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이젠 용기를 내고 싶어(2)
“그래서 호랑이 어미 교육법이랑 윤슬이한테 용기 내는 법을 배우는 거랑 무슨 관련이 있는데요?”
- 그야 아주 관련이 크지.
“구체적으로?”
- 이보게, 송주현군. 자네의 동생, 윤슬이가 저렇게 자신감 넘치고 활발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솔직히 말하자면 윤슬이는 300년만 일찍 태어났어도 장군감이었다고.
“윤슬이가 장군감이란 말은 동의합니다만.”
미정 선생님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조곤조곤 이야기하며 텐션이 낮았었는데, 갑작스럽게 기운을 내며 분위기를 끌어올린다.
본인 때문에 괜히 처지는 게 싫으셨던 모양이다.
“그야 말로 장군감이니까, 원래 성격이 저런 거 아닐까요? 과거를 돌이켜보면...?”
처음 만났을 때는 수줍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또,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더라도 사양하거나 내 눈치를 보느라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하지만 점점 친해져가는 과정에서 그런 모습들은 하나 둘 사라지고.
지금처럼 밝고 건강한 면모만 남게 되었다. 거기에다가 멋있고 강한 걸 좋아하는 와일드한 성격이 유독 두드러지게 되었는데.
잘 생각해보니까.
“처음부터 이러진 않았던 것 같기도?”
- 그래, 아직 유민이나 윤슬이는 초등학교도 안 들어간 어린애들이잖아. 인격이 단단하게 완성되기 이전 단계라고. 그러니까 당연히 환경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커.
“요약하자면요?”
- 윤슬이 성격이 저런 건 송주현, 너한테 적지 않게 영향을 받았다는 거지.
“그런가?!”
듣다보니 꽤나 설득력이 있는 얘기였다.
수영이나 황치호씨가 하는 말이었다면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정 선생님은 성격이 다소 장난스러워서 그렇지 일단 교직 이수를 마친 선생님이다.
내가 학창 시절 때 믿고 따랐던 분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납득되고 말았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까지 와일드한 성격은 아닌 걸요.”
- 그치. 가끔 미친 짓을 할 때도 있지만. 예를 들어 선생님이 취한 모습을 동영상으로 남겨둔다던가.
여름 강릉 여행 때 있었던 해프닝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니!
몰래 사진첩에 유지해두고 있는 것은 비밀이다.
- 네 그런 성격이 영향을 줬다기보단 네가 마련한 환경이 영향을 주었다고 봐야지.
“환경?”
- 응, 대표적으로 오누이 식당. 여기선 윤슬이가 다양한 사람들이랑 교류도 하고, 자유롭게 지내잖아?
“그렇죠.”
- 그런 순간들 하나하나가 윤슬이한테 자신감과 자존감을 심어줬던 거야. 그리고 네가 그만큼 동생을 잘 기르고 있다는 예증이기도 하고.
그런 말씀을 들으니 뿌듯해진다.
가끔 육아를 하다보면 내가 정말로 잘 하고 있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누구에게나 그렇지만 처음은 어려운 법이고.
아들이나 딸이 없는 내게 윤슬이를 길러내는 것은 첫 육아니까.
그런 나에게 선생님이 마치 1등급짜리 성적표를 쥐어주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근데 그런 말씀해주시는 건 되게 감사하긴 한데, 그래서 그게 선생님이 말씀하신 호랑이 어미 교육법?이랑은 무슨 상관이 있냐구요.”
- 유민이를 윤슬이 옆에 밀착시켜놓고, 오누이 식당에서의 일상을 하루만 같이 살아보게 하는 거야.
“그 말은 즉, 우리 식당이 벼랑 끝이라는 뜻?”
- 대충 그런 뜻.
디스인지 칭찬인지, 더 이상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하지만 유민이가 우리 가게에서 하루쯤 윤슬이 대리체험을 해보는 것쯤은 대환영이다.
아무튼 윤슬이와 유민이는 베프니까.
“근데 하루만 갖고 유민이 성격이 변할까요?”
- 절대 안 변하지. 그래도 영향은 어느 정도 있을 거라고 믿어. 우리 아들이 저래 봬도 속이 깊거든. 본인 스스로 느끼는 바가 생길 거야.
“흐음...”
그렇다면 정말 좋을 텐데 말이다.
“몇 시쯤 됐지?”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시간의 흐름을 잊고 있었다. 스마트폰으로 시계를 확인하니 슬슬 저녁 장사를 준비해야 될 때쯤이다.
특히 오늘은 생선을 손질해야 되기 때문에 평소보다 분주히 움직여야 한다.
“5세! 6세!”
“움! 윤스리, 5세.”
- 으, 으응? 유민이... 6세.
