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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굴러들어옴-194화 (194/200)

194화: 이사 가던 날(3)

가구를 구매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미리 이사 가게 될 방을 방문해서 대략의 크기와 수치를 재고, 가구를 고르러 온 것이기 때문이다.

크기와 수치가 머리 속에 잡혀있으면 그것에 따라서 가구를 한정하면 되니, 개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면 되는 일.

윤슬이가 쓸 책상과 의자를 고르고, 무난하고 오래 쓸 수 있어보이는 흰색 4인용 식탁을 구매하기로 했다.

또, 소파는 윤슬이의 강력한 희망에 따라 가로로 구를 수 있을 정도의 크기가 되는 물건을 선택했다.

그것에 만 4세는 대만족한 듯 집에 돌아오는 길 내내 기분이 좋아보인다.

“쿠쿠쿠... 저것만 있으믄 언제부터 어른인지 금방 알 수가 이써.”

“그건 다행이구나.”

“그렇타.”

아주 철썩 같이, 소파에서 한 번 구르고 나면 떨어지느냐 아니냐가 어른의 기준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은데.

아직은 이 환상을 깰 때가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면 스스로 깨닫는 점이 있을 것.

“근디 옵바두 어른이니깐 소파에서 구르믄 떨어지겠지?”

“...? 오빠도 해봐야 되는 거야?”

“그러믄 좋겠다.”

딱히 못 할 건 없는데, 이걸 나한테까지 시키네. 같이 놀고 싶은 모양. 귀엽게 봐주자.

**

이윽고 이사 전 날이 되었다. 이삿짐 센터와 원만한 합의가 되어 제법 괜찮은 가격에 짐을 옮길 수 있게 되었다.

애초 집 안에 놓아두었던 짐 자체가 얼마 없어서 작은 트럭을 부르기도 했고, 손 없는 날을 고르지 않았다.

상황이 잘 맞아떨어졌다고 볼 수 있겠다.

“움... 이거는 넣구. 저거는... 안 넣어두 대겠지?”

냐앙-

‘내 스크래쳐는 윤슬이가 챙겨줘.’

“알게써. 영히씨한테 소중한 거니까는 윤스리가 챙겨줄게.”

냐앙!

‘땡큐!’

솔직히 이삿짐 센터를 불렀기 때문에 아무리 이사 전 날이라도 분주하게 움직일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윤슬이는, 아까 식당에서부터 어딘가 불안해보였다.

자꾸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거나, 가게 곳곳을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돌아다니니까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을 정도.

“윤슬이, 왜 그래?”

“부, 불안하닷...”

그래보였다.

“뭐가 그렇게 불안한데?”

“내일 이사 가다가 중요한 물건 다 뿌서지믄 어뜨케 해!”

“그럴 일은... 없어 보통.”

“그건 몰르는 거자나.”

“모르는 거긴 한데, 그래도 전문가가 와서 해주시는 건데 보통 별 문제 없이 끝나.”

“움... 그래두 윤스리는 윤스리 물건에 상처가 안 났으믄 좋겠어.”

“그래?”

애가 얼마나 걱정이 되면 일하는 동안 저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불안한 표정을 지었겠는가.

나는 별 수 없이, 우리가 시장으로 장보러 갈 때 자주 사용하는 에코백을 들어 윤슬이에게 맡겼다.

“그럼 윤슬이가 제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물건만 여기에 담아서 이사하는 날 들고 다니면 되겠다. 너무 무거운 건 못 담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하지?”

“움...! 이것만 있으믄 대게써. 고마워 옵바!”

윤슬이는 그제서야 불안한 표정을 거두고, 밝아졌다. 신이 나서 에코백을 그대로 머리에 뒤집어써버린 것은 덤.

“으아, 아, 앞에가 안 보여! 살려조!”

“.... 에코백을 뒤집어 쓰니까 앞이 안 보이지.”

“쿠쿠쿠... 그 정도눈 윤스리두 알 거둔. 그냥 한 번 앞이 안 보인다구 해보구 싶어써.”

에코백을 슬쩍 들어올려 내 얼굴을 마주하고는 피식- 비웃는 만 4세.

가만 보면 이런 식으로 날 놀려먹을 때가 있다. 사춘기가 되면 어떨지, 아니 초등학생만 되더라도 입이 트여 고생이 많아질 것만 같은 예감이 종종 든다.

그래도 본성은 착하니까 어지간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이상 큰 고생은 안 하겠지.

좌우지간 아까 줬던 에코백을 십분 활용해서 자신한테 소중한 물건을 스스로 챙기고 있는 윤슬이다. 가장 처음엔 에코백에 들어갈 크기의 물건을 찾다가...

