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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굴러들어옴-181화 (181/200)

181화: 선물(5)

“오빠도 같이?”

“같이.”

“....”

그건 좀 힘들다.

라고 말하고 싶은데, 윤슬이는 내 눈치를 힐끔힐끔 본다.

“시러?”

“아니, 싫다기보다는.”

싫다기보단 본능적인 거부감에 가까웠다.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한다던지, 아니면 불합리한 처우를 당한다면 자연스레 거부감이 들지 않는가.

미움이라거나 혐오 같은 단순한 단어로 정의하긴 어렵다.

하지만.

“윤슬이는 오빠랑 같이 가야 되겠어?”

“그거는 꼭은 아닌데. 그래두 가치 가믄 조은 일이 있어.”

“좋은 일?”

“웅, 엄마한테 보여줄 거야.”

“보여주고 싶은 게 있구나.”

“응. 옵바 손 꼭 잡구 가서, 옵바랑 같이 이렇게 잘 살구 있으니깐 나중에 다시 한 번 윤스리 만나러 오라구 말할 거다.”

“....”

윤슬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내 무릎에 머리를 기대어 다시 한 번 드러누웠다.

그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는 생각했다.

어쩔 수 없나.

한 번 가긴 가야겠구나.

**

“옵바, 이거 대따 큰 기차 또 타네?”

“응 또 타긴 하는데. 오늘은 금방 내릴 거야.”

“잉? 이거 재미 있어서, 오래 타는 게 더 조은데.”

“그러다가 길 잘못들면 어떻게 해. 오늘은 엄마 보기로 했잖아?”

“응... 그르치. 그럼 한 번 참아준당.”

윤슬이는 툴툴거리더니, 잠자고 기차에 탑승한다.

친모, 이주희씨의 납골당은 경기도 남부에 위치해 있었다. 그 사실은 여지껏 모르고 있었으나, 할머니께 여쭈어보아서 알게 되었다.

내가 그 납골당이 어디에 있느냐고, 할머니께 묻자 많이 놀라신 듯 말을 더듬고.

그곳으로 가는 게 정말 괜찮겠느냐.

불편하면 할미가 데려갈 텐데 무리하는 것이 아니냐.

이런 느낌으로 걱정해주셨지만, 결국에 내가 결정한 일이다.

“윤슬이는 나와 둘이서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했으니까.”

물론 단지 윤슬이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언제까지고 나의 과거를 외면할 수는 없다.

나는 친모, 이주희씨를 싫어한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하지만 내가 죄인이 아니고, 결국에 그녀가 죄인이라면.

내가 그녀를 피해야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오히려 당당히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녀 앞에서 내가 이리도 잘 살고 있다. 당신이 남긴 딸과 둘이서 이렇게 삶을 잘 헤쳐나가고 있다며.

과시하고 싶어졌다.

“옵바. 이마 대.”

“이마? 갑자기?”

“갑자기가 아니지. 이거 사왔자나.”

윤슬이와 함께 기차 좌석에 탑승했다.

강릉에 갔던 때의 기억을 잊지 않았는지, 편의점에서 계란을 살 것을 요구했고.

그때와 마찬가지로 사온 것인데.

“.... 이번엔 오빠 머리에다가 먼저 깨려고?”

“그렇타. 윤스리두 했으니깐 인제 옵바 차례자나.”

기억이 난다.

저번엔 이마로 맥반석 계란을 깨려다가, 거의 울먹이는 사태까지 갔던가.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며 야무지게 이마로 들이받으려는지, 윤슬이는 마치 야구장의 투수처럼 계란을 말아쥐고는 위아래로 휘젓는다.

겉으로 티는 안 내지만, 내심 그때 이마가 아팠던 것이다. 끝내 안 아픈 척을 하길래 모르는 척해줬다.

허나 이제 와서 복수하려는 속셈이라면!

“그냥 당해줄 내가 아니지.”

“움?!”

난 윤슬이 손에서 재빠르게 맥반석 계란을 빼낸 다음에 하나 같이, 앞좌석에 붙어있는 간이 책상에 부딪혀 껍질을 깨버렸다.

동생은 순식 간에 벌어진 사태를 잘 이해하지 못한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끝내 상황을 파악하고는 거의 나라 잃은 표정을 지었다.

“으아아... 윤스리가, 옵바 이마루다가 깰라구 그랬는데.”

