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생이 굴러들어옴-179화 (179/200)

179화: 선물(3)

“윤슬이는 레어 말고, 웰던으로 먹자.”

“웨, 웨루 던?”

“응, 핏기 있는 거 말고. 여기 잘 익은 쪽으로.”

“우우... 윤스리 피가 있는 쪽이 조아.”

“흠... 그래? 왜?”

보통은 아이들에겐 웰던을 먹이긴 한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우선 아이들의 경우 소화기관이 약하기도 하고.

또, 핏기가 도는 고기를 무서워한다. 이는 우리 집 5세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닌 듯.

한데 소화기관이 약하다고 핏기가 있는 고기를 먹으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외려 더 익은 고기들이 질기기 때문에 소화 자체는 어려울 수도 있다. 조직감이 단단하니까.

물론 이에 관해서는 견해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어차피 소니까 기생충 문제는 없어서 괜찮긴 한데.

“그럼 우선 한 점만 먹어봐.”

“후후후... 윤스리 고집 꺾기 불가.”

“....”

강력 도발을 시전하는 5세.

망설임 없이, 핏기 있는 미디엄 레어 고기를 윤슬이 앞에서 치워버렸다.

재빠르게 눈치를 채고 불쌍한 척을 시전하는 5세.

“아앗... 윤스리가 까부렀슴미다. 한 번만 봐주심씨오.”

“오냐.”

“움.... 윤스리 고집 꺽기 가능.”

언어를 정정하는 5세.

은근히 눈치가 빨라서 또 미워할 수가 없다.

실수를 인정한 윤슬이한테 이미 잘려있는 고기를 한 번 더 반쪽으로 잘라서 입에 넣어주었다.

약간 뜨거운 지라 입 안에 넣고는 훅! 훅! 하며 식혔지만. 곧잘 씹어먹는 것 같다.

“질기지는 않어?”

“움! 마치 옵바 뱃살처럼 말랑말랑.”

“오빠 정도면 뱃살 없는 편인데.”

“그러믄 윤스리 뱃살처럼 말랑말랑.”

아무튼 부드럽다는 얘기였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어보인다. 한 조각을 반으로 자른, 나머지 조각을 들고 유민이에게 권해본다.

“유민이는 어때? 이거 먹어볼래?”

- 으응... 나는 갠차나여.

유민이가 마치 탄산을 잘못 먹은 고양이처럼 고개를 부들부들 떨었다.

덧붙이자면 탄산을 잘못 먹은 고양이가 고개를 벌벌 떠는 걸 본 적이 딱 한 번 있는데, 고영희씨가 그랬다.

혀를 배쭉 내밀고는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던가. 인간 상태일 때는 잘 먹더니, 고양이일 땐 힘들다던가.

한편 어른들 입맛엔 약간 부담스런 소고기보단 파스타가 맞는 모양이다. 미정 선생님과 차웅씨는 각자 포크와 숟가락을 들고 굴이 들어간 파스타를 음미 중이시다.

아이들이 고기를 즐기고 있는 사이 미정 선생님은 돌발스런 애정 행각을 잊지 않았다.

파스타를 돌돌 말아 차웅씨 입에 넣어주는 것이다!

“사이가 좋으시군요.”

- 아하하... 이건.

머쓱해하는 차웅씨.

반면 미정 선생님은 꽤나 당당하다.

- 나쁜 것보단 낫잖아. 제자야.

“그렇긴 하죠. 많이들 하세요. 많이들.”

장난 삼아 비꼬는 말투로 받아쳤지만.

두 사람이 사이가 좋은 모습을 보니 흐뭇한 마음도 있다.

아무튼 유민이네 가족이 관계를 회복한 데에는 윤슬이와 내 덕분이 없지 않으니 말이다.

우리가 노력을 한 게 결국에 헛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다.

이야기를 전해 듣는 것과 실제로 그 결과를 눈 앞에 두는 것은 느껴지는 감각 자체가 전혀 다르다.

“유미니, 저기 들어가바바.”

- 어, 어디?

“쩌기! 옵바가 벗어둔 선물 꾸러미.”

- 내가 들어가면 나오지두 못할 거야.

“그게 재밌는 거자나!”

- ???

식사를 마친 뒤.

유민이와 윤슬이를 적당히 돌봐주고 있는 영희씨.

다른 한편, 나는 자연스레 미정 선생님, 차웅씨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차웅씨, 요즘은 유민이랑 자주 놀아주셔요?”

- 야! 말두 말아라. 그것 때문에 이 양반 본업 그만둘 뻔했다.

