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동생이 굴러들어옴(6)
빙글빙글 돌아가는 시간의 통로.
그 앞에 잠시 멈추었던 장윤슬은 염라와의 대화를 잠시 떠올렸다.
“잠시, 그곳으로 들어가기 전에 알려줘야할 사실이 하나 남아있다.”
“뭐가 남았어요?”
자기 나름 멋있는 대사를 마지막으로 뱉고, 통로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염라가 막아서니 머쓱해졌다.
“중요한 사실이야. 네가 그 통로 안으로 들어가면, 아주 높은 확률로 다섯 살로 돌아가게 된다.”
“인생 황금기네요. 시험도 안 봐도 되고, 공부도 안 해도 되니까. 책도 오빠가 다 읽어주고.”
“아마 그 시간대로 돌아가면 그런 생각도 전혀 들지 않게 될 거야.”
“그건 또 무슨 말씀이에요?”
“넌 대부분의 기억을 잃게 된다.”
“...? 아니, 그러면.”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장난 삼아 인생 황금기니 뭐라니 떠들어보았지만, 기억을 잃는다니.
“그럼 과거로 돌아가도 오빠를 살리려고 돌아왔다는 사실 자체를 전부 잊는다는 말이에요?”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지. 거의 대부분 잃어버릴 거다. 말버릇이나, 행동거지 같은 습관의 영역까지 모두 지워버릴 정도로 새로운 인격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니야.
하지만 기억이 지워진다는 것은 너의 지식과 의식이 희미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네가 저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단순히 몸만 다섯 살이 되는 게 아니라, 지적인 수준도 다섯 살이 될 거다.”
아니.
그렇다고 한다면.
과거로 돌아가도, 오빠가 머지 않아 죽게 된다는 사실을 모두 잊게 된다면.
이렇게 돌아가는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불러세운 것이다. 마지막으로 너의 의지를 묻기 위해.”
“의지?”
“방금 들었잖니. 기억을 잃게 된다고. 네가 만약 지금의 기억과 마음을 모두 유지한 채로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아마 송주현의 운명을 바꾸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지도 몰라.
하지만 기억의 대부분을 잃어버린 상태라면 이야기는 아예 달라진다. 물론 나도 네가 실패하길 바라는 것은 아니야. 기억을 간직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시간의 통로를 지난다는 건 그만큼 인간의 몸에 부담을 주는 일이다.
불가피해지는 일인 게지. 그렇게 기억을 잃게 되면 자연스레 네 오빠의 일도 잊게 될 테니. 그 다음은...”
“똑같은 미래가 반복될지도 모르겠네요.”
“오히려 그렇게 될 확률이 높다고 봐야겠지.”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장윤슬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 모습을 보고 염라는 뒤통수를 긁적인다. 티는 내지 않았지만 반쯤 체념했다.
‘그래, 이렇게 되겠지. 애초 오빠를 위해서 과거로 되돌아가겠다고 한 것만으로도 의지가 대단한 아이다.’
기억을 잃게 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인간에게는 버거운 짐이다. 헌데 그 상태에서 과거로 돌아가 미래를 바꾸라니.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아니, 오히려 그렇게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염라는 다가가 장윤슬의 어깨를 토닥인다.
“포기해도 좋다.”
“네?”
“지금 포기하더라도, 약속은 지킬 거야. 네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마. 지금이라도 얘기해봐.”
“....”
“네 의지는 충분히 보여줬다. 솔직히 감동까지 받았단다. 네 오빠와 당장 이별하는 게 되는 것도 아니야. 네가 성인이 될 때까지, 조금 앓기는 하지만 제대로 살아있다. 그러니까.”
“아뇨, 들어갈 거예요.”
“...! 진심이냐?”
“네, 애초에 망설이지도 않았어요. 그냥 한 가지 궁금했던 것뿐이에요.”
“뭐가 궁금했지?”
“일단 이것부터 말할 게요. 저는 자신이 있어요.”
“자신이 있다?”
“반드시 실패할 자신이 있어요.”
“???”
얘가 지금 뭐라는 걸까. 실패할 자신이 있다면서 들어갈 거라고, 저렇게 당당하게 말하는 것도 그렇고.
