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어둠조차 달빛을 가릴 지라도.
누구의 시선을 닿지 않는 어둠 속에서는 필연적으로 인간의 본성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홍등가의 뒷골목이라 불리는 곳 또한, 그랬다. 살인, 강간, 인신매매 등이 일어나나 아무도 그런 일이 도시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지 모른다. 정확히는 그들은 관여하면 상당히 귀찮아지기에 모르는 척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올바르겠지만.
그러한 이유로 필요에 의해서만 도시의 인간들이 찾는 홍등가의 뒷골목에서는 그 필요에 의해서 여러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필요한 장기를 대신 찾아주는 [서비스센터]. 어떤 눈동자들이 훔친 물건들을 판매하는 [골동품가게]. 홍등 같이 사람들의 눈이 닿는 곳에서는 즐기지 못하는 놀이를 즐길 수 있는 [놀이공원] 등 뒷골목은 어떤 지배자가 관리하냐에 따라서 그 특성이 명백하게 달라진다.
김혜린이 다스리는 구역은 사람들에게 [고아원]으로 불렸다. 모든 버림받은 아이들을 끌어모아 각자에게 걸맞은 가격을 매겨 다른 사람들에게 팔아넘긴다. 그리고 미처 팔리지 못한 아이들을 키워 그녀의 구역이 운용될 수 있는 자금을 만들어내는 꿀벌로 활용한다.
“눈치 차렸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곳에서 자랐어.”
그렇기에 알리샤는 데이지의 갑작스러운 발언에서도 놀라지 않았다. 재능 있는 아이가 미처 팔리지 못했을 경우에는 김혜린이 직접 키워주고는 했으니까. 그녀의 눈은 언제나 괴물을 죽일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아이에게는 상냥하다. 그녀의 아이들이 괴물을 죽여 그녀의 안에 넘치는 원한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기를 바라기에.
데이지의 재능은 충분히 김혜린이 키워낼 만한 재능이었다. 어떠한 형태의 공격으로도 죽지 않는 괴물일지라도 데이지의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내려올 테니까. ..그 편애가 언니라는 칭호를 허락할 정도일지는 몰랐지만.
데이지는 여전히 긍정을 침묵으로 표현하는 알리샤를 보지 않고 계속 정면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옆에 있는 자가 그녀의 이야기에 혹시라도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면 데이지의 마음은 부서져 버리기에.
“청계라고 불리던 뱀파이어와 그 당시 뱀파이어의 천적이라 불리던 [태양공]의 싸움에서 도망쳐서 겨우 이 도시에 도달했지만.. 갈 곳 없는 나를 받아줄 곳은 이런 곳밖에 없었거든.”
데이지의 목소리는 마치 남의 일을 말하는 듯이 담담했다. 혹은 고요했다. 여기저기서 오늘치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사냥을 나선 듯이 단검과 돌멩이를 든 아이들이 알리샤와 데이지를 힐끗거렸지만, 그녀들이 입은 로브에서 무언가를 알아차린 듯이 도망쳤다.
알리샤는 일부로 소란을 피우지 않기 위해서 데이지의 손을 잡아 봉인구의 효능을 받아서 아까 전 눈동자들의 때처럼 괴물의 기세를 억누르고 있었으니 어느 샌가부터 후드를 뒤로 젖힌 데이지의 얼굴을 알아봐서 일 확률이 높았다.
같이 지낸 형 누나들조차 방심하면 뒤통수조차 먼저 처먹으려고 하는 아이들이 두려움에 도망치려면 어떤 짓을 저질러야 하는지 알리샤로서는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생명체라면 당연히 찾아올 죽음을 앞당기는 손이 있을지라도 저것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먼저 신체가 받쳐주어야만 했다.
