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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굴러들어옴-160화 (160/200)

160화: 친애하는 해적에게(1)

윤슬이는 차웅씨의 그 말을 듣고, 천진하게 달려가서 두 손을 잡아챈다.

그리고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우아! 그러믄 디게 조은 거자나!”

- 좋은 거라구?

“당연해! 왜냐믄 이제 유미니랑 가치 있어두 안 위험하자나. 미정 선샌님이랑두 같이 있어도 대는 거자나.”

마치 유민이네 가족의 일이 자기 일인 양 기뻐하는 5세. 순수해서 좋긴 한데. 단순히 그렇게 끝낼 문제는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차웅씨의 표정을 보니 얼떨떨한 것 같다.

평생을 보던 것들이 단숨에 사라졌으니 그럴만도 하다.

“일단 들어가서 얘기하시죠.”

- 네,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아마 차차웅씨도 어렴풋 눈치채고 있는 것 같다.

유령이 보이지 않게 된 것과 우리 남매가 관련되어 있다는 게.

**

- .... 그렇게 된 겁니까.

“네, 우선 설명은 드려야할 것 같아서.”

모든 것을 말씀드린 것은 아니지만, 차차웅씨가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은 드렸다.

윤슬이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특별한 구석이 있다고. 타고난 기가 강해서인 것 같다고.

그렇게만 설명드렸는데, 차웅씨는 납득하셨다.

무속인이라 그런 건지. 아니면 당장 본인에게 일어난 일에 얼떨떨해져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다만 중요한 것은 차웅씨의 감정이다.

“어떠세요?”

- 어떻냐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만약 이제 귀신을 영영 못 보게 된다면 본업에 지장이 갈 수도 있는 게 아닐까요?”

- 아아... 그럴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수익적으로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요즘은 제령 하는 문화도 많이 사라졌고. 점집으로 활동하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으니까요. 수익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그나마 당장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솔직히 이 부분이 제일 걱정됐다.

같은 자영업자로서 공감되는 부분이 있다. 만약 갑자기 손이 다쳐 요리를 못하게 된다면 나로선 많이 곤란해질 것이다.

차웅씨도 조금은 그런 심정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주 수입에 큰 영향이 없단 점을 듣고 마음이 한풀 누그러졌다.

“움... 근데 짜짜웅 아저씨가 기신 못 바두. 걔들이 나빠서 자꾸 따라오므는 어뜨케 하지?”

- 아아...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돼. 귀신들은 나쁜 게 아니라 사실 관심이 필요한 거야. 그래서 자기들이 보이는 사람들한테 자꾸 다가가고 싶어하지.

“잉? 그러믄 이제 짜짜웅 아저씨한테 기신들이 안 온다는 거?”

- 그럴 거야. 아마도.

“오오...!”

윤슬이는 다시 한 번 차차웅씨의 두 손을 잡고 위아래로 붕붕- 흔든다. 아마 윤슬이는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

차웅씨와 미정 선생님, 유민이가 재회하는 시간을.

그렇기 때문에 더욱이 그런 바램을 가졌던 게 아닐까.

“근데 짜웅 아저씨 그럼 어뜨케 해? 이제.”

- 어떻게 하냐니?

“선샌님이랑 싸웠으믄 이제 화해해야 대자나.”

- 화해. 그렇지. .... 화해해야지.

차웅씨는 냉소적으로 웃는다.

이미 마음 속으로 그런 결말은 포기하셨을지도 모른다.

그런 차웅씨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윤슬이는 거리를 한껏 좁히며 얼굴을 들이민다.

그리고 평소 나나 영희씨한테 그러는 것처럼 배실배실 웃는다.

“히히... 화해하는 거 원래 어려워. 그거눈 윤스리두 알어. 왜냐믄 싸우고 나믄 미안하다구 하기 힘든 거야. 잘못해두 미안하다구 하기 힘드러. 왜냐믄 부끄러우니까. 윤스리두 옵바한테 실쑤했눈데 미안하다구 해써. 그때 쫌 부끄러워써.”

- 그래, 윤슬이 말이 맞다.

