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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굴러들어옴-159화 (159/200)

159화: 차차웅(6)

차차웅은 김미정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건 단순히 좋아한다는 감정을 초월한, 어떤 것이었다.

약간의 신앙심이 섞여있었고.

약간의 경외심이 섞여있었다.

‘특이한 여자.’

에서

‘특별한 여자’

로 바뀌었다.

아직 고등학생이었던 어느 날, 차차웅은 그녀의 이름이 어떤 한자로 이루어져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출석부를 뒤졌다.

“김... 미정.”

미정(美晶).

아름답고 밝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정(晶)은 결정체의 ‘정’자였다.

이름을 지은 누군가가 김미정을 미(美)의 결정체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 이런 이름을 지었을지도 모른다고.

차차웅은 생각하며 작게 웃었다.

한편 차차웅은 내심 이런 기대도 있었다.

미정이 미정(未定)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무 것도 정해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녀는 마치 아무 것도 정해지지 않았다는 듯이 차차웅의 상식을 바꾸었기에.

그녀의 이름은 적어도 차차웅에게만큼은 미정(未定)이었다.

“우리 결혼하자.”

어른이 되어, 자연스레 두 사람은 결혼했다.

프로포즈는 김미정이 했다.

그녀의 평소 성격을 보면 자연스런 일이다.

차차웅와 김미정은 결혼했고.

행복한 생활을 누렸다.

결혼하고 몇 년이 지나 아이도 생겼다.

원래는 조금 더 나중에 나을 생각이었는데, 김미정이 지나치게 적극적이었다.

“우릴 닮은 아들은 엄청 잘 생겼겠지? 이쁘겠지? 그럼 빨리 보고 싶겠지?”

“....”

언제나 김미정은 차차웅을 휘두르는 존재였다.

그것이 적절한 균형이었다.

허나 불행이라 마땅히 부를만한 사건은 거기서부터 비롯되었다.

아들이 태어났다.

이름은 차유민.

두 사람을 닮아서 너무 이쁘게 웃는 아이.

그 아이에게 영이 들러붙기 시작했다.

‘안일하고 멍청했다...!’

왜 그랬을까.

김미정이 자연스레 견뎌내는 영적인 것들로부터 아들도 무사할 것이라 차차웅은 맹신했다.

그런 미래를 간과했다.

그녀와 함께했던 행복한 시간에 절여져 아들의 안전을 간과한 것이다.

유민이는 그런 좋지 못한 것들에 둘러싸여 몸이 아프거나 성격이 소심해져갔다.

“이대로는 안 된다.”

아들과 빨리 떨어져야 했다.

유민이가 시달리는 이유는 차차웅 때문이었다.

최대한 거리를 벌려야 했다.

아들의 미래를 위하여.

“차차웅, 난 어떻게 해야돼?”

“미정아...”

그녀는 차차웅과는 달랐다. 유민이가 안 좋은 것들에 시달리는 이유는 차차웅 때문.

차차웅이 떠나가면 누군가는 유민이를 돌봐야만 했다.

그가 사라지면 자연스레 육아는 김미정의 몫이 된다.

“미안해.”

몰려오는 죄책감에 차차웅은 미안하단 말만을 남기고, 김미정을 떠나갔다.

시간이 흘러, 유민이가 스스로 걷고, 말할 수 있을 때쯤 차차웅은 김미정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그녀가 혼자 있길 바라지 않았다.

차차웅은 여전히 김미정을 사랑했다.

그래서 그녀가 누군가와 재결합하여, 새로운 가정을 꾸리기를 바랬다.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마.”

몇 번의 요청과 몇십 번의 거절.

두 사람의 감정은 일치했다.

서로를 사랑했고, 아들을 지키고자 했다.

허나 차차웅은 줄곧 이혼에 집착했다.

‘우리 가정이 언제 회복될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아마 평생 난 유민이를 못 만나게 될지도 몰라. 그런 내가 아버지로서, 미정이의 남편으로서 있을 자격따위 없지.’

그런 강박이 차차웅의 머리 속을 지배했다.

그 지배적인 강박이 차차웅으로 하여금 이혼을 요구하게 했고. 결국에 지친 김미정은 그 요구를 수락했다.

허나 두 사람은 알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있음을.

이혼은 결코 올바른 선택이 아니었다.

허나 이것을 깨달은 것은 조금 더 긴 시간이 흐른 뒤의 일이다.

두 사람은 신이 아닌 인간이었다.

그래서 실수하고, 실패한다.

이혼은 그 실수 중 하나에 불과했다.

