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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굴러들어옴-169화 (169/200)

169화: 연말엔 윤슬이가 요리사?(3)

그렇게 윤슬이의 맹연습이 시작되었다.

평소 손님들에게 고마운 게 많았는지.

아니면 순전히 자기가 직접 요리해보는 첫 기회가 기대되었는지.

틈만 나면 부엌에 드나들며 나를 보챘다.

“옵바, 윤스리 도마 꺼내쥬.”

“윤스리 꺼 식칼두!”

“쪽파두 꺼내주라.”

그 요구에 따라 일일이 꺼내주면 윤슬이는 내 옆에 서서는 연습을 시작한다.

툭툭툭툭툭툭-

역시나 속도는 느긋하지만 제법 폼이 나게 썰었다.

무엇보다 내가 음식에 써야할 쪽파를 윤슬이가 대신 썰어주기 때문에 손이 한 번 비게 되어서 상당히 편하다.

“.... 너무 많이 써는 것도 문제긴 하지만.”

허나 어느 날은 연습에 너무 몰두하다보면 쪽파를 한 움큼 썰어둘 때가 있다.

제육이나 가지 튀김에 데코레이션 용으로 올려도 남아돌 정도로 썬 적도 있다.

그럴 땐 불가피하게 영희씨와 나, 윤슬이 셋이서 먹는 패밀리밀에 한껏 올려서 먹어치우는 수밖엔 없었다.

“우아! 옵바, 윤스리 덕분에 요리가 초록초록해져써.”

우리 가족 각각의 그릇엔 본래 제육이 담겨 있었다. 붉은 토마토 소스 기반의 제육이.

허나 지금은 마치 초원 같다.

5세의 말대로 초록초록하다.

- 원래 파를 이렇게 많이 넣는 게 맞니?

영희씨가 그런 지당한 의문을 던지자 윤슬이는 비웃으며 고사리 같은 검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리고 메트로놈처럼 가로로 젓는다.

“쿠쿠쿠... 윤스리 다 알어. 초록색 먹으믄 건강해진다구 그래써. 그니깐 이거 옵바랑 영히씨 건강에 도움 대는 거야.”

- .... 그런 건가?!

어쩐 일인지 영희씨는 납득해버렸다.

크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기도.

어차피 쪽파도 결국 식이섬유니까 소화가 잘 되게 도와줄 테지.

“맨날 쪽파만 썰게 하는 것도 문제가 있겠는데.”

한 번 다른 채소를 썰어보게 하기로 결심했다.

마침 좋은 기회가 생겼다.

“오늘 메뉴가 마침 매콤돼지감자조림이니까.”

돼지 목살과 함께 뭉텅뭉텅 썰어넣은 감자가 잘 어우러지는 요리.

간장의 경우 향이 강하니까, 반찬에 더 어울리는 양념이다. 오히려 메인으로 둘 때는 고춧가루를 사용해 조금 더 자극적으로 때려주는 맛을 연출하는 게 인기가 좋을 거다.

“암튼 감자를 많이 사용하니까 윤슬이한테 썰게 만들 수 있다는 거.”

윤슬이를 옆에 세워두었다.

식칼과 도마를 앞에 둔 채로 대기.

그 옆에서 나는 필러로 감자 껍질을 까서, 하나씩 동생에게 내어줄 계획.

훌륭한 분업이다.

“잉? 옵바, 문제가 있슴미다.”

“무슨 문제가 있는데?”

“윤스리가 감자 전부 다 깎아야 대는데. 옵바가 그거 껍질 까버리면 어뜨케 해.”

“이건 위험해서 안 돼.”

“에엥?”

윤슬이는 대놓고 아쉬운 티를 팍팍 낸다. 하지만 감자 껍질 필러는 정말정말 위험하다.

요식업 현장에서 사고를 일으키는 요리 도구 1순위 자리를 다툴 정도다.

다섯 살 손에 이걸 맞기는 건 바보 짓이다.

“오빠랑 약속했잖아. 오빠가 위험하다고 말하는 건 안 하기로. 그치?”

“아앗, 맞다. 약쏙은 약쏙.”

윤슬이는 금세 깔끔히 포기했다.

식칼 연습을 하며 몇 가지 규칙을 정했다.

요리를 준비할 땐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내가 허락하지 않은 일은 절대로 안 하기로 했다.

그래서 이렇게 깔끔히 포기하는 것이다.

“흐앗! 그러믄 윤스리 감미다!”

5세는 잔뜩 기합을 넣고.

감자를 왼손으로 지지.

식칼을 쥔 오른손으로 썰려고 하는데.

“잠깐... 영히씨! 도움!”

- .... 하아, 오늘도 또?