유민이는 윤슬이 눈치를 은근히 보다가 나이를 부르는 것이 호명하는 것임을 알아채고 똑같이 대답해버린다.
“오늘은 유민이가 같이 저녁 식사 준비하는 거 도와주기로 했어.”
“유미니가?”
- 내가여?
“응, 이게 엄마가 말하던 호랑이 어미 교육법이래.”
- 아...
작게 탄식하는 6세였다.
그 탄식엔 체념이 섞여있었다.
지금까지 몇 번 본 적이 있고, 일전엔 채소를 씻어본 적도 있으니 유민이도 아는 것이다.
저녁 식사 준비는 꽤나 고된 작업이라는 걸.
“움... 오늘은, 쪼꿈.”
“그렇지? 오늘은 조금... 힘들 텐데.”
- 어엉... 왜여?
심히 걱정되어 보이는 유민이.
실제로 그럴만하다.
“일단 가서 얘기하지.”
“따라오라니까눈, 쫄병!”
- 쫄병...
“또 쫄병이라는 단어는 어디서 주워들었니.”
“움? 그거눈 몰라.”
꼬맹이 둘을 데리고 주방 안쪽으로 향했다.
냉장고에서 오늘 아침에 공수해온 식자재를 꺼내온다.
내 손바닥 두 개만한 고등어들이다.
- 생선...?
“11월이면 고등어가 제철이거든. 이번달 가기 전에 한 번 요리해야지 싶어서 갖고 왔다.”
점심과는 다른 메뉴다.
생선 요리는 점심에 내어봤자 인기가 적을 가능성이 높다. 직장인들의 경우 생선 특유의 냄새가 옷에 밸 것을 염려하여 잘 주문하지 않기 때문이다.
냄새가 나지 않게끔 하기 위하여 냉장고에 보관해둘 때키친타월로 감싸두었다.
“옵바, 오늘뚜 댕강?”
“응, 오늘도 댕강.”
- 댕강...?
유민이는 ‘댕강’이라는 어감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지 걱정스런 눈치다. 도마에 놓인 고등어와 윤슬이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마른 침을 삼킨다.
나는 개의치 않고 작업을 마저 하기로 했다.
생선은 구이로 나갈 계획이기 때문에 손질이 되어있어야 한다. 순살이 아니면 일일이 발라먹어야 하는데 굉장히 귀찮지 않은가.
발라먹는 게 귀찮다는 단점이 생선 요리의 인기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서걱- 썩둑!
식칼이 무거운 소리를 내며 고등어의 대가리 아래쪽으로 파고 든다. 그대로 척추를 따라 꼬리까지 그어버렸다.
- 으어...
“유미니, 갠짜나. 이거눈 이러케 해야 마시 조아.”
- 진짜루?
“웅, 진짜루. 안 그러므는 까시가 있어서 머그는 게 힘드러.”
윤슬이는 내 옆에서 여러 가지를 배운 덕에 그런 잡지식들을 잘 알고 있다.
꼬리까지 그어내자 척추를 기준으로 양쪽에 붙어있던 살덩어리가 떨어진다. 대가리부터 꼬리까지의 뼈가 앙상하게 남아있다.
다시 한 번 칼질, 댕겅-!
고등어 대가리가 잘려나온다. 그걸 윤슬이 쪽으로 밀어내었다. 그러자 미리 준비해둔 음식물 봉투 속으로 윤슬이가 담아넣는다.
“오늘은 이르케 해서, 옵바 도와주눈 거야. 알겠찌?”
- 정말루? 이거를... 한다구?
“웅. 윤스리 그짓말 안 하눈데. 가끔씩만 해.”
유민이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쓰레기 봉투 속에 담긴 고등어 대가리를 흘깃거린다.
사실 혼자서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작업이지만 순전히 윤슬이가 원해서 시키는 것이다.
워낙 날 도와주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유민이의 반응을 보니까 새삼 윤슬이가 대단하단 생각이 들기도 한다.
보통 잘려나간 생선 대가리니까, 애들이라면 무서워할 법도 하다. 유민이의 반응이 오히려 보통에 가깝지 않을까.
“쿠쿠... 오늘은 고도리 머그는 날이야.”
오늘은 고돌이 먹는 날이야.
“....”
잊고 있었다.
강릉에선 ‘농돌이 사건’도 있었다는 것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더더욱 5세가 장군감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선생님말대로 300년 정도 전에 태어났으면 바다를 주름잡고 다녔을지도 모른다.
“유민이 이거 모아볼 수 있겠어?”
- 으윽.
윤슬이는 고등어 대가리 수집을 담당하고 있으므로 유민이에겐 다른 역할이 필요했다.
그래서 지느러미 쪽을 부탁해보기로 했다. 고등어 지느러미 같은 경우는 잔가시가 많아서 제거해야 되는 부위인데 여섯 살 아이가 직접 맨손으로 잡기엔 위험했다.
