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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굴러들어옴-158화 (158/200)

158화: 차차웅(5)

“그럼요. 제가 윤슬이랑 떨어질 일이 뭐가 있겠어요.”

“그렇타!!”

평소보다 ‘그렇타’를 외치는 소리가 조금 더 크다.

그만큼 강조 중이다.

그런 윤슬이가 귀여운지 차웅씨는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 건강운은 이 정도로 된 것 같습니다. 또 알고 싶은 게 있을까요?

“또 알구 시픈 거! 윤스리!”

5세가 번쩍 손을 들었다.

- 응? 윤슬이가 궁금한 게 있나?

“웅... 이써.”

윤슬이가 먼저 말을 꺼내기에는 긴장되었는지 나한테 꼭 붙더니 손을 붙잡는다. 그 손 위에 내 손을 덮어서 용기를 불어넣어주었다.

윤슬이가 진정한 듯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말을 잇는다.

“있짜나여. 왜 짜짜웅 아저씨는 유미니랑 가치 안 이써조?”

- 유민이랑?

“웅. 유미니눈 아빠랑 엄마가 다 이써. 짜짜웅 아저씨눈 멀리 있찌만. 그래두 볼 쑤가 이써. 근데 윤스리 엄마랑 압빠는 어디루 가버려서 만나지를 못해.”

- ....

윤슬이는 필사적이다.

필사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려고 하고 있다.

말투가 다소 어눌하고.

문장이 정돈되지 않았지만, 나이를 조금이라도 먹은 어른이라면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이 아이의 감정을.

“그니깐 윤스리눈 알어. 볼 쑤가 있는데. 못 보믄 엄청 슬퍼! 함모니랑두 가끔 보구 싶지만 못 볼 땐 슬프구. 유미니랑 시후 보구 시플 때 못 보면 서운해.

옵바가 요리하느라 윤스리한테 관심 안 주믄 서운하구. 영히씨눈 쪼끔 더 윤스리랑 부비적거리면서 놀아주는 게 더 조아!

근데. 유미니는 한 번두 그런 말한 적 업써.”

- ... 말한 적이 없다고?

“유미니는 윤스리랑 아주 친해! 아주아주 친해서 윤스리한테는 자기 얘기 마니마니 해조. 근데 유미니는 한 번두 그랬던 적 업써. 짜짜웅 아저씨 보구 십다구 한 적 업써.”

- .... 그건 적응을 잘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차웅씨의 말이 끝나자 윤슬이는 아주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인상을 팍 찌푸린다.

“바부! 멍충이! 바부! 바부!!”

윤슬이는 달려나가서 차차웅씨의 가슴팍을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퍽- 퍽-

“... 윤슬아. 그만.”

화가 난 윤슬이를 끌어안고 제자리로 돌아왔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윤슬이는 분이 차는지 자꾸 차웅씨 쪽으로 달려가려고 했다.

“유미니는 참구 이써. 그건 당연한 거야! 그것두 모르믄 바부야! 짜짜웅 바부! 바부!!”

- 참고 있다...

“유미니눈 짜웅 아저씨두 조아. 그리구 미정 선샌님두 조아. 근데 미정 선샌님만 가치 이써조. 그래두 아무 말두 안 해써. 서운하다구 안 해써. 슬프다구 안 해써. 울지두 않아써. 그니깐 참구 있는 거야! 우리 옵바믄 바루 알아조써. 근데 짜짜웅은 그것뚜 몰라. 바부 멍충이야!”

윤슬이의 말이 맞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고개를 숙였다.

어떤 사정이 있는지, 우린 유민이네 가족 이야기를 전부 듣진 못했으니까.

다만 유민이의 쓸쓸함과 서운함, 그리고 숨기고 있는 슬픔에 대해서.

윤슬이가 여과 없이 토로해준 것 같아서.

쓸쓸함을 삼키고 웃을 수 있었다.

- 고개를 드세요. 윤슬이 말이 맞습니다. .... 예전부터 생각했습니다만, 저는 못난 아빠죠.

차웅씨는 허탈하게 웃으며 자기 가슴팍을 매만진다.

윤슬이가 때린 곳이었다.

아프진 않았을 것이다.

장난이라도 몇 번이나 맞아본, 내가 제일 잘 안다.

그럼에도 저렇게 가슴을 만지는 이유는, 아마 가슴의 겉부분보다 더 깊숙한 곳에.

더 큰 충격이 닿았기 때문이겠지.

