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선물(6)
붉은 부적.
그 부적은 본래 왜곡된 것을 바로잡는 역할이라고 했다.
그게 그저 토속 신앙 혹은 미신에 불과할 것이라고, 송주현은 경시하고 있었으나.
이주희의 무덤 앞에 담담하게 서있던 송주현에게 그 부적은 어느 풍경을 비추었다.
“엄마랑 아빠랑, 나랑. 셋이서 맨날 이렇게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
송주현이 아직 어렸을 적의 풍경. 아직 초등학교는 들어가기 전, 유아이던 때.
그녀의 모친과 부친이 모두 살아있을 때.
“흐흐흐... 우리 아들이 누굴 닮아서 이렇게 응석 받이래?”
“누구긴, 당신이지. 난 어렸을 때부터 제법 당당했거든.”
“아아... 그러셔?”
시덥잖은 일로 대화를 잇는 부모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당당히 선언하는 송주현.
“난 엄마랑 아빠 아들이니깐 둘 다 닮았찌! 왜 그런 걸루 쓸떼 없이 싸우구 이써?!”
그날의 송주현 가족은 사이가 좋았다. 부모의 직업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가난한 글쟁이, 시인이었으니까.
그럼에도 행복과 부는 비례하지 않았다.
아주 평범한 가정처럼 사이 좋게 지냈던 것이다.
오히려 송주현은 어렸을 때 두 사람이 글쟁이인 것이 좋았다.
‘유치원에서 집으루 돌아오면 맨날맨날 엄마랑 아빠 볼 쑤 있따! 히히...’
유치원에서 같은 반인 아이들은 맨날 그런 불평을 했던 것이다.
자기네들 부모님은 일 때문에 바빠서 얼굴을 자주 못 본다던가. 주말엔 일 때문에 피곤하다며 늘어져있는 아빠를 깨우는 데에 고생을 한다던가.
그런 실감나는 한탄은 송주현에겐 해당되지 않았다.
“오늘은 내가 주현이 데리러 갈 거라고~!”
“응? 뭔 소리? 어제 당신이 갔으니까, 오늘은 내 차례지.”
“그런 거 없어. 먼저 가는 사람이 임자다.”
“...! 치사하게 신발 먼저 신는다 이거지?”
송주현의 집안은 대략 이런 느낌이었다.
오히려 주현이가 하원하는 시간에 맞추어 서로 경쟁을 했다.
오늘은 누가 주현이를 마중나갈 것이냐!
그런 사사로운 다툼의 결과는 늘 간단한 협상으로 종결되었다.
“그냥 같이 가면 되겠네!”
“그러게...! 그냥 그러자.”
그리하여 주현이의 하원길에는 세 사람이 함께하는 일이 많았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평범히 행복한 가정이라기보다는 상당히 행복한 가정이라는 표현이 어울릴지도 모른다.
적어도 송주현은 그렇게 느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어느 새벽의 일이다.
어린 나이의 송주현이 가슴을 움켜쥐고. 식은 땀을 흘리고. 끙끙 앓았다.
“여보 어떻게 해? 주현이 많이 아픈가봐. 평소엔 잘 안 그러는데 막 칭얼대고 그러네?”
“아직 아이니까, 밤에 앓을 수도 있는 거야. 우선 진정하 고 병원으로 데리고 가자.”
그런 긍정적인 사고로 마음을 추스르며 부모는 송주현을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허나 병세는 참담했다.
“흔한 병은 아닙니다만 제한성 심근병증이라고 해서...”
초기 증세가 명확하지도 않고, 특히 아이였기 때문에 자기 몸에 어떤 이상이 있는지 스스로 알지 못했다.
그래서 제법 병세가 진행이 되었을 때 병원을 찾게 된 것이다.
“하지만 수술을 진행하고 충분히 재활하면 일상으로 복귀 가능합니다. 너무 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히려 보호자분들이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아이까지 불안해지니까요.”
의사의 소견이었다.
마땅한 이야기였고.
송주현의 부모는 서로를 다독이며, 괜찮을 거라고.
주현이가 잘 버텨줄 거라고.
몇 번이고 되뇌였다.
문제는 다른 부분에 있었다.
“수술비는 어떻게 하지?”
