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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굴러들어옴-183화 (183/200)

183화: 선물(7)

처음엔 무시할 작정이었다.

누가 보냈는지도 모르는, 그런 문자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송주현이었다.

“주현아... 엄마랑 잠깐 산책 좀 다녀오자.”

“별루 가고 싶지가 않아.”

“그러지 말고.”

“.... 싫어.”

아들이 방에 틀어박히게 된 것이다.

그 사건이 마음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자신 때문에 아빠가 죽게 되었다고 철썩같이 믿게 되었다.

“이대로는 위험한데...”

며칠 전에는 밥을 먹기 싫다며 떼를 쓰기도 했다.

송주현은 어렸을 적부터 식사 시간엔 좀처럼 투정을 부리는 법 없이, 밥을 잘 먹었기에.

그 사건 때문에 밥을 먹기 싫어졌구나, 하는 것을 이주희는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오직 그래서였다.

자신이 누군지 밝히지 않은, 발신자 표시를 제한한 그 사람에게 연락해볼 생각이 든 것은.

[어때? 네 아들을 위해서 그 기억을 지워주겠다니까? 이대로 가다간 네 아들 우울증이 심각해질 걸? 곧 초등학생이 될 텐데, 저대로 가다간 반에도 적응 못할 수도 있잖아. 걱정도 안 되는 거야?]

아니나 다를까.

연락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던 그 순간 곧바로 그 남자에게 또 다시 문자가 왔다.

그제야 확신할 수 있었다.

범상한 존재가 아니란 것을.

이주희는 그를, 마치 필요한 타이밍에 필요한 말을 속삭이는 악마처럼 느꼈다.

[아아, 네 쪽에선 나한테 아무런 문자도 못 보낼 거야. 그러니까 입으로 대답하면 돼.]

“직접 입으로 답하라고?”

[그래! 잘 들려. 내 귀까지 잘 들린다고. 참고로 스토커 같은 것도 아니고, 네 근처에 숨어있는 것도 아니니까 안심해.]

“.... 그럼 어떻게 내 말을 듣고 있는 거지?”

[그런 건 아무래도 좋잖아. 중요한 건 주현이.]

“중요한 건... 주현이.”

[그래, 단 한 마디만 해주면 돼.]

“한 마디?”

[네 아들의 기억을 지워달라고. 아빠가 주현이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하게 된, 그 사실을 잊게 해달라고 말이야.]

솔직히 믿지 않았다.

발신자 표시 제한으로 온 문자를 맹신할 정도로 이주희는 낭만에 젖은 사람은 아니었다.

어떤 정신 나간 인간의 질 떨어지는 장난.

혹은 요근래 유행하는 보이스피싱, 곧 돈을 요구할지도 모른다.

그런 식으로 납득했다.

하지만 입으로 몇 마디 웅얼거리는 것으로 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곤 생각지 않았다.

“넌 누구야?”

[나? 난 호랑이야.]

“.... 호랑이?”

무슨 게임의 닉네임처럼 장난스레 자신을 소개했다.

자신의 신분을 밝힐 생각이 없다는 뜻이으로 받아들였다.

바보 같이 느껴졌다.

이 호랑이라는 자식이 무슨 객기로, 자신에게 이런 문자를 보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문자에 흔들릴만큼, 이주희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치만.”

한 번.

딱 한 번쯤 입에 담아도 큰 문제가 될 건 없지 않은가.

다른 누구도 아닌, 아들을 위해서.

“주현이가 모두 잊어버렸으면 좋겠다.”

라고 말이다.

**

그리고 사건은 더 안 좋은 방향으로 흘렀다.

주현이의 머리 속에서 그 사건은 지워졌다.

아빠의 낙상사고가 자신 때문이라고 믿게 된 일은 마치 기적처럼 없어졌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쪽에 있었다.

“내가 주현이를 학대한 걸로 바뀔 줄이야.”

송주현이 마음에 떠안게 된 상처의 원인이 이주희로 바뀌게 된 것이다.

며칠 간 식사도 안 하려고 하고, 좀처럼 방 밖으로 나오지 않으려하고.

멋대로 집을 뛰쳐나간 것이 모두 이주희 탓이 되어버렸다. 남편의 죽음을 이기지 못해, 아들에게 분풀이를 한 엄마가 되어버린 것이다.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주희야, 아무리 그래도 아들한테 그러면 안 되는 거다. 주희야...”

이주희의 엄마, 안순연은 기겁을 하며, 주현이를 데리고 가버렸다.