“그거 어려운 거 아니깐 윤스리가 도와줄게! 왜냐믄 윤스리는 유미니가 행복했으믄 좋케써. 그리구 선샌님이랑 짜짜웅 아저씨가 행복하믄 더 좋케써.”

우리 윤슬이 예쁜 마음.

오빠가 되어서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차웅씨는 어려운 결정이었겠지만 우리에게 본인의 사정을 설명해주셨다.

서로 가족이나 친했던 친구 사이는 아니다.

하지만 서로 과거를 공유한 이상, 이미 서로와 너무 깊게 얽혀버린 것이다.

분명 우리 남매에게 나중에 어려운 상황이 생긴다면 저쪽에서도 도와주겠지.

“저희가 도와드릴 테니까, 차웅씨. 한 번 미정 선생님이랑 유민이랑 잘 화해해봐요. 되게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지만. 어떻게든.”

- .... 어디부터 어떻게 고맙다고 말씀을 드리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제대로 잘 화해하고 나서 식사나 많이 하러 와주시면, 그걸로 돼요.”

- 자주 들리죠. 꼭이요.

**

우리들은 가게 오픈 전 시간을 이용해 작전을 짰다.

윤슬이의 주도 하에!

“이번 작쩐! 선샌님이랑 짜짜웅 아저씨랑 유미니 셋이서 다시 사이 좋게 지내는 거다!”

제대로 의욕을 보이고 있는 5세.

턱에 주름이 잡힐 정도로 힘을 주고는 뒷짐을 졌다.

그렇게 가게를 천천히 좌우로 반복해서 걷는 중이다.

멀리서 보면 모 서당의 꼬마 훈장님 같다.

“윤슬 대장님은 무슨 좋은 생각 있으십니까?”

“유, 윤슬 대장?! 쿠쿡쿠...”

대장이라고 불러주었더니 입꼬리가 귀에 걸린다. 다시 한 번 근엄한 표정으로 바뀌더니 주먹을 입가에 가져다 댄다.

그리고 헛기침 한 번 크흠!

“윤스리 생각은 이렇타!”

“어떻습니까?”

“짜짜웅 아저씨 생각을 유미니랑 미정 선샌님한테 그대루 알려주는 거야.”

“오오! 좋은 생각이십니다.”

“그렇타!”

5세는 자신이 긍정 받고 있다는 느낌이 좋은지 점점 근엄한 얼굴이 무너져간다. 입술이 씰룩거리는 게, 열심히 웃음을 참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하면 좋겠습니까?”

“움?”

“방법 말입니다!”

“그거눈 쪼꿈만 더 생각해보께...”

- 프흡...

차웅씨는 끝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내 옆으로 다가와 작게 귓속말하신다.

- 주현씨가 참 동생을 잘 돌보시네요.

“제가 좀 잘하죠.”

이건 솔직히 자부한다. 나만큼 윤슬이랑 잘 티키타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몇 없을 것.

나와 차웅씨가 소곤거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윤슬이가 우리 쪽으로 달려온다.

우리끼리만 노는 줄 알고 질투하는 줄 알았는데.

“옵바! 조은 생각나써!”

그게 아니었다.

“오오! 그래, 어떤 생각인데?”

“저번에 유미니랑 가치 동화책 읽어써. 유미니가 윤스리한테 읽어조써.”

“유민이 글을 읽을 줄 안다는 말이야?”

“우움... 마니 틀려써. 그래두 유미니랑 윤스리랑 가치 쪼꿈씩 쪼꿈씩 맞춰봐써. 그래서 끝까지 읽어써!”

“오오...!”

순수한 감탄이 나온다.

그건 정말 장족의 발전이다.

이런 순간순간마다 아이들이 커간다고 느끼게 되기도 한다. 신비한 경험이다.

“근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구! 유미니가 그림책 조아하니깐 짜짜웅 생각을 그림책으루 만드는 건 어떤데?”

“호오... 그림책?”

낭만적인 생각이긴 하다.

확실히 차차웅씨의 마음이나 생각을 직접 만나서 그대로 전달하는 것보다.

편지나 이야기 등으로 바꾸어 전달한다면 한결 진행이 수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전하는 방법에도 정성이 들어가보이니까 말이다.