그래서 윤슬이와 마찬가지로 손에 작은 고무장갑을 씌워주었다.
- 엄마...
- 아들, 할 수 있어.
- 우웅...
잘려나온 생선 지느러미를 보고 고민하는 유민이.
대가리에 비해선 그나마 비주얼이 괜찮았지만, 이쪽도 징그럽긴 마찬가지.
평소 같았으면 절대로 유민이에게 시키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수련 중이다!
어찌 보면 이런 사소한 사건이 유민이의 미래를 위한 터닝 포인트가 될지도 모른다.
“유미니 할 쑤 이써!”
윤슬이는 한 손에 생선 대가리, 다른 한 손에 쓰레기 봉투를 들고 유민이를 응원한다.
그 모습을 한참 뚫어져라 쳐다보는 유민이. 무언가 느끼는 바가 있는 모양이다.
- 윤슬이두 하니깐...! 나두 할 수 이써.
자신보다 용감한 5세의 모습에 자극을 받은 걸까?
입술을 꾹 닫은 채로 유민이는 지느러미를 봉투에 쓸어담기 시작한다.
슥삭-
슥삭-
그 모습을 보고 윤슬이도 만족스러운지 고개를 끄덕인다.
“역씨 윤스리 부하야.”
라며 손을 뻗어 고등어 대가리를 들고 있던 손으로 유민이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 으억! 그거는 쪼끔 그러치!
“움...? 모가?”
기겁하는 유민이. 그러나 윤슬이는 이래 봬도 식당에서 오래 일을 했다. 이런 비위 관념 쪽엔 덜 섬세한 편인지라 유민이의 반응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단 듯이 어깨만 으쓱인다.
그 모습이 마냥 귀여운지 미정 선생님은 혼자서 쿡쿡거리며 웃으신다.
- 유치원에서도 저렇게 어울리면 좋을 텐데.
그런 바람을 작게 중얼거리는 것은 오직 나만 들은 것 같다.
결국 고등어 손질을 끝까지 도와준 유민이와 윤슬이는 지쳐버렸다. 발코니 쪽 테이블, 고영희씨가 반쯤 퍼질러져 있는 곳에 같이 엎어져 휴식을 만끽하는 중이다.
고영희씨는 자신을 쓰다듬어주진 않을까, 기대하는 눈치로 유민이와 윤슬이를 흘끔대고 있다.
- 윤슬이...
“움?”
- 이거 말고는 업써?
“이거 말구?”
- 응... 식땅 일은, 너무 힘들어. 냄새두 나구. 또 무서워.
“그래두 유미니 잘해써. 디게 디게 잘해써.”
동생은 유민이를 달래려는 듯이 어깨에 머리를 기대어 거리를 좁힌다. 그리고는 껌뻑껌뻑 눈을 마주쳐준다. 윤슬이는 친분의 표시로 저렇게 머리를 맞대는 행동을 곧잘 한다.
- 내가 생각해바써.
“모를?”
- 나는 맨날 식땅에는 올 쑤가 없자나.
“그거눈 맞찌.”
- 그럼 나중에는 어뜨케 해? 만약에 용기를 내야 하는데. 주혀니 형아랑 윤슬이네 식땅에 올 쑤가 업써서. 용기 내기가 어려우면 어뜨케 해.
용기를 낼 수 있는 것은 식당 안에서뿐.
혹은 윤슬이 앞에서뿐.
유민이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
무언가 다른 방법을 원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 유민이의 고민을 해결해주고 싶은 윤슬이는 팔짱을 끼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고민한다.
움-
움-
움...
낮은 신음이 몇 번이고 길게 늘어졌을 때쯤.
“움! 그거당.”
윤슬이는 해답을 찾았다는 듯이 책상을 두 손으로 강하게 두들긴다. 그 진동에 꾸벅거리며 졸던 영희씨는 등을 움찔거리며 정신을 차리고 말았다.
- 몬가 생각해써?
“웅! 방법이 이써.”
- 뭔데?
“소즁한 사람을 생각캐! 세상에서 젤루 제일루 소즁하구 중요한 사람!”
그 말을 듣고 유민이는
- 소중한 사람?
미정 선생님을 쳐다본다.
그런 아들내미가 사랑스러웠는지 선생님은 유민이를 번쩍 들어올려 볼에 마구마구 뽀뽀를 해주신다.
- 으응~ 우리 사랑스럽구 이쁜 아들. 엄마두 우리 아들이 많이많이 소중해.
- 으악! 엄마... 윤슬이랑 주혀니 형아가 다 보자나. 이제는 그만!
입술이 살결에 부딪히는 쪽쪽 소리는 꽤 오랜 시간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