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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굴러들어옴-178화 (178/200)

178화: 선물(2)

“특별 의상이라고 하면 뭐가 있으려나.”

한 번 아래로 내리며 훑어보니, 그다지 많은 종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리본이나 방울들을 주렁주렁 달아 새로운 모양으로 어레인지한 버전들이 연달아 보이는데.

이런 것들은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는다.

오히려 눈에 띠는 것은 루돌프 의상이다. 루돌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빨간코와 늠름한 뿔까지 나름 구현되어 있다.

“옵바.”

“응?”

윤슬이가 루돌프 의상을 발견하고는 내게 귓속말했다.

영희씨한테 들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이거 하나 갖구 와서 영히씨한테 입혀주믄 대게써.”

“영희씨한테?”

“웅, 왜냐믄 영히씨는 우리 가게 배달원이니깐.”

“흠...”

좋은 생각이다!

나도 동생 장단에 맞춰서 장난을 치고 싶었다. 분명 이 사실을 알면 좋아하진 않겠지만.

그럼에도 영희씨는 틱틱대면서도 해줄 건 다 해주는 스타일인지라, 분명 루돌프 복장을 입고 함께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석해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재빠르게 장바구니에 담아버렸다.

“그럼 오빠는 윤슬이랑 같이 산타 분장하면 되겠다.”

“땡.”

“.... 땡?”

“틀렸슴미다.”

틀렸다니.

정답이 따로 있다는 뜻인가.

윤슬이는 내게 본인이 원하는 정답을 알려주려는 듯 스마트폰 화면의 한군데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옵바는 이걸루.”

“이건?”

루돌프 복장을 넘어.

특별 의상이 전시된 페이지의 최하단에는 정말로 특이한 복장이 하나 있다.

“선물 꾸러미 분장 세트...?”

“옵바는 선물이 대는 거닷!”

“??”

갑작스런 5세의 제안.

윤슬이의 제안도 제안이지만 복장 디자인 자체가 워낙 희귀하다보니 저절로 눈길이 갔다.

마치 야구장의 오래된 마스코트 인형처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부푼 몸체는 솜으로 채워져있다고 한다.

무릎부터 쇄골까지가 마치 항아리나 부풀어오른 호주머니처럼 둥글었다. 빨간 공의 형상.

그뿐만 아니라 기능 또한 컨셉에 충실하다.

“배꼽 부근에 물건을 수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머리와 팔다리 구멍에 여유 공간을 남겨 두었기에 관절을 살짝 굽히면, 완전히 숨길 수 있었다. 그 구멍들엔 각각 지퍼도 채울 수 있어 멀리서보면 정말로 거대한 선물 꾸러미처럼 보일 것 같았다.

솔직히 루돌프 의상보다 이게 더 땡기긴 한다!

“아주 좋은데?”

“후후... 옵바는 선물. 윤스리는 산타. 그리구 영히씨가 루돌프? 이거눈 최강이야.”

최강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5세의 계획은 제법 마음에 들었다.

태어나서 한 번쯤 산타 코스프레는 해볼 수 있다. 때와 상황에 따라서 말이다. 하지만 산타가 들고 다니는 선물 꾸러미 코스프레를 해본 사람은 정말로 적을 것이다.

그 희소성은 탐이 났고. 나는 주저 없이 돈을 썼다.

**

“오오! 옵바, 저기 멀리서 유미니랑 선샌님이랑 짜짜웅 오고 있어. 준비해!”

“확인.”

- 라져.

우리는 하나의 작전을 세웠다.

간단한 이벤트다.

일년에 단 한 번 있는 크리스마스 이벤트이니만큼 그 시작을 성대하게 하고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차피 식당에서 하는 크리스마스 이벤트라면 기껏해야 먹고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밖에 못하지 않는가.

이왕 크리스마스 컨셉에 맞는 분장 의상을 산 김에 그 임팩트를 강하게 남기고 싶던 게 윤슬이와 나와 영희씨의 바램이었다.

“영히씨! 빨리.”

- 지금 이 자세 완벽해?

“장난 아니야. 완져니 고양이 아니구 루돌프가 대써.”

우리 작전의 컨셉은 간단하다.

루돌프 영희씨를 타고 나타난 산타 윤슬이가 유민이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전해주는 것이다.

물론 선물을 꺼내는 공간은 내 배꼽이다!

- 이힝힝힝!

“루돌프는 그렇케 울어?”

영희씨는 리얼리티를 살리고자 루돌프 울음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예상대로.