“...?”

무속인을 그만둘 뻔했다고?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 아아... 주현씨, 그게 아닙니다.

차웅씨는 손사레를 치며 고개도 절레절레 저었다.

몹시 곤란한 표정.

- 걱정이 되지 않습니까?

“걱정이요?”

- 제 아들이 유치원에서 잘 하고 있는지. 아니면 혹시 괴롭힘이라도 당하지 않는지.

“그 정도야 걱정이 되실 수도 있긴 하죠.”

- 그래서 아주 가끔 유민이 유치원까지 따라가서 잘 지내고 있는지 지켜보는 것뿐입니다!

- 아주 가끔은 무슨. 일주일에 닷새 유민이 유치원 보내는데, 그중에 사흘을 유치원 입구에 서서 유민이 구경만 하고 있다니까! 그게 어떻게 가끔이야!

닷새 중에 사흘이면.

약 60%의 빈도로 그렇게 한다는 이야기니까.

“문제가 있네요.”

- 주현씨마저! 제 기분은 그 누구도 이해해주지 않는군요.

“이건 이해의 차원이 아니긴 하죠.”

오히려 아빠가 와서 한 시간 동안 줄곧 유치원 생활을 관찰하고 있다면.

유민이 입장에서도 부담이 되는 게 아닐는지?

“유민이는 아무래도 좋대요?”

- 또 우리 아들내미는 그게 좋다고, 내내 실실거리고 있는 게 문제야!

“아이고, 죽이 척척 맞네.”

좋은 징조이지만.

미정 선생님은 분통을 터뜨린다.

- 내가 애지중지 키웠는데! 갑자기 남편이란 놈이 굴러들어와서, 내 아들 빼앗아 간다니까!!

“....”

분통이 터지는데, 그 방향성이 다소 특이한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 아니, 당신도 나한테 유민이랑 친하게 지내면 좋겠다며!

- 야, 차차웅. 이거랑 그거랑 같냐? 나보다는 덜 친하게 지내야 될 거 아냐. 유민이 입장에서 일등은 나. 그리고 넌 삼등 하라고.

- 사, 삼등? 적어도 이등으로 해줘.

- 이등 자리는 이미 윤슬이가 차지했어.

- ....

“혹시 몰라요. 윤슬이가 일등일지도.”

- 에헤이! 그럴 리가.

미정 선생님이 자신하듯 어깨를 으쓱이는데, 순수한 호기심이 끓어올랐다.

꼬맹이 둘에게 손짓하여 우리 쪽으로 불러보았다.

“유민이에게 질문이 있다.”

“움? 윤스리에게눈 질문이 업나여?”

“일단 유민이한테부터 할게.”

“움...”

불만스럽게 유민이를 노려보는 5세.

그런 따가운 시선을 애써 외면하는 유민이.

- 뭔데여?

“유민이는 이중에서 딱 한 명만 골라야 된다면. 누굴 고를 거야?”

- 여기 있는 사람 전부 중에여?

“응. 따악 한 명만 골라야하거든.”

유민이는 내 말을 듣더니 고민되는 듯이 두리번거린다.

두리번- 두리번-

하다가 갑자기 어느 지점에 시선이 딱 멈추었고.

그곳엔 산타 옷을 입고 있는 5세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핳하! 당연하거둔. 왜냐믄 유미니는 윤스리 부하니깐!”

“그렇다네요?”

- ....

부부는 그대로 침묵했다.

좌절했는지, 서로에게 맥주를 한 잔씩 따라주며 아들 낳아서 길러봤자 소용 없다며 위로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부부 관계는 원만한 것 같다.

자식과의 관계는 차치하고 말이다.

다시 두 명의 꼬맹이는 둘이서 놀러 저쪽으로 가버렸고, 부부의 분위기가 다소 우울해진 관계로.

내가 울적해진 분위기를 전환해보기로 했다.

“그나저나 저 차웅씨한테 하나 궁금한 거 있었는데요.”

- 저한테 말입니까?

차웅씨는 금세 기운을 차렸다.

- 뭐든지 물어보셔도 됩니다.

- 야, 뭐야. 질문은 선생님한테 하라고!

“차웅씨만 알고 계시는 사실이라서, 선생님한테는 질문할 수가 없네요.”

- .... 뭔데 그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게 서랍에 고이 넣어둔 부적을 꺼내었다. 일전에 차웅씨네 점집에서 받았던 부적이다.

가게에 넣어두어야 할지, 아니면 집에 붙여두어야 할지. 아니면 갖고 다녀야 할지 고민되었지만 결국에 가게에 두기로 했다.

