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조별 합동 실습(1)
조별 합동 실습. 문자 그대로 아카데미에서 정해준 조원들끼리 협동해야 하는 시험이다. 이제까지 A반에 있는 자들은 계속해서 자기들끼리 싸워왔다.
아카데미를 졸업할 수 있는 인원이 정해져 있으니, 한 사람이라도 더 떨어트려 자신이 졸업할 확률을 올리는 것을 목적으로 그들은 싸워왔다. 그 치열한 싸움의 결과 50명이 넘던 반학생들의 수는 40명도 채 되지 않는 인원만 남게 되었다.
아카데미에 입학한 지 벌써 5주나 지났다고 10명이나 ‘퇴학’당했다. 그 분쟁으로 인해 생겨난 경계와 의심은 레이나 같이 이미 아카데미에 들어오기 전부터 안면이 있던 사이가 아니라면 아직까지도 같은 조원들 사이에 만연했다.
실제로 몇 번의 개별적인 만남을 가졌다고 해도 한 달 만에 호흡을 맞추고 목숨을 맡기는 일은 불가능했다. 던전 안이라면 내가 죽으면 너도 죽는다는 식으로 강제적인 협력도 기대할 수 있겠지만, 실습을 보는 곳은 내가 익히 알던 산이었다.
만약 조원들 중에서 누군가가 죽는다고 하더라도 손쉽게 산 밖으로 빠져나와 자신의 안위를 지킬 수 있으니 목숨을 건 협력은 기대하기 어렵겠지.
협력을 평가한다는 이유로 곳곳에 배치된 교관들에게 나쁜 평가를 받지 않기 위해서 조원들끼리 싸우는 일은 극히 드물겠으나, 괴수랑 자신들을 방해하러 온 다른 조의 인원들이랑 붙을 때 일부로 죽이고자 하는 이를 함정에 빠트리는 정도는 가능했다.
사실상 이 실습은 조별 합동이란 이름을 단 개인전이나 다름없었다. 그것도 팀보다 자기 자신을 더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실습.
“.......너 쟤한테 삐졌어?”
“삐지기는, 내가 애도 아니고.”
산으로 향해서 가는 버스 안. 내 옆자리에 앉은 데이지는 어떤 이의 시선을 느끼고 움츠러든 몸으로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레이나에게 들리지 않기 위해서 속삭이고 있겠지만, 뱀파이어의 청력으로 이 좁은 버스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대화가 안 들릴 리가 없다. 즉, 레이나는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을 터.
허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남의 이야기를 할 때 그 사람에 대해서 조금은 신경써야 하는 것이 예의이나, 나는 목소리의 성량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이것은 뒷담이 아니다. 레이나를 깔보기 위한 목적도 아니고, 레이나를 흉보려는 목적도 아니다.
나쁜 말을 한 것처럼 레이나의 눈치를 보는 데이지가 더 잘못되어 있다. 그리하면 레이나를 험담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그냥 조금 실망했을 뿐이야.”
“........그게 삐진 게 아니라고?”
의아한 듯 묻는 데이지의 목소리에 대답하는 대신 나는 버스를 탈 때부터 줄곧 외면해왔던 시선이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리만 타 있는 것도 아닐 텐데, 버스 안에 있는 학생들은 유독 입을 다물고 있어서 아주 작게 속삭이는 소리마저 고요한 버스 안을 울릴 정도였다.
그리고 내 시선의 끝에 자리 잡은 한 여인은 웃고 있었다. 내가 사랑스럽다는 듯이 혹은 내가 귀엽다는 듯이.
어느 쪽이든 우리 상황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웃음이었다.
“아니지.”
나는 삐지지도, 화나지도 않았다. 허나 레이나와는 거리를 둘 필요성을 느꼈다. 그뿐이다. 내가 솔직해져 준다면 레이나 또한, 완전히 솔직해져 준다고 거래를 제시했다.