염라에게 장윤슬은 좀처럼 예측하기 어려운 아이가 되어가고 있다.
“실패할 자신이 있다면서 대체 왜 들어가려고 하는 거냐.”
“실패할 자신은 있지만 포기할 자신은 없으니까요.”
“.... 그래. 알겠다. 그래서 뭐가 궁금한 거지?”
“제가 만약에 실패해서, 오빠가 죽는 미래를 못 바꾸면 그때도 염라 아저씨가 나타나서 도와주나요?”
“과거가 특별히 변경되는 지점 없이, 주욱 이어진다면 저승에서도 똑같은 이야기가 나올 테고. 그렇다면 난 다시 너를 이 시점에서 만나게 될 거다. 지금과 똑같은 이유로.
하지만 다른 게 있다면 난 그때 너와 지금 하는 내기의 내용을 기억하고 있다는 점이겠지.”
“그럼 오히려 형편이 좋네요. 몇 번이고 다시 시도할 수 있다는 얘기니까. 염라 아저씨랑은 내기를 하는 도중이니까, 그때도 다시 이 통로 열어주셔야 돼요. 만약 실패하더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 그럼 네가 궁금했던 건, 한 번 실패해버리면 다시 네 오빠를 구하러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냐는 거였나.”
“네. 처음부터 그것만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허허.”
염라는 허탈하게 웃었다.
더는 저 여자아이를 말릴 수도 없을뿐더러 말리고 싶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음 속으로 응원하게 되었다.
‘네 작전이 성공하기를 바라마.’
염라는 자신이 내기에서 결국에는 패배하여, 장윤슬이 송주현을 구해내기를 간절하게 바랬다.
그리고.
장윤슬은 천천히 걸음을 내딛어, 시간의 통로로 들어갔다.
회귀다.
빙글빙글.
빙글빙글.
서서히.
마치 드럼통처럼 돌아가는 세계.
“으아아악! 이래서 기억을 잃어버린다고 했구나아아아...”
어지럽다.
드럼 세탁기의 안에서 마구마구 회전하는 빨랫감이 된 것만 같은, 기묘한 기분으로 장윤슬은 허공에서 굴렀다.
염라가 기억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했던 말이 그제야 이해가 갔다.
물리적으로 뇌를 빙글빙글 돌리니까, 있던 기억이 사라지고 없던 기억도 생겨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도 썩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오빠를 구해낼 수 있다는 기대감. 그리고 과거로 돌아가는 통로에서 파편처럼 보이는 그간의 행복했던 기억들.
그런 것들로 휩싸인 채 과거로 날아가는 여정은 심적으로 고된 길은 아니었다.
물론 머리는 어지러웠지만 말이다.
“으어어어...”
구르고 구른 끝에 도착한 곳엔.
“윤슬이... 오빠 오면 인사를 잘해야지 된다?”
“으움... 함모니?”
“그래. 할머니. 그리고 곧 오빠 올 거야. 오면 숨지 말고 인사 잘 해야지 돼.”
“응, 알게써.”
외할머니가 계셨다. 원래의 세계에서 돌아가신 지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다. 그리웠던 할머니. 하지만 울고 있을 시간도 없었고. 그런 감정도 좀처럼 들지 않았다.
기억은 점점 희미해져가고, 그에 따라 감정도 점차 희미해져갔다. 모랫가루처럼 손 사이로 빠져나가는 기억들.
그 사라져가는 것들 속에서 장윤슬은 흔적을 남기려 애썼다.
‘오빠를 지켜야 한다.’
‘오빠가 죽게 나둬서는 안 된다.’
‘최대한 오빠 말 잘 듣고, 스트레스 안 받게끔.’
‘우리 가게로 찾아오는 손님들도 모두 행복할 수 있도록.’
해낸다.
오빠를 지켜낸다.
운명을 바꾼다.
몇 번이고 되뇌이던 와중.
띠, 띠, 띠, 띠.
귀에 익은 소리가 들려온다.
처음으로 함께 살게 되었던 원룸의 도어락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
그리고 오빠가 들어온다.
할머니의 뒤에 숨었다. 숨어버렸다.
