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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굴러들어옴-166화 (166/200)

166화: 아빠 수업(4)

- 가볍게 열 나는 거니까 괜찮을 거예요. 우선 해열제 먹였으니까. 애기 잠 들 때까지만 여기서 잠시만 누워계셔도 괜찮아요.

- 아아... 감사합니다. 선생님.

- 저는 잠깐 다른 용무가 있어서 나가보겠습니다.

푸드코트가 위치해있는 눈썰매장의 건물 내부.

보건실을 찾아서 서둘러 들어왔다.

유민이 이마에서 열이 났는데 차웅씨가 조금 지나치게 당황하신 것 같다.

내가 만져봤는데.

“그렇게 심한 열은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 네... 제가 너무 허둥댄 것 같습니다.

새근... 새근...

유민이는 잠들어있다.

약 기운이 돌았는지도 모른다.

보건실에 들어오자 대기 중이던 안전요원분께서 상비약을 전해주셨다.

아이들이 자주 오는 장소인만큼 어린이용 과일맛 감기약이 있었기에 유민이한테 먹이는 것은 제법 수월했다.

다만.

“옵바, 그거 마시 있지? 그럼 윤스리두 조야지.”

“.... 이건 아픈 사람만 먹는 거야.”

“그럼 다음에 윤스리 감기 걸리믄 저거 조야지 대게써.”

“알겠어. 근데 너 일부러 감기 걸리려고 하면 안 된다.”

“드, 들켜써! 역씨 옵바야...”

5세가 매우 탐을 냈다.

배가 고파서 더 그런 모양이었으므로.

간단하게 김밥을 포장해서 가져왔다.

다행히 우리밖에 없었기에 여기서 취식을 해도 큰 문제는 없어보였다.

“유미니 약쏜 해주께.”

윤슬이는 아픈 유민이가 걱정이 되는지.

옷 위로 작은 손을 올리고 빙빙- 돌렸다.

마치 내가 저번에 여름 감기에 걸렸을 때와 비슷했다.

빙빙-

빙빙-

돌리다가 동생이 깨달은 사실.

“옵바.”

“응?”

“이러믄 김빱을 못 머그자나!”

“유민이 약손해준다며.”

“그치만 약쏜두 중요하지만 김빱두 상당히 중요해.”

“그럼 오빠가 먹여주면 되겠어?”

“그렇타. 그러믄 대게써.”

5세는 여러 모로 바쁘다.

김밥 먹으랴.

유민이 배 만져주랴.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유능한 5세였다.

- ....

우리가 간단하게 분위기를 띄워보았지만 차웅씨는 침울했다. 유민이가 아픈 게 많이 걱정되시는 모양이다.

뭐라도 해주고 싶으신지 윤슬이를 따라서 유민이의 배를 살살 어루어만져주는데.

스르륵-

유민이 주머니에서 무언가가 떨어졌다.

“움? 이거눈?”

본 적이 있다.

유민이가 행복 상자에 미정 선생님 몰래 넣었던 염주였다. 그걸 발견하더니 차웅씨는 놀란 표정을 지으신다.

- 이건...

“그거 차웅씨가 유민이 주신 거죠?”

- 네... 맞습니다. 직접 얼굴을 맞대고 준 것은 아니지만.

“부적 같은 느낌인가요?”

- 아아...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사실 염주라는 것은 무속인들과는 큰 관련이 없어요.

“...?”

불교에서 주로 사용하는 물건인 것으로 알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내 표정을 읽었는지 차웅씨는 작게 웃으신다.

- 하하... 유민이가 가지고 다닐 만한 물건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아주 예전에. 이제 유민이와는 떨어져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주었던 물건입니다. 그때 유민이는 말도 제대로 못했으니까. 꽤 예전 일이네요. 마음 같아서는 부적을 내어주고 싶었지만. 괜히 아이한테 부정 탈 수도 있거든요. 그것보다는 그냥 심플한 걸 주려다가 고른 물건입니다.

차웅씨는 감동을 받으신 것 같다.

바닥에 떨어진 염주를 주워서 소중히 두 손으로 감싼다.

- 이걸... 갖고 있어 줬구나. 유민아. 고맙다.

자고 있는 유민이의 볼을 어루어만지는 차웅씨.

서투른 면도 있지만.

자상한 아버지의 모습이 엿보인다.

이렇게 진정성 있는 태도만 유지할 수 있다면 분명 미정 선생님한테도 인정 받겠지.

한 명의 아버지이자 남편으로서 말이다.

“우엉?”

“왜 그래? 아아... 흘려버렸어?”

“우우... 미아내. 윤스리가 흘려써.”

어느새 유민이의 배에 약손해주다가 지친 5세는 그대로 두 손에 김밥을 들고 폭풍 흡입 중이었다.