보험은 꼬박 들어놨기에 나라의 지원금과 함께 어느 정도 충당할 수 있었으나, 전액을 보장 받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돈이 당장 필요했는데. 일당을 빠듯하게 수급하면 어떻게든 될 것 같았다.
아무리 집이 가난해도 모아둔 돈이 무일푼이었던 것은 아니다. 아이를 길러야 하니, 조금 빠듯하더라도 저축은 꾸준히 해두었던 것이다.
“주희야, 네가 주현이 옆에 있어줘.”
남편은 아내에게 이렇게 전하고는 공사판으로 향했다. 이주희는 수술대에 오르게 된 아들을 간병하고.
남편은 빠르게 돈을 모아서 수술비를 마저 마련하기로 했던 것이다.
최선의 판단이었고, 그 당시에 두 사람이 결정 지을 수 있는 최고의 판단이었다.
아들의 수술비를 모으는 데에는 성공했고. 수술 날짜까지 안정적으로 잡혔다.
“수고 많았어, 남편. 이제 우리 주현이 어떻게 되는지 옆에서 지켜봐주자.”
“응, 그래야지. 근데 이제 이러면 생활비가 또 문제잖아.”
“생활비? 그런 건 조금 천천히... 엄마 손이라도 조금 벌려서 나중에 벌면 되잖아. 인세도 곧 나올 거고.”
“아니, 이제 주현이 재활도 있을 거고. 여러 모로 돈이 더 필요할 것 같아서.”
“그건 그렇지만.”
“이제 슬슬 공사판에서 어떻게 하면 되는지, 요령도 잡혀서. 며칠 더 나가보려고.”
“괜찮겠어? 안 그래도 몸 약해서 매 명절마다 우리 엄마한테 홍삼 선물을 되려 받는 사람이.”
“.... 그건 그렇지만. 괜찮다니까! 주현이 지금까지 아픈 데 못 알아준 것만 해도 미안해서 말야. 다 나으면 조금 더 좋은 곳도 데려가주고 싶고. 더 맛있는 것도 사주고 싶어서 그래. 내 맘 알지?”
“어휴, 그래. 누가 말리겠나. 대신 다치지 말고 몸 성히 꼭 돌아와야 된다?”
“누가 보면 전쟁 나가는 줄 알겠다. 호들갑은.”
“당신까지 크게 다치면 난 어떻게 하라고? 아들은 큰 수술하고. 남편은 몸져 누워버리면. 나는?”
“.... 그러게. 네 말이 맞다. 미안. 대신 약속해.”
두 사람은 새끼 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주현이 다 나을 때까지 절대로 무너지지 말기로. 주현이도 지금 잘 버티고 있으니까, 우리도 힘 내야지.”
“그래. 우리 가족 괜찮을 거야. 주현이도, 당신도, 나도.”
그리고 그 새끼 손가락을 건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끝내.
“주현이가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해서, 수술이 잘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부모님들께서 아들 옆에서 꼭 지켜봐주세요. 아직 몸상태가 온전하진 못하니 너무 무리를 시켜선 안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수술은 성공했다.
하지만.
송주현의 수술이 끝나고, 이주희와 함께 그 아이의 곁을 지키던 것은 남편이 아니었다.
이주희씨의 모친, 그리고 송주현의 외할머니인 안순연씨였다.
“.... 딸, 주현이도 그렇고. 송 서방 일도 그렇고. 네 팔자에 재난이 들었나보구나.”
“엄마, 아무 말두 하지 말아주라.”
“그래.”
“나 무너질 것 같아.”
“.... 그래.”
“남편이랑 약속했다.”
“어떤 약속?”
“주현이 다 나을 때까지 안 무너지기로. 근데 남편은 아무래도 지킬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으네.”
사고였다.
공사장의 사고.
흔한 사고는 아니지만, 왕왕 있을 법한 낙상사고.
5층 높이에서 추락.
머리부터 떨어졌고, 목이 꺾여서...
“그니까 나라도 지켜야지. 내가 주현이도 지키고. 약속도 지켜야지. 내가 무너지지 않고 버텨볼게, 엄마. 그니깐 너무 걱정하지마.”
“어떻게 걱정을 안 하니! 주희 네가 주현이 엄마인 것처럼. 나두 네 엄마다.”