“어설프구나. 원래 그런 계획은 비밀리에 시행해야 성공확률이 높은 법이란다.”

“크윽, 역씨 옵바야. 한수 배워써.”

윤슬이는 다음 번에는 이렇게 되지 않을 거라느니, 궁시렁대면서 껍질이 벗겨진, 반질반질한 맥반석에 소금을 푹 찍어 한 입 거하게 베어물었다.

우물우물...

우물우물...

윤슬이는 뚱한 표정으로 맥반석 계란을 모두 먹어버렸다. 한 줄에 세 개씩 들어있는데.

내 것을 하나도 안 남긴 것이다.

그리고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며 희죽거린다.

“쿠쿠쿠... 윤스리가 옵바 꺼 안 남기구 다 먹어써.”

“그래? 그건 유감이네?”

“그치?”

“나보다 네 쪽이 더 유감일 걸?”

“잉? 그게 몬 소리여?”

“이걸 봐라.”

나는 가방 속에 숨겨둔 맛짱짱 우유 두 팩을 꺼내었다.

혹시 몰라서 계란과 함께 구매했었는데, 윤슬이 몰래 따로 샀기에 모르고 있던 것이다.

“크헉! 그건?!”

“지금 막 맥반석 계란을 세 개씩이나 흡입했으니, 분명 목이 마르겠지?”

“목... 매우 말라있다.”

“그 상황에서 맛짱짱 우유를 마셔준다면? 심지어 초코맛을?”

“화, 황홀해! 체고야!”

황홀하단 말은 또 어디서 배운 것인가.

슬슬 궁금하지도 않다.

“하지만 윤슬이는 오빠한테 맥반석 계란을 하나도 안 남겨주고 다 먹었으니. 이 맛짱짱 우유를 먹을 자격은 없겠지?”

“...! 그럴 쑤가!”

“이럴 땐 어떻게 말하면 될까?”

“제가 아주 큰 잘못을 했슴미다. 생각이 짧았슴미다. 한 번만 기회를 주세여.”

“??”

갑자기 말이 청산유수다.

여기까지 기대한 건 아닌데.

“동생 목 맥혀서 쓰러지면 옵바두 만만치 않게 손해임미다. 잘 생각하는 게 좋을 검미다.”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맛짱짱이를 한 입만 먹게 해주세여.”

“흐흐흐... 그래. 먹어라, 먹어.”

빨때를 꽂아서 그대로 윤슬이한테 주었다.

괜히 동생 이겨먹으려 해서 좋을 게 뭐 있겠나.

너무 까불길래 한 번 놀려주고 싶었던 것뿐이다.

쪼오오옵...!

쪼오오오오오옵!

윤슬이는 힘겹게 얻어낸 맛짱짱 우유인지라 더욱 집착이 생기는지, 전투적으로 빨때를 빨며 마시고 있다.

그러다가 우유 팩이 쪼그라들 때쯤 나를 한 번 힐끔 쳐다보더니, 팔뚝에 머리를 기대온다.

“윤스리는 옵바가 젤루 조아.”

“갑자기 왜 또 애교쟁이 모드야.”

“히힝, 왜냐믄 옵바는 장난 쳐도 금방 용서해주자나.”

“그래서 제일로 좋다고 표현해주는 거야?”

“그렇타.”

쪼오옵-!

한 번 서비스로 애교를 부려주고는 다시금 우유팩에 남은 우유를 빨아먹는 윤슬이.

머리를 쓰다듬자, 마음이 조금 진정되었다.

사실 그녀가 묻힌, 그 납골당으로 가는 길이었기에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는데.

언제든 윤슬이랑 있으면 이렇게 다시금 평화를 되찾는 것 같다.

특유의 밝은 성격 덕분인지.

아니면 내 마음을 알고는 그에 맞추어서 풀어주려고 노력하는 것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방금 윤슬이는 내가 제일로 좋다고 했지만.

그에 못지 않게 나도 윤슬이를 가족으로서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

기차역에서 내려서 바로 택시를 타고 목적지로 향했다.

얼마 멀지 않아, 만 원도 안 되게 나왔다.

서울 외곽은 거의 서울과 비슷한 느낌인데, 충청도에 맞닿아있는 경기도 남부까지 오자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우어... 옵바, 여기 강릉처럼 디게 건물들 키가 작으다. 꼬맹이야 다들.”

