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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굴러들어옴-163화 (163/200)

163화: 아빠 수업(1)

인형극이 끝나고, 울음을 터뜨린 미정 선생님.

그 모습을 계속 보고 있긴 힘들었지만 섣부르게 달래드릴 수도 없었다.

유민이는 곤란해보였고.

차차웅씨는 더욱 곤란해보였다.

무엇보다 차웅씨와는 약속했다.

인형극이 끝나면 가족 간에 대화로 해결할 시간을 드리겠다고.

그래서 다시 가게의 불을 키고 세 사람이 함께 있게 시간을 마련해드렸다.

“옵바랑 윤스리 쫓겨나써! 어뜨카지? 윤스리랑 옵바 가게인데.”

“.... 그러게.”

“이거눈 넘무 손해가 커!”

“손해가 이만 저만이 아니야?”

“그렇타. 이마니 저마니가 아니거둔.”

영희씨를 시후네 집에 놀러가게 한 것은 그런 의미에서 최적의 판단이었다. 만약 영희씨가 이런 상황에 놓였다면 분명 냥냥 울어대며 불만을 토로했을 것이다.

그렇게 가게 밖에 있는 내천을 걷다가 30분쯤 지났을 무렵. 선생님이 먼저 우리에게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다가오셨다.

- 정말 미안하다. 얘들아. 괜히 우리 가족 일에 두 사람 말려들게 만든 것 같네. 정말 미안...

“갠짜나. 선샌님이랑 윤스리눈 칭구자나. 짜짜웅이랑 유미니랑두 친구니깐 그 정도는 갠짜나.”

- .... 고마워, 윤슬이.

어떤 얘기를 어떻게 꺼내야 할지 망설여졌다.

선뜻 화해는 잘 되었냐고 물어보기도 약간 애매한 상황.

우리 가족의 일이 아니라 유민이네 가족의 일이기에, 좋은 결말을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

워낙 예민한 문제인 것을 이해하고 있기에 그런 뉘앙스조차 풍기기 조심스러웠다.

- 얘기는 잘 됐어. 그런 표정하지마.

“그건 다행이네요.”

그런 내 마음을 눈치채셨는지 먼저 이야기해주시는 미정 선생님.

이내 우리에게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주신다.

거기엔 서울 근교에 위치한 눈썰매장의 온라인 예매 사이트가 띄워져 있다.

- 그런데 다른 문제가 생겼어.

“움? 문제가 또 생겨써! 그거눈 좋지가 않어.”

- 윤슬이는 좋아할지도 몰라.

“윤스리눈 문제가 별루 안 조아.”

- 왜냐면 이렇게 눈썰매 타게 될지도 몰라.

허리를 숙여 윤슬이와 눈높이를 맞추는 미정 선생님.

사이트 홍보란에 소개된 눈썰매 동영상을 윤슬이한테 보여주신다. 윤슬이 또래 아이들이나 초등학생 저학년들이 신나게 눈썰매 타는 모습이 찍혀있다.

5세 대흥분.

“이거눈...!”

- 재밌을 거 같지?

“그, 그렇타. 옵바 저거눈 한 번 가이지 대게써.”

“그래, 시간 날 때 한 번 가자. 오빠도 눈썰매 안 탄 지 오래됐네. 윤슬이랑 타러가야겠다.”

5세는 확신을 얻고 싶은지 새끼 손가락을 내민다.

굳게 걸어 약속해주었다.

그걸 보던 미정 선생님 내 어깨에 떡하니 손을 올리신다.

“갑자기 왜 그러시나요?”

- 미안한데 주현아. 돌아오는 휴일에 갔다와주면 안 되겠냐? 혹시 일정 따로 있어?

“다음주 휴일이면 일정은 따로 없는데요. 아마 윤슬이랑 같이 집에서 뒹굴거리지 않을까 싶은데.”

“옵바 비행기 타믄서 영화를 보므는 대게써. 팝콘 와작 와작. 와작 와작...!”

일전에 비행기를 태워준 이후로 5세는 내 무릎에 타서 비행기를 곧잘 즐기게 되었다.

딱히 무겁진 않아서 힘들진 않다.

- 그럼 내가 돈은 다 내줄 테니까. 돌아오는 휴일에 우리 유민이랑 차차웅 데리고 눈썰매장 한 번만 갖다와주라.

“저희가요?”

“옵바랑 윤스리가?”

선생님은 미안한 기색을 띄우며 설명하신다.

- 방금 얘기하고 왔거든.

미정 선생님답지 않게 설명이 장황해졌다.