“응, 알아...”
“알면!! .... 알면은, 엄마한테 기대도 된다. 엄마가 젊었을 적에 잘 나가던 거 알지?”
“알지, 우리 엄마 기사 식당 대빵이었잖아.”
“그래. 너도 알 거다. 네 엄마가 얼마나 대단한지. 그러니까 무너질 것 같거든 엄마한테 기대라. 엄마가 잡아줄게. 주희야.”
“응, 고마워 엄마.”
**
그리고 시간이 흘러.
수술 성공 후 송주현의 재활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던 여름의 일이다.
화목했던 가정엔 한 사람의 자리가 비어있었다.
그래도 이주희는 어떻게든 버틸 요량이었다.
사랑하는 아들이 있으니까. 어떻게든 잘 버텨내주었으니까.
“엄마...”
“응? 왜 울어, 아들?”
울먹이면서 이주희를 찾아온 송주현.
불안했다.
“훌쩍, 진짜야?”
“으응?”
“아까 들었어. 윗층 사는 아줌마가 말하는 거 들었어.”
“뭐라고?”
“아빠가 나 때문에 죽었대.”
“.... 뭐?”
“우리 아빠 나 때문에 죽은 거야?”
“그런 거 아니야, 주현아. 그게 왜 네 탓이야.”
대체 윗층 사는 아줌마는 남의 집 얘기를 쓸데없이 입에 담아서, 아들이 듣게끔 만드는지.
이주희는 끓어오르는 속을 진정시키며 조곤조곤 말을 이었다.
아들이 받았을 상처를 진정시키는 것이 우선이었으니까.
“나두 다 알아. 우리 아빠 사실 내가 아팠으니까. 내가 아픈 거 낫게 해줄라구. 돈 벌라다가 다친 거자나. 그래서 죽은 거라구 그랬어. 다 들었어. 그럼 내 탓이잖아. 난 아빠두 정말 좋은데. 나 때문에 그렇게 된 거잖아...!”
“그런 게 아니야. 주현아. 있잖아, 아빠는 우리 주현이가 너무 소중해서, 빨리 건강해졌으면 좋겠어서...”
“알아! 그니깐 나 때문인 거잖아!”
그대로 송주현은 뛰쳐나가버렸다.
아직 초등학생도 되지 않을 아이가 그런 소릴 들었으니, 얼마나 마음에 상처가 컸을까.
당장에라도 위층으로 올라가서 그 인간에게 쏘아붙여주고 싶었지만.
아들을 찾는 게 우선이었다.
하필이면 야속하게도 비까지 왔다.
우산을 쓰고 빗속을 헤집어 결국에 찾아낸 송주현은, 어느 낡은 아파트 단지에 쭈그리고 있었다.
몇 번이고 괜찮다.
네 탓이 아니다.
다독인 끝에야 집으로 데리고 올 수가 있었다.
“주현아, 오늘은 이불 꼭 덮고 푹 자야 돼. 너 아직 몸 다 나은 것도 아닌데, 그렇게 막 돌아다니면 어떻게 해.”
“응, 알게써.”
“그래, 주현이 잘 자.”
“응...”
가까스로 지친 아들을 재우고는 이주희는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하면 송주현이 그 사실을 납득할 수 있을까.
아들이 얼마나 엄마와 아빠를 좋아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었다. 심지어 나이대에 비해 감성적인 구석이 있어, 끝내 안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고 말 것이다.
자신 때문에 아버지가 죽었다고 말이다.
사실은 그런 게 아닌데, 그저 사고는 사고일 뿐인데.
그것을 아무리 언어로 전달한다고 해도 아들이 납득해줄까.
그런 의문이 이주희의 머리 속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때.
부우웅-
핸드폰의 진동이 투박하게 울렸다.
“엄마인가...?”
연락이 올만한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이미 남편의 장례식 때 주변인들과 한바탕 이야기는 끝냈으니.
한데 문자를 보내온 사람은.
[발신자 표시 제한]
자신이 누군지 숨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문자에 써있던 문장은.
[아들의 기억을 지워줄게.]
“기억을 지워준다고?”
무슨 수상쩍은 단체에서 보낸 문자인가.
처음엔 의심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적절한 타이밍에 문자를 보내왔는지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