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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굴러들어옴-164화 (164/200)

164화: 아빠 수업(2)

“옵바, 이거 불어조.”

“오냐.”

흐뭇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어묵을 건네어 주시는 직원분. 뜨겁지 않게 두 겹으로 겹친, 길다란 일회용 컵에 넣어주셨다.

5세는 평소엔 성격이 급하지만 그만큼 뜨거운 음식에 입천장을 폭격당하는 일이 많다.

곧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만큼 학습한 것이다.

뜨거운 걸 불어달라고, 내게 부탁하면 된다는 것을.

“후... 후...”

“쪼꿈 더 불어조야대. 아직 김이 폴폴 나잖어.”

“후... 후...”

“쪼꿈 더.”

“후... 후...”

“우아! 싱기하다. 더! 더!”

“....”

“움?”

“너 그냥 내가 후후 불면 김 날리는 게 신기해서 계속 불어달라는 거지?”

“아앗...”

5세는 눈을 굴리더니 딴청을 피우고 내게서 어묵이 담긴 컵을 훽 채어간다.

날이 추워서 뜨거운 어묵을 입으로 불면 김이 날린다. 그게 신기해서 마냥 계속 불어달라고 했던 것이다!

- 유민아. 저기 봐봐. 주현이 형아가 윤슬이 불어준다. 넌 아빠가 불어줄게.

- 내가 할게여. 내가 할 쑤 있어여.

- .... 그래.

저쪽은 기대만큼 잘 안 되고 있는 모양이다.

다소 실망한 듯한 표정의 차웅씨에게 격려의 따봉을 날렸다. 머쓱하게 웃는 차웅씨.

이제 막 눈썰매장에 도착한 참이다.

이렇게 간단히 포기할 수는 없다.

“옵바두 먹어. 보구만 있지 말구.”

푹-!

“웁...!”

5세가 내 입에 어묵을 꽂아넣었다.

우물우물...

맛있다.

“윤슬아 먹으라고 말하면 되잖아. 그렇게 갑자기 꽂아넣으면 오빠가 놀라지.”

“그치만 작쩐이다.”

“작전?”

“저거 바바.”

이쪽 눈치를 보더니 망설이는 유민이.

차웅씨를 지긋이 바라보다가 자신의 손에 들린 어묵을 내민다.

- .... 머거여.

- 주는 거니?

- 응. 주는 거에여.

한 입 베어무는 차웅씨.

유민이가 크면 저렇게 될까.

정말 미남이긴 하시다.

아마 차웅씨가 저 미모를 유지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인형극에 들어간 정성따위 관계 없이 미정 선생님에게 가차 없이 차였을지도.

- 고맙다. 유민아.

- 응...

다행이다.

둘의 관계엔 천천히지만 진전이 있는 것 같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5세는 뿌듯한 표정으로 내 바짓춤을 잡아당긴다.

“옵바, 작쩐 성공했짜나. 그치?”

“그렇네. 우리 윤슬이가 아주 똑똑하구나.”

“하하하! 그렇타!”

작전이 대성공하여 만족한 5세는 게걸스럽게 오뎅을 먹어치운다. 그리고는 내 손에 들려있던 것까지 탐내는 듯하다. 흔들림 없는 응시.

내 것을 주긴 싫어서 새 것을 하나 사주었다.

그 사이 유민이와 차웅씨 부자는 무얼하는지 지켜봤더니.

“차차웅씨, 많이 노력하고 계시잖아.”

이번엔 차웅씨가 유민이에게 어묵을 먹여주고 있었다.

후후 불어서 유민이 입에 넣어주는 모습이 제법 아버지 같았다.

보고 있자니 흐뭇해진다.

“꿀꺽... 꿀꺽...”

“....”

“움?”

“아니, 잘 먹어서.”

“잘 머그는 게 조은 거라구 함모니가 그래써.”

“그럼. 우리 윤슬이가 최고지.”

“그건 넘무 당연해. 나즁에 옵바보다두 키 더 커질 거라구 그랬자나.”

자신의 종이컵에 담겨 있던 어묵 국물까지 원샷 때리고, 내가 새로 사온 어묵을 받아드는 5세.

눈썰매장에서도 타고난 먹성은 어디 안 간다.

**

어묵과 어묵 국물로 몸을 따듯하게 덥힌 이후.

우리는 느긋하게 눈썰매장으로 나왔다.

아직 12월 초인지라 한파까진 오지 않았고.

방학 시즌도 아니다.

그다지 붐비지 않아 마음만 먹으면 몇 번이고 눈썰매를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 날을 잘 잡았네요.

“그렇네요. 저희는 가게 휴일에밖에 못 나오는데. 운이 좋네요. 미정 선생님한테 감사해야겠어요.”