요약하자면 이랬다.

미정 선생님 자신은 아직 차차웅씨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신가보다. 그렇지 않았다면 인형극을 보곤 서럽게 눈물을 흘리는 일도 없었을 거다.

하지만 문제는 유민이 쪽이었다.

유민이는 태어나서 말을 익힌 이후로 줄곧 차차웅씨와 떨어져서 지냈다.

물론 차웅씨 입장에서는 가끔씩 보이지 않는 곳에서 관찰을 했다고 하긴 하지만.

그건 차웅씨 입장에 불과하다.

유민 입장에서 보면, 돌연히 모르는 아저씨가 나타나서 “아임 유어 대디!(I`m Your Daddy!)”라고 하는 것과 다름 없다.

당연히 당황스러울 것이다.

- 그래서 내가 차차웅한테 얘기했어. 나한테 허락을 구하는 게 아니라. 다시 한 가족으로 지내고 싶으면 유민이한테 허락을 받으라고.

그런 맥락에서 이야기된 것이 눈썰매장이다.

차웅씨와 유민이를 하루 동안 미정 선생님이 없는 상태로 붙여놓자는 것이다.

만약 차웅씨가 유민이를 잘 돌보아서 아빠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면, 다시 셋이서 함께 살아도 좋다고 미정 선생님은 말했다고 한다.

- 근데 아무리 그래도 차차웅 혼자 유민이 돌보게 만드는 건 조금 불안하거든.

“충분히 이해해요.”

차웅씨는 굳이 따지자면 소심한 성격이다.

유민이의 성격은 차웅씨에게서 얻은 유전일 것이다.

둘이서만 눈썰매장을 보낸다면 아무런 대화도 이어지지 않을 것이 눈에 선하다.

“그러문 윤스리가 또 나서야겠따!”

5세가 손을 번쩍 들었다.

콧김이 새는 게 아마도 유민이를 도와주고 싶은 것은 둘째치고 눈썰매를 타고 싶은 것 같다.

- 윤슬이가 도와줄 거야? 차차웅이랑 유민이.

“그렇타! 이번에 인형극두 윤스리가 도와조서 잘 대써. 그니깐 눈썰매 타러 가두, 윤스리만 이쓰믄 아무런 걱정이가 없따!”

호언장담하는 5세.

나 또한 유민이와 차웅씨랑은 남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미정 선생님이 눈썰매장의 비용까지 다 내주신다고까지 말씀하시는데.

거절하기도 미안했다.

“저희가 같이 다녀올게요. 어차피 그날은 미정 선생님도 출근하셔야 되잖아요?”

- 으휴, 그것도 문제지.

“저랑 윤슬이가 붙어있으면 적어도 유민이가 외롭진 않을 테니까. 그런 부분은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그렇타!”

- 고맙다... 얘들아. 너희한테는 늘 신세만 지는구나.

미정 선생님은 무릎을 구부려 약간 숙인 채로 나와 윤슬이를 와락 안아주신다.

목소리가 떨리는 게 느껴졌다.

나도 그대로 안아드렸고.

윤슬이도 따라서 꼬옥 껴안았다.

우리 세 사람은 그렇게 한동안 끌어안고 있었다.

**

“움...”

“왜 그래?”

“이거눈 이상하거둔.”

“쉬잇.”

5세는 건너편 자리에 앉은 유민이와 차차웅씨를 곁눈질하고 있다. 뭔가 불만스러운 듯 입술을 비죽 내밀고 있다.

윤슬이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은 예상했던 것보다 서로에게 말을 거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

그나마 우리와 붙어있을 때는 덜했다.

중간에 낀 윤슬이가.

“유미니! 이제 짜웅 아저씨랑 칭구하므는 대게써.”

라던지.

“짜웅 아저씨눈 유미니 손을 쫌 잡아조이지 대. 그러다가 유미니 잃어버리게써.”

라던지.

스스럼 없이 이런 말을 건네었기에.

하지만 눈썰매장으로 향하는 버스에 탑승하고.

우리 남매와 유민이, 차웅씨는 떨어지게 되었다.

그 뒤로는 서로 먼저 말을 거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

그나마 손은 꼬옥 붙잡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저마저도 윤슬이가 잔소리하기 전까지는 잡지 않고 있었다.

“차웅씨가 조금 더 유민이한테 적극적으로 대해주면 좋을 텐데.”

“그렇타...”

차웅씨 마음이 이해되기도 한다.

분명 유민이가 부담스러울까 걱정되는 것이다.

