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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굴러들어옴-146화 (146/200)

146화: 이젠 용기를 내고 싶어(3)

유민이가 한층 쑥쓰러움을 누그러뜨린 다음에야 나머지 장사 준비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음식의 밑준비는 거의 끝이 났고, 유민이와 윤슬이에겐 새로운 미션이 주어졌다.

“윤슬이, 이제 손님들 맞아줘야지?”

“그렇타.”

“오늘은 유민이가 도와줄 거니까 같이 하면 되겠네?”

“그렇타!”

요즘 부쩍 ‘그렇다’라는 말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기분탓일까. ‘움’과 더불어 입에 붙은 것 같다.

손님들한테 저렇게 말하면 안 될 텐데 싶기도 하고, 어차피 대부분이 자주 오시는 분들이니까 그냥 그러려니 넘어가실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하나 확실한 건 입에 붙은 말버릇 축에선 상당히 귀여운 편이다.

- 아들, 손님들 친절하게 잘 맞아드려야 해. 윤슬이가 잘 알려줄 거야. 그렇지?

“그렇타! 윤스리만 미더여.”

5세는 자기 가슴팍을 팡팡! 두들기고는 어눌한 말투를 최대한 멋스럽게 꾸미며 유민이한테 접객 강의를 시작한다.

뭔가 주절거리면서 장황하게 말하고 있긴 한데, 거리가 멀어서 잘 들리진 않는다.

허나 한 가지 확실한데 5세의 텐션은 거의 Max 상태다.

지붕을 뚫을 기세로 치솟고 있는 광대와 턱이 이를 증명한다.

“아주 신이 나셨구만.”

생선 구이를 위해 세팅하던 도중, 몇 마디가 간간이 들려온다.

“유미니 있짜나, 우리 식당에서눈 손님이 갈 때 안녕히 가시라구 하므는 안대.”

- 엥? 그럼 모라구 그래?

“또 오시라구 그래이지 대.”

- 또 오시라구?

“웅, 그래야지 손님들이 다시 오기가 편하다구 옵바가 그래써. 그래서 그러케 하기루 정해써. 디게 옛날에.”

- 그렇쿠나.

정말 가게가 초창기일 때 정했던 규칙이었던 것 같은데, 윤슬이는 아직도 그걸 기억하고 있다.

그런 세세한 사항까지 유민이에게 알려주는 걸 보면 접객 강의는 확실하게 해주는 것 같다.

역시 홀의 에이스답다(라고 하기엔 사실 홀 직원이 없다).

- 오늘은 내가 서빙하는 거 도와줄게, 주현아.

“그러실 필요까진 없어요. 어차피 제가 서빙 나가도 별 문제 없어서요.”

- 맨날 그렇게 하면 안 힘드니? 으휴, 우리 아들 하루 훈련시켜준 비용이라고 생각해. 이럴 때 스승 부려먹지, 언제 부려먹겠니? 기회는 올 때 잡아라.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면 거절하기도 민망했다.

“그럼 부탁 좀 드릴게요.”

- 오냐.

오늘 저녁 장사는 조금이나마 편하게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 가게의 문패를 [open]으로 돌려놓기 전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장사 중 유민이의 영향은 적지 않았다.

지금껏 그랬듯이 우리 가게로 오시는 분들은 대부분 인근 주민들이다.

또, 한 번 오시면 다시 들러주시는 손님들이 많은데 그 덕에 우리 윤슬이뿐만 아니라 유민이나 시후까지 기억해주시는 분들이 더러 계신다.

- 오늘은 가게 마스코트가 두 명이네?

- 유민이가 윤슬이 도와주기로 했구나? 꼬마 커플 너무 귀엽다!

그래서 그런지 윤슬이와 유민이가

““어서오세여!””

하고 반갑게 맞아드리는 손님들은 한결 같이 웃음을 머금으며 식당으로 들어오셨다.

특히 윤슬이의 신입 마스코트를 영업하는 실력이 발군이었다.

기존 메뉴인 제육과 가지 튀김을 시키는 손님들도 계셨지만, 제철 고등어가 눈길을 끌었고.

집에선 냄새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하는 생선 구이를 주문하시는 손님이 적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중년의 아저씨 손님들이 많이 주문해주셨는데.

“아저씨 그거 유미니랑 윤스리가 옵바 도와조서 만들어써. 맛이 좋지?”

- 으응? 우리 꼬맹이들이 사장님 도와서 요리를 했다는 말이야?

“웅, 유미니가 열씨미 해써. 생서니 짜르므는 징그러운데두 용기 내서 열씨미 해써. 칭찬해조이지 대.”

- 아주 칭찬을 해줘야겠네. 생선 손질하는 일이 보통이 아닐 텐데! 그걸 도와줬다는 말이지?