**

-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 저는 가끔 아들과 미정이가 어떻게 지내는지 멀리서나마 지켜보곤 합니다. 먼저 연락은 안 하지만, 대체로 어떻게 지내는지는 알게 되기 마련이죠. 저는 무속인이니까요.

차차웅씨의 사정을 듣고 나서 윤슬이는 한풀 진정된 모양이다. 한층 누그러진 얼굴이었다.

내가 몰래 챙겨온 맛짱짱 우유를 입에 물려준 것도 그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분노의 우유 드링킹 중이시다.

“움... 그러믄 짜짜웅 아저씨는 사실 선샌님두 넘무 조아하구. 유미니두 너무 조아해?”

- 그래, 단 한 순간도. 그 두 사람을 잊은 적이 없어. 늘 행복했으면 좋겠고. 늘 웃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멀어진 거야.

“움...”

윤슬이는 벌떡 일어나서 차차웅씨에게 천천히 다가간다. 그리고 자기가 마구마구 때렸던 곳을 어루 만진다.

볼도 비빈다.

한 번 핥는다?

요즘 핥기에 맛들린 것 같다!

“윤스리가 미아내. 아파써여?”

- 그래... 아프더라.

“윤스리가 잘못해써. 짜짜웅 아저씨눈 나쁜 사람 아니야. 왜냐믄 짜짜웅 아저씨두 힘든데두 마니 노력해써.”

- 아니, 난 나쁜 아빠다. 그리고 최악의 남편이지.

“아니야! 짜웅 아저씨는 아저씨가 힘든데두 노력해써. 유미니 지켜줄라구 하다가 그런 거야! 윤스리가 알어. 짜웅 아저씨는 하나두 안 나쁘다구.”

흥분한 윤슬이를 다시 무릎 위로 데리고 왔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더 있어보인다. 내가 멋대로 끌고 온 게 불만인지 입술을 삐죽댄다.

그러나 차웅씨에게도 감정을 추스를 필요가 있어보였다.

본인에게 힘든 과거였을 사실을 우리에게 털어놓으신 거니까.

그런 일은 어른에게든 아이에게든 쉬운 일은 아니다.

- 사실 오누이 식당에 들렀던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유민이랑 미정이가 다정하게 그곳에서 식사하는 모습을 봐버렸거든요. 비록 가까이 가진 못했습니다만. 유민이한테 혹시 또 안 좋은 일이 있을까봐.

“그러셨군요....”

- 아들이랑 아내가 그렇게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오랜만인지라, 어떤 곳인지 꼭 한 번 들러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을 보니, 그 이유를 알 거 같더군요.

“우우... 짜짜웅 아저씨... 훌쩍!”

서투르게 웃는 차차웅씨를 보고 윤슬이는 거의 울기 직전이다. 코를 훌쩍이며 눈물을 참고 있다.

손을 빌려주었더니 힘껏

팽!

하고 코를 풀어버렸다.

손이 찐득해지고 말았다.

**

“옵바! 이거눈 몬가 잘못대써.”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짜짜웅 아저씨랑 유미니랑 선샌님. 셋이서 행복카게 해조야 댄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지.”

하지만 당장 마땅한 수가 떠오르진 않았다.

조금 복잡한 문제였다.

차웅씨네 집안이나 체질과도 연결된 문제였고.

무엇보다 미정 선생님과 차웅씨 사이에는 감정의 골이 깊을 것만 같았다.

이혼을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감정적으로도 지치게 되고, 처리해야 할 과정도 많다.

그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정나미가 많이 떨어져, 사랑했던 감정은 사라지고 별로 좋지 않은 기억만 남는다고 한다.

“이걸 어떻게 도와드릴 수가 있을까.”

차웅씨와 어느 정도 이야기를 마치고, 우리 남매는 집으로 되돌아왔다.

마침 점집을 찾아온 손님이 계시기에 너무 오래 자리를 차지할 수는 없었다.

다음에 뵙자는 말씀만 전해드리고, 점집을 나오게 되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고영희씨를 옆에 앉혀두고, 과연 유민이네 가족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윤스리가 기신들 다 혼내주께!”

얍! 얍!

소리를 내며 공중에 펀치를 시전하는 5세.

본인이 귀신들을 다 잡아버리겠다고 한다.

당연히 그런 방법으로 해결될 만한 문제는 아니다.

냐앙-

‘또 남의 집 일에 참견하려고 하는구만. 이 남매는.’

“남이 아니거둔! 유미니는 친구니깐 도와주는 게 당연해!”

냐아...

‘어련하시겠습니까, 윤슬 선배님.’

고영희씨는 우리가 남을 도우려고 하는 게 그닥 마음에 들진 않는 모양이다.