그 거래를 거부한 쪽은 나였다. 좀 더 솔직해지기에는 밝혀선 안 되는 것들이 너무 많았으니까. 내가 남자였던 것은 괜찮다고 치자. 내가 원해서 변한 것도 아니고. 언제나 같이 욕실에 들어가자고 하는 권유도 거부했는데, 변태 취급을 받진 않을 것이다.
.....아마도.
내가 말을 아끼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몸이 바뀌었다고 이야기를 하려면 필연적으로 원래 몸에 대해서 말해야 한다.
헌터였을 때 나는 뱀파이어를 죽여 왔다. 레이나가 이사벨라 교관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동족끼리의 애정은 별로 없는 것처럼 보이나, 나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어린 흡혈귀에 대한 보살핌도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오늘 새벽에 일어난 일로 레이나에게 실망을 느낄 필요도, 삐질 이유도 없다, 나는 말해봐야 지금보다 상황이 더 나빠질 거라고 예상하기에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니.
내 상황에서 비롯된 문제다. 잘못이 있다면 나에게 있지 레이나에게 있지 않았다.
허나 이 모든 상황을 데이지나 레이나에게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난 여기까지만 보고 창밖을 보았다. 도시와 산을 구분 짓는 검문소가 눈에 들어온다.
내가 이제껏 산을 들락날락했던 곳 같은 외각 지역이 아니라, 무슨 문제가 생기면 바로 출동해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여러 사람이 있는 건물은 마치 하나의 성처럼 보였다.
버스를 검문하기 위해서 둘러싼 경비원 수만 해도 벌써 10명. 그들은 굳이 버스 안까지 들어와 위압적인 분위기를 뿜어내지 않고 버스 겉면만 살피면서 있었다.
검문이란, 본디 안쪽까지 확인해야 하는 것이 기본.
경비원들은 기본을 안 지키는 것이 아니라, 굳이 버스 안까지 들어와 확인할 필요가 없는 것이겠지. 다른 학생들은 느끼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버스 안을 이 잡듯이 살피는 시선을 느꼈다.
그 시선이 위치한 곳은 전방. 뱀파이어의 시력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피’의 흐름을 보는 것이나 시력 그 자체의 뛰어남에서 그친다. 저렇게 사물을 뚫고 그 안을 내다보는 ‘투시’는 아무리 뱀파이어라 하더라도 불가능한 영역에 속했다.
뭐, 특별한 기술이나 능력을 타고났다면 다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아니었다.
관찰이 다 끝났는지 시선은 어느덧 사라졌고, 버스들은 다시 줄지어 출발하기 시작했다.
산은 괴물들의 영역. 여기서부터는 괴물들이 무리지어서 올 수 있으니 조심해야 했지만, 교관과 교수들이 마치 산보를 하는 것처럼 버스 밖에서 걸어오면서 괜히 괴물들이 오지 못하도록 살기를 내뿜고 있었으니 과하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길이 산으로 들어서면서 울퉁불퉁해졌으나, 그것은 미세한 진동 빼고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충격 완화. 버스에 걸면서 그 인챈트의 위력은 원본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으나, 이 사회에 가장 먼저 보급된 마법인 만큼 그것은 많은 개선과 강화를 거쳐서 운전에 있어 어쩔 수 없이 탑승자들에게 전해질 수밖에 없는 흔들림조차 많이 줄어들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남아있던 미세한 흔들림에 따라 몸을 앞뒤로 조금씩 흔들고 있었던 나에게 버스에서 일어서는 한 명의 소녀가 눈에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보인 것은 우리 버스 주위를 달리고 있었던 버스들이 교관들과 함께 다른 방향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것은 우연? 아니면......
나의 생각을 끊어놓으려는 듯이 그 작은 소녀는 입을 열었다.
“우리, 조별과제라고 하지만 같이 힘을 합치는 건 어때?”
고깔모자를쓰고 있는 소녀는 확연히 마녀의 핏줄을 이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데이지와는 다르다.
