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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굴러들어옴-177화 (177/200)

177화: 선물(1)

결국 내 생일은 약식으로 축하할 수밖에 없었다.

윤슬이의 선물을 받게 된 것이 꽤나 갑작스럽기도 했고. 장사를 하는 날이었기 때문에 무언가 성대한 파티를 벌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많이 감동받았다.

몰래 이런 준비를 해주었다니 말이다. 그것도 내년에서야 여섯이 되는 동생이!

또, 영희씨는 자그마한 케이크를 사다주기도 했다. 불을 붙일 초와 함께 말이다.

그간 내게서 돈을 받아간 이유를 그제서야 눈치채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은 크리스마스니까 재미있게 놀아야지!”

“옳쏘!”

크리스마스는 쉬기로 했다.

원래 가게 휴일인 날짜와 겹치기도 하고 말이다.

인구 유동이 많은 날인지라 일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날이긴 하다. 하지만 쉬는 날엔 제대로 쉬어주는 게 롱런하는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유민이네 식구들을 불러 음식을 만들고, 파티를 즐기기로 했다. 시후네도 부르려고 했는데, 애석하게도 가족끼리 이미 제주도로 여행을 가셨다고 했다.

영희씨한테는 아쉽게 되었다.

“5세, 오늘의 비밀 병기는 준비되었는가?”

“완벽함미다!”

“어디 한 번 마지막으로 체크해보도록 하지.”

“이거 보게!”

윤슬이는 빙글- 제자리에서 돌며 내게 자기 복장을 자랑한다. 빨간색과 흰색이 배합된,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원피스. 울 재질로 제법 따듯해보이기도 하며 가슴 언저리에는 흰색으로 뭉게뭉게 올라온 솜털이 띠를 이루어 몸을 한 바퀴 두르고 있다.

무엇보다 솜방울이 꼭대기에 달린, 산타 모자는 복장의 정체성을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

“바로 산타 윤스리닷!”

“어제 뒤늦게라도 배달 와서 다행이다 그치?”

“움...! 이거 안 왔으믄 큰 일 날 뻔해써. 기대하구 있었눈데.”

- .... 기대하는 건 좋은데, 왜 나는 루돌프인가?

“영히씨눈 붕붕이 1호를 타믄서 맛있는 요리를 배달해주니깐, 당연히 루돌프. 그리구 윤스리두 태워주자나, 자전거 뒷칸에.”

- 그렇긴 한데.

영희씨는 자기 복장에 어딘가 불만이 있어보인다. 드물게도 입술을 비죽이고 있다.

삐졌을 때의 윤슬이처럼.

“너무 그러지마. 대신 나도 분장했잖아.”

- 그래. 사실 주현이 복장이 제일 이상하긴 하지?

“움? 옵바 복장이 젤루 멋이 좋은데.”

- ??? 저게?

영희씨는 눈매를 좁히며 나를 노려본다.

무리도 아니다.

왜냐면 난 선물 꾸러미로 분장했으니까.

대충 영희씨가 루돌프로 전열을 잡으며, 산타 윤슬이를 이끌고.

산타 윤슬이는 내 몸뚱아리에서 선물을 꺼내는 컨셉인데.

놀라운 사실은 이중에서 내 복장이 제일 고퀄리티라는 점이다.

배꼽 부근에 제법 거대한 주머니가 있는데, 무려 이 주머니를 수납용으로 활용 가능하다는 게 포인트다.

선물 꾸러미의 주둥아리처럼 생긴, 이 주머니에서 선물을 꺼내어 쇼맨십을 발휘할 수 있게끔 복장이 설계된 것이다!

“사실 나도 산타 복장을 하려고 하긴 했는데.”

윤슬이에게 양보하게 되었다.

이런 느낌으로 분장을 하게 된 과정은 이러하다.

**

크리스마스가 되기 일주일 정도 전.

하루 장사를 마치고 귀가하던 어느 밤의 일이다.

성탄절 일주일 전쯤 되면 거리의 분위기는 자연스레 무르익는다.

우선 각기 다른 캐롤이 들려온다. 다양한 언어로. 겨울 날씨가 싸늘한 가운데 귓가에 그런 노래들이 울리면 감성이 센치해지는 것이 이치다.

또, 곳곳의 가게들은 이른바 ‘명절 마케팅’마냥 크리스마스 느낌을 어떻게든 풍겨보겠다며 인테리어와 가게 외관을 붉은색으로 점철된다.