우리는 썰매를 탈 수 있는, 비탈길의 정상으로 올라가는 오르막길 앞에 섰다. 나와 차웅씨의 손에는 두 사람이 탈 수 있는 튜브형 썰매의 손잡이가 들려있다.

“우어! 옵바, 저거 바바. 엄청 높으다.”

“지금부터 올라가야 돼.”

“잉? 걸어서?”

“응, 걸어 올라가야지? 여긴 스키장이 아니라서 리프팅도 안 되니까.”

“.... 움.”

썰매장의 규모는 꽤 컸다.

비탈길의 경사 자체는 그나마 완만했지만, 거리가 길어 한 번 타고 내려오는데 넉넉 잡아서 1분은 걸릴 것 같았다.

그 탓에 직접 걸어올라가야 하는 거리도 멀었다.

원래는 에스컬레이터를 사용하는 듯했으나, 지금은 성수기가 아닌 관계로 운영하지 않는다고 한다.

유일한 단점이다.

“여길 올라가는 일은 힘들지만 그래도 느긋하게 올라가면 그만큼 재미 있을 걸?”

“그거눈 맞찌. 그리구 윤스리눈 좋은 생각이 있다.”

“좋은 생각? 뭔데?”

“옵바, 그거 들구 있는 손 쫌 쪼꿈만 내려바이지 대게써.”

“.... 응?”

윤슬이는 내가 썰매를 끌고 있는 손을 가리킨다. 동생 말대로 손을 조금 내려보았다.

끌고 가고 있던 튜브형 썰매가 바닥 위에 평평하게 밀착되었다. 그 위로 5세는 신이 나서 올라타버렸다.

“...?”

“끌어조!”

“.... 오빠가 끌어줘야 되겠어? 윤슬이 안 힘들게.”

“그렇타! 대신 다음 올라갈 때눈 윤스리가 끌어주께.”

“약속이다?”

“약쏙이다.”

윤슬이 말대로 썰매에 태워서 끌어주기로 했다. 몸무게가 있어서 더 무거워지긴 했지만.

그래도 튜브형 썰매 자체가 바닥과 마찰감이 적어 크게 무겁게 느껴지진 않는다. 평소에 일을 열심히 해서 근육이 단련된 덕인지도 모른다.

열심히 올라가다가 뒤를 슬쩍 돌아보았다.

- 유민아... 허억, 미끄러... 지지 않게... 조심...

- 아... 응.

차웅씨도 우리를 보고 느끼는 바가 있는지, 나를 따라서 유민이를 튜브형 썰매에 태우셨다.

그 상태로 튜브를 끌고 오르는데. 꽤나 버거워보인다.

차웅씨가 허약한 건지.

아니면 내가 튼튼한 건지 헷갈리는 부분.

“그래도 저렇게 보니까 사이 좋아보인다.”

유민이는 쑥쓰러운지, 아니면 추워서 그런지 볼을 발갛게 밝힌 채로.

줄곧 차웅씨의 등을 응시하고 있다.

주변의 눈덮인 산이 보여주는 전경이 아름다운데도 말이다.

그런 것들보다 자신을 묵묵히, 힘들지만 끌고 가주시는 아빠의 등살이 더욱 신경쓰이는 게 분명하다.

“우하하! 윤스리가 보쓰니깐 이건 당연한 거자나!”

“....”

반면 우리 집 5세는 지나치게 들뜬 듯하다.

별 수 없으므로 지금은 냅두기로 했다.

이따가 진짜로 나를 끌고 올라가게 시켜봐야겠다.

“후우... 힘들다.”

- 저... 정말 힘들군요.

어떻게든 비탈길의 정상까지 올라왔다.

윤슬이는 마냥 신이 나는지 이곳저곳 뛰어다니고 있다.

“윤스리가 다 정복했따! 다 윤스리 부하다! 쿠쿠쿠...”

어디서 정복이라는 단어를 또 주워들은 모양이다.

저렇게 신이 나버리면 말릴 도리가 없다.

반면 유민이는 자신을 힘들게 끌고 와준 차웅씨가 걱정되었는지 등을 도닥여드리고 있다.

- 이렇게 하면... 더 나아진다구. 엄마가 그래써여.

- 하아... 하아... 그래, 고맙다. 유민아.

“유미니! 짜짜웅 아저씨! 옵바! 빨리 와야지대. 썰매 타구 내려가야지!”

어느새 저 멀리 썰매의 출발선까지 도착해있는 5세는 팔짝팔짝 뛰며 우리 세 사람을 부른다.

차웅씨가 아직 회복하지 못했지만 어떻게든 지친 몸을 이끌고 출발선으로 향했다.

나와 유민이도 마찬가지.

- 자녀분들 품에 꼭 안고 타주세요. 속도는 그렇게 안 빨라도 혹시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요.

“넵 알겠습니다.”

“치잇... 윤스리 애기 아닌데.”

