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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굴러들어옴-157화 (157/200)

157화: 차차웅(4)

윤슬이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아니라고 하고 싶지 않았다.

확실히 윤슬이 말대로였다.

그 나이대 어린 아이에게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칠지 나도 알고 있었다.

윤슬이나 나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우우...! 간드앗.”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해.”

“그렇타!”

그래서 남의 집 사정이지만, 조금 참견해보기로 했다.

차차웅씨의 점집에 가서, 윤슬이한테 빌려줬던 물건들도 돌려드릴 겸.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을 물어봐야겠다.

아침밥만 간단히 차려 영희씨와 식사를 하고는, 일찍이 출발했다.

거의 평소에 출근하는 시간과 비슷한 수준.

겨울 날씨가 점점 심해지는 탓에 바닥이 얼어있었다.

“우후이~!”

“어허... 위험하다니깐.”

“갠짜나!”

넘어질까 걱정하는 내 앞에서 보란 듯이 스케이팅을 시전하는 5세. 그런데 생각보다 중심을 잘 잡는다.

얼음이 꽁꽁 얼어있는 바닥 위에서 뱅글뱅글 돌고 있다.

“나중에 피겨를 시켜야 되나.”

이런 생각을 들게 할 정도다. 동생은 여러 방면에 재능이 있는 거 같다. 그림 등의 창작만 빼면.

뱅글뱅글-

뱅글뱅글-

제자리에서 돌다가, 무언가 안 좋은 기억을 떠올렸단 듯이 어깨를 흠칫 떤다.

그리고 불만스럽게 나를 쳐다본다.

“패션쑈한 거 아니거둔.”

“아무도 그렇게 생각 안 했어.”

성래 시장에서 수치플레이 당했던 기억이 떠오른 것 같다. 유감이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기다리던 번호의 버스가 와서 윤슬이를 데리고 탔다.

영희씨는 귀찮다며 집을 보기로 했기 때문에 우리 둘만이 점집에 가는 상황이다.

러시 아워를 막 지난 상태였기에 자리가 한두 개 정도 남아서, 윤슬이를 무릎에 앉히고 탔다.

“옵바.”

“응? 왜 그래.”

“근데 유미니가 있짜나. 조아할까?”

“유민이가 걱정돼?”

“웅... 왜냐믄 유미니한테 허락 안 받아써. 그래두 맘때루 이러케 하므는 유미니가 별루 안 조아할 수도 이써. 선샌님두 혹씨 안 조아하믄 어뜨케 해.”

이미 버스에 탔는데, 문득 걱정이 됐나보다.

가만가만 머리를 쓰담아주었다.

“이미 충분히 대견해.”

“움?”

“만약 유민이가 안 좋아하면... 글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윤스리두 몰룬다.”

잠시 정적.

방금 샴푸를 마치고, 뽀송해진 5세의 머리카락 냄새를 맡으며 생각에 잠긴다.

답은 하나뿐이었다.

“만약 유민이가 안 그랬어도 됐다고 그러면. 그래서 유민이가 화가 나고, 선생님이 화가 나면. 그럼 오빠가 같이 혼나줄게. 우리 윤슬이랑.”

“옵바랑 가치 혼나?”

“응, 유민이가 화내는 거랑 선생님이 화내는 거. 둘 다 오빠랑 같이 혼나자. 그럼 그래도 덜 무섭잖아.”

“움... 그렇타!”

윤슬이는 납득했는지.

아니면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내 무릎에서 뱅글 돌아 가슴팍에 코를 묻는다.

그리고 킁킁- 거린다.

냄새 맡는 건 우리 남매가 서로에게 옮은 버릇인 것 같다.

**

버스가 멈추고.

발길을 옮기고.

차차웅씨가 운영하는 점집에 도착하기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움? 옵바 이거 바바.”

5세는 가게에 도착하자마자 신기하단 듯이 두리번거린다. 그리곤 가게 간판을 가리켰다.

“디게 망가져써.”

간판이 망가졌다기보다는 오래된 탓에 닳고 해진 것이다. 또, 점집이 위치한 건물도 꽤나 오래된 상가인 탓에 아이들이 보면 ‘망가졌다’라고 표현할만도 했다.