어느 정도 미안한 마음도 있겠지.

자신의 아들인데 여태껏 아무 것도 못해줬으니까.

“그래도 그걸 만회하기 위한 자리잖아요.”

그런 마음들을 모두 극복하고, 유민이와의 거리를 좁히는 것.

그게 오늘 차웅씨에게 주어진 과제였다.

이따가 내려서 조금 충고라도 해드리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어리긴 하지만 윤슬이와 오래 있으면서 알게 된 것들은 여럿 있으니까 도움이 되겠지.

“근데 옵바, 윤스리눈 불마니가 하나 더 있따.”

“어떤 불만이 있는데?”

“이고 바바.”

5세는 자신의 허리에 채워진 안전벨트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안전을 위하여 철저하게 골반 언저리에 채워두었다.

“불편해?”

“그거눈 갠짜나.”

“그럼 뭐가 불만인데?”

“저번에 시후네 차에서 탔던 그거시가 필요하다.”

“아아...”

저번에 태워주었던 유아용 시트를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버스에서 그런 것을 구하긴 어렵다.

5세가 이런 것으로 불만을 가질 땐 나름의 비책을 사용하면 된다.

“자, 이거나 마시고 기분 풀어.”

“아앗! 역씨 옵바다.”

5세는 호들갑을 떨며 내 손에서 맛짱짱 우유 초코맛을 받아간다. 신이 나서 좌석에 앉은 채로 엉덩이를 씰룩이고 있다.

후루룩-!

“이 마시거둔.”

**

눈썰매장에 도착하자마자 우린 간식 코너로 향했다.

우리 남매의 선택이었다.

“먼저 어묵 국물 마시면서 몸 덥히고 시작하자고. 날씨 추우니까.”

“그렇타! 먼저 맛있는 걸 먹으면 이따가 놀 때두 별루 안 춥거둔.”

윤슬이는 어묵 국물을 마실 생각에 신이 났는지 발걸음을 서두른다. 유민이 손을 붙잡고는 앞서 갔다.

그 뒤를 따르는 차웅씨와 나.

“어떻게 차 안에서 대화는 좀 해보셨어요?”

- 하하... 그게 마음처럼 잘 되지가 않네요.

“그렇죠? 저도 옛날에 윤슬이랑 처음 만났을 때는 이렇게 친근하게 대하기 어려웠거든요. 그 마음 이해해요.”

- .... 두 사람은 친남매가 아니었던 겁니까?

조심스레 묻는 차웅씨.

“사정이 좀 있어서요. 엄마만 같아요.”

- 그랬군요. 괜한 걸 물어본 모양입니다.

“됐어요. 이미 서로 알 거 다 아는 사이인데. 암튼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이거에요.”

- 뭔가요?

“유민이랑 윤슬이는 나이에 비해 가끔씩 어른스러운 구석을 보이잖아요. 생각이 많다던지. 배려심이 깊다던지. 그래서 가끔 헷갈리더라고요. 얘들이 정말 다여섯 살짜리 애기들이 맞는지.”

- 동감이에요.

“그런데도 사실 애들은 애들이잖아요. 그래서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감정에 서투르고, 어떤 말을 해야될지 몰라서 고민할 때가 많거든요.”

- 그건.

“그래서 저희가 어른이고. 아이들은 말 그대로 아이들이니까.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걸어줘야 할 때도 있고. 필요하면 져줘야 될 때도 있는 거잖아요. 차웅씨가 아빠니까. 유민이한테 먼저 다가가 주세요.”

- .... 주현씨 말이 맞습니다. 저도 그건 이해하고 있습니다만. 어떤 말을 먼저 걸어야 좋을지. 머리 속에선 어떤 말이라도 좋으니까 건네어보라고 하지만. 그랬다가 괜히 아이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진 않을지. 고민하게 되더군요.

차웅씨의 표정이 진지했다.

분명 차 안에서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버스에서 내리기 전까지 유민이의 손을 결코 놓지 않았으니 말이다.

“으음... 그렇네요. 간단한 거부터 시작해보는 게 어떨까요? 예를 들면, 뭘 좋아하는지 물어보고 그것에 대해서 한 번 이야기해본다던가.”

- 확실히 그런 주제라면 유민이도 부담감을 덜 가지겠네요. 어묵 먹으면서 한 번 유민이한테 제가 직접 물어보겠습니다.

차웅씨는 결심을 굳힌 듯 걸음을 서둘렀다.

나도 그 뒤를 따라서 온기가 폴폴 느껴지는 간식 코너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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