이 세상에 포장이라는 개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소중한 선물일수록 그 포장에 공을 들인다.

그런 맥락에서 생각해보자.

차차웅씨가 가족 관계 회복을 중요시한다면 그 방법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고민을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윤슬아, 너무너무 좋은 생각인데. 책을 만드는 건 조금 어려워.”

“움? 그렁가?”

“요리는 식재료랑 냄비만 있어도 만들 수 있지만. 책은 종이랑 인쇄기기가 있어야 되거든.”

“움...”

옆에서 차웅씨가 윤슬이 말에 영감을 받았는지 조용히 손을 올리신다.

- 지난 성탄절에 한 번 우연치않게 길거리 인형극을 봤던 적이 있습니다.

“길거리 인형극이요?”

- 네, 봉사 단체에서 결손 가정 아이들을 위해 모금하려고 진행하는 일이었습니다만.

“좋은 뜻으로 진행하는 행사였네요.”

- 그때 기억을 되살려보면 그렇게까지 정교한 인형이나 배경을 사용하진 않았지만 반응이 꽤 좋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것도 괜찮겠네요. 인형을 사용해서 그림책처럼 이야기를 전개하면 되니까요.”

물론 퀄리티 높은 인형극을 진행하려고 하면, 그림책 만드는 것보다 훨씬 과정이 복잡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점이다. 인형 정도는 이미지에 맞는 것을 구매하면 된다.

그리고 인형극의 배경 같은 경우도 구하려면, 어디서든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제작 요청을 따로 해도 되고 말이다.

“옵바, 그러믄 인형으루 이르케 해서 노는 거야?”

윤슬이는 어디선가 인형극을 본 기억이 있는지 손을 움츠렸다가 폈다가.

반복하며 마치 손에 인형을 낀 듯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그렇지. 윤슬이랑 오빠랑 차웅 아저씨랑 셋이서 인형극하면서 차웅 아저씨 마음을 미정 선생님이랑 유민이한테 전해주는 거야.”

그러는 편이 여러 모로 더 좋지 않을까 싶다.

다짜고짜 차웅씨가 다가가서 사정을 설명하고 사과하고, 화해한다던가.

그런 전개의 가능성도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차웅씨의 진심을 포장하는 방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 방법에 따라 때로는 진심이 더욱 진심처럼 전해지는 법일 테니.

- 그렇게까지 도와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짜웅 아저씨랑 유미니랑 선샌님은 다 윤스리 칭구야. 그니깐 도와주는 거니깐 고마워해이지 대거둔!”

- 그래... 윤슬아, 고맙다.

차차웅씨는 감사하는 마음이 흘러넘쳤는지 윤슬이 볼을 자상하게 쓰다듬는다. 그 손이 어색했을까?

윤슬이는 반대로 차웅씨의 볼을 꼬집어버렸다.

“유미니랑 미정 선샌님한테 잘 해조이지 대여. 알지여?”

- 그래, 잘 알고 있다. 내가 두 사람한테 지금껏 못해준 만큼. 앞으론 최선을 다할게. 약속이야.

차웅씨는 윤슬이와 새끼 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좋은 사람이라는 게 느껴진다.

- 그런데 방법이 정해진 것은 좋은데... 저희끼리 인형극을 진행하려면 구해야 될 게 제법 많겠군요.

“그러게요... 일단 스토리도 짜야 되고. 또, 간이 무대도 만들어야 될 거고. 그림으로 된 배경에다가. 인형까지.”

- 인형은 구매하면 될 것 같고. 스토리는 제가 최대한 잘 생각해보겠습니다.

“윤스리두 도와주께!”

“그럼 문제는 그림 배경이랑 간이 무대인가.”

어디서 구하면 좋을까.

라는 의문이 머릿속에 떠오르자마자, 몇 군데가 곧바로 생각났다.

마침 우리 가게 단골들 중에서는 금손이 많으니까 말이다.

“제가 한 번 연락을 돌려볼게요.”

- 어디 짐작 가는 데라도 있으신가요?

“네, 제 주변에 은근히 금손들이 많거든요. 돈은 어느 정도 지불해야 되겠지만. 아마 부족함 없이 해주실 거예요.”

- 얼마든지 지불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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