“그렇타, 영히씨눈 윤스리 후배니깐 이 정도눈 보여조야지...!”

- .... 그래.

포기한 영희씨는 인간 모습에서 아주 잠깐 동안 고양이의 모습으로 되돌아간다. 그리곤 순순히 윤슬이 손 위로 자신의 앞발을 올려준다.

면밀히 관찰하는 5세.

그리고는 자신의 왼손과 비교해본다.

“옵바가 식칼루 요리할 때눈 고양이 손처럼 이케 둥글게 말라구 그래써.”

- 근데 매일 확인하면 나도 귀찮다구...

“안저니 중요하니깐 이건 어쩔 쑤가 업따! 그치만 영히씨 베리베리 땡큐거둔.”

베리베리 땡큐라니.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배웠는지.

자신의 고양이 손 모양을 재확인한 5세는 이번에야 말로 감자 썰기 작업에 착수한다.

쓰으윽- 툭!

쓰으윽- 툭!

확실히 썰긴 어떻게든 썰고 있다. 익은 감자가 아니라 생감자이기 때문에 강도가 어느 정도 있을 텐데.

우리 윤슬이가 또래에 비해 악력이 좋은 편인 건지 제법 잘 썰고 있다. 아마도 근래 칼질을 연습하거나 냉장고와 거대한 사투를 벌이는 과정에서 힘이 많이 붙은 모양.

“옵바! 어때!”

윤슬이는 감자를 반으로 자르고는 내게 보란 듯이 자랑한다.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잘 썰었네? 이제 감자 나란히 놔두고는 다시 한 번 반으로 잘라 볼까?”

“웅!”

내 말대로 이등분된 감자를 가로로 두고 세로로 칼질을 한 번 내리친다.

쓰으윽- 툭!

감자가 사등분되었다.

다시 한 번 윤슬이는 감자를 양손에 각각 두 조각씩 들고 내게 자랑한다.

“어떤데!”

“대단하네?”

“쿠쿠쿠... 대다나지!”

“응! 감자를 썰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역시 윤슬이다.”

“우하하!! 더 칭찬해조! 빨리!”

“...?”

“잉, 미아내. 윤스리 흥분해따. 침착... 침착...”

5세는 빠른 자기성찰에 성공했다.

다시 침착하게 감자 썰기 작업으로 되돌아갔다.

침착함은 중요한 덕목이다.

쑤우욱- 턱!

도마를 강하게 내리치는 5세의 식칼 소리와.

서걱서걱-

감자 껍질을 깎아내리는 내 손에 들린 필러 소리가 몇 번 교차하다보니 10분 정도 흘렀다.

이윽고 5세는 포기해버렸다.

“옵바... 감쟈는 넘무 힘들다. 이고 바바.”

윤슬이는 내게 손을 펼쳐서 보여준다.

칼을 쥐었던 손이 붉은색으로 물들어있었다.

힘을 주어서 칼질을 하다보면 있을 수 있는 일이긴 한데.

혹시 부을까봐 걱정되기도 한다.

“많이 아파?”

“아니 갠짜나. 근데 힘이 들어.”

“그럼 이제 쉬어. 많이 잘랐다. 수고했어 우리 윤슬이.”

“우하하! 더 칭찬!”

“됐으니까, 들어가.”

“실맹...”

저런 농담을 던질 정도라면 아마 무사한 것 같다.

감자를 자르게 시키기엔 약간 무리가 있는 것 같다. 감자보다는 경도가 낮은 양파나 두부, 파 같은 걸 자르게 시키는 게 더 낫겠다.

“어차피 썰어야 될 음식은 많다.”

손님들을 대접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한 그릇, 한 그릇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니.

한 메뉴 안에만 몇 가지에서 수십 가지 재료가 들어가기도 하는 것이다.

개중 윤슬이가 자를만한 걸 내어주면 될 것 같다.

“이제 사흘 뒤인가.”

사흘 뒤.

주말 저녁에 가게를 하루 닫기로 했다.

장사를 안 한다는 뜻이고, 우리 남매가 출근 안 한다는 것은 아니다.

평소에 신세 지는 사람들을 위해 만찬회를 열 예정이다.

만찬이라 해봤자, 뷔페식으로 많은 요리를 준비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모두 기뻐해주실 것이라 믿는다.

“우리 윤슬이가 요리하는 날이니까.”

**

이윽고 당일이 되었다.

영희씨가 가게를 보고 있는 동안 나와 윤슬이는 잠시 근처의 마트에 방문하여 식재료를 고르기로 했다.

“감쟈, 두부, 호박, 파, 파, 파... 파? 옵바, 그리구 모더라?”