혹은 주렁주렁 별이나 황금 종 같은 것을 걸어두어 눈길을 끌기도 한다.

그런 분위기에 이끌렸기에 윤슬이에게 물었다.

“윤슬이는 크리스마스에 산타 할아버지가 어떤 선물 가져다주면 좋겠어?”

크리스마스, 하면 어린이들이 떠올리는 것은 보통 무엇일까? 당연히 산타 할아버지와 그의 선물 꾸러미에 들어있는 선물일 것!

이건 만국 공통 사항이기에, 굳이 윤슬이에게 산타를 아느냐 모르느냐 하는 질문도 하지 않았다.

헌데 내 동생의 대답은.

“움? 산타 할아부지?”

“응, 산타 할아버지. 윤슬이도 알잖아? 크리스마스 되면 산타 할아버지가 윤슬이 자고 있을 때 찾아오셔. 그래서 윤슬이가 제일로 좋아하는 선물 하나 몰래, 머리 맡에 두고 가시잖아.”

나의 완벽한 작전.

이렇게까지 빌드업이 잘 짜여진 질문은 예상 가능한 답변을 불러오기 마련.

혹여나 동생이 산타에 대해서 잊고 살았거나,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물어본다면 적어도 자신이 지금 무얼 원하고 있는지쯤은 말해줄 것이 틀림 없었다.

그럴 터였는데.

“그거 다 그짓말이자나.”

“?? 뭐라고?”

“산타 할아부지 그짓말이자나. 윤스리두 이젠 다 알어.”

“...!”

간과했다.

내 동생의 또래 아이들을 아득히 뛰어넘는 통찰력!

이미 산타가 가상의 인물이란 것쯤은 꿰 차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건 한 방 먹었다.

그뿐만 아니다.

갑자기 우리 옆을 걷고 있던 모자가 동요하기 시작한다.

- 어, 엄마... 진짜루 산타 없어?

- 아니야! 산타 할아버지가 왜 안 계셔.

- 저 애가 없다잖아... 엄마가 어제 말했잖아. 산타 할아버지 지금 다음주에 크리스마스 있으니까, 선물 준비하느라 고생하구 있다구. 그거 다 거짓말이었어?

- 아니라니깐, 얘는!

- 엄마 거짓말쟁이! 이젠 다신 안 믿어!

돌발 상황 발생!

한 가정의 어머니가 갑작스레 거짓말쟁이가 되었다.

마음이 아프다. 윤슬이도 딱히 악의를 갖고 한 말은 아닐 텐데. 사태가 이렇게 되다니.

하지만 육아의 길은 멀고도 험한 법.

잘 이겨낼 수 있으리라 믿고, 나는 윤슬이를 데리고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하여 되도록 빠르게 집에 도착했는데 윤슬이가 나를 붙잡고는 물었다.

“옵바, 산타가 없는 게 그렇게 충격인가?”

“글쎄... 산타가 없다는 게 충격이라기보단 원래 믿고 있던 사실이 거짓이라는 게 믿기 힘들었던 게 아닐까?”

“움?”

“예를 들면. 사실 영희씨가 고양이가 아니라 강아지였다고 생각해봐.”

“추, 츙격!”

“그런 느낌이지.”

“한 번에 이해해써!”

- 잠깐. 만약 그랬다면 내 이름이 고영희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얘기인가?

“아마도? 하지만 그랬다면 강아지와 비슷한 또 다른 이름이 되었겠지?”

- .... 멀쩡한 이름을 받을 수 있는 세계선은 없는 모양이군. 그냥 고영희에 만족할게.

영희씨는 한숨을 내쉬곤 침대에 드러누워버렸다. 그리고는 좌우로 뒹굴대는 게 평소와 아주 똑같았다. 그다지 심적 타격이 큰 것 같진 않다.

윤슬이는 그 모습을 보고 쿡쿡 웃고는 외투를 차분히 벗어 제자리에 걸어두었다.

그리고는 씻을 준비를 하다가,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다시 내 앞으로 다급하게 달려와서는.

“옵바 그러믄 유미니랑 시후는 어떻지?”

“유민이랑 시후?”

“응! 유미니랑 시후는 산타가 있다구 생각할까?”

“글쎄.”

윤슬이가 믿지 않는다면 그 아이들도 믿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사실 여섯 살이랑 일곱 살이라면 아슬아슬하게 믿을만한 시기인 것 같기도 하고.

