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화: 염라(3)
“소원을 들어 주겠다구요?”
“그래.”
“.... 사기꾼 아니에요?”
“아니다.”
“저도 나름 오빠랑 어렸을 때부터 사회생활 했기 때문에 눈치는 있는 편이거든요! 속이려고 하시면 안 돼요. 특히 소중한 사람 들먹이면서 속이려고 하는 게 제일 나쁜 거랬어요. 그... 보이스피싱? 같은 거요.”
“아니라니까 그러네.”
좀처럼 믿어주지 않는 장윤슬을 설득하기 위해 염라는 이주희, 친모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호랑이 때문에 인생이 송두리째 뒤틀린 여자, 그 인간에게 어떠한 보상을 내려줘야 할지 저승에서도 고민이 많았던 것이다.
사후 보험 같은 개념이다. 살아남은 친족에게 마땅한 보상을 지급하는 방식. 원래대로라면 저승의 존재가 직접 도래할 일은 없었겠지만, 송주현의 죽음이 가까워진 것이 문제였다. 이대로라면 장윤슬은 더욱 큰 불행을 겪게 될 것이 뻔했기에.
저승 입장에서도, 이런 식으로 한 가정이 뒤틀려버린 것은 초유의 사태였던지라 이번엔 이례적으로 저승의 왕인 염라가 직접 행차했다.
한편 해와 달이 된 오누이의 경우, 이 가족의 상황을 보고 딱하게 생각하여 자진해서 찾아온 것이다. 저승에서의 보상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다.
덧붙이자면 인간의 수명을 좌우할 정도의 힘은, 오누이에게 없었다.
그 간결한 설명을 듣고 장윤슬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조금 믿을 마음이 생겼나보군.”
“그럼 암튼 뭘 빼앗아가려고 온 건 아니고, 주려고 온 거란 뜻이잖아요?”
“.... 간단히 설명하면 그렇게 되는군.”
“그럼 염라 아저씨 좋은 사람이네요.”
“믿어주니까 고맙다.”
방금까지는 보이스피싱 운운한 주제에 갑자기 태도를 바꾸는 것은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싶었는데 표정에서 모든 게 드러났다.
무엇을 요구하고 싶은지 말이다.
“참고로 말해주자면 네 오빠의 수명을 늘려달라는 부탁은 들어주기 어렵다.”
“엥?!”
“불쌍한 표정으로 엥, 이라고 해도 안 되는 건 안 된다.”
“왜요. 소원 들어준다면서요!”
“수명에 관한 건은 별개의 이야기다. 그건 순리야. 과거의 수많은 인과로부터 쌓여온 인간의 귀결점. 그것을 내 손으로 바꾸었다가는 다른 인간의 수명에까지 관여하는 일이 되어 버리지.”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내가 송주현의 운명을 바꾸게 되면 필연적으로 다른 인물들의 인과도 바뀌게 된다. 네 오빠가 오래 살아남으로써 다른 누군가가 일찍 죽게 될 수도 있다는 거야. 넌 그런 상황을 바라는 것이냐?”
“.... 그건.”
그런 것은 아니었다.
사람은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가족일 수밖에 없다. 가족이란 본래 누구에게든 소중한 존재.
자신의 가족을 위해 타인의 가족을 희생시킨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적어도 그런 식으로 살아남아서 오빠가 기뻐할 리가 없다고, 장윤슬은 믿었다.
“네 오빠를 살려달라는 부탁 말고는, 무엇이든지 도와주마.”
“무엇이든?”
“그래, 아마도 네 오빠가 근 몇 년 내에 저승으로 돌아오게 되면 금전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하겠지.”
“그렇게 되겠죠.”
“네가 평생 살 동안 모자르지 않게 살 수 있을만큼의 자금을 준비해주마. 로또든 주식이든 이용하면 어려울 일은 아니지.”
“.... 그런 건 됐어요.”
“흠, 그런가. 그럼 네가 원하는 재능! 어떤 재능이든지 하나 주겠다. 미래에 네가 어떤 직업을 갖게 되건 그 분야에서는 정점을 찍을 수 있도록. 하면 너의 미래도 보장이 되겠지.”
“그런 것도 필요 없어요.”
“...?”
완전히 예상 밖이었다. 장윤슬은 그밖에 무엇을 준다고 말해도 고개를 흔들었다.
뭇 인간들이 원할만한 것들을 제시했음에도 소녀는 흔들리지 않았다.
심지어 장윤슬이 건강하고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미래를 보장하는 것은 송주현 또한 원하는 결과일 텐데 말이다.