오빠와 나누었던 미래의 기억이 희미해지고, 본능만이 남은 것이다. 할머니의 등뒤에 숨은 건으로 혼이 나고.
끝내 앞으로 끌려나와 오빠와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외할머니와 오빠는 대화한다.
그 대화의 결론을 장윤슬은 알고 있다.
결국 오빠인 송주현이 자신을 맡아 키우게 될 것이라는 결론.
오빠는 조금 곤란한 얼굴로 장윤슬에게 다가와 묻는다.
“윤슬아, 혹시 잠깐 이리 와볼까?”
“와써여.”
“윤슬이만 괜찮으면, 당분간 나랑 여기서 같이 지내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해?”
당연히 좋다. 오빠와 함께 만들었던, 지난, 잊혀진 추억들은 정말 최고의 기억들이었다.
이제 흔적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게 무엇보다 소중한 기억들이란 사실만큼은 아직까지 잊지 않았다.
물론 그마저도 슬슬 희미해지고 있다.
그래서 이야기해야 한다.
좋다고.
오빠와 함께 살면 좋을 것 같다고. 행복할 것 같다고.
허나, 장윤슬의 입술이 떨어지면서 나온 말은.
“우움... 안 되는데.”
만약.
아주 만약의 일이다.
자신이 오빠와 함께 살지 않게 된다면.
여기서 함께 살기 싫다고 떼를 써서 할머니와 함께 강릉으로 되돌아가고.
그렇게 오빠가 혼자 살게 된다면.
아마 오누이 식당을 차리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애초 식당을 차리게 된 계기가 장윤슬, 자신이었으니까.
그리고 자신을 육아하느라 힘에 부치는 일도.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을 것이다.
가게의 손님들과는 만나지 못하고, 그들의 일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일 역시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된다면 오빠는 죽을 운명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희미해지는 기억 사이에서 논리와 감정과 오류가 섞인 판단을 하고. 입술을 떼고 말았다.
“우움... 안 되는데.”
그런 장윤슬에게 송주현은 이렇게 말한다.
“안 되는구나. 혹시 이유가 뭘까?”
“윤스리랑 가치 이쓰면... 힘드러.”
“힘들어? 누가?”
장윤슬은 송주현을 얇은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그 모습을 보며 외할머니는 혀를 찬다.
“으휴, 미안하다. 애기 데리고 희영이네 집에 몇 번 들렸었거든. 걔가 괜한 소리해서 또 이러네.”
할머니의 추측은 사실이 아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이렇게 말하면 오빠인 송주현도 고민하게 되지 않을까. 안 그래도 스물다섯 젊은 나이인데, 굳이 고생하지 않고. 스트레스 받지 않고.
더 행복하게 사는 길을 택하게 되지 않을까. 아이 쪽이 오히려 안 된다고 거절한 것이다.
그렇다면 송주현이 고개를 흔들며, “제가 키우진 못할 것 같네요. 윤슬이가 불편해할 것 같아서요.”라고 말하여도.
그 누구도 비난하지 못할 것이다.
분명 그럴 것인데.
송주현은.
오빠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오빠는 이렇게 말한다.
“윤슬아, 나는 있잖아. 너랑 이 집에서 사는 게 하나도 안 힘들고 많이 고마울 거 같애.”
“왜냐면 나는 이 집에서 7년 동안 혼자서 살았거든. 같이 사는 가족도 없이. 쭈욱 혼자서.”
“그래서 나는 윤슬이가 같이 여기서 있어주면 더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은데... 혹시 윤슬이가 싫지만 않으면 같이 있어볼까요?”
아아.
기억났다.
오빠는.
송주현이란 사람은.
이런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더 이상 망설임은 없다. 포기도 없다.’
실패한대도 좋다.
몇 번이고 다시 도전할 것이다.
포기 없이, 몇 번이고 다시 도전한다면 그 끝에 도달할 것은 틀림 없이 단 하나의 미래뿐이겠지.
‘이번 작전은 반드시 성공할 거야. 오빠. 우리에겐 그런 미래밖에 남아있지 않아. 다른 미래들은 내가 다 지워버릴 테니까, 행복만 남아있을 미래에서 기다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