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화 〉프롤로그 - 회귀자의 시간을 지배하는 법 (1/67)



〈 1화 〉프롤로그 - 회귀자의 시간을 지배하는 법

"하아."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따라 지금 작업중인 캐릭터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영감이 떠오르질 않았다.
간략하게 스케치만 되어 있는 모니터 화면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기를 몇 시간.


"수현 님, 오늘 어디 안 좋으신  아니에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돌렸다.
그 곳엔 입사한지 대략 6개월 정도 되는 팀의 막내, 이세하가 사내 매장에서 커피를 사왔는지 손에 커피 캐리어를 들고서 내게 물어왔다.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아니에요."라고 짧게 말했다.


"고맙습니다."


그녀에게 감사 인사를 하며 커피를 받아 들었다.
순간, 옆에서 "저런 사람을 왜 챙겨 주는 건지."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 늘 있던 일이었다.
애초에사람을 별로 가까이 하지 않았고, 사회생활에는 무관심한 채 일만 하던 나였으니까.


'그러게나 말이야. 왜  같은 걸 챙겨주는 걸까.'


속으로 그들의 생각에 동조하며 작업중이던 파일을 저장하고 컴퓨터를 종료했다.
주변 팀원들에게 "퇴근하겠습니다."라고 얘기하고서 빠르게 회사를 빠져나왔다.
회사 건물에서 나오며 끼고 있던 흰색 장갑을 벗자 손등의 흉터가 눈에 들어왔다.

"제길......."

표정을 찌푸리며 검은색의 장갑으로 갈아끼고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어린 시절부터 내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회귀자의 시간을 지배하는 법.'이란 소설을 읽기 위해서였다.
웹소설 앱을 열은 수현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선호작 목록에서 '회귀자의 시간을 지배하는 법'을 선택했다.

"뭐야, 이게......?"


오늘 올라와 있을 회차의 소제목을 확인한 난 깜짝 놀랐다.
이번에도 주인공은 회귀하겠지라며 아무런 생각 없이 열은 소설 목차에서, 마지막 화라는  글자가 목록의 맨 위에 있어서였다.

'마지막 화라고?'

자신의 버팀목이었던 그 소설이 오늘 완결난다는 소식을 믿을  없었다.
이럴 거면 미리 마음의 준비라도 하게  완결난다는 공지라도 때리던가.


속으로 어디엔가 있을 작가의 욕을 했지만, 그럼에도  손은 어느새 마지막 화를 열고 있었다.
자신을, 지옥 속에서 버틸 수 있게 해 주었던 소설에 대한 마지막 예의라고 생각 한 것이었다.


[시간을 지배하는 것, 그걸로도 이룰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에 세린은 절망했다. 어째서 매번 반복해도 도달하는 결말이 똑같을지에 대한 생각은 이미 버린지 오래였다.
계속해진 회귀 속에서 정신이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진 그녀는눈을 감았다. 이미 수백번 회귀를 한 그녀에게 다른 선택지를 생각할 수 있는 이성은 남아있지 않았다. 어디서 부터 무엇이 잘못 된 것일까 같은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이번 생도 실패인가.'

하지만 다시 한 번 회귀하려는 그녀의 머릿속에 갑자기 스쳐 지나간 생각이 그녀의 움직임을 멈춰 세웠다. 이제 그만 끝내고 싶다. 더 이상 회귀하며 이 짓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 그런 생각들은 세린을 충동에 빠뜨리게 했다.
주변에 피가 흩뿌려졌다. 세린이 자신의 가슴을 칼로 찌른 것이었다. 멀어져가는 의식 속에서 그녀는 이번엔 시간 역행을 발동하지 않은  서서히 눈을 감았다. 그래, 진작 이렇게 했어야 하는지도 몰라. 멀어져 가는 의식 속 세린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의 핵은 주인의 의지에 반할 모양인지, 스스로를 파괴시키면서세상의 시간을 되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죽어버린 세린은 그걸 제지할 수 없었고, 누구의 개입도 없는 채로 세린의 마지막 바람은 이뤄질 수 없는 듯했다.


시간이 다시 한 번 되돌려 졌음에도, 그녀의 육체가 눈을 뜨지 않기 전 까지는.


- 회귀자의 시간을 지배하는 법 완결 ]

난 끝까지 읽고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비록 제정신은 아니었지만, 어떤 역경이 와도 이겨냈던 세린을 자신과 동일시 하며 버텨온 나다.


하지만......

'씨발, 이게 뭐야.'

그런데 그 따위 결말을 보고나니 가슴 속에는 작가에 대한 분노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죽을 것 같아도,결국 회귀를 선택하던 세린을 충동이란 걸로 죽이면서 완결낸다고?
아마 여기가 버스가 아니라 집이었다면 '이 씨발 작가 개새끼야.'라고 욕이라도 퍼부었겠지.


[안녕하세요, 독자님.]


 메시지가 오기 전 까지는 말이다.
닉네임, 세린이 내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순간 가슴속에 치솟던 불길이 언제 타올랐냐는  꺼지고, 난 빠르게 허겁지겁 메시지 창을 열었다.

[네, 안녕하세요 작가님.]

방금  까지 욕하네 어쩌네 했었지만, 내 손 끝에서 흘러나오는 메시지는 지극히 정상적이었다.
내가 보냈던 쪽지를 모두 무시한 작가다.
그런 그가 내게 처음으로 메시지를 보내 온 것이었다.


[제 소설의 가장 소중한 독자였던 세상좆같네 님에게 감사인사를 전해 드리고자 메시지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갑작스런 완결에 혹시 놀라지 않으셨을까 하고요.]

진짜 완결낼 것 같을  늘 세린을 회귀시킨 주제에, 쓸데없는 소릴 한다 싶었다.

사실 그랬다.
이번에도  회귀하겠네 하고 아무 생각 없었는데 완결이라는,거대한 통수를 맞은 셈이었으니까.

[갑자기 완결이라길래 깜짝 놀랐습니다.]
[아, 그랬군요.. 하지만 원래 구상했던 스토리인지라 독자님이 이해 부탁드리겠습니다.]


뭐...... 작가가 저렇게 말하는 데 독자인나로썬 뭐  말이 있나.
그냥 그런 갑다 싶어야지.

[사실, 오늘 메시지 드린 건 제가 이 소설을 완결까지 적을 수 있던, 세상님에게 선물을 드리고 싶어서요.]
[선물이요?]
[네.]

이게 무슨 소린가.
난 그저 읽은 것 밖에 없는데 소설 읽어 줬다고 선물을 준다고?

[아마, 독자님께는 굉장히 큰 선물일 거에요.]


작가의 메시지에, 오랜 시간 동안 두근거린 적 없던 내 가슴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돈 같은 것 보단, 회시법과 관련있는 선물일  분명했으니까.

그렇게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메시지를 기다렸지만, 저 이후로 더이상 작가에게선 아무런 메시지가 없었다.
설마 장난친건가 싶어 프로필을 열어 보았지만, 분명한 작가가 맞았다.

'뭐야, 지금 작가가 이딴 결말 내놓고 독자 상대로 장난친건가?'


순간, 아까까지 속에 묻힐 뻔했던 욕지기가 튀어나오려 했다.
무슨 이딴 새끼가 다 있어.
하지만, 작가를 욕하던  말은 끝까지 이어질 수 없었다.
무언가가 버스와 강하게 충돌했고, 뭔가에 머리를 부딪쳐 난 그대로 의식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당신은 사망하였습니다.]
[누군가의 개입으로 당신의 영혼이 세린 아리스에게 전송됩니다.]
[에피소드 - 사전 점검이시작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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