툴툴대면서도 상황에 곧바로 적응하는 고성능 고영희였다.

- 나, 나도 모른다. 어떻게 울지?

“그럼 동물처럼 울지 말구. 차라리 말을 할 수 있다눈 설정으루 갑시다.”

- 그럼 그렇게 할게.

5세는 설정을 급조하기 시작했다.

B급 영화 감독의 자질을 보인다.

이윽고 오누이 식당의 유리문 앞에 유민이네 가족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사족보행 루돌프 영희씨의 등에 올라탄 윤슬이가 문 안쪽에 떡하니 등장했다.

어른 두 명은 둘째치고, 유민이는 소스라쳤다.

- 흐이이익...! 이게 모야!

“산타 윤스리에오. 홉홉홉.”

- ???

5세는 혼신의 연기를 펼쳤다.

어르신들 특유의 몽글몽글하고도 부드러운 발음을 표현하기 위해 입술을 오므렸다.

B급 영화 감독의 자질뿐만 아니라 배우의 자질도 갖추었다!

- 사, 산타 윤슬이??

“홉홉홉. 우리 유미니 어린이. 윤스리 부하도 해주고. 엄마 아빠 말도 잘 듣고. 착하게 지냈지요?”

- 응, 윤슬이 부하도 했고! 엄마랑 아빠랑도 잘 지내써!

“아주 착한 어린이네오! 홉홉홉홉! 착한 어린이는 선물을 받아야겠지요. 홉홉!”

5세는 산타 특유의 웃음소리를 내며 분장용 수염을 어루어만졌다. 그리고는 내 배꼽에 손을 푸욱 찔러넣어 유민이의 선물박스를 꺼내주었다.

유민이는 진짜로 선물까지 있을 줄은 상상하지 못했는지 놀란 표정이다.

- 이거 모야? 선물?

“선물은 유미니가 제일루 갖구 싶어하던 거에오. 홉홉.”

- 우와...! 진짜 산타 같다! 원래 산타는 제일루 갖구 싶은 거 갖다준다구 그러던데.

“우리 유미니는 산타를 믿고 있었군요? 홉홉...”

5세가 두 눈을 빛낸다.

부하를 참교육할 기회를 잡은 것이다.

애초 이 기획은 부하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

윤슬이가 직접 산타 분장을 해보이면서, 사실 다른 산타들도 지금 상황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사람이 분장한 것이라 설명해줄 계획이다.

그런데.

- 으응? 나는 산타 안 믿어.

“.... 움?”

- 그거 다 거짓말이라구 엄마가 말해써. 맨날 크리스마스 선물 갖다주는 거 사실 엄마라구. 그니깐 엄마한테 고마워하라구 알려줬거든.

“호, 홉홉...”

5세 당황.

설마 유민이가 산타가 없다는 사실을 자신과 마찬가지로 일찍이 인식했을 줄은 예상 못한 모양.

유민이 옆에 서 계신 미정 선생님은 브이 사인을 그리며 본인의 훌륭한 육아 성공도를 어필하고 계신다.

“그, 그럼 다행이군뇨, 홉홉. 그럼 윤스리 산타는 역할을 다 했으니, 이만....”

윤슬이는 빛의 속도로 뒷걸음질 치며 자리를 벗어나려 하고 있다. 본래의 계획에서 틀어졌기 때문이다.

원래대로라면 유민이가 산타가 원래 없는 것이었냐고 되묻는 것을 5세의 훌륭한 논리로 설득.

그리고 산타가 가져다주던 선물은 사실 모두 집안의 어른들이 준비해준 것이니 감사 인사를 전해야 마땅하다!

라고까지 설명해주고 유민이가 이에 순순히 납득해주는 것이 계획된 수순이었는데.

그 모든 것이 망가졌으니, 원.

- 근데 주혀니 형아는 어디 갔어?

“호, 홉홉?”

- 그 산타 웃음소리 그만하구, 이제. 주현이 형아가 아까부터 안 보이는데?

유민이가 웬일로 정곡을 찔러온다.

사실 방금의 계획이 틀어지면서 나의 등장 타이밍까지 완벽히 틀어져버렸다.

나는 지금 모든 지퍼를 잠그고, 거대한 선물 꾸러미로 분장한 상태다. 아마 차차웅씨와 미정 선생님은 내 존재를 눈치채신 것 같지만.

유민이는 모르는 것 같다.