“옵바는 안 들어가니까는 영히씨를 넣어야게써.”

냐, 냐앙?!

‘날 왜 넣어!’

“이사하다가 다치믄 어뜨케 해. 다치믄 아무도 책임 안 져조!”

냐앙...

‘난 사람 모드로 직접 걸어서 갈 거니까 아무런 문제 없거든.’

“잉? 그런 방법이.”

영희씨를 넣는 건 포기한 뒤, 이번엔 무엇을 챙길까 윤슬이는 심도 있게 고민하다가 벽에 붙여둔 종이를 떼기 시작한다.

윤슬이의 키를 재기 위해서 임시로 붙여두었던 흰 종이다. 한 달에 두어 번 정도 사용하는 종이지만 윤슬이가 아끼는 물건 중 하나다.

“자기 키가 언제 얼만큼 자랐는 지 다 기록되어 있으니까.”

이 집이 우리 집이었다면, 그냥 벽에 빗금을 그어 추억처럼 기록했겠지만 그렇지 않으니 종이를 덧대어 사용하는 것이다.

“그래도 들고 다닐 수 있어서 좋긴 하네.”

윤슬이가 직접 떼려다가 잘 안 되는 모양인지 손을 번쩍 든다.

“옵바, 도움!”

“오냐.”

바닥과 벽지가 만나는 부근에 테이프를 붙여, 고정해두었다. 윗부근은 마찬가지로 벽에다 테이프를 붙였다.

툭- 툭...

손톱을 사용해서 긁어내니, 그럭저럭 깨끗하게 떨어진다. 종이에 붙어있는 테이프를 훽! 떼어버리면 찢어질 수도 있으니 조심조심 떼어낸다. 별 손상이 나지 않았다.

윤슬이에게 종이가 찢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자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거린다.

“역씨 옵바야. 부탁하길 잘해써.”

윤슬이는 내게서 키재는 종이를 받아들더니 꾸물꾸물 손으로 돌돌 말기 시작한다. 오래 사용할 물건이기에 제법 두꺼운 재질의 종이인데 손길이 야무지다.

가게에서 그래도 내 일을 몇 번씩 도와준 짬이 있는지 두꺼운 종이인데도 훌륭하게 돌돌 말아내는 데에 성공했다.

그러나.

“움...”

문제는 종이가 너무 커서 에코백 위로 볼록 머리가 튀어나온다. 윤슬이는 그걸 보고 반 접어버릴까, 고민하듯이 손으로 들어 째릿- 노려보다가.

“그냥 담으지 모.”

포기해버렸다. 에코백 자체의 길이가 짧지 않아 들고 다니기 불편한 수준까진 아니다.

그 다음으로는 무엇을 넣어야 하나, 윤슬이는 고민하다가 무언가를 떠올렸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뜬다.

그리고 재빠르게 옷장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드르륵-

지난 봄, 가을철의 옷가지들이 들어있는 아랫칸 서랍을 뒤적인다. 그리고는 원하는 것을 발견.

마치 무를 뽑듯이 양손으로 늠름하게 뽑아낸다. 덕분에 다른 옷들이, 잘 개어두었는데도 엉망이 되었다.

다시 정리해야될 것 같다.

“아앗... 따른 거가 다 망가졌따. 미안해 옵바 사고쳐써.”

“괜찮아... 오빠가 다시 정리할게.”

자기가 사고 친 건 잘 알고 있는 모양. 하지만 좀처럼 나무랄 수 없는 이유는, 동생이 두 번째로 챙긴 물건이 내가 사준 자켓이기 때문이다.

레이싱 자켓, 돌이켜보면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도 벌써 1년이다. 겨울철이라 요즘은 좀처럼 못 입고 있지만 여전히 윤슬이가 소중히 여겨준다는 게 조금 감동이다.

원래 아이들은 원하는 것을 사주어도 금방 질려해서 곤란하다고, 몇 번인가 시후 어머니한테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윤슬이는 전혀 그런 기색이 없다. 심지어 그 다음으로 챙기는 물건은 우리 집에 유일하게 둔 장난감, 미니 자동차다.

저것 역시 윤슬이랑 대형마트로 첫 쇼핑을 가면서 내가 사주었던 장난감.

가게에 있는 잡동사니를 제외하고, 우리 집에 있는 장난감은 저것뿐인데 윤슬이는 다른 것들을 제쳐두고 내가 사주었던 추억의 물건들을 가장 처음 에코백에 담는다.