“양파 빼먹었네.”

“맞어. 양파.”

윤슬이는 벌써부터 열정이 넘친다.

마치 사냥하는 작은 맹수처럼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식재료를 손에 넣으려 하고 있다.

계란찜에 사용할 계란과 쪽파는 어차피 식당 냉장고에 차고 넘칠만큼 있으니까.

“중요한 건 찌개 재료인데.”

“옵바, 찌개 재료 중에 제일 중요한 게 모게?”

“윤슬이가 오빠한테 문제 내는 거야?”

“웅, 쿠이즤~!”

저 ‘쿠이즤’는 언제 버릴 거지.

개인적으로 밀고 싶은 유행어일까.

재미는 없지만 구태여 모르는 척해주는 게 오빠의 역할이라는 것이겠지.

“글쎄, 양파?”

“땡!”

“.... 땡이라고?”

“따른 정답이 있슴미다.”

“다른 정답...?”

우리가 요리하는 것은 채소와 고기가 듬뿍 들어간, 홈메이드풍의 고추장찌개다.

이때 찌개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고추장이나 고춧가루가 아니라 사실 양파다.

양파의 단 맛이 치고 올라오면서 풍미를 살려주는 게 고추장찌개의 참맛인 건데.

내가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있는 건지 모른다.

“감자?”

“땡...!”

사각사각 씹히는 감자도 매력 중에 하나인데.

덧붙이자면 찌개에 들어가는 감자는 푹 익지 않는 편이 좋다.

너무 익혔다가는 숟가락으로 집어넣었을 때 사르르 잘려버려 국물에 전분이 풀리니까.

그럼 찌개 국물의 맛이 퇴색된다.

“오빠는 정답을 모르겠다.”

하나 하나 모두 중요한 재료들이다.

두부도 버리기 어렵고.

호박 또한 나름의 역할이 있다.

“모야... 당연히 고기지, 옵바.”

“그냥 고기가 먹고 싶은 거였구나.”

“그렇타! 마니 사야게써.”

너무 복잡하게 생각했구나.

확실히 고추장찌개이긴 하지만, 지방보다 살이 많은 부위를 사용하면 돼지고기가 그 맛을 더욱 풍부하게 해주기도 한다.

물론 그런 차원에서 동생이 얘기한 건 아닌 것 같고.

그냥 찌개에 고기를 많이 때려넣자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나쁘지 않지.”

어차피 판매하는 음식이 아니고 대접하는 음식이니까. 만약 판매하는 정식 메뉴였다면 고기 비율을 마음대로 늘리긴 어렵다.

그랬다간 음식 본연의 맛이 사라진다.

하지만 무료로 대접하는 음식의 경우 전혀 다르다. 오히려 고기가 듬뿍듬뿍 들어가있으면

- 뭐야, 공짜 음식인데 왜 이렇게 고기가 푸짐해!

라면서 좋아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적당히 비율은 조절해야겠지만.

“윤슬이 의견대로 그럼 고기 푸짐하게 넣어볼까?”

“그게 좋케써.”

난 과감하게 장바구니에 고기를 여러 팩 담아버렸다. 평소라면 정육점에 들렀겠지만, 오늘 정육점이 비정기 휴일이라 부득이하게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목살을 5세가 만족할만큼 담고는 채소 코너로 도착했다.

작게 흥얼거리는 콧노래가 두부 코너 앞에 도착할 때까지 끊이지를 않았다.

“흥흥흥~ 고기 마니~ 흥흥~ 고기 마니마니~.”

누가 보면 고기 안 먹인 줄 알겠다.

적절한 단백질 섭취를 위해 윤슬이한테는 매일 같이 육류를 먹이고 있는데 말이다.

[햇님: 역시 주현 오라버니, 단백질이 함유된 식단의 중요성을 잊지 않으시는군요.]

라며 오누이에게도 인정받았을 정도다.

“두부 종류가 디게 많으다. 옵바.”

“원래 두부가 오래된 음식이라 그래.”

“잉? 오래 되므는 상하자나. 그럼 못 머거.”

“.... 그런 의미가 아니었는데.”

윤슬이의 귀여운 착각에 두부를 판매하시던 직원분께서 작게 웃음 지으신다.

- 두부가 오래 됐다는 건 역사가 오래 됐다는 거야. 두부라는 음식이 이 세상에 생겨나서, 사람들이 챙겨먹은 시간이 길다는 뜻.

“움? 그런 겅가?”

5세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무언가를 떠올렸단 듯이 손가락을 하나 치켜든다.

“윤스리눈 아직 다섯 살이라서 싱싱해. 별루 오래 안 돼써.”

본인을 음식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모양.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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