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생이 굴러들어옴-195화 (195/200)

195화: 이사 가던 날(4)

이른 아침부터 이삿짐 센터의 도움을 받은 결과, 꽤 이른 시간에 짐을 모두 옮기는 데에 성공했다. 특히 집이 1층이기 때문에 사다리차를 따로 부를 필요가 없어서 작업이 더 일찍 끝난 것도 있는 듯.

돈이 굳은 것은 덤이다.

입주 청소까지 부탁드리고 나니, 어느 정도 사람 사는 집처럼 보이긴 한다.

“아직 해야 될 일이 많긴 하지만.”

새집에 들어가면 그만큼 생활 환경을 마련해두어야 하니 말이다. 가령 인터넷을 새로 연결한다던가. 아니면 식기나 옷가지들을 사용하기 쉽게 정리한다던가.

우리의 관심사는 그런 사소한 데에 있지 않다. 입주 청소가 어느 정도 깔끔하게 끝나자마자, 우리 가족은 한 차례 집을 둘러본 이후, 곧장 윤슬이 방에 집합했다.

“움... 허전하구먼.”

“그렇네.”

허전하다는 표정이 정확하다. 반드시 두어야할만한 가구는 다 두었다. 또, 넓은 방은 아니다. 침대와 책상, 그리고 옷장 정도 두니 어느 정도 실용적인 방이 갖추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허전하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역시나 인테리어가 많이 모자라기 때문!

“윤스리 스따일로 꾸며야게써.”

“아무래도 그게 좋겠지?”

냐앙-!

‘원래 자기 공간은 자기 취향대로 만지작거리는 게 도리거든!’

잔뜩 텐션이 오른 우리 가족.

그도 그럴 것이, 원룸에서 이사를 온 것 때문에 일단 신이 나있다. 거의 집 크기가 두 배로 늘어난 것이다. 우리 가게의 뒷방 창고와 비슷한 크기의 화장실은 조금 더 넓고 깔끔해졌다.

입주 청소가 끝난 화장실의 벽과 바닥 타일을 보고 윤슬이가 깜짝 놀라서 만져보더니.

“우오! 옵바, 색깔이 들어간 거울이 이써!”

라며 깜짝 놀랄 정도였다.

반질거리는 흰색 타일에 자기 얼굴이 비추는 것을 보고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원래 집의 화장실 벽과 바닥은 무광에다가 약간의 생활떼(청결에는 나름 까다로운 내가 몇 번이나 벗기려고 시도했지만 좀처럼 떨어지지 않던, 지겨운 놈들)가 껴있었기에 윤슬이 못지 않게 내 마음도 마치 격세지감이었다.

또, 만족스러운 것은 주방!

“옵바, 이 정도믄 우리 오누이 식당 주방이랑두 비슷해!”

“그러게, 여기서 이제 맛있는 거 많이 해먹을 수 있겠네?”

“다음 휴일엔 윤스리가 요리두 해주께. 영히씨두 같이 윤스리랑 요리하믄 대게써.”

냐앙...

‘난 냥아치니까 먹는 쪽으로만 할게.’

“움?! 그럴 쑤가. 이런 분위기에서 저렇게 이기적으루 말하다니. 역씨 고양이야.”

만 4세의 일침.

고영희씨는 입을 다물고, 그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약삭빠른 고양이!

사실 그것과 별개로, 윤슬이의 말은 조금 잘못되었다. 아무리 새로 이사온 집이, 기존의 집보다 넓다고 하더라도 오누이 식당의 주방과 비할 바는 아니다.

워낙 식당의 주방이다보니 화구도 그렇고, 냉동고 및 냉장고가 업장용이라 부피가 크기에 공간을 많이 차지하여 실제로 돌아다닐 수 있는 공간 자체는 비슷할지 몰라도.

넓이 자체는 식당 쪽이 월등히 넓다.

“아무튼 그만큼 우리 가족이 흥분했다는 뜻.”

그밖에도 창문이 여러 군데에 나눠져 퍼져있다는 점이 윤슬이 마음에 쏙 들었고. 무엇보다 소파가 있기에 이제 침대에 드러눕거나, 침대의 매트릭스에 기대어 TV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만족감을 불러왔다.

“쿠쿠쿠... 이제 소파에서 팝콘을 먹으믄서 TV를 봐두 아무런 문제가 업써. TV는 침대가 아니거둔.”

“그래, 그래. 그것도 장점이지. 근데 윤슬아?”

“움?”

“아무리 굴러도, 네가 떨어질 것 같진 않아.”

“치잇.”

