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연말엔 윤슬이가 요리사?(2)
“그럼 이리 와봐. 우리 윤슬이 무슨 식칼 가질지 골라보자.”
“오오! 옵바의 허락?”
“허락. 근데 허락이긴 해도 식칼 사용할 때는 꼭 오빠가 옆에서 붙어있어야 돼.”
“웅. 그거눈 당연해.”
윤슬이는 만족스럽게 웃어보이며 내쪽으로 쪼르르 달려왔다. 엉덩이를 씰룩이며 들이밀더니 볼을 들이민다.
작은 스마트폰 화면을 같이 보게 되다보니 자연스레 이렇게 된다.
“움... 이거눈... 넘무 분홍이야.”
스르륵-
스르륵-
“이거눈... 넘무 머시가 업써.”
본인이 직접 스마트폰 화면을 밀어내리며 식칼을 찾는 5세. 취향이 확고한 만큼 자신에게 어울리는 물건을 얻고 싶은 것이다.
이 마음 아주 잘 안다.
나도 처음 가게를 시작하려고 했을 때 도구에 집착했다.
요리 고수는 도구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말도 있지만.
우리가 그 정도 고수는 아니니까.
“오오...! 옵바, 이거 어때?”
“어디 보자.”
윤슬이가 고른 것은 예상 외로 무난한 모양이다. 검은 손잡이에 은색날.
아주 평범한 식칼의 색배합.
그리고 특별히 날이 멋있게 디자인되어있는 것도 아니다.
“윤슬이 생각보다 무난한 걸로 골랐네?”
“움? 이거눈 이유가 이써.”
“어떤 이유가 있는데.”
“옵바가 쓰는 거랑 똑가치 생겼다.”
“...!”
생각해보면 그렇다.
내 것은 그래도 외형만 무난하고, 날붙이는 잘 듣는 것이라 생각보다 가격이 나가긴 하는데.
윤슬이가 고른 것처럼 외형이 꽤나 무난한 느낌이다.
“그럼 윤슬이는 오빠랑 비슷한 거 쓰고 싶어서 이거로 하려고 한 거야?”
“그렇타!”
이렇게 이쁠 수가!
오빠랑 비슷한 느낌의 아이템으로 맞추고 싶어서 골랐다니.
이건 사줄 수밖에 없다.
거의 결정 사항.
하지만 그 전에.
“정말 이걸로 괜찮은 거지? 다른 더 멋있는 거 있을 수도 있는데.”
“옵바랑 똑같은 걸루 하는 게 조아. 왜냐믄 윤스리 옵바 제자할 거야.”
“오빠 제자할 거야?”
“웅, 왜냐믄 윤스리한테눈 옵바 요리가 젤루 마시 조으니깐. 옵바한테 요리 배우믄 제일루 맛있는 요리 만들 수가 이써.”
윤슬이는 그렇게 말해놓고 약간 쑥쓰러웠는지 다리를 퉁퉁 튕긴다.
침대 안쪽에서 무게를 지탱하는 스프링 때문에 풀썩풀썩 튀어오른다.
동생 머리를 쓰담쓰담 쓰다듬었다.
“그럼 윤슬이가 오빠 제자네?”
“후후... 옵바 제자.”
이렇게 이쁜 말하는 동생을 두고 결제를 고민할 수 있겠는가. 나는 곧바로 구매해버렸고.
그 순간 동생의 흉흉한 미소를 곁눈질하게 되었다.
“쿠쿠... 작쩐대로당.”
작전?
“이러케 하믄 옵바가 바루 사줄 거 같아써.”
“...!”
동생이 나보다 한 수 위였다.
속아버렸다.
**
유아용 식칼이 배달되기로 예정되어있는 날.
언제나 그렇듯 목이 빠지듯 기다리는 윤슬이.
가게 문 앞에서 기웃거리며 택배의 탑차가 언제오는지만을 기대하고 있다.
“옵바! 저번에눈 아침에두 왔는데 오늘은 왜 아직두 안 오지? 혹씨 윤스리 꺼 까먹어써? 아저씨가.”
“아니, 그건 아니고. 원래 저녁에 오실 때도 있고. 아침에 오실 때도 있는 거야. 오늘은 조금 느지막이 오신다고 그랬어.”
“이잉... 알겠다...”
5세, 실망.
하지만 택배 기사님들의 스케쥴도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
주의를 돌려보기로 했다.
“윤슬아.”
“움?”
“너꺼 식칼 조금 이따가 오면 무슨 요리부터 하고 싶어?”
“요, 요리?”
“그렇지. 이제 윤슬이 도구 생기면 윤슬이가 요리할 수가 있는 거잖아.”