“그러게. 우리 윤슬이가 열 살만 더 먹으면 저것보다 더 커지겠네?”

“우하하! 당연하지.”

그럴 리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동생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자기 가슴을 팡팡 내리치고 있다.

저 자신감의 근거는 어디에 있는 것인지 가끔 진심으로 궁금하다.

백미러로 흐뭇하게 윤슬이를 쳐다보는 택시기사님의 시선을 견디다보니, 우리는 금세 납골당에 도착했고.

소박한 인테리어의 건물 안쪽엔 나이가 어느 정도 있어보이는 안내인 한 분이 계셨다.

윤슬이는 납골당의 차분한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밝은 얼굴로 안내인에게 인사한다.

“안녕하세여! 엄마 보러 왔어여.”

그런 윤슬이에게 전혀 당황하지 않으시던 안내인은 어린데도 씩씩하다는 말씀을 남기며 우리를 그곳으로 안내해주셨다.

한 때 사람이었던, 유골들이 안치된 안치소.

그곳엔 추모하러 들른 조문객 혹은 가족들이 남긴 꽃이나 메모지들이 남아있었다.

다행히 우리 말고, 다른 방문객들이 있진 않았다.

윤슬이 탓에 소란해질 수도 있었는데, 이건 그나마 다행으로 느껴졌다.

너무 시끄럽게 해선 안 된다며 미리 주의는 해두었지만 그래도 아직 윤슬이는 아이니까 소란스러워질 수도 있다.

“옵바, 여기 중에서 모가 엄마야? 어디다가 말해야지 엄마가 들을 수가 있지?”

“저기, 사진 보이잖아.”

“움... 찾았다.”

윤슬이가 보기엔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해있었다.

나는 허리를 잡고 들어올려서 윤슬이가 그 사진을 마주볼 수 있게끔 도와주었다.

“여기다가 말하믄 엄마가 들어조?”

“그럼. 들어주지. 만나서 이야기하려고 온 거잖아.”

“치이, 얼굴 보구 말하는 게 더 조은데. 사진밖에 없는 거는 아쉽다. 그래두 함모니랑 통화하는 것처럼 이야기는 제대루 들리는 거지?”

“응, 다 들을 거야.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뭐든지 해도 돼.”

윤슬이는 이번 조문을 마치 할머니에게 문안 인사를 전화로 드리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

언젠가 자연스레 이해하게될지.

아니면 내 입으로 그 사실을 알려줘야할지.

아직은 모르겠으나, 적어도 조금 시간이 흐른 뒤에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때론 시간이 약일 때가 있으니 말이다.

“움...”

윤슬이는 엄마에게 뭐라 말하면 좋을지 잠시 고민하더니 끝내 입을 떼었따.

“고맙씁미다. 윤스리는 제일루 운이 좋아. 옵바 동생이니깐. 왜냐면 옵바는 윤스리가 장난 쳐두, 가끔 실수해두 용서해줘. 그리구 이 세상에서 제일루 윤스리 마음 알아줘. 근데 엄마가 없으면 옵바두 없구. 나두 없는 거야. 그니깐 엄마는 잘 못 보지만. 그래두 고마워. 윤스리는 옵바 덕분에 행복하니깐, 엄마 덕분에 행복한 거야.”

윤슬이는 두 손을 넓게 벌리며 엄마의 유골 앞에서 반갑게 인사한다.

동생이 그렇게 말한다면.

분명.

나도 같은 맥락에선 감사해야 마땅할 것이다.

“.... 나도.”

차마 고맙다는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지만.

그럼에도.

“윤슬이가 곁에 있어줘서. 여지껏 가게도 열심히 운영하고. 소중한 인연들도 많이 만났어. 주제 넘치게 남들 사정에 참견하기도 해보고. 못지 않게 많은 도움도 받았어. 분명 나 혼자였다면 절대로 해보지 못했을 경험일 거야. 그러니까.”

오직.

그 점에서만큼은.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할게.”

적어도 당신이 내게 전해준 것 중엔 가장 소중하다.

어떤 이유에서, 혹은 어떤 과정에 따라 내 곁으로 오게 되었건.

우린 충분히 행복하게 잘 살고 있으니까.

윤슬이만큼은 적어도 당신, 이주희씨가 내게 보내준 선물이라고.

그렇게 납득했다.

그리고 그때.

차웅씨에게 받았던 부적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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