물론 이걸로 극적인 효과를 보거나 하진 않았다. 애초 효과가 뭔지 정확히 모르지만 말이다.

그저 이 붉은색 부적이 어떤 효과가 있는지 물어보면 분위기 전환이 될 것만 같아서 여쭤보려는 것뿐이다.

“차웅씨, 이 부적 저번에 주셨던 것 기억하시죠?”

- 아아... 제가 쓴 부적이니까요. 당연히 기억합니다.

“혹시 이거 효과가 뭐라고 하셨죠? 그때 정확히 듣진 못했던 것 같아서.”

내가 부적에 대해 묻자 차웅씨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평범한 가정의 아빠 모드에서 무속인 모드로 전환된 듯한 느낌.

- 그 부적의 기원은 염원입니다.

“염원?”

- 강하게 바라는 마음, 이라고 풀어낼 수 있겠네요. 염원이 없다면 그 부적은 어떠한 효능도 보이지 못하죠. 반대로 말해서 강하게 바라는 것을 이루어주는 종류의 부적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소원을 이뤄주는 부적이라는 거예요?!”

그렇다면 진짜 대단한 물건이긴 한데.

스스로 말해놓고도 그럴 확률은 낮을 것 같다. 만약 차웅씨가 어떠한 소원이든 이루어주는 부적을 쓸 수 있는 용한 무속인이었다면.

적어도 본인의 점집 정도는 조금 더 화려하고 단란하게 꾸밀 수 있지 않았을까.

아마도 특정 분야에 대한 성취를 기원해주는 종류의 부적이겠지.

재물운 증가!

혹은 연애운 증가!

처럼 말이다.

- 하하, 어느 측면에서는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해주세요.”

- 그래 이 양반아! 너만 아는 얘기 그렇게 복잡하게 주절대면 제자가 알아듣겠어?

- .... 내가 멋있어보일 수 있는 건 이럴 때밖에 없다는 말야! 나도 전문가처럼 보이고 싶다!

“....”

차웅씨는 억울해보였다.

아무래도 무속인이 멋있어보일 수 있는 순간은 이럴 때밖에는 없긴 하다.

조금 더 폼을 잡게 해드리기로 했다.

- 제가 드린 부적은 조금 더 직설적으로 설명드리자면, 왜곡을 바로잡는 역할을 합니다. 뒤틀린 것, 본래에서 벗어난 것, 원형이 아닌 것 등. 인간은 유약한 존재이기에 그런 것들에 휘둘리기 마련이죠.

“쉽게 말하면 이 세상에 사기 당하는 인간들이 많다는 얘기군요? 그래서 이 부적을 갖고 있으면 사기 당할 리는 없다?”

- 비슷합니다. 아무래도 주현씨가 자영업을 하시다보니 걱정이 되더군요. 윤슬이도 그렇고, 주현씨도 저한테 많은 도움을 주셨으니, 이 정도 되갚는 것 정도는 해드리는 게 도리인가 싶었습니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다.

한 달 주기로 경찰에 접수되는 사기 사건만 수도 없이 많다고들 하니 말이다. 여태껏 내가 사기를 당하지 않은 것은 오누이와 그간 잘 쌓아둔 인맥, 그리고 경험 덕분이다.

- 헌데 사기를 당할 리가 없다, 라는 말씀과는 조금 다르군요. 이 부적은 말씀드렸듯이 왜곡을 바로잡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장래의 일어날 일이 아니라, 본래 일어났던 과거의 일에 대하여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죠.

“?? 그니까 이미 한 번 당해버린 사기를 다시 한 번 인식시켜준다는 뜻?”

- 남편, 그건 너무 잔혹한 거 아니야?

미정 선생님의 지적대로다.

이미 한 번 속은 놈한테, 너 이걸로 저번에 속았지! 멍청한 자식! 이라며 괴롭히는 것과 뭐가 다른가.

- 거기서 그치면, 단순히 가학에 지나지 않겠죠. 하지만 이 부적은 한 단계 앞서나갑니다.

“.... 설마?”

- 주현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대략적으로 이런 것이죠. 그 사기와 거짓을 본래의 방향. 그러니까 훨씬 올바른 방향으로 바로잡아준다는 얘기입니다. 한 번 어긋난 길을, 정방향으로 틀어준다는 것이죠.

과연.

그런 것이라면 확실히 대단한 물건이다. 그 원리까진 이해할 수 없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설명을 듣자, 내 머리 속엔 한 사람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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