윤슬이가 실언을 추가하기 전에 빠르게 점집 안쪽으로 들어왔다.

- 생각보다 빨리 오셨군요.

“짜짜웅 아저씨!”

- 그래, 윤슬이.

차차웅씨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점집의 중앙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손으로 본인의 앞쪽을 가리킨다.

- 둘 다 앉으시죠.

우리는 점집 주인이 시키는대로 나란히 앉았다.

본인의 홈그라운드인 탓일까.

오누이 식당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여유 있어보였다.

윤슬이가 건네어준 낡은 잡동사니들을 다시 되돌려받고는 뒤쪽 서랍에 정리해두는 차웅씨.

확실히 배경이 점집이다보니 무속인으로서의 분위기가 살아나는 것 같다.

- 제가 두 사람을 가게로 부른 것은 다름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면 부르신 건 아닌 거 같은데.”

-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죠. 아무튼 이곳까지 찾아오셨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그거눈 불렀따구 안 그러거둔여. 윤스리두 그건 알어.”

5세가 나름의 논리로 밀어붙였지만.

차웅씨는 여유로운 웃음으로 받아넘겼다.

- 감사 인사를 하고 싶었습니다.

“감사... 요?”

- 네, 감사 인사.

“윤스리눈 짜짜웅 아저씨한테 받은 거밖에눈 없눈데. 왜 고맙따구 그러지?”

5세는 아주 잠깐 고민하다가 차차웅씨의 계획을 깨달은 모양이다.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지며 내 팔을 끌고 가게 밖으로 피신하려고 한다.

“왜, 왜 그래. 또?”

“윤스리 알아내써. 짜짜웅 아저씨가 왜 저러눈 건지.”

“왜인데?”

“옵바 요리가 넘무 맛이 이써서 그래!”

“.... 응?”

“옵바 요리가 넘무 맛이 이써서, 옵바를 여기따가 가둘라구 그러눈 거야. 맨날 요리 시킬라구.”

“그럼 왜 윤슬이까지 데리고 왔을까?”

“그거눈 당연하지. 옵바눈 윤스리가 업쓰믄 못 사니까는.”

“...!”

그런 이유였단 말인가. 확실히 말이 된다.

위기감을 느끼고, 차웅씨 쪽을 바라봤더니.

압도적으로 정색하고 계신다.

아무래도 5세의 눈부신 추리가 틀린 것 같다.

무속인이 저리도 정색하는 경험이 처음인 나는 다소 위축되어 윤슬이를 제자리에 되돌려놓고.

나도 그 옆에 다시 앉았다.

너무 남의 가게에서 소란을 피운 거 같아서 죄송한 나머지 이번엔 조금 공손해졌다.

- 흐흐. 재밌네요.

화가 나신 줄 알았는데, 웃기 시작했다.

- 그런 무시무시한 이유로 두 사람을 부른 것은 아닙니다. 그냥 제 아들... 유민이 때문에. 감사하는 마음이 이전부터 들었습니다.

미정 쌤의 말대로 유민이의 친아버지는 차차웅씨가 맞는 것 같다.

- 별로 놀라지를 않으시는군요?

“왜냐믄 윤스리눈 다 알구 이써!”

“아... 그게.”

- 두 사람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느냐, 몰랐느냐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죠.

설명하기엔 약간 복잡했는데, 그냥 넘어가주신다.

다행이다.

- 사실 유민이는 그렇게 밝은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반 년 전까지만해도 그렇죠. 아마도 두 사람을 만나서, 좋은 경험을 많이 했기 때문에 바뀔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의 아버지로서 감사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차웅씨는 고개를 서서히 숙이며 우리에게 감사를 전하신다. 받기만 하긴 애매해서, 나도 고개를 따라 숙이고 윤슬이 머리도 지긋이 눌렀다.

고개를 다시 들어올리니, 차웅씨는 종이에 붉은 펜으로 무언가를 적고 계셨다.

다 적으시고는 내게 건네주셔서, 받아들었다.

“이건?”

- 제가 드릴 수 있는 건 적습니다. 보다시피 그렇게 큰 점집도 아니고. 자산도 넉넉한 편은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드릴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를 보인 셈입니다.