손님들은 너무나도 만족스러운 얼굴로 유민이와 윤슬이의 머리를 차례로 쓰다듬어주셨다.

윤슬이는 이런 환경에 익숙해진 터라 새침하고도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있었으나.

유민이의 경우 그렇지 않았다.

손님들의 관심과 사랑이 멋쩍은지 몸을 배배 꼬거나 홀과 주방을 오가는 미정 선생님을 쳐다보거나.

아니면 윤슬이 뒤에 숨으려고 했다.

“그러문 안대.”

그러나 윤슬이는 유민이가 자신의 뒤에 숨으려고 하자 이를 막으며 오히려 앞에 내세웠다.

- 안돼?

“그렇타. 왜냐믄 손님들 놀아조이지대. 그래야지 손님들두 음식 나올 때까지 안 심심하구. 요리 나오므는 더 마싯게 머근다구 옵바가 그래써.”

여전히 손님들을 놀아준다고 생각하는 5세.

역시나 한결 같다.

그리고 그 말을 듣고 유민이도 느낀 바가 있었던 모양이다.

우리 가게에 도움이 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윤슬이에게 조금이라도 발전한,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없지만 유민이는 윤슬이에게 한 소리를 듣더니 손님들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하기 시작했다.

고등어 구이를 드시는 손님들한테 가서 말이다.

- 이거... 윤스리랑 저랑 같이 주혀니 형아 도와조써여.

일일이.

- 이거 지느러미... 손질하는 거 도와줘써여. 주혀니 형아가 하는 거.

이렇게.

- 먹기 안 불편하지여? 까시는 없지여?

약간 생색을 낸달까.

아니면 자기 나름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해본달까.

손님들께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거는 모습이 굉장히 보기 좋았다.

여섯 살 아이가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걸어주면 대부분의 손님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신다.

- 그래? 우리 유민이랑 윤슬이 덕분에 언니가 편하게 고등어 먹을 수 있게 된 거네. 너무 너무 고마워. 잘 먹을게!

이런 흐름이 몇 번이고 이어진 덕분에 오늘의 저녁 장사는 굉장히 훈훈한 흐름이었다.

윤슬이와 유민이의 합동 고등어 구이 먹방 덕분에 장사가 잘 된 것은 덤이요.

미정 선생님이 서빙을 도와주신 덕분에 나와 고영희씨의 손이 상대적으로 비어 평소보다 피로감 덜하게끔 수월히 장사를 마쳤다.

“후우... 오늘 장사는 꽤 할만했는데?”

- .... 야, 주현아.

“네?”

- 이거 장난 아니다. 막 허리도 아프구. 정신 없구. 이런 걸 어떻게 매일 하니?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거죠.”

- 난 못하겠다, 이런 일은. 적성에 안 맞는 거 같아. 나름 체력에는 자신이 있는데 말야.

미정 선생님은 바 테이블 쪽에 흐트러진 자세로 엎어져 계신다. 허리가 아프신지 한 손을 등 뒤로 돌려 퍽- 퍽- 소리가 나도록 두들긴다.

그런 엄마가 신경쓰였는지 유민이는 자기가 나서서 선생님 허리를 두드려준다.

미정 쌤은 나름 체육 담당 교사이신지라 체력에는 자신이 있는 편이실 거다. 하지만 장사 중에 서빙을 하는 일은 운동으로 기른 체력과는 완전히 별개다.

손님들을 상대로 대화도 이어나가야 하고, 접시를 쟁반에서 내릴 때마다 허리를 굽혀야 하니까 말이다. 평소에 잘 사용하지 않던 관절이나 기립근에 긴장감을 주게 된다.

- 엄마... 내가 두들겨주께.

“선샌님, 윤스리두 해주께.”

콩콩콩콩-

콩콩콩콩-

- 아아... 그래, 거기... 거기! 좋아. 그래, 거기야. 후우, 꽤 시원한데? 안마 야무지다?

정말로 5세와 6세의 안마가 야무진 건지.

아니면 그저 비주얼 덩어리인 꼬맹이들에게 안마를 받아서 사심을 충족 중인 건지 헷갈렸다.

한참 안마를 받으시던 미정 선생님은 그나마 상태가 나아졌는지 쭈욱 기지개를 켜며 화장실로 들어가셨다.

그렇게 홀엔 저 멀리서 자기 할 일을 마치고 엎어져있는 고영희씨와 꼬맹이 두 명, 그리고 나만이 남아있다.

“유미니, 있짜나. 궁금한 거가 있따.”

- 모가 궁금한데?

“왜 용기를 내구 시퍼써?”

- 응? 용기 내구 시펐던 이유?