“오오...! 그렇타.”
신이 난 윤슬이.
자신이 요리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니 기분이 좋아진 모양.
쪼르르 내게 달려와서 손을 내민다.
“응?”
“옵바, 폰 쫌 보여조.”
“폰? 왜?”
“보구 시픈 거 있다.”
너튜브 동영상이라고 보고 싶은 걸까, 싶어서 어플리케이션까지 틀어서 줬더니.
곧장 배경화면으로 나가서 사진첩에 들어간다.
“뭘 보고 싶길래 사진을 봐?”
“사람들.”
“사람들?”
“웅, 윤스리가 요리해줄 싸람들 정한다.”
“오, 벌써부터 윤슬이가 누구한테 음식 만들어줄지 정하는 거야?”
“맞어.”
내 사진첩에는 소중한 사람들이 많이들 찍혀있다.
가게 단골들이나 할머니.
그리고 가게 오픈할 때 도와주신 호연 형님, 강필중 아저씨.
윤슬이 친구인 시후나 유민이.
그리고 우리 가게 유일한 직원인 영희씨.
“움...”
“왜 그래?”
“전부 다 해주는 게 좋케써.”
“전부 다?”
“그렇타. 우리 가게 손님들 전부 다 소중해. 그니깐 전부 다 한 번씩 요리해주는 게 좋케써.”
그렇게 말하더니 내가 음식 만드는 것을 따라하며 요리하는 시늉을 한다.
“옵바처럼 맛있게 요리해주면 손님들이 다 조아하겠지?”
“윤슬이가 음식 만들어주면 손님들이야 당연히 다들 좋아하시겠지.”
우리 가게 마스코트는 누가 뭐래도 윤슬이니까.
내 말을 듣더니 윤슬이는 흥에 겨운 모양이다.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그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다보니, 어느새 택배가 도착했다. 내게 보채서 자신 전용의 식칼의 포장을 빠르게 뜯어보는 5세.
손잡이를 쥐어본다.
“움? 옵바, 이거 맞어?”
마치 모종삽으로 땅을 팔 때, 손잡이를 쥐는 모양새로 식칼을 쥐고 있다.
당연히 오답.
“이리 와봐.”
“웅, 스승님!”
5세, 매우 진지.
미간까지 팍- 찌푸려가며 배울 마음이 가득해보인다.
윤슬이를 전용 의자 위에 세운다.
내 옆에 나란히 서서 내 칼질을 보고 배우는 윤슬이.
혹시 베일지도 모르니까, 식칼을 쥐는 오른손 말고 왼손 자세까지 그대로 보여준다.
마치 고양이가 발톱을 숨기는 것처럼 둥글게 말아내린 왼손.
손잡이를 가볍게 쥐고 재료를 부드럽게 눌러자르는 칼질.
윤슬이는 유심히 관찰하더니 그대로 따라해본다.
한 번 직접 잘라보라고, 쪽파를 쥐어주었다.
그랬더니.
툭-
...
툭-
...
시간이 조금 걸리긴 하지만 제법 폼이 나게끔 식칼을 사용하는 동생!
“생각보다 잘하는데? 우리 윤슬이.”
“그거눈 당연해. 왜냐믄 옵바 동생이자나.”
“오빠 동생이니까 잘하는 거야?”
“그렇타!”
자신감이 붙었는지 이번에는 속도도 조금 붙여본다.
툭-
툭-
툭-
빠르게 자르는 것은 아니지만 적당히 박자감 있게 잘라내는 모습.
내가 식칼을 쥐는 장면을 자주 봤기 때문에 처음인데도 저렇게 가능한 걸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은 뭐든지 빨리 배우니까.
“만죡!”
윤슬이는 자기 칼질이 그럭저럭 나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만족한 듯이 허리 춤에 손을 얹고는 웃는다.
그리곤 내게 엄지를 척 세워서 보여준다.
반대로 되돌려주었다.
“옵바, 이걸루 윤스리가 요리해줄게.”
“오빠한테?”
“웅, 옵바한테두 해줄 거야. 근데 따른 사람들한테두 해줄 거야.”
“사진첩에서 본 사람들한테 전부 다?”
“웅! 그니깐 옵바가 초대해조.”
“초대...?”
“웅! 다들 싹 다 모여서 오누이 식당에서 다 같이 밥 머그믄 대. 윤스리가 만든 걸루.”
“흠...”
그러니까 말하자면 우리 윤슬이는 연말 파티를 하고 싶은 거다. 오누이 식당에 모여서 평소에 감사했던 사람들을 모두 모아서 식사를 대접하고 싶은 모양이다.
정말 좋은 생각이다!