저항은 어떠한 의미도 없었다.

아무리 학대는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그저 변명하는 것처럼 치부되고 말았다.

“완전히 실수였구나.”

그 호랑이라는 녀석이 일을 이렇게 벌여놓은 것은 틀림없었다. 틀림 없었으나, 복수도 불가능했다.

쫓을 자취 또한 없었으니 말이다.

핸드폰으로 전송된 문자는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결국 오직 이주희만이 진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꽤 기나긴 시간이 흘렀다.

이주희는 재혼하게 되었다.

세상 사람들이 이주희를 비난할 때, 그녀의 옆을 지켜주던 남자와.

다시금 마음을 열 때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렸지만.

축복이라 해야할지, 새로운 아이까지 얻었다.

“윤슬이?”

“우아!”

“흐흐, 웃는 건 날 닮았네.”

“우움!”

옹알이하는 아이를 보며 이주희는 떠올렸다. 주현이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직접 만나러 갈 수는 없었다. 그랬다간 주현이의 원망 섞인 눈초리를 마주할 게 뻔했다.

그런 눈빛을 보면 정말로 무너질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우리 윤슬이, 엄마가 하나만 부탁해도 돼?”

“움?”

조금 치사한 방법을 쓰기로 했다.

이제야 옹알이하는 이 아이는, 이주희 자신의 말을 알아들을 수도 없을 테지만.

마치 기도하듯이.

윤슬이의 행동을 결코 강제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이기적인 바램을 입에 담아보자면.

“윤슬아, 사실 엄마한테는 우리 윤슬이만큼 이쁘구 멋있는 아들이 하나 있어. 윤슬이한테는 오빠지.”

“웁바?”

“그래, 오빠. 근데 오빠한테는 엄마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줘버렸거든. 일부러 그랬던 건 아닌데, 살다보면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 너무 많더라구.”

“움...”

“그니까 우리 윤슬이가 나중에 커서 주현이 오빠를 품어줄만큼 큰 사람 되면. 엄마 대신 사랑한다고 많이 말해줄래?”

“우아움!”

“고마워, 윤슬아.”

**

“옵바! 무슨 일이야?”

“응?”

“왜 울구 이써?”

“오빠 안 울어.”

“잉? 엄마가 넘무 보구 시퍼써?”

윤슬이가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더니 작은 손가락으로 내 눈가를 훔쳐준다.

확실히 촉촉하다.

사실은 눈물이 흘렀으니까.

“다 들켜써! 이거 눈물이자나!”

“쉬잇, 윤슬이 조용히해야지.”

“아앗, 맞아. 까묵었다.”

고요한 납골당.

돌아간 사람들을 다시 만나러오는 이곳에선 되도록 조용히 하는 게 예의다.

그런 매너를 핑계 삼아 윤슬이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윤슬이에게 조금이라도 위로 받았다간, 정말 돌이킬 수 없을만큼의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부적이 달아오르더니, 내게 보여준 풍경.

그것은 내가 그간 믿어오던 사실과는 영 달랐다. 하지만 그 왜곡된 기억이, 차차웅씨가 말했던 것처럼 올바른 방향으로 되돌아왔다.

그래서 방금 눈 앞에 스친 기억들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재단할 필요가 없었다.

명백히 사실처럼 느껴졌으니까.

“옵바 잠깐 밖으루 나가자.”

윤슬이는 내 얼굴을 살피더니 손을 잡고 밖으로 이끌었다. 계단을 올라 우리가 향한 곳은 납골당의 뒷마당.

추운 날씨 탓에 잡초들이 낮고도 짧게 깔려있다.

“그러믄 안대지 옵바.”

“뭐가 안돼?”

“울믄 안대. 아무리 엄마가 보구 싶어두! 나두 맨날 참는다는 말이야. 함모니 보구 싶어두 참구. 엄마 보구 싶어두 참아. 그니깐 엄마 사진 있어서 갑자기 보구 싶어져두 울믄 안대. 쪼꿈 참아야지 대.”

윤슬이는 검지손가락을 위로 치켜올리더니 마치 훈계하는 교감 선생님처럼 근엄한 표정을 짓는다.

내가 왜 울었는지 윤슬이는 알 수 없었을 테니, 당연한 반응이다.

그런 윤슬이를 하늘 높이 들어올렸다.

“으앗! 높으다.”

“우리 윤슬이가 다 커서 이제 오빠를 혼내주네? 오빠가 잘못하면 윤슬이가 혼내줄 거야?”