그런데 김밥의 옷이 풀어지는 바람에 바닥에 김밥 속이 떨어지고 말았다.

공공 장소에서 이러면 민폐다.

빠르게 닦아야 겠다.

“오빠가 닦을 것 가지고 올게.”

“윤스리두 가치 갈게. 왜냐믄 윤스리가 흘려써. 스스로 닦아야지 대.”

“오오! 맞네? 역시 우리 윤슬이. 자립심이 강하구나.”

나는 윤슬이의 손을 잡고 잠시만 자리를 비웠다.

유민이는 어차피 차웅씨가 봐주고 계시니 괜찮겠지.

**

아들의 뺨은 이토록 부드럽다.

여지껏 함부로 건들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뺨.

그리고 작은 손.

감기에 걸린 터라 가쁘지만 확실하게 느껴지는 호흡까지.

차차웅은 그 모든 것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여지껏 어떻게 떨어져지냈는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물론 내 딴에는 유민이를 위한 일이었지만.’

그건 어른의 핑계에 불과하단 걸 차차웅은 잘 알고 있다. 그런 형태로 헤어지는 것부터 시작해서.

이런 형태로 제외하는 것까지.

어느 하나 유민이의 생각과 마음이 반영된 것은 없었다.

이 아이에게 용서받아도 되는 걸까.

함께 눈썰매장에 와서 재미 있게 놀고 난 이후인.

지금 이 순간까지 망설여지는 부분이다.

이런 잠깐의 순간으로 유민이의 마음에 생긴 상처가 회복되었으리라고, 단순하게 생각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유민아.”

“....”

아들은 대답이 없었다.

새근... 새근...

잠들어있기 때문이다.

일어나있었다면 선뜻 볼을 만지는 것도 망설여진다.

아까는 함께 노는 중이었던 터라 흥분한 나머지 마음껏 스킨십했지만.

집에 돌아가서도 그럴 수 있을지는 스스로도 알 수 없다.

“있잖아, 유민아. 아빠가...”

새근... 새근...

“아빠가 많이 미안하다.”

새근... 새근...

“아빠가 옆에 있어주지 못해서.”

새근... 새근...

“네가 걸음마 땔 때 함께 있어주지 못해서.”

새근... 새근..

“네가 엄마, 아빠라고 처음 불렀을 때. 옆에 있어주지 못해서.”

새근... 새근...

“그러니까. 아빠가 너무 미안하니까. 혹시 유민이만 괜찮으면 이제라도...”

새근...

“이제라도 아빠가 아빠하면 안 될까? 응?”

새근...

어떠한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차차웅은 혹여라도 유민이가 깰까봐 조곤조곤하게 이야기했다.

해열제를 먹어서 약기운이 돌았기 때문인지.

재미있게 놀다가 피곤해져서인지.

유민이는 깊게 숙면해있었다.

그래서 차차웅이 무어라 하는지. 이 여섯 살짜리 어린 아이에겐 들을 재간이 없었다.

하지만.

“아... 빠...”

“응?”

잠꼬대였다.

명백히 잠꼬대였다.

잠에 취한 와중에도 ‘아빠’라고 불렀다.

그게 너무 확실히 들려와서.

그게 너무나도 기뻐서.

차차웅은 다시 한 번 울음을 터뜨릴 뻔했다.

“가지마... 여.”

“아빠 안 가. 이제 안 갈게. 아무데도 안 갈게.”

잠들어있는 유민이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이젠 다시 놓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

눈썰매장에 다녀온 지 며칠이 지났다.

해열제를 먹고 다음날 병원에 다녀온 유민이는 멀끔하게 나았다고 한다.

차웅씨가 다음날 종일 붙어있으면서 간호했다고, 미정 선생님이 알려주셨다.

“옵바! 유미니 다 나았눈지 빨리 선샌님한테 물어바이지 대.”

“옵바 옵바! 유미니 감기 다 나았눈지 걱쩡이 대자나.”

이렇게 5세가 보챘던 탓에 여러 번 유민이네 집에 연락해야만 했다. 미정 선생님에게 5세의 의견대로 유민이의 건강 상태를 물었더니.

[김미정: 차차웅이 그래도 너희랑 썰매장 다녀와서 많이 달라졌더라.]

[나: 달라져요?]

[김미정: 응, 그전에는 약간 미적지근했는데. 썰매장 다녀온 이후로는 오히려 떨어지질 않으려고 해. 하루종일 유민이 옆에만 붙어있으려 한다니까?]

[나: 왠지 조금 서운해보이는데요?]

[김미정: .... 그게 뭔 소리야?]