나도 평소에 신세진 분들이 정말 많다고 생각한다.
특히 단골분들이 자주 오시지 않았다면 지금만큼의 매출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최근 생활이 넉넉해진 것도 모두 그분들 덕분.
연말을 계기로 한 번 대접해드리면서 앞으로도 잘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리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데? 우리 윤슬이가 좋은 아이디어 떠올렸네.”
“우하하! 역씨 윤스리.”
“....”
저렇게 까부는 것만 좀 적었더라면 완벽했을 텐데.
저게 또 매력이기도 하지만.
“그럼 윤슬이 이리 와봐.”
“움?”
“같이 무슨 요리 만들어드릴지부터 정해야지.”
“잉? 윤스리는 제육이랑 가지 만들어주믄 대. 그게 조아.”
“흐음...”
두 음식은 탈락이다.
평소에 판매하는 음식이긴 하지만 윤슬이가 만들기에는 여러 모로 무리가 있다.
가령 제육의 경우 뒷다리살을 이용하는데, 아주 높은 확률로 유아용 식칼로는 잘리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는 너덜너덜한 고깃조가리가 제육 볶음의 탈을 쓴 채로 그릇에 담길 것이다.
가지의 경우 더욱 위험하다.
기름을 사용하니까 말이다.
가끔 손에도 툭툭 튀기는지라, 내 손등에도 기름 때문에 난 화상 자국이 몇 개 보인다.
윤슬이한테 이런 요리를 맡길 수는 없지, 아무리 내가 도와준다고 하더라도.
“그거 말고 색다른 것들 만들어드리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움? 왜?”
“왜냐면 자주 찾아주시는 분들인데, 또 똑같은 메뉴 드시라고 하면 질릴 거 아니야. 그래서 우리 윤슬이 밥 먹는 것도 오빠가 매일 다르게 만들어주잖아.”
“오오...! 옵바 말이 맞는 거 같아.”
5세는 설득되어버렸다.
이제 윤슬이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음식을 적당히 골라서 추천해보면 되겠는데.
대략 두 가지 메뉴가 떠오른다.
“이건 어때?”
윤슬이에게 사진을 보여주었다.
푸딩처럼 매끈하고 윤기가 흐르는 계란찜이다.
기본적으로 식칼을 사용하진 않지만 그 위에 토핑으로 올리는 쪽파를 윤슬이한테 썰게 시키면 스스로 만족하겠지.
“윤스리 계란 조아해!”
“이건 윤슬이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오빠랑 같이 이거 만들어볼까? 아마 손님들도 되게 좋아하실 텐데.”
“그게 좋케써. 근데 이것만?”
“아니, 당연히 다른 것도 있어야지.”
이번에는 고추장찌개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뭉텅뭉텅 썰린 고기도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과 어우러지는 갖은 채소들.
호박, 양파, 감자, 두부 등등.
채소 정도는 윤슬이의 유아용 식칼로도 충분히 썰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 역할을 윤슬이에게 맡기면 될 것.
“이거 저번에 오빠가 해줬는데, 윤슬이 잘 먹었잖아?”
“쪼꿈 매웠눈데 맛이써. 이거 해주믄 조아해?”
“그럼, 요즘 날이 춥잖아. 이런 날씨엔 이런 음식으로 속덥히면 좋지.”
윤슬이는 조금 고민하다가 내게 묻는다.
“근데 이거 요리하믄 윤스리가 모할 수 있어?”
“여기 찌개 안쪽 보면 채소들 되게 많이 들어가있지? 뭐뭐 들어가있어?”
“움... 두부, 파, 양파, 감자 그리구 호박두 이써.”
“그렇지? 이거 윤슬이가 전부 다 썰면 되잖아. 대신 불 쓰는 거는 뜨거우니까, 오빠가 끓이는 것만 도와주고. 그럼 윤슬이가 대부분 하는 건데. 오빠가 조금만 도와주는 거니까 윤슬이가 직접 만든 요리인 거지?”
“그렇타!”
윤슬이는 납득해준 듯하다.
모든 것을 본인 스스로 하는 것은 무리라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는 거다.
이제 여섯 살이 된다고 하더라도, 아직 애는 애다.
화구에서 불을 다루게 만들 수는 없다.
적어도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되면 모를까.
이런 것 저런 것, 천천히 알려주어야겠다.
“옵바! 그러믄 미리미리 연락해야지. 언제까지 오라구. 그래야 미리 생각을 하지.”
“그래, 알았어. 그럼 그날은 오빠 말고 윤슬이가 요리해주는 거니까 바쁘지만 않으면 꼭 와달라고까지 연락해볼게?”
“....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