원래대로라면 윤슬이가 신호를 주는 타이밍에 지퍼를 열고 등장하여 한 번 놀라움을 주려고 했는데.

유민이가 산타가 없단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터라 흥이 깨졌고.

타이밍도 완전히 놓쳐버렸다.

- 흠흠, 유민아? 혹시 이 선물 꾸러미 옮기는 것좀 도와줄래?

- 이 꾸러미여?

- 응. 이게 너무 커서 무겁네? 그래서 유민이처럼 튼튼한 친구가 도와줘야 될 것 같은데.

- 알게써여.

착한 유민이의 심성을 노리고, 과감한 시도를 해보는 영희씨. 루돌프 복장을 하고선 이족보행을 시전하더니 내 쪽으로 다가와 밀치는 시늉을 한다.

영희씨가 만들어준 기회다! 지금 이 타이밍에 등장을 하라고, 내게 신호를 보내준 것이다.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하여 과감히 팔다리를 구멍 밖으로 빼내곤 머리 구멍 쪽의 지퍼를 열었다.

그리고 고개를 빼꼼 내밀고 유민이를 응시했다.

“.... 사실 내가 선물 보따리였다. 이건 몰랐지?”

- ??? 흐엉?

유민이는 충격적 전개에 약 5분 간 웃음와 함께 말을 잃었고.

차차웅씨와 미정 선생님은 쿡쿡 웃으며 우리 세 사람의 사진을 찍기 바빴다.

길고 긴, 크리스마스의 밤이 될 것 같은.

그런 예감이 들었다.

**

흐트러진 분위기를 다시 정돈하고는 식사 타임으로 넘어왔다. 내가 요리하는 내내, 미정 선생님과 차웅씨는.

[.... 사실 내가 선물 보따리였다. 이건 몰랐지?]

내가 깜짝 등장하는 장면이 촬영된 영상을 몇 번이나 재생하며 낄낄거리셨다.

반면 그 장면에 함께 찍힌 유민이는 조금 바보 같은 표정으로 나왔기 때문에 의기소침해지기도 했다.

다행히도 옆에 산타 윤슬이가 있었기 때문에.

“홉홉! 유미니 걱정할 필요 없어요. 어리니들은 실쑤할 수도 있는 거에오.”

라며 위로를 해주었다. 실질적으로 위로가 되는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유민이는 산타 복장을 한 귀여운 윤슬이에게 완전히 홀린 모양.

다소 분노할 뻔했지만.

크리스마스니깐 참기로 했다.

“크리스마스 음식 도착이요.”

오늘의 요리는 정석을 따랐다.

원래 서양식은 잘 안 파는데, 오늘은 판매용 음식이 아니기도 하고.

크리스마스는 원래 서양 명절이니, 관습대로 서양 음식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살치살 스테이크와 굴을 사용해서 만든 파스타.

두 종류다.

- 아니! 우리 제자가 코스프레만 잘하는 게 아니라 서양식까지 만들 줄 안다는 말이야?

“그만 놀리시죠.”

- 귀여워서 그러지. 아아... 나도 유민이 산타 복장 하나 사둘 걸 그랬다. 기말고사 점수 정리한다고 정신 빼놨던 내가 바보지! 내년에는 꼭.

- ....

본인의 의사와 전혀 상관 없는, 코스프레가 예약된 유민이는 입을 다물고 운명을 받아들이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아들의 등살을 차웅씨가 두들겨주었다.

대충 저 집안의 대화 래퍼토리가 상상되는 대목이다.

“스테이크부터 먼저 한 입 맛 보세요.”

살치살 스테이크는 정갈하게 잘라두었다.

레스팅까지 막 마쳤으니, 지금 먹으면 딱 맛이 좋을 때다. 굽기 별로 네 덩이를 구웠는데.

미디엄 레어부터 웰던까지다.

두 명의 베이비들을 위해 웰던을 만들었지만, 어른들은 보통 미디엄 레어부터 미디엄 웰던까지를 선호한다.

이를 고려한 굽기 정도였다.

미디엄 레어로 구워진 고기의 단면 사이로 육즙과 함께 붉게 흘러내리는 핏물이 은은했다.

- 으으... 저게 모야.

그걸 보고 유민이는 살짝 질색했지만.

반대로 5세는 침을 흘렸다.

“쿠쿠쿠... 저거눈 소돌이.”

여름날의 농돌이가 떠오른다.

5세는 아무래도 본인이 맛있게 즐길 음식 뒤에 ‘–돌이’를 붙이기로 마음 먹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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