윤슬이는 꼭 소파 쪽을 지나다닐 때마다 한 번씩 그 끝자락에 올라서 당당하게 구르기를 한 번씩 시전하게 되었다.

오늘 하루에만 다섯 번은 굴렀을 지경. 심지어 아까는 아직 이사가 다 끝나지 않았는데도 눈치를 보더니, 한 번 구르려 들어 말리느라 진땀을 빼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집을 한 차례 둘러보니, 이제 자연스레 남은 것은 윤슬이 방인데. 동생 방을 처음 만들어주려니, 조금 고민됐다.

윤슬이 취향이 어떤 건지는 나도 잘 알고 있다. 오히려 알록달록하게 꾸미거나 캐릭터 상품들을 나열하면(종종 유치원생들의 방에서 볼 수 있는 풍경) 오히려 윤슬이는 싫어한다.

그렇기에 내가 독단적으로 무언가를 구매하기에는 망설여졌다. 윤슬이와 함께 방을 직접 둘러보면서, 어떤 물건으로 인테리어를 해줄지 정하고 싶었다.

“우선 방 주인?”

“움! 윤스리가 이 요새의 주인이오.”

“요새야?”

“그렇타. 윤스리 방인 이상, 이제 여긴 그냥 방이 아니라 요새야!”

“그래, 요새의 주인. 방을 어떻게 꾸미고 싶은지 이야기해보시오.”

“움...”

고뇌하는 5세.

미간을 팍! 찌푸리며 턱을 괴는 게 몽상가의 형상이다. 무언가 중요한 것을 떠올릴 때 윤슬이는 종종 저런다.

냐앙-

‘근데 요새라기엔 보안이 너무 허술한데.’

지적하는 고영희씨. 그 지적의 포인트는 바로 방문이 잠기지 않는다는 하자에 있다. 집주인 분이 바로 고쳐준다고 하긴 하셨다.

고치면 금세 해결되는 하자이긴 하지만. 만 4세의 입장에선 그 지적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고뇌하던 도중 집중을 풀더니 횡설수설 변명을 한다.

“그, 그거눈 금방 고칠 쑤가 이써. 아직 요새가 다 안 만들어져서 쪼꿈 모자란 부분이 있는 거거든!”

꽤나 이 방을 요새로 가꾸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모양.

그런 윤슬이의 모습을 보니 불안해졌다.

설마 벽돌이나 대포 같은 걸 가져다두자는 소리를 하는 건 아니겠지?

내 동생의 평소 마인드를 고려해보면 충분히 그럴만도 하다.

“충분히 고민했니?”

“움, 근디 잘 생각해봤는데 별루 고민할 것두 업써.”

단단한 확신히 선 말투. 명확히 원하는 인테리어의 그림이 있는 것 같다. 그리 화려한 인테리어를 도와줄 수는 없겠지만 나는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동생이 처음 방을 갖게 되는 것이니, 되도록 좋은 기억을 안겨주고 싶은 바램이다.

“윤슬이가 원하는 게 뭔지 얘기해봐. 오빠가 웬만하면 다 들어줄게.”

“오오...! 진짜루?”

“그럼, 원래 돈은 한 번 쓸 때 팍팍 써야되는 법이거든. 이번에 이사할 때 가구도 여러 모로 샀으니까 겸사겸사 윤슬이 원하는 인테리어 자재들도 같이 사버리면 돼.”

여유는 된다. 입주 청소도 부르면서 꽤 호사스럽게 이사를 하긴 했지만, 1층으로 이사한 터라 사다리차를 부르지 않아 이삿짐 센터에게 일을 맡기는 비용이 많이 들지 않았다.

절약한 부분이 있으면 그만큼 투자를 해도 되는 법!

“움? 근데 아마두 돈은 별루 필요가 업써.”

“돈이 필요가 없어?”

그렇다니 괜히 더 불안해진다. 차라리 사다줄 수 있는 거면 사다주겠는데. 돈이 필요없다면 필연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조금 찜찜한 마음으로 윤슬이 대답을 기다리는데, 갑자기 밖으로 튀어나가더니 에코백에 챙겨둔, 키를 재는 종이를 가지고 나온다.

그리곤 내게 키를 재기 위해 그어둔 빗금이 보이는 쪽을 보여준다.

“이건 거실에 붙여두기로 했잖아. 매달 거실에서 다 같이 한 번씩 재보기로 했으니까.”

“웅, 근데 이거 여기 붙이자는 게 아니구.”

윤슬이는 다시 종이를 뒤편으로 돌려, 아무 것도 그어지지 않은 흰색면을 보여준다.