대련때 본 바로는 그녀가 저주로 상대방을 제압한다면, 저 소녀는 자신의 핏줄에 허락된 온갖 마법으로 상대방을 제압했다.
괴물에 속한 마녀의 피를 이었으나, 그 마녀에게 허락받은 신비는 인간의 영역에 속하는 마법. 태생적으로 냉철한 이성과 높은 수준의 사고력을 갖춘 존재라고 레이나가 알려주었다.
같은 반에서 있으니 이름을 알 법도 하나, 나는 저 소녀에게서 관심도 없었으니까 알지는 못한다. 나보다 키가 작은 것에서는 조금 흥미가 가긴 하나, 거기서 끝.
내가 이제껏 관심도 주지 않았던 소녀는 자신보다 훨씬 키가 큰 대상들을 상대로 설득하고 있었다.
“어차피 아카데미가 우리에게 말한 건 대충 몬스터들을 죽일 때마다 평가점수가 올라간다는 점뿐이잖아. 그렇다면 같이 힘을 합친다면 좀 더 높은 점수를 받지 않을까? 그것을 아카데미에서 제한한 적도 없고 말이야.”
조별로 싸워보았다고는 하나 제대로 합을 맞춰본 경험은 적다. 그러므로 아예 합을 맞추어 본 적이 없는 사람들끼리 뭉쳐서 수적으로 싸우는 방안은 괜찮았다.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있다면.
소녀는 그 믿음에 대한 방안을 제시하는 대신 어딘가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하여 밤하늘을 닮은 검은 눈동자로 나를 보았다.
“알리샤씨는 어떻게 생각해?”
“당연히 싫은데?”
어떻게 생각하기는, 당연히 싫지.
그 말은 소녀와 레이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시선을 나에게 끌어당기는 블랙홀 역할을 했다. 협력이야 말이 좋지, 이제까지 협력하지도 못한 사람들이 지금 당장 협력을 한다고? 개소리도 정도껏이지.
기적적으로 협력에 성공해도 누군가가 내 뒤를 노리지 않을 이유가 없다, 누군가가 배신하지 않을 이유도 없었고, 교관들이 이런 식의 협력에 높은 점수를 줄 이유도 없었다.
“애초에 나한테 말 한 번 걸어보지 않은 사람이 이런 제안을 하니까 못 믿겠는데?”
“내쪽은 말을 걸으려고 했는데, 실패했어.”
무슨 말인지 알겠다. 호의와 질시 마지막으로 의문으로 여러 감정을 담고 있는 학생들과는 다르게 지금도 계속 적색 눈동자에 호의를 담고 있는 레이나가 접근을 막은 것이겠지.
그녀는 내 시선을 느낀 것인지 싱긋 웃었다. 여학생쪽은 굳이 날 성욕의 대상으로 삼을 이유가 없기에 내가 딱히 신경 쓰지는 않았으나, 레이나는 여학생의 접근조차 싫어했으니.
“그건 그렇다 쳐도 본론은 마찬가지야. 대충 한 달동안 같이 지내면서 서로 싫어하는 자들도 있을 테고, 좋아하는 자들도 있을 텐데 그런 사람들끼리 한 곳에 뭉치면 사고가 안 일어날 거라는 보장이 있어?”
“그러면 너희는 우리에게 안 들어온다는 소리지?”
‘우리’. 언제 저들이 우리로 바뀌었는지 몰라도 나는 순순히 끄덕였다. 사실 저들의 일행에 끼어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산에는 지금의 나로서도 위협적인 괴물들이 많으니 수적우위를 가지는 편도 나쁘지 않다. 나쁘지 않았지만.....
나는 다시 반 단합력을 높이기 위해 뭐라고 하는 고깔모자의 소녀의 뒷모습을 보며 내 무릎에 놓인 손을 붙잡았다. 벙어리장갑 채로 떨리는 작은 손. 그 손에서 전해 오싹한 기분은 들어도 일단 이 애는 내 팀이니까.