- 아이가 행복하지 못하다면 그건 반드시 부모의 잘못입니다. 백이면 백, 그렇죠. 유민이의 곁에서, 가까운 곳에서 지켜봐줄 수 없어서 저보다 두 사람이 더 잘 알겠지만. 유민이가 힘들어했다면 그건 저 때문일 겁니다. 미정이는 자기 책임을 다 하고 있으니까요.

“.... 차웅씨는 유민이를 만나고 있지 않으신 건가요?”

- 네, 한심하게도 그런 상태입니다.

“어째서죠?”

- 그건...

“윤슬이 말이 맞아요. 유민이는 차웅 아저씨를 보고 싶어하고 있어요. 저한테는 직접적으로 말해준 적은 없지만. 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저번에 유민이네 집에 들렀던 적이 있어요.”

- 윤슬이나, 주현씨나 유민이와 사이가 좋으신가 봅니다. 다행이네요.

“미정 선생님과도 꽤 오래 전부터 아는 사이거든요. 그때 윤슬이랑 함께 작은 이벤트를 진행했는데.

유민이네 집에 찾아가서, 유민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상자에 담아 오래 간직하게끔 도와주는 일이었어요.”

- 그건 의미가 깊군요.

“그때 유민이는 자기 물건들을 가장 적게 넣은 아이였어요. 윤슬이나, 윤슬이 친구 시후는 자기가 소중하게 여기고, 중요하다고 느끼는 것들을 많이 넣었지만. 유민이는 그렇지 않았어요.”

- ....

“하지만 그때 유민이가 확실하게 한 가지 챙기고 싶어하던 게 있어요.”

- 뭐였습니까?

“염주였습니다. 팔에 차는 팔찌.”

- ...!

차차웅씨가 양 어깨를 떤다.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건, 차웅씨가 유민이한테 준 게 아닌가요?”

- ....

염주.

그 물건과 차웅씨가 운영하는 점집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 정확히는 모른다.

차웅씨는 무속인이었기에 대중 잡아 찍어본 것이다. 염주라면 불교 관련일지도 몰랐지만.

그나마 차웅씨에게 받았을 가능성이 커보였다.

- 유민아...

차웅씨는 붉어진 눈시울을 훔치며.

헛기침을 두어번 하신다.

목이 메는지 물도 한 잔 마시며 마음을 진정시키고서야 말씀을 잇는다.

- 두 사람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유민이랑 깊은 관계인 거 같군요.

“유미니눈 윤스리 오른팔이니깐 당연해!”

- 흐흐... 오른팔. 그래. 미안하지만 아저씨 얘기를 좀 들어줄래? 왜 아저씨가 유민이랑 만나지 않고 있었는지, 얘기해줄게.

여기까지 와서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

차차웅은 대대로 내려온 무속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고로 그의 운명과 체질은 이미 정해져있었다.

“차웅아, 넌 이 집안의 독자다. 무언가 뜻하는 바가 없다면 가업을 잇는 것이 좋겠구나.”

“네, 할머니.”

그의 조부모를 필두로 차차웅에게 가업을 이어 무당이 될 것을 권고했다.

체질도 이에 맞았기에 더욱이 그랬다.

차차웅은 이를 거절할 생각은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가업을 잇는 것을 당연시 했기에 세상 물정을 익혀갈 때쯤엔 다른 직업을 갖는 것에 대한 가능성을 아예 배제했다.

허나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야! 차차웅, 쟤는 유령이 보인대.”

“유령?”

“재네 집안 무당 집안이래. 그래서잖아! 차차웅 맨날 수업 시간에 하늘 멍하니 쳐다보는 거.”

“설마...”

“그래! 쟤 날아다니는 유령 보고 있는 거라니까.”

학창시절의 일이다.

차차웅에 대하여 이런 소문이 흘렀다.

그가 속한 집단에서는 늘상 그랬다.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하지만 차차웅은 이에 대해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사실인데 뭐 어떤가.’

그들의 가십질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차차웅은 때로 유령을 보았다.

이 세상엔 인간만큼이나 유령이 많다.

대부분의 인간들의 눈엔 보이지 않지만, 차차웅과 집안 사람들에겐 다른 얘기였다.

그래서 더욱이 차차웅은 자신의 장래에 대해 스스로 못 박았던 것이다.

타인에게 보이지 않는 유령이 자신에게 보인다면, 이는 마땅히 운명이라고.

“너네 목소리 너무 커서 차차웅한테 다 들리겠다. 작게 좀 말해. 뒷담 까면서 뭘 그렇게 당당하냐?”