“행복 상자에 뒀다가 망가지믄 안 대니깐 일단 윤스리가 챙긴 다음에 다시 넣어둘게.”

“그렇게 하자. 좋은 생각이네?”

“후후... 당연. 윤스리는 언제나 체고의 생각을 떠올려.”

얼마 전에 시후랑 유민이와 함께 만들었던 행복 상자에 들어있던 장난감이지만 망가지는 게 걱정됐던 모양.

귀중품은 스스로 잘 챙기는 게 도리인 것처럼 윤슬이는 자신의 추억들을 하나둘 모아서 에코백에 담기 시작했다.

사소한 것부터 중요한 추억들까지.

에코백 위로 물건들이 고개를 빼꼼 내밀 즈음이 되자 윤슬이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루 완성이야.”

“다 챙겼어?”

“웅, 바바 윤스리가 영히씨 스크래쳐까지 챙겨줘써 발톱 긁긁- 하는 거.”

“잘 했네?”

“응, 히히... 들어봐야지, 끄으응!”

투욱...

에코백은 힘 없이 바닥에 부딪혔다. 무거워서 윤슬이가 들어올리지 못했다기엔 다소 애매하다.

에코백의 길이가 긴 편이라 내가 어깨에 매듯이 윤슬이 어깨에 매면 바닥에 닿을랑 말랑 한다. 무게가 무거워진 것도 한 몫하는 듯.

“이러믄 윤스리가 챙길 수가 없자나!”

“.... 내일 오빠가 챙겨줄게.”

“오오...! 역씨 옵바야.”

내일 내가 직접 챙겨야할 물건이 하나 늘어버렸다.

하지만 동생이 이쁜 마음으로 챙긴 물건이니 딱히 부담처럼 생각되진 않는다.

“근데 옵바 이 집에서두 대게 많은 일 있었다. 그치?”

“그러게. 윤슬이가 오고 나서 별 일이 다 있었네.”

그 전까지는 그저 평탄한 삶이었는데 말이다. 알바에 다니면서 돈을 벌고. 집에서는 스마트폰이나 만지면서 뒹굴거리는 일상.

그게 잘못인 것은 아니지만, 윤슬이가 온 뒤로 극적으로 바뀌었다는 게 새삼 놀랍다.

“영히씨두 만나구. 오누이 식당두 차려써. 그리구 손님들두 마니마니 도와줘써.”

“그러게 별 일이 다 있긴 했네.”

“윤스리가 이 집에 오구 나서부터야. 그니깐 이 집에 고맙다구 해야지대.”

“집에 고맙다고 해야 돼?”

“응. 왜냐믄 이 집에서 재밌는 기억들이랑 소중한 추억들 마니 쌓았으니깐 당연히 고맙다구 해야지. 감사 인사는 중요하다구 그래써.”

윤슬이는 뽈뽈- 걸음을 옮겨 현관 쪽으로 향한다. 고개를 숙이며 인사.

“맨날 집에 들어올 쑤 있게 해조서 고맙씁니다.”

다시 걸음을 옮겨 화장실에다 대고 인사.

“맨날 샤워하구 오줌두 싸게 해조서 고맙씁니다.”

뽈뽈뽈... 이번엔 창문 쪽으로.

“창문이 없었으면 겨울엔 맨날 추웠을 거야. 바람 막아줘서 고맙씁니다.”

평소 손님들한테 인사드리는 것보다 훨씬 극진하게 고개를 숙이는 만 4세.

아마 이 집에 나름 정을 붙인 게 아닐까.

7평, 우리 셋이서 생활하기엔 편안한 환경은 아니었지만 그만큼 재미있던 일들도 많았는데 말이다.

휴일엔 침대에서 하루 종일 뒹군다던지. 깊이 잠들었다가 잠꼬대로 서로의 얼굴에 발을 올리게 된다던지.

밥을 먹을 때도 꼭 붙어있고, 샤워할 때도 마찬가지.

더 넓은 환경으로 이사하게 되면 그런 일들은 줄어들겠지. 물론 그게 더 좋은 일이긴 하지만. 쓸쓸한 마음이 한편으로 들기도 한다.

“윤슬아, 오빠도 같이 인사할까?”

“그게 좋케써.”

냐앙-

‘나도 같이.’

우리 셋은 비좁은 7평짜리 집 곳곳을 돌아다니며 배꼽 인사를 했다.

그동안 행복한 기억들을 만들어줘서 고맙고.

다음에 들어올 세입자에게도 그렇게 해주길 부탁하고.

“다음에 살게 될 집에서도 행복한 기억을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크고 작은 바램들을 입에 담으며.

“그동안 고마워써!”

감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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