진정될 때까지 잡아줄 생각으로 있었던 나는 아까부터 계속 신경 쓰이던 레이나를 보았다. 그녀는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나와 데이지가 맞닿은 손을, 내 시선에도 불구하고 계속 쳐다보고 있어서.
그것이 조금 신경 쓰였다.
***
“저대로 놔두어도 괜찮아요?”
붉은 머리의 소녀는 주인의 심기를 눈치 보았다. 누가 봐도 평온한 얼굴이었으나, 오랜 세월 동안 같이 지냈던 소녀는 레이나가 지금 매우 화가 난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니, 주인님이 자기한테 신경쓰는 걸 알면서도 그 눈앞에서 저런 걸 보여준다고? 미친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해도 이미 벌어진 일은 벌어진 일. 소녀가 고민해야할 것은 데이지와 알리샤의 안위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주인의 심기를 가라앉힐 수 있는 지였다.
“그러고 보니 저 애 오늘 많이 안 먹고 갔지?”
“아, 예.”
“조금 있으면 많이 배고프겠네.”
붉은 머리의 소녀는 입을 열지 않았다. 알리샤는 가성비가 별로 좋지 않은 편이다. 피를 먹는 족족 성장하는 쪽에 들어가기 때문에, 조금만 활동해도 그녀는 금세 배가 고픈지 식사를 요구했다.
거기에 성인 뱀파이어도 계속 펼쳐두면 기력 소모가 심한 날개까지 펼쳐두고 있다?
저 말이 뜻하는 의도는 명확하다. 허나 주인님이 그 선택에 후회하지 않을지는 다른 문제라서 소녀는 혹시 주인의 진노를 살 지라도 입술을 움직였다.
“저기, 제가 가방에 챙겨놓은 혈액팩이라도 몇 개 가져다드릴까요?”
“사실 아까까지는 투정부리는 게 좀 많이 귀여웠어.”
레이나의 시선은 계속 한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시선이 의아스럽다는 듯이 알리샤가 바라보았으나, 레이나는 그 둘이 붙잡은 손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근데, 지금은 좀 기분이 안 좋아졌어. 무슨 말인지 알지?”
목소리만 들어도 그녀의 노한 심기가 느껴져서 소녀는 아예 입을 다물었다. 주인님은 이제껏 소녀에게 뱀파이어에 대해서 많이 알려주었다. 허나 그것 중 제대로 된 지식은 몇 개나 될까.
나의 주인은 피의 변질이 결국 자기 자신을 잃게 만든다는 것 또한 알려주지 않았는데.
후우. 내뱉을 수 없는 한숨을 조용히 목구멍으로 넘기며 소녀는 버스 천장을 보았다. 여기에 있는 괴물 따위가 우리에게 피해를 절대 입힐 것 같지는 않았으나, 이번 실습은 조금 많이 피로해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기분 탓은 아니겠지.
어둠의 총애를 받는 저소녀는 내 주인이 한 일에 대해서 알게 될 테니까. 그게 받아질 지는 주인도, 붉은 머리 소녀도 알지 못했다.
누군가는 그것이 일으킬 결과에 기뻐할 것이고, 누군가는 자신을 속였다는 것에 화를 낼 것이며 어떤 이는 아무런 감정을 보이지 않을 지도 모른다.
오랜 시간 살았어도 주인은 마치 어린아이와도 같아서 자신이 오랜 시간 고민한 계획조차 간단하게 망가뜨리고는 했다. 그녀가 오랜 시간 많은 것을 손쉽게 가질 수 있었고, 많은 것을 손쉽게 잃어왔기에 주인의 정신은 망가져 있었다.
그녀의 최측근 권속에 속하는 소녀조차 그렇게 여길 정도로.
‘이건 너희들이 잘못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우리 주인이 잘못되어 있는 걸까.’
주인의 앞에서 보여주지 않아야 할 장면을 보여준죄로 저들은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알아서 붉은 머리 소녀는 더 이상의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조용히 눈을 감았다.
소녀가 마지막으로 본 주인의 시선은 데이지의 목을 향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