“웅. 넘무 갑자기 그랬짜나.”

윤슬이는 아직 유민이가 왜 변하기로 마음 먹었는지에 대해선 알지 못한다.

조금 복잡한 배경이 있긴 하다. 그것까진 알고 있는데, 확실히 유민이는 스스로 ‘용기를 내고 싶다.’라고 했던 것 같다. 유치원에서 잘 적응하기 위해 바뀌려고 했던 게 아니던가.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이랑 친해지는 방법을 배운다던지, 그런 식으로 바뀌려 했을 텐데.

용기를 내고 싶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경 쓰인다.

- 엄마를 지켜주구 시퍼.

“선샌님?”

- 응. 저번에 엄마가 나 때문에 슬퍼보여써. 근데 나는 엄마가 나 때문에 슬픈 거는 제일루 싫어.

유민이가 어깨를 늘어뜨리며 이야기하자 윤슬이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양쪽 어깨를 부여잡고 얼굴을 마주본다.

“그런 거눈 절때루 아니야! 왜냐믄 선샌님은 유미니 덕뿐에 행복하다구 아까두 그래써. 젤루 사랑한다구 말두 해써. 그니까는 유미니 때문에 슬픈 거 절때루 아니야.”

- 정말루?

“웅! 윤스리는 그짓말 아주아주 가끔 빼구 안 해. 지금은 진짜루 말하는 거야.”

- 그럼 다행이다...

윤슬이가 설득을 성공한 모양이다. 누구보다 친구를 위할 줄 아는 우리 동생이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유미니는 유미니대루 맨날 똑같이 있어두 윤스리 부하야. 그니깐 안 변해두 갠짜나.”

그런 윤슬이의 말을 듣던 유민이는 밝게 웃으며, 윤슬이가 어깨에 올려놓은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개었다.

그런 5세와 6세의 몽글몽글한 분위기를 묵묵히 보고 있는 나.

“평소 같았으면 분노했겠지만.”

오늘만큼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이윽고 미정 선생님이 화장실에서 나오시고, 미정 유민 모자는 집으로 귀가했다.

가게 뒷정리도 거의 완료된 상황이었고, 미정 선생님은 내일 출근하셔야 했기에 먼저 보내드렸던 것이다.

- 우리 윤슬 선배가 가끔은 다섯 살답지 않게 너무 멋있게 말을 한다는 말이야?

보는 눈이 없자 고양이로 돌아온 시온이 윤슬이의 볼을 그루밍하듯 여러 번 핥았다.

“당연하거둔! 왜냐믄 윤스리는 보쓰니깐.”

만약 윤슬이가 전생에 장군이었다거나, 어느 집단의 리더였다면 분명 마음 따듯하고 카리스마가 있어 모두에게 추앙받는 존재였을 것이다.

지금의 윤슬이 비주얼에 그런 장면들을 입혀 상상해보니 웃음이 났다.

“정말, 다섯 살인데도 가끔 어른들보다 훨씬 더 어른 같단 말이야.”

5세의 귀엔 들리지 않도록 작게 중얼거렸다.

**

“아들.”

“으응?”

“엄마가 슬퍼보여서 걱정됐어?”

“아악... 엄마가 다 들어버려써.”

김미정은 사실 화장실에서 그 대화를 전부 듣고 있었다.

원래부터 들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지만 워낙 윤슬이의 목소리가 낭랑한 탓에 귀에 꽂히고 만 것이다.

그리고 아들의 속마음 직접 그 여린 목소리로 듣자 마음이 썩 좋지 못했다.

“우리 아들은 엄마 걱정 안 해도 괜찮은데.”

“걱정이 대는데 어떻게 안 해?”

“그건 맞는 말이네.”

김미정은 누구보다 소중하고, 소중한 자기 아들을 번쩍 들어올려 안았다.

오누이 식당의 서빙을 도와준 터라 몸에 약간의 피로감은 남아있었다. 그러나 아들을 힘껏 안아주고 싶은 감정이었다.

“그럼 우리 아들 걱정 안 하게 엄마가 매일매일 말해줘야겠네?”

“모라구?”

“엄마는 아들이 있어서 매일매일이 행복하고, 힘든 일이 있어서 버틸 수 있다구. 고맙다구.”

“웅... 나두.”

“유민이두?”

“엄마가 있으니깐 행복해.”

그런 말을 하고 유민이는 쑥쓰러웠는지 엄마의 품에 고개를 묻어버린다. 오누이 식당에서 징그러운 고등어 지느러미를 모으는 훈련까지 했는데도 천성은 좀처럼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성격이야 말로, 자신의 아들이 가진 매력이라고 믿는 김미정은 사실 아들만 행복하다면 이대로 영영 변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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