하지만 미정 선생님도 그렇고, 유민이도 그렇고 우리에겐 이미 너무나 큰 존재가 되었다.

차웅씨의 사정을 듣고 나니, 더욱이 그 가족을 돕고 싶단 마음이 든다.

윤슬이만이 괜히 감정에 앞서서 저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스마트폰을 펼쳐보았다.

이런 일에 관해서 상담하기 좋은 녀석들이 마침 우리의 파트너다.

[오누이 타이쿤!]

[나: 얘들아 중요한 일이 생겼어.]

[달님: 저희도 다 보고 있었어요.]

[햇님: 유민이네 집 사정이 그럴 줄은 저도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거든요. 괜히 주목하게 되더라니까요!]

오누이도 유민이네는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이러쿵저러쿵 해도 오누이는 우리 가게 손님들에게 정을 붙여준다.

심성이 착한 녀석들이다.

[나: 조금 복잡한 문제지만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달님: 우선 가장 큰 문제는 차웅씨의 체질이겠죠.]

[햇님: 체질이란 건 사람이 타고난 부분이라 바꾸기 쉽지 않아요. 예를 들면 사람의 유전자를 쉽게 변형할 수 없듯이요.]

[나: 확실히 복잡한 문제네.]

오누이와 메시지를 나누고 있는데 윤슬이가 머리를 콩- 콩- 콩- 팔뚝에 박는다.

표정에 걱정이 가득하다.

많이 심란한 모양이다.

“괜찮아. 윤슬아. 우리가 노력하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거야. 윤슬이 덕분에 영희씨도 시후랑 다시 만났잖아. 이번에도 잘 될 거야.”

“움... 그렇타...”

평소보다 ‘그렇타’에 힘이 없었다.

유민이가 많이 걱정인 듯하다.

윤슬이의 기분을 띄워주기 위해 바닥에 누워, 무릎에 얹히고 비행기를 태웠다.

비행기를 열심히 타는 와중에도 5세의 표정은 심각하다.

이 정도로는 주의를 돌릴 수 없는 것이다.

유감.

[달님: 그러고보니, 저번에 염라가 그런 말을 했어요.]

[나: 염라?]

저번에 오누이에게 하나 부탁해뒀던 건이 떠오른다.

윤슬이의 숨겨진 능력, 그 정체에 대해 염라에게 물어보기로 했었다.

아마 그때 들었던 얘기일 것이다.

[달님: 그 아이가 바라는 일이라면 대개 이루어질 테니, 걱정하지 말거라. 라고 했어요. 그리고 그게 윤슬이가 가진 힘의 정체라고도.]

[나: 윤슬이가 바라면 이루어진다고?]

[달님: 그 이상 알 필요는 없다더군요.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것들이 있을 거라고.]

[나: ... 일단 알겠어.]

“우후이!”

오누이와 메시지를 이어가는 동안, 윤슬이한테 계속 비행기를 태웠는데.

어느새 비행기에 심취해있었다.

금세 유민이 가족에 대한 근심이 날아간 듯하다.

“윤슬이는 차차웅 아저씨가 어떻게 하면 좋겠어?”

“움? 짜짜웅 아저씨?”

윤슬이는 움- 움- 거리며 고민하다가.

눈을 부릅! 뜨고 나를 똑바로 쳐다본다.

“짜짜웅 아저씨가 이젠 기신 같은 나쁜 거 그만 바야지 대게써. 그러믄 유미니랑두 가치 있으믄 대자나. 선샌님이랑두 가치 있구.”

“정말 그렇게 되면 좋겠네.”

부웅-

부웅-

윤슬이를 비행기 태우며, 나도 진심으로 그렇게 바랬다.

이렇게 비행기를 태워주는 이유는 윤슬이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한 것도 있지만.

반대로 내가 다른 일에 집중하고 싶은 것도 있다.

여러 모로 머리가 복잡하다.

그렇게 우리 남매는 유민이네 집을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지 고민하며 하루를 보냈다.

물론 머리를 쓰다보니 배가 고파져서 중간중간에 밥을 먹거나 과자를 뜯어먹기도 했는데.

그건 그렇게 중요한 과정은 아니다.

더 중요한 일은 그 다음날 일어났다.

- 주현씨, 윤슬아.

“움? 짜짜웅 아저씨?”

- 뭔가가 이상하다.

식당 오픈 전부터 가게 앞에서 기다리던 차차웅씨는 우릴 발견하시더니 허겁지겁 뛰어오셨다.

“무슨 일이세요?”

- 오늘 새벽부터, 갑자기 귀신들이 안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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