아직 예닐곱 살의 아이를 길러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나는 어땠는지 돌이켜봐도 너무 옛날이기도 하고 말이다.

“윤스리의 생각이 있다.”

“어떤 생각이 있는데?”

“유미니랑 시후가 아직까지두 산타를 믿는 거는 아주 큰 일이야.”

“큰 일이라...”

그렇게까지 큰 일은 아닌 것 같지만.

한 번 5세의 웅변을 들어보자.

“왜냐믄 세상은 넘무 험해. 윤스리가 칠처넌 버는데두 엄청 힘들어써. 근데 산타 할아버지 같은 거를 믿다가는 넘무 순진한 어른으루 자라나버려! 누구한테 어떤 사기를 당할지 몰른다!”

“....”

대체 이 5세의 사고 관념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 것인가. 요 1년 간 매일 같이 붙어있었는데도 가끔 어지러워지는 순간이 있다.

“그니깐 윤스리가 보쓰로서 제대루 교육을 해줄 필요가 이써.”

“산타가 없다고?”

“응. 그러니깐 그런 점에서 윤스리가 산타가 되겠다.”

“???”

논리가 갑자기 비약적으로 문장을 뛰어넘은 것 같은데.

왜 그런 생각을 한 거지?

내 표정을 읽었는지 윤슬이는 움- 움- 거리며 단어를 고르기 시작한다.

“그니깐! 윤스리가 산타가 돼서 유미니랑 시후한테 알려주는 거야. 산타 할아부지는 사실 없구. 대신 윤스리처럼 이쁘구 머싯는 어른이 나타나서 선물 대신 주는 거라구.”

“아아... 그런 거였어? 근데 그러면 유민이랑 시후를 크리스마스에 만나야겠네.”

“쿠쿠쿠... 그거눈 매우 간단. 왜냐믄 유미니랑 시후는 윤스리 부하니깐 부르면 당연히 와야지 댄다!”

라고 당당히 선언했으나.

연락을 돌려보니 시후네 가족은 애석하게도 이미 제주도행 비행기 티켓을 예매한 뒤였다.

5세는 크게 실망했다.

“그치만 유미니랑 짜짜웅 아저씨랑 미정 선샌님은 오는 거자나? 같이 오누이 식당에서 제일루 맛있는 옵바 음식 먹으면 기분이 좋아질 거야.”

“그래, 뭐 그 정도쯤이야.”

크리스마스 파티라면 분명 여럿이서 하는 게 즐거울 테니 말이다. 특히 최근 유민이네 집은 여러 모로 회복되긴 했지만 차웅씨가 다소 서툰 부분이 있어 미정 선생님에게 한 소리 듣는 일이 이따금씩 있다고 한다.

그런 소식도 들려오니 한 번 미정 선생님과 차웅씨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럼 오빠가 맛있는 요리 준비해야겠네? 윤슬이도 맛있는 거 먹는 거 좋아하구. 또 유민이네 가족도 오니까?”

“그렇타! 그리구 윤스리는 산타 될 거야!”

왠지 산타가 되는 것에 집착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5세.”

“윤스리 5세!”

“너 그냥 산타 분장이 하고 싶은데, 그 구실로 유민이랑 시후 핑계댄 거 아니야?”

“정답이다!”

“....”

이렇게까지 당당하면 되려 당황스럽다.

“산타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었어?”

“없다구는 생각. 하지만 산타가 없다구 멋까지 없는 것은 아님! 산타는 짱짱 머시 있따!”

그런 거였나.

윤슬이 입장에서는 아이들의 꿈을 지켜주기 위해 선물을 나누어주는 산타의 개념이 멋있게 느껴졌는가보다.

그렇다면 이렇게 집착하는 것도 우리 5세의 성격을 고려해보면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다.

“옵바, 지금 윤스리가 입을 수 있는 산타 옷이 있는지 찾아보믄 좋케써.”

“오냐.”

윤슬이의 리퀘스트대로 인터넷을 당장 검색!

이미 5세의 다양한 복장(상어 수영복 및 레이싱 자켓 등)을 구입한 전적이 있으니, 신체 스펙은 꿰고 있다.

[성탄절 코스프레 분장 의상]

검색을 해보자 산타 복장이 역시나 가장 맨위에 전시된다. 링크를 타고 들어가자, 유아용부터 성인용까지 사이즈가 다양한데.

의외로 내 시선을 끄는 것은 그 밑에 있는 추가 상품이었다.

[성탄절 코스프레 특별 분장 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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