“종이가 필요해.”

“종이? 그냥 흰 종이?”

“웅, 이따만한 종이 갖구 벽에다가 붙일 거야.”

그림이라도 그릴 생각인 걸까? 그렇다면 정말 만 4세치곤 배려가 뛰어난 거다. 그냥 벽지에다가 냅다 크레파스를 갈기는 유아들도 적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윤슬이가 직접 방에다가 그림 그리면서 꾸미려고 그러는구나?”

“움? 아니구. 옵바가 해주는 거라니깐.”

“...? 내가 그림 그려달라는 거야?”

“그림 아니구.”

“그림이 아니면 종이를 벽에다가 왜 붙여?”

“윤스리 나중에 커서 요리사할 거야. 옵바랑 같이.”

그건 여러번 들어서 알고 있다. 윤슬이의 현재 꿈은 요리사인 것 같다.

“그니깐 지금부터 미리미리 훈련이 필요해!”

“가게에서도 심심할 때마다 칼질 한 번씩 하고 있잖아.”

저번에 윤슬이가 직접 요리를 한 번 대접했던 적이 있다. 그때 사용하던 식칼은 당연히 버리지 않고, 종종 쓰고 있다.

“칼질 가지구는 모잘라. 윤스리는 할 줄 아는 요리가 옵바만큼 많지가 않으자나. 그니깐 종이에다가 요리법을 적어서 벽에다 붙여두는 거야. 그럼 옵바만큼 마니 알 수가 있자나.”

“아아... 그런 거였어?”

“그렇타.”

그러니까 윤슬이는 자기 방의 인테리어를 꿈에 투자하고 싶은 모양이다. 아직 미래에 요리사가 정말로 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 노력을 위하여 요리 레시피 등을 종이에 적어 벽에 붙여두고.

두고두고 외우고 싶은 것 같다. 그런 일이라면 오빠로서 당연히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럼 당연히 도와줘야지! 당장 가서 오빠랑 하나씩 적어볼까?”

“그게 좋케써.”

우리는 곧장 식탁으로 나와 빈 종이에다가 레시피를 적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키를 잴 때 사용하는 커다란 종이보다는 A4 사이즈의 종이를 사용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그쪽으로 정했다.

“윤스리가 직접 적구 싶지만 아직 글씨를 잘 모름니다. 옵바의 도움 매우 필요.”

“이런 부탁이면 언제든지 해도 돼. 근데 그냥 오빠가 알고 있는 요리 레시피를 전부 적어주기만 하면 되는 거야?”

윤슬이는 요즘 글씨를 제법 잘 읽는다. 유치원도 다니지 않는데 훌륭한 수준이라며 미정 선생님도 한 번 칭찬하신 적이 있다.

그러니까 써주면 써주는 대로 열심히 읽어보기야 할 것이다.

대충 윤슬이가 외워서 직접 시도해볼만한 요리를 몇 개 적어줘볼까, 생각하는데.

“근데 옵바 잘 생각해보니까는 쪼꿈씩만 채우면 대게써. 벽을 다 채우는 건 나중 일.”

“조금씩만 채울 거야?”

“응, 한 번에 다 채우면 어짜피 기억하지두 못해. 윤슬이 그르케까지 안 똑똑하거둔.”

자기 주제 파악이 확실한 만 4세였다.

매우 긍정적인 일이다.

“그니깐 윤스리가 직쩝 요리할 수 있는 요리법들루만 쪼꿈씩 채우면 대는 거야. 그러다가 저 방 한가득 차면 윤스리두 옵바나 영히씨처럼 어른이 댈 수 있겠지?”

“그러게.”

A4 용지 한 장에 레시피 하나라고 치고, 이걸 한 방에 있는 네 면의 벽을 채울 정도로 다닥다닥 붙일 수 있게 된다면.

그 레시피를 모두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그때쯤이면 오빠 대신해서 오누이 식당 사장 될 수도 있는 거 아니야?”

“쿠쿠쿠... 그러믄 멀지 않았구만. 각오하는 게 조을 거야 옵바.”

“....”

오늘도 만 4세의 야망은 끊이질 않고. 나는 윤슬이가 직접 해볼 수 있을만한 요리 레시피 몇 개를 적어 윤슬이 방 벽에 붙여두었다.

약간의 빈 공간에는 영희씨가 프린트기로 사진을 인화해 음식 사진을 붙여서 조금 더 직관적으로 알아볼 수 있게끔 도와준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이제 새집에서 새출발 하는 거거둔!”

윤슬이의 당찬 외침과 함께 우리 가족의 새출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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