알리샤는 어린 흡혈귀로서가 아니라 무인으로서 데이지의 신체를 판단했다. 로브에 가려져 있어도 드러나는 태를 통해서 알 수 있는 정보도 있는 법이다. 저것은 엉망이다. 이전의 신체까지 가지 않더라도 지금 어린 흡혈귀로서의 몸으로 아무 생각 없이 싸워도 저 몸은 결단코 알리샤는커녕 다른 곳으로 도망가는 꼬맹이들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ㅡ그런 그녀가 두려움의 대상이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알리샤는 궁금했다. 이야기의 끝에는 그 이유를 알 수 있는지를. 높은 확률로 이유는 알 수 없겠지만.
“그래도 이곳에서의 생활은 꽤 괜찮았어. 난 다행히도 여러 방면에서 재능이 있었고, 언니는 그런 내가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었으니까. ..그러나 생명을 죽이는 것이 모두 그렇듯이 저주를 단련하기 위해서는 생명이 필요했고 언니는 이곳에 있는 쓸모없는 생명체를 활용했어. 거기엔 언니는 분명 알면서 했겠지만 내 친구도 있었고. 뭐, 그런 흔한 이야기였어. 그 집단이 오기 전까지는.”
왜냐하면 그녀의 이야기는 마치 무슨 말을 할지 미리 정한 것처럼 막힘없이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마치 어떤 이야기를 알리샤에게 전해할지 미리부터 생각한 것처럼. 그렇게생각과 고민을 거쳐 완성된 이야기에 진실이 얼마나 섞여 있을 리는 알 수 없다. 사람은 합리화를 하는 동물이므로.
이 이야기의 진실은 눈앞의 데이지가 아니라, 데이지와 인연이 있어 보였던 저 소녀가 알고 있겠지.
알리샤는 고개를 높게 들어 하늘을 보았다. 붉은 달조차 뜨지 않은 하늘에는 어떤 작은 마녀가 지팡이를 가랑이 사이에 끼운 채로 날고 있었다. 그 마녀는 알리샤에게 무언가를 전하고 싶은 눈빛이었으나 알리샤는 그에 호응하지 않고 다시 데이지를 뒤따라가며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ㅡ이건 정답이 정해져있는 수학이 아니니, 굳이 이 이야기에 정답을 구해야 할 필요는 없으므로.
이 이야기의 진정한 의미는 나와 비슷한 수준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데이지가 처음으로 그 이야기를 해주는 것에 있었다. 그것이 비록 거짓일지라도 이 이야기를 해주려는 것 자체가 그녀의 호의임은 분명하니.
알리샤의 마음을 읽은 듯이 몇 번을 그녀들의 머리 위에서 빙빙 돌던 꼬마 마녀는 북쪽으로 사라졌다. 곧잘 영웅에 비유되던 별들이 전혀 보이지 않고, 이전에는 노란색이었다고 하나 균열이 생겨난 이후 붉게 빛나는 달도 보이지 않는 밤하늘은 어둠으로 가득하다.
어떠한 빛남도 사라지는 어두운 하늘. 그것은 반짝거려는 진실조차 묻혀서 사라지는 현실을 닮아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제안을 했어. 같이 연구하지 않겠냐는. 그리고 그들의 저력을 알려주기 위해서인지 나에게 1개의 유물을 건네주었어. 어떤 방법을 써서라든 날 그들의 일원으로 끌어들일 생각이었겠지만 언니의 스승이라는 자가 그로부터 며칠 뒤 그들을 무찔러서 없던 일로 되었고 그들이 남긴 유품도 내 손에 들어왔지.”
그러나 붉은 달빛은 지상까지 내려오지 않더라도 하늘을 은은하게 붉혔다. 흡사 밤하늘 전체가 달무리처럼 보이는 기분도 들 정도로.
데이지의 이야기는 분명 많은 것이 거짓으로 가려져 있었으나 하나의 진심은 그 거짓들조차 진실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건 외로운 소녀가 친구를 만들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는 노력. 그 노력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줄 자가 없었기에 자신의 진심조차 거짓으로 덧칠을 했을 뿐이지.