“움... 쪼꿈만 혼낼게. 왜냐믄 윤스리는 옵바를 조아하니깐 많이는 못 혼내.”

“그래? 그럼 오빠 좀 혼내줘 지금.”

“어뜨케?”

“글쎄, 우리 윤슬이가 생각했을 때 이만큼 혼내면 아주 많이 혼난 거다~ 싶은 생각들 정도로 혼내줘.”

“잉? 그렇게까지 많이 혼내?”

“응, 왜냐면 오빠가 조금 잘못을 했거든.”

“옵바가? 누구한테?”

“.... 엄마한테.”

“움...?”

윤슬이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단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실제로는 어떨까. 난 엄마에게 잘못한 걸까.

잘 모르겠다.

그 기억에 따르면, 분명 엄마가 그런 소원을 빈 것은 나를 위한 행동이다.

어렸을 적 아빠에 대한 괜한 소리를 들어, 상심했던 나를 위해.

엄마는 그저 내 정신 건강이 무사하길 바랬을 뿐이다.

그럼에도 결과가 안 좋게 변해버린 것이다.

오누이가 이따금씩 이야기했었다.

세상엔 분명 악의를 품고, 사람에게 접근하는 설화적 존재들도 있다고.

그런 녀석 때문에 엄마가 악역이 된 셈이고. 동시에 나는 엄마를 미워하게 됐던 것이다.

이 흐름만 보면 내겐 죄가 없다고 볼 수도 있다. 그야 어렸을 적에 발생했던 일이기도 하고. 모종의 음모 때문에 속아서 벌어진 일이니까.

하지만 죄책감은 별개의 문제다.

“엄마는 나를 위해주었는데.”

나는 결국 그런 엄마를 마음 속으로 몇 번이고 비난하고 미워하고 욕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지금의 나로서는 감정적으로 견뎌내기 힘들었다.

그래서 누군가가 나를 혼내주면, 조금이나마 마음의 짐이 덜어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자리엔 엄마도 할머니도 안 계신다. 나를 다그쳐줄 사람이 오직 윤슬이밖엔 없다. 그러니까.

“윤슬이가 오빠 혼내줘. 많이 혼내줘. 이번엔 오빠가 실수했거든.”

“실쑤? 무슨 실쑤?”

“응, 오빠가 오해를 해서. 원래는 미워하면 안 되는데. 엄마를 너무 많이 미워해버렸어.”

“오해?”

“응. 오해. 근데 이제 오해가 다 풀려서, 오빠가 실수했단 걸 알아버렸거든. 그래서 엄마한테 너무 미안해지는데, 지금은 엄마가 앞에 안 계시잖아.

그니깐 엄마 대신에 윤슬이가 오빠 좀 혼내줘. 그러면 안 됐다고. 오빠가 잘못했다고.”

내 말을 듣더니.

윤슬이는 씨익- 나이에 맞지 않는 웃음을 짓곤 나를 와락 안아주었다.

쭈그려앉아있는 나의 볼에 자기 볼을 마구 부비적거린다.

“받아랏...!”

“.... 응?”

부비적...

부비적...

계속 볼을 비벼댄다.

“뭐하는 거야?”

“혼내주는 거야. 마니 혼내주라구 그래서, 마니마니 혼내주는 거야.”

“이게 혼내주는 거야?”

“응, 왜냐믄 옵바가 울 거 같으니깐. 이렇게 혼내줘야 돼. 울지 말으라구.”

“....”

“원래 누구나 실쑤할 수 있다. 그리구 그건 윤스리두 마찬가지구 옵바두 마찬가지. 함모니두 마찬가지. 엄마두 마찬가지. 그니깐 실쑤는 잘못이 아니야. 혼날 필요가 업써.”

“하지만.”

윤슬이는 내 막을 가로막듯 그대로 내 입을 두 손으로 틀어막아버렸다.

“변명은 듣지 않겠슴미다. 왜냐믄 누구나 실쑤할 수 있다구 윤스리한테 가르쳐준 건 옵바니까. 옵바가 한 말이니깐 직접 지켜야지대. 그니깐 혼낼 필요두 없구. 혼날 필요두 업써.”

그리곤 환하게 웃으며 말문이 막힌 내 입에서 손을 떼어 볼을 쓰다듬어준다.

“그 대신 엄마한테 가서 이쁜 선물 하나 해주고 가믄 대. 그러믄 엄마가 넘무 조아서 몽땅 다 용서해조! 실수한 것두, 잘못한 것두.

왜냐면 엄마는 윤스리랑 옵바를 너무너무 사랑하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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