5세는 반드시 2인용 튜브에 타야만 하는 것에 다소 불만이 있는 듯하다.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도 순순히 내 위에 드러눕듯이 올라탔다.

“대신 윤슬이는 쪼금만 더 커서 오빠랑 다시 한 번 썰매장 오자. 그땐 혼자서도 탈 수 있잖아? 그치? 그때 복수하는 거야.”

“맞따! 쪼꿈만 더 크므는 그때 복쑤하러 또 올 거야!”

썰매장의 안전요원분들이 그 모습을 보고 큭큭거리며 웃는다. 윤슬이가 의지를 다지는 게 귀엽게 보이나보다.

우리가 준비를 마치고 한 레일 옆의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차웅씨가 먼저 튜브 위에 타고 유민이가 오르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차웅씨는 쑥쓰러운지 헛기침을 하곤 유민이를 부른다.

- 크흠! 유민아, 여기... 아빠 위로 타라.

- 으응... 네.

유민이는 다시 한 번 윤슬이를 바라보았다.

윤슬이가 유민이를 향해 엄지를 척 세워 웃는 얼굴을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용기를 얻은 유민이.

모처럼 과감하게 차웅씨의 위로 점프하여 엉덩이로 착지해버렸다.

- 크악!

- 앗? 왜 그래여?

- 아... 아무... 것도 아니야.

아무 것도 아니진 않다.

오히려 치명상이다.

유민이의 과감한 행동이 다소 돌발적인 사고로 이어지고 말았다.

유민이가 착지하려 붙이던 엉덩이가 하필이면 차웅씨의 영 좋지 않은 곳에 부딪힌 모양이다.

같은 남자로서 다소 유감.

아무래도 유민이는 동생을 얻기는 어려울 것 같다.

- 프흡, 자! 안전 수칙 한 번만 확인해주시구요.

- 네... 네엡.

다소 웃픈 상황에도 안전요원은 프로페셔널하게 우리에게 안전 수칙을 그림으로 보여주신다.

그리고 때가 되었다.

셋까지 숫자를 세더니, 뒤에서 안전요원분들이 튜브를 일제히 밀었다.

그리고 미끄러지듯이 비탈길을 내려간다!

“우후이! 빠르다아아아앙...!”

윤슬이는 두 손을 만세하듯 번쩍 올려 속도감을 만끽하고 있다. 나는 윤슬이를 끌어안고 멀찍이 내다보았다.

빠르게 내려가는 썰매 탓에 쓸리는 인공눈들.

튀어오르며 햇빛이 반사되어 쨍한 무지개빛을 띄었다.

그런 빛깔들로 물드는 형형색색의 설산 풍경은 가히 아름답다.

누군가 팔레트의 물감을 공중에 흩뿌린 것 같다.

윤슬이를 한 팔로 끌어안은 채로 손을 앞으로 뻗어보았다.

풍경이 마치 손에 닿을 것 같아도.

결코 닿지 않았다.

도시의 삶에 찌든 감수성을 촉촉하게 건들였다.

“움?”

윤슬이는 나의 그런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가보다.

나를 슬쩍 올려다보더니 내가 뻗은 손 위로 자신의 작은 손을 포개었다.

그리고 살며시 깍지를 낀다.

“옵바! 신난다! 그치?”

“맞아. 윤슬이랑 있어서 더 신난다.”

“히히! 그렇타.”

몇십 초의 길고도 짧은 순간이 흐르고.

서서히 떨어지는 튜브 썰매의 속도.

그렇게 멈추어버렸다.

우리는 아래쪽에 도달했다.

우리가 조금 더 빨리 도착하고, 뒤를 이어 유민이와 차웅씨 부자가 도착했다.

표정을 살핀다.

- 재, 재미 있었따!

- 그래? 다행이구나 유민아.

아이처럼 순수하게 웃는 유민이.

그리고 유민이의 머리를 자상하게 쓰다듬는 차웅씨.

누가 보아도 화목한 부자다.

썰매에 올라있던 짧은 순간, 짙은 스킨십을 했으니 말이다. 그 교감이 두 사람의 관계에 틀림 없이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이다.

- 아빠는 어땠어여?

- 아빠는...

아빠.

그 말을 입에 담고, 음미하듯 다시 한 번.

- 아빠도 재미 있었다. 우리 유민이랑 같이 탈 수 있어서.

처음이다.

오늘 유민이가 차웅씨에게 ‘아빠’라고 부른 것은.

감동적인 순간.

갑자기 시야 밖으로 사라진 5세.

돌연 불안해졌다.

“윤슬이가 어디 갔지?”

고개를 돌려보니.

사악하게 웃는 동생이 포착되었다.

손에 꼬깃꼬깃 눈을 뭉치고 있다.

차웅씨와 유민이 쪽을 바라보며.

“전쟁이거둔... 쿠쿠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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