“사실 대장장이는 없어. 근데 너에게 줄 봉인구가 있다는 말은 진짜야. 그들이 유물 말고도 나에게 주려고 했던 선물 중에는 봉인구가 좀 많았거든.”
골목을 벗어나 낮은 언덕 위에 다른 건물들과 동떨어져 세워진 나무집을 보며 데이지는 재빠르게 걸었다. 그 집 주위에는 허락받지 않는 자는 배제되도록 결계가 쳐져 있었으나 데이지와 알리샤가 걸친 로브는 그 결계를 자유로이 들어갈 수 있는 열쇠의 역할을 하고 있었기에 그녀들은 그 집에 별 탈 없이 도착할 수 있었다.
데이지는 문을 열었다. 누구도 청소를 하지 않았는지 먼지가 쌓여있는 집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하나. 그것은 검은 광택의 낫이었다. 낫의 중앙에는 십자가 같은 것이 박혀있었다. 그 낫에서 뿜어져 나오는 저주는 데이지의 손에 깃든 저주와 흡사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데이지의 손에 깃든 저주가 훨씬 더 강하다는 것이겠지. 봉인구를 풀었을 때의 이야기지만.
데이지는 사람 몸만 한 크기의 낫을 꺼는 대신 그 주위에 있던 검은 초승달 모양의 머리띠를 꺼내 들었다. 그 머리띠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데이지의 손에 끼고 있는 벙어리장갑과 유사했다.
알리샤가 낫과 머리띠에 대해서 분석하는 동안 데이지는 알리샤의 얼굴을 덮고 있던 후드를 벗겼다.
“이건 내 저주가 훨씬 더 강해져서 하나의 봉인구로 봉인할 수 없을 때를 대비한 머리띠야. 지금은 아직 벙어리장갑으로도 괜찮으니까 너에게 빌려줄게. 네가 매혹을 제어할 수 있게 되면 다시 나에게 되돌려줘.”
그리고 그녀는 알리샤에게 머리띠를 씌웠다. 머리가 약간 눌리는 느낌과 함께 데이지는 알리샤의 머리에서 손을 떼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게 봉인구가 맞나? 라고 의심하는 알리샤의 눈동자에서 짙은 붉음이 사라지고 대신 푸른색이 차오른다. 피를 다루는 흡혈귀라도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신체적 변화를 알아차리기에는 어려웠으나. 알리샤는 그 변화에 따른 효과를 통해 무언가 변화가 일어났음을 깨달았다.
분명 어둠이 내리깔린 집안이 보여야 하는데 눈앞에는 온통 푸른 실선이 뒤덮고 있었으니까. 그 실선 하나에는 하나의 정보가 담겨 있었다. 이 결계는 물리적으로는대포도 견딜 수 있도록 설정되어 있다. 마력 간섭의 경우 중위 마법사 정도면 작게나마 구멍을 낼 수 있다. 결계를 친 사람의 실력까지도 실선은 알려주고 있었다.
봉인구는 없던 힘을 만들어내는 유물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 보이는 시야는 왜 달라졌는가.
지나치게 과한 정보들의 파도에 알리샤는 그냥 눈을 감아버렸다. 그푸른 수실은 알리샤가 봄으로서 정보를 전달한다. 다르게 말하면 보지 않으면 그 수실은 그저 공기 중에 떠돌아다니는, 그러나 알리샤만이 볼 수 있는 정보일 뿐이다.
분명 그 정보들은 결계에 대해서 기초밖에 알지 못하는 알리샤에게 있어 좋은 정보였으나, 굳이 지금 이것들을 알 필요는 없었기에 알리샤는 눈을 감은 상태에서 머리띠를 벗으려고 했으나 머리띠는 저주가 걸린 물품인 양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거 뭐하자는 물건이야.”
“그건 감정사에게서 공인받았을 정도로 확실한 봉인구야. 네 성장하지 않은 매혹쯤은 억누를 수 있을 정도로 확실한. 어때? 매혹이 억눌러졌다는 게 체감되지 않아?”