원래 남매라는 게 저리도 애틋한 존재인 것인가. 송주현과 장윤슬의 과거사에 대해서는 염라도 피상적으로나마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장윤슬의 의지는 아주 단단해보였다.
“계속 그렇게 싫다고만 해도 곤란하다.”
“뭐가 곤란하신데요.”
“아무튼 너에게 모종의 보상을 하는 것은 저승에서도 이미 결정한 사항이다. 네가 계속 받지 않겠다고 시위하면...”
“시위하면?”
“나는 네가 원하는 걸 찾아낼 때까지 끊임없이 무언가를 제시해야만 한다.”
“그래요?”
씨익- 웃는 장윤슬.
여태껏 보여준 것 중에 가장 극적인 표정 변화였고. 염라의 등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그럼 저 원하는 게 있어요.”
“뭐지?”
“직접 오빠를 살려주지는 않으셔도 괜찮아요. 대신 오빠를 제가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네가 직접?”
“네.”
“그건... 거의 말장난이군.”
“안 돼요?”
“그런 식으로 표현한다면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의아하구나.”
“어떤 점이요?”
“어찌 그리도 필사적이냐. 분명 송주현이 널 오랜 시간 길러준 것은 알고 있다만. 네게 방금까지 제안했던 것들이 결코 나쁜 조건들은 아니었을 텐데. 어찌 그렇게 완강히 거부하고는, 고작 요구하는 게 네 스스로 네 오빠를 살릴 방법을 알려달라는 것인지.
난 네 속이 궁금하다.”
특히나 염라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지켜봐온 저승의 왕이다. 인간들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선망하고, 어떤 미래를 그리는지쯤은 이미 꿰고 있었다.
그런 일반적인 것들과 장윤슬의 가치관은 차이를 보였고. 염라는 호기심이 생겼다.
염라의 물음에 장윤슬은 시원하게 웃으며 답했다.
“나한테는 당연한 일이에요.”
“당연하다?”
“오빠는 아직 다섯 살밖에 안 되었던 나한테 여러 세상을 보여줬어요. 맛있는 음식이 뭔지, 또 생일은 어떻게 축하하는 건지, 소중한 사람을 소중하게 대하는 방법이나, 소소한 걸로도 큰 재미를 얻는 법, 추억을 간직하는 법, 어른이 되는 법... 너무 많은 걸 알려줬어요.
그러니깐 이젠 내가 오빠한테 알려줄 차례에요.”
“무얼 말이지?”
“오빠가 이렇게 열심히 길러준 동생이 얼마나 멋있게 자라났는지.”
염라의 입꼬리가 비틀어지며 말려올라갔다.
“.... 너는 재미있는 아이구나.”
“그렇죠? 그러니까 알려주세요. 제가 어떻게 하면 오빠를 살려줄 수 있을까요? 되도록 오래 살면 좋겠는데.”
“원래대로라면 인간의 수명을 바꾸는 짓은 해서는 안 될 일이지만, 네가 들려줄 이야기가 신경 쓰여서 조금 편법을 쓰고 싶구나.”
“편법?”
“그래, 나와 내기를 하자.”
“내기.”
“그래, 네 오빠를 살리고 싶다면 해야 할 일은 아주 간단하다. 네 오빠가 죽게 되는 원인을 제거하면 되는 거야.”
“죽게 되는 원인을 제거하라고요? 병원에서는 복합적인 이유로...”
“그건 병원의 입장에서 본 것이겠지. 인류의 의학은 우리 저승에 비해서 전능하지 않아. 네 오빠의 질병 재발 원인은 스트레스다.”
“스트레스...?”
순간 장윤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설마 본인을 키우다가, 그만큼의 스트레스를 받게 된 것일까.
그런 생각이 들던 차에 염라가 손사레를 쳤다.
“너에 대한 스트레스는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럼요?”
“미래에 대한 걱정, 이라고 하면 이해할 수 있을까? 너도 알다시피 너희가 차린 오누이 식당에는 많은 사람들이 들렀지.”
“네 알아요. 근데 우리 손님들은 오빠랑도, 저랑도 되게 많이 친한데. 사이도 좋아서 가끔 공짜로 밥도 해주고. 반대로 뭐 좋은 거 있으면 그쪽에서도 챙겨주시는데.”
“맞아. 오히려 그것이 더 문제가 되었네.”
“그게 문제가 될 게 뭐가 있어요?”
“그래. 너도 잘 알겠지만 평소 친하게 지내는 손님들의 경우 모종의 문제를 안고 있지 않나?”
