사진들을 보여준다.

“이거 옵바랑 가치 가서 찌거써.”

- 어땠어? 이뻤어?

“음청 이쁘구 막 멀리서 별이 뚝! 뚝! 떠러진다. 거기서 어리니 왕쟈들이 바구니에서 만나게 대써.”

- 응, 어린이 왕자? 그게 무슨 소리야?

“움... 움...”

그 일련의 사고과정을 설명하긴 어려운지 “윤스리두 몰룬다!”라고 얼버무려버렸다.

본인이 말을 꺼내놓고 말이다.

“연우씨, 초대해주신 건 되게 감사한데. 저랑 윤슬이가 할 수 있을까요?”

- 그럼요 괜찮죠. 우선 따라와보시겠어요?

공방의 안쪽으로 향한다.

공방의 바깥에는 딱히 눈에 띠는 간판이 걸려있거나 하진 않다.

본래 손님들을 받는 곳처럼 보이진 않는다.

다만 작은 팻말 비슷한 것이 걸려있긴 하다.

지난 번에 왔던 때와 전시되어 있는 목재 조형물의 종류는 다른 것처럼 보였지만.

공방의 내부 구조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나무를 깎는 데 쓰는 다양한 날들이 전시되어 있기도 했다. 작업할 때에는 혹시나 나뭇가루가 날릴까 걱정되어서 윤슬이랑 내거 하나씩 마스크를 챙겨오기도 했다.

- 저건 주현씨랑 윤슬이는 못 쓰죠~.

내 생각을 읽었는지 혜원씨가 쿡쿡대며 웃는다.

“아, 그래요? 역시 그렇겠죠?”

- 그럼요. 저건 너무 위험해요.

“움? 윤스리눈 그러문 몰하러 온 건가여?”

동생도 저 날이 달린 기기들을 만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런 우리 남매를 안쪽에 마련된 테이블 쪽으로 안내해주신다.

- 이거 보실래요?

그곳에 놓인 것은 극히 평범한 스케치북과 찰흙 비슷한, 정체를 알 수 없는 흰색 지점토였다.

“떡 같으다.”

윤슬이는 지점토를 한 번 손가락으로 쿡- 찔러본다.

그 촉감이 이상했는지 인상을 찡그리며 손가락을 잽싸게 빼어 바지춤에 슥슥 닦아버린다.

다행히 묻어나오진 않았다.

- 두 사람이 직접 목재 공예를 하는 건 아니구요. 저희가 작업하기 전에 참고할 수 있는 시안을 만드는 거라고 보시면 돼요.

“시안이요?”

- 네, 저희가 최근 들어서 커스텀 제작 같은 것도 시작해볼까 싶은데. 그러러면 모형을 직접 보면서 참고해서 작업하는 게 제일 좋거든요.

“이 지점토로 만드는 건가요?”

- 그렇죠. 조금 더 나이가 되시는 손님들끼리 오시면 일부 과정에 참여하실 수도 있긴 한데. 윤슬이는 조금만 더 커서 하자?

“윤스리 쫌 이쓰므는 어른 대눈 거 알지여?”

- 그럼. 윤슬이 금방 어른 되지.

연우씨는 어느새 능숙하게 윤슬이를 달랜다.

서로 노려보며 어색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공방이 본인들의 홈그라운드인 덕도 있을 것이다.

“여기 있는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고서, 그 모양을 입체적으로 잡는 느낌인 건가요?”

- 정확해요. 이해가 빠르시네요! 먼저 만들고 싶은 게 있으면 곰곰이 생각해보시고, 그걸 스케치북에 그리는 거예요. 그리고 나서 3D 인형으로 만든다고 생각하고 지점토를 꾸겨서 모형을 내보는 거죠. 지점토 인형 디테일 같은 경우는 저희가 잡아드리니까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되고요.

혜원씨가 웃으며 상세하게 설명해주신다.

윤슬이는 이해했는지 못했는지 지점토 인형과 스케치북을 번갈아 노려본다.

그리고는 무언가를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옵바, 해워니 언니! 만들구 시푼 거 있따.”

“뭐가 만들고 싶은데?”

“잔깐만... 맞춰바.”

윤슬이는 눈앞의 테이블에 놓여있던 펜과 스케치북을 앞으로 끌어와서는 무얼 끄적인다.

삐뚤빼뚤한 선이 점점 형태를 이루고.

그림과 낙서 사이의 어떤 것이 완성되었다.

저번에도 그랬듯이, 여전히 정체를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형상이다.

- 오호... 윤슬이가 그림 잘 그리네? 소질 있는 거 아니야?

“소지리가 몬데?”

- 좋은 거지. 그림을 잘 그리는 능력이 있다는 거니까.

“움... 그렁가.”

연우씨는 웃는 얼굴로 5세의 그림을 칭찬한다.

무엇인지 단박에 알아보신 것 같은데, 나는 솔직히 뭔지 모르겠다.

귀가 뾰족하게 튀어나온 걸 보니 아마도 동물 같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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