“.... 감사합니다.”

솔직히 이런 부적이 효능이 있다고 믿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누이를 만나고는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이런 것도 어딘가 쓸 데가 있을지도 모른다. 우선 갖고 다니기로 했다.

“움! 옵바, 그거 디게 멋있따.”

“그래? 근데 찢어질 수도 있으니까 함부로 만지는 건 안된다.”

“알겠쏘.”

- 점괘도 조금 봐드릴 수 있습니다만. 점집인만큼 오히려 그쪽이 더 자신 있는 편입니다.

“옵바, 점개가 모야?”

윤슬이는 점괘란 단어는 처음 들어봤나보다.

웬 요상한 단어는 다 알고 있는 탓에 윤슬이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그건 알면서 이건 모른단 말이야?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미래를 봐주시는 거야.”

“미래?”

“응, 예를 들면...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난다던가? 5년 뒤에 누굴 만난다던가?”

“오오! 그거눈 음청 대단한 거자나! 짜짜웅 아저씨 모야!”

5세가 선망의 눈동자로 바라보자.

황급히 시선을 회피하는 차웅씨.

- 그 정도까진 못합니다.

“잉? 모야, 그러문 별루다.”

- 아, 아앗...

차차웅씨.

상처를 받으신 것 같다.

급격히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니야, 윤슬아. 그래도 대단한 거라니까. 한 번 믿고 점괘 봐달라고 말씀드리자.”

“움... 옵바가 그렇다구 하니까눈.”

윤슬이는 콧방구를 뀌더니 팔짱을 꼈다.

어디 한 번 해볼 테면 해보라는 태도다.

그 태도는 차웅씨를 크게 도발한 모양이다.

어느 때보다 진지해보인다.

- 두 사람은 남매니까, 연애운이나 재물운 같은 것보단 건강운으로 봐드리겠습니다.

“건강... 이면 제 쪽인가요?”

- 네, 그렇습니다. 윤슬이는 아직 아이니까.

차웅씨는 앞에 펼쳐져 있는 앉은뱅이 책상 위, 흰 종이를 올려두고 펜으로 무언가를 적으신다.

어떤 기준이 있는 글과 그림들이 교차하더니 차웅씨가 희죽- 하고 웃는다.

- 주현씨 크게 아픈 적이 있습니까?

“크게...? 엄청 어렸을 때 한 번이요.”

- 그런 것 같더군요.

이건 윤슬이한테도 아직 직접적으로는 얘기한 적 없는 사실인데, 어떻게 알았을까.

무속인들한테 용하단 말을 쓰는 게 이런 상황일 것이다.

- 이게 조금 모호한 구석이 있습니다. 다시 많이 아파질 수도, 아니면 어떻게든 구사일생하여 병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도 있습니다만.

“병이 재발할 수도 있다는 말인가요?”

- 경우에 따라서 다릅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보입니다, 현재로서는.

그러자 옆에서 잠자코 앉아있던 5세가 벌떡 일어나서는 내 뒤로 달려와 와락 껴안는다.

그리곤 차웅씨에게 소리친다.

“옵바눈 윤스리가 지키니깐 절때루 안 아프거둔여! 저번에 윤스리가 약쏜해조서 나은 적두 이써. 그니깐 옵바눈 갠짜나.”

“윤슬아... 쉬이. 진정해.”

“흥!”

내가 아플 수도 있다고 차웅씨가 말씀하시는 게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이다. 일단 무릎에 앉혀서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정시켜본다.

그런 5세의 마음을 차웅씨도 이해하는지 웃으며 넘어가신다.

- 그런데 윤슬이 말이 맞습니다.

“네?”

- 윤슬이 말이 맞아요. 주현씨가 병에 걸리는 미래도 있지만. 반대로 평생토록 건강한 미래도 있죠. 이 세상은 한 가지 미래로 귀결되진 않습니다.

잠시 숨을 고르고.

마치 도사처럼 보이기 시작한 차웅씨가 다시 입을 열었다.

- 윤슬이랑 함께 있으면, 아주 오랫동안 삶을 유지할 거 같군요. 건강하게요. 그러니까 동생이랑은 최대한 오래. 꼭 붙어있는 게 좋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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