그 말을 듣고 짐작이 가는 구석이 몇 개 있었다.
‘아내분이 돌아가신 강필중 아저씨.’
‘얼마 전 운영하던 고깃집을 그만두고 시골로 내려가신 호연 삼촌.’
‘엄마랑 따로 사느라, 아빠를 그리워하는 유민 오빠.’
‘소설가로서의 삶을 실패하고 우리 가게에서 알바하는 치호 삼촌.’
‘시력을 잃은 오빠와 사이가 틀어진, 단골 언니.’
등등.
**
“뭐라고요? 그럼 원래 그 사건들은.”
“원래대로라면 해결되지 못했어야 할 사건들이지. 최근의 예로 들자면, 차차웅과 김미정은 재결합을 못할 운명이고. 내가 지금 몸을 빌리고 있는 이 고양이 역시 그대로 생을 마감했을 운명이야.
심지어 자네가, 친모인 이주희의 진의를 알게 된 것도 인과의 변화지. 네가 죽었을 운명인 세계에서 너는 여전히 친모를 원망하고 있으니까.”
“그럼 그것들이 전부 윤슬이 덕분에 바뀌었다는 말이에요?”
“그렇지.”
하지만 그런 일들 때문에 내가 심장병이 재발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과연 단순히 누군가가 실패하고, 잘못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가 그렇게 큰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그건 아니었다.
만약 내가 그런 것들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다면, 가장 가능성이 높은 이유는.
압박감.
친하게 지내던 지인들의 실패와 고통을, 친하게 지낼수록 조금씩 엿보게 되면서.
세상에 절망한 게 아니었을까.
심지어 엄마의 진심조차 알지 못한 채, 영영 그녀를 원망하고 지냈다면, 그 절망감은 더욱 커졌겠지.
그와중에 윤슬이를 길러야만 했을 테니 전혀 겉으로 티는 내지 못했을 거고.
“어느 정도 납득이 가네요.”
“그래. 자네 스스로의 일이니, 스스로가 가장 잘 이해할 수 있겠지. 그렇게 되어서 내기에 관한 얘기네만.”
**
“그러니까 염라 아저씨가 직접 인과를 바꾸려고 하면, 저승 쪽에서 항변이 들어오는데. 내가 억지를 부려서 과거로 돌아가게 되고 그 결과에 따라서 인과가 변하는 거면 염라 아저씨 입장에서도 변명 거리가 생긴다, 이 말이죠?
염라 아저씨도 지옥의 수장으로서 입장이 있으니, 그 억지를 부리는 과정을 내기라고 표현하자는 거고요.”
“그래, 잘 요약했다.”
“그럼 왠지 나만 고생하게 되는 그림 아니에요?”
“하지만 네가 택한 길 아니겠니. 다른 방법은 없단다. 저승에서 수명을 관리하는 일도 여간 복잡한 게 아니야.”
“그건 그렇겠죠. 아저씨 말이 맞아요! 어차피 이 방법 아니면 오빠 살릴 방법도 없어보이니까. 어쩌겠어요!”
장윤슬은 어깨를 으쓱이며 의지를 표현했다. 자신감에 차 있는 표정.
아니, 기대인가.
기쁨일지도 몰랐다.
“좋아보이는구나.”
“응! 좋아요, 왜냐면 내가 오빠한테 드디어 갚아줄 수 있잖아요. 그동안 나한테 잘해줬던 거, 이번에 한 번에 다 갚는다고 생각하죠 뭐. 이 정도면 효녀 아니에요?”
염라는 고개를 주억거리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리고 마지막 주의 사항을 알려주었다.
걱정이 되는 듯, 장윤슬의 한 쪽 손을 꼬옥 쥐고서.
“이제 시간의 통로를 열어줄 거야.”
“네, 다녀올게요.”
“그래. 바뀌어있을 미래에서 기다리마.”
장윤슬은 염라에게 주먹을 뻗었다. 그리고 요즘은 좀처럼 입에 담지 않았지만.
이전에는 오빠와 장난을 치며 많이 뱉었던 대사.
자신이 세상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던 다섯 살의 철 없는 대사.
그리고 지금 뱉으면 누구보다 멋있을 것만 같은, 그런 대사를.
“오빠를 살리게 되면 당당히 염라 아저씨 앞에서 말해줄 거예요.”
“으음? 뭐라고?”
“이번에도 역시 작전 성공, 이라고요.”
장윤슬은 그대로 시간의 통로로 빨려들어갔다.
회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