헌데 어느 순간 김미정이라는 이름의 여자가 유령의 존재보다 더욱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동급생, 심지어 같은 반 학생이었던 그녀는 자신의 의견을 그대로 말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도와줘서 고맙다.”

“응? 별 거 아냐. 내가 멋대로 그런 건데 뭐.”

“그건 틀린 말은 아니지. 내가 도와달라고 직접 부탁한 적은 없으니.”

“그렇지?”

“근데 그럼 굳이 왜 저 아이들에게 밉보이면서까지 한 소리 한 거냐?”

김미정과 차차웅은 이때까지 아무런 사이도 아니었다.

오히려 방금 차차웅에 대해 멋대로 떠들던 아이들과 김미정은 몇 번인가 대화를 나누었다.

굳이 따지면 저들의 편을 들어야 마땅하다, 라고 차차웅은 생각했다.

“그냥. 너가 잘 생겨서.”

“...?”

김미정은 어려서부터 이런 성격이었다.

잘 생기고, 이쁜 것을 지극히 선호하는 인간.

그리고 차차웅은 단정하지 못하고 흐트러졌다. 창백했다. 하지만 분명히 미남이었다.

오히려 그런 비주얼이 김미정의 마음을 자극하기도 했다.

“차차웅! 뭐하냐?”

“차차웅, 어디가?”

“차차웅!”

그 뒤로 김미정은 가까워질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차차웅을 따라다녔다.

잘 생겨서 그랬다.

하지만 차차웅은 그런 김미정을 밀어냈다.

그때까지 차차웅은 친구다운 친구가 하나도 없었는데, 체질 때문이었다.

유령을 보는 사람은 특유의 음기 탓에 그 주위로 좋지 않은 것들이 모여든다.

즉, 차차웅의 주변에 있으면 좋지 못한 꼴을 볼 수 있었다. 과학적으로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적어도 차차웅은 그렇게 굳게 믿었다.

무속인 집안이니 말이다.

“내 옆에 있으면 안 좋은 일이 일어날 텐데. 계속 그렇게 쫓아다니는 건 별로 현명한 선택이 아니야.”

“응? 예를 들어 어떤 안 좋은 일이 생기는데?”

“.... 유령이 네 어깨에 붙을 수도 있다.”

“그딴 거 상관 없어. 내가 유령 이겨. 걔들은 이미 한 번 죽은 거고. 난 살아있잖아. 어떻게 한 번 죽은 놈이 살아있는 놈을 이김?”

“...?”

“그렇잖아! 내 말이 틀리냐? 그리고 혹시 걔들이 해코지 해서 내가 죽기라도 하면 나도 유령될 테니까. 나 죽인 새끼들 끝까지 따라가서 2번 죽일 거다.”

김미정은 이상했다.

아주 한참 이상했다.

자신에게 망설임 없이 이런 대사를 뱉는 여자는, 처음 만났다.

그런 그녀가, 차차웅은 싫지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사이을 좁혔다.

연애를 하진 않았지만 좋은 친구 사이로 지내게 되었다.

차차웅이 김미정에게 반하게 된 계기는 따로 있다.

“미정아, 문제가 있다.”

“문제? 갑자기 무슨 문제?”

“아아...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뭔데 그래.”

“네 어깨에 유령이 붙어있다.”

우려했던 사태가 일어났다.

학교를 함께 다니며 늘 붙어있던 김미정과 차차웅.

그랬던 탓에 차차웅의 음기가 김미정에게 영향을 주었다.

본래라면 차차웅에게 들러붙어야할 유령이 김미정에게 옮겨간 것이다.

“아, 그래?”

“...?”

김미정은 태연한 얼굴로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학교 복도에서 3연속 앞구르기를 한다던가.

체육 창고에 들어있던 매트 위에 몇 번이나 뛰어들고.

오래되어 마감이 다 떨어져나간 벽돌에 어깨를 부비었다. 옷감이 다 해어질 때까지.

“어때? 이제 유령 꺼졌니?”

“.... 응. 진작에 멀리로 날아갔어.”

“야! 그럼 진작 얘기해야지. 어깨 아파 죽겠네.”

심지어 김미정의 액션은 효과가 있었다.

유령들도 손사레를 치며 그 주변에서 도망치기 시작했던 것이다.

들러붙어 기를 흡수할 생각이었겠지만, 김미정은 그러한 터로써 부적합했다.

그녀는 평범한 인간들과는 조금 다른 차원이었기에.

특히 정신상태가.

“그럼 내가 유령 이겼으니까, 이제 너 옆에 있어도 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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