[나: 차웅씨가 미정 선생님한테도 좀 관심 줬으면 하는 거 아니에요? 혹시.]

[김미정: 어휴, 됐다. 그런 거.]

라고 하시면서도 분명 차웅씨와 다시 함께하게 되었으니 그렇고 그런 마음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고 그런’ 일들은 완전히 당사자들의 문제지만 말이다.

“옵바, 선샌님한테 다음에눈 유미니랑 짜웅 아저씨 언제 놀러오느냐구 물어바조.”

“오케이.”

5세가 요구하는 게 많았다.

저번에 눈썰매장에서 함께 놀았던 때가 꽤 인상에 남은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차웅씨와 오래 붙어있기도 했고.

유민이는 명실상부 5세의 베스트프렌드니까.

그럴만도 하다.

[김미정: 그렇지 않아도 유민이가 오누이 식당에 한 번 밥먹으러 가고 싶다고 하더라.]

[나: 정말요? 언제든 환영이에요.]

[김미정: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나는 오늘 야자 감독이라서 못 가지만 아마도 이따가 유민이랑 차차웅이 같이 밥 먹으러 갈 거다. 나 없는 김에 외식한다던데. 걔들 둘 맛있는 것좀 너가 나 대신 만들어줘.]

[나: 선생님이 만드시는 것보다 몇 배는 더 맛있게 만들어볼게요.]

[김미정: ....^^]

문자를 마쳤는데 윤슬이가 보챈다.

바짓자락을 쿡쿡 잡아당기며.

“유미니 또 온다구 그래?”

“응, 금방 또 온다고 하시던데... 언제 오는지 맞춰봐.”

“후후... 윤스리눈 탐정이니깐 다 맞춰.”

5세는 잠시

움- 움- 하고 고민하다가 답을 냈다.

“그거눈 바루 오늘이닷!”

“뭐야, 어떻게 알았어?”

“움?! 그냥 찌거서 맞처써. 대다나지?”

“대단은 한데.”

나중에 학교에 들어가서도 찍기 신공으로 시험을 치르지 않을지 조금 걱정되었다.

너무 먼 미래의 이야기지만 말이다.

“저번에 차웅씨가 칼국수 맛있게 드셨던 것 같은데.”

오늘도 한 번 해드려야겠다.

오늘의 메뉴로 팔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재료는 있으니까.

두 사람을 위한 특별 메뉴를 한 번 만들어줄까 싶다.

“윤스리두 칼국쑤 먹을 쭐 알어.”

“윤슬이도 먹을 줄 안다는 말이야?”

“그렇타!”

아무래도 3인분, 아니 5인분 만들어서 나랑 영희씨까지.

다섯이서 여유롭게 식사해볼까 싶다.

“조금 더 공들여서 준비해야겠다.”

두 사람을 위한 요리니까.

딱히 돈을 받진 않을 생각이지만.

그래서인지 조금 더 재료를 많이 얹어담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든다.

그렇게 손님들을 맞이하고.

평소와 같이 음식을 팔다보니 시간이 흘렀다.

저녁 시간이 되었다.

“움... 유미니랑 짜웅 아저씨. 언제 오지?”

“곧 올 거야 잠시만 기다려봐.”

5세는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다.

약속된 시간이 다가오자 가게 바깥까지 나가서 주위를 두리번대고 있던 것이다.

“오오! 옵바 저기 바바!”

윤슬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

두 사람이 천천히 걸어오고 있다.

윤슬이를 발견했는지 머리 위로 손을 높게 들어 붕붕 흔들어 인사한다.

5세도 마찬가지.

“짜웅 아저씨! 유미니!”

방방 뛰며 두 사람을 맞이한다.

나는 한 걸음 물러서서 두 사람이 오는 것을 지켜보는데.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글쎄 유민이와 차웅씨가 자연스레 손을 꼬옥 붙잡고 있는 게 아닌가?

미정 선생님 말씀이 맞다는 게 실감되었다.

“그래도 아직 방심하면 안 돼요. 차웅씨.”

아빠 수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나도 아직 윤슬이에 대해서 모두 알고 있는 것이 아니다. 또, 어떤 상황에 어떻게 대해주어야 하는지 헷갈릴 때도 많다.

아이를 키워보는 게 처음이니까.

나뿐만 아니라 모든 부모가 그렇겠지.

누군가의 자식이었던 적은 있어도 한때 부모였던 부모가 어디 있겠어.

어떤 아빠건 어떤 엄마건 모두 1회차인 것이다.

“그러니까 차웅씨, 아빠 수업은 이제 시작인 거예요.”

작게 중얼거렸다.

앞으로 몇십년 간 줄곧 함께할 부자와.

차웅씨의 아빠 수업이 원만히 진행되기를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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