체감되지 않는다. 지금 나에게 있어 무언가가 억눌러졌다는 느낌보다는 무언가가 생겨났다는 느낌이 더 강했으니.
알리샤는 얼마나 보았다고 지끈거리는 눈동자를 다시 떴다. 거기에는 여전히 푸른 실선들이 어지러이 흩날리고 있었다. 데이지는 알리샤의 눈동자를 빤히 들여다보더니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 왜 눈동자가 푸른색이야?”
그 이유를 내가 알 리가. 정보를 담은 실선이 푸른색인 것과 관련이 있나 짐작할 뿐. 뱀파이어가 일정 경지에 이르게 된다면 눈동자의 색이 변한다고 하지만 봉인구를 찼다고 그 경지에 이르게 될 일은 없다. 알리샤가 고민에 빠져있는 동안에도 데이지는 기억 속에 담아두었던 어떤 기억을 떠올렸다. 세월에 풍화되어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는 기억.
ㅡ뱀파이어의 세계나 다름없던 서양. 그곳을 자신의 영역으로 먹어 치우려는 태양공과 맞서 싸울 수 있었던 유이한 뱀파이어. 뱀파이어 로드를 제외한다면 유일한 뱀파이어. 청계[凊呇] -그 서늘한 샛별을.
알리샤의 푸른 눈동자는 마치 청계라고 불린 뱀파이어를 닮아 있었다. 결계술과 자신의 피를 활용해 태양이 사라진 밤의 추위를 재현했던 그 뱀파이어를.
그건 아마 흡혈귀의 주인일 터인 레이나와 전혀 다른 빛이었다.
데이지는 그녀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다른 것 또한 깨달았다.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면 미미하게 이끌렸던 심장의 요동소리가 지금은 들리지 않았다. 봉인구로 인해 매혹은 확실하게 제어되었으나 붉은색이 사라지고 푸른색이 떠오른 이유를 알 수 없다.
..어차피 모든 봉인구는 알아서 풀 수 있으니까. 무슨 이상이 생기면 알아서 풀겠지.
데이지는 그렇게 생각하며 집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벙어리장갑과 낫을 맞대었다. 낫은 벙어리장갑에 빨려 들어가서 사라진다. 그녀의 오른쪽 장갑에는 검은 십자가 같은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인벤토리라 불리는 공간마법에비하면 용량은 확연히 적지만 다른 물건을 보관하는 방법으로 쓰는 것 역시 봉인구의 활용법 중 하나였다. 잘 사용되지 않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데이지가 알리샤의 위치를 찾으려고 둘러보자 알리샤는 이미 문밖에 서 있었다. 어서 빨리 나가고 싶은 모습에 데이지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과거의 집을 벗어났다.
데이지는 온전한 진실을 내뱉지 않았다. 모든 것을 알게 된 알리샤의 반응이 두려웠기에.
데이지는 온전한 거짓을 내뱉지 않았다. 친구를 사귀려면 먼저 진실한 마음을 보여주어야 하니까.
그러니 그녀의 이야기는 알리샤에게 닿지 않았다. 거짓이 섞여 있어 무엇이 진실인지 모르기에.
그런데도 닿은 것이 있다면 온전한 진심이었다. 알리샤와 친해지고 싶다는 진심.
그것만큼은 알리샤의 마음에 닿았기에 알리샤는 섣불리 말을 꺼내지 않았다.
이 봉인구는 내 마음대로 해제되지 않으며 무언가 이상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그런 말을 하는 까닭은 왜 이렇게 되었냐고 데이지를 탓하는 내용이 될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기에. 또한, 이 봉인구 답지 않은 봉인구가 보여주는 것이 썩 나빠보이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침묵을 지키는 흡혈귀와 소녀는 그 집을 떠나 지금의 기숙사로 향한다. 서로 다른 보폭은 어둠뿐인 세계를 가로지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