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4화 〉에피소드 7 - 예상치 못한 일 (5) (34/67)



〈 34화 〉에피소드 7 - 예상치 못한 일 (5)

"리타! 지금 뭐하는 짓이야!"

갑작스런 공격에 놀란 메이나가 그녀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지금 무슨 이유인진 몰라도 제정신이 아닌 리타가 그녀의 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

"메이나! 이 여자 지금 제 정신 아니에요."
"뭐?"

지금 리타의 증상은 마기 잠식의 초기 증상이었다.
아직 마족이 본격적으로 활동할 시기는 아닐 텐데, 어째서 마기가 침식됐는지 궁금했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칫. 무슨 일 있을지 몰라서 아껴두려 했는데.'


[ 스킬 - 시간 역행의 마지막 충전횟수 사용시 충전 대기시간이 적용됩니다. ]

보기도 싫은 경고 문구를 무시하고, 시간 역행을 발동하려 하는 순간이었다.
옆에서 마나의 연쇄 파동이 일어나더니, 정확히 리타의 앞에서 소규모 폭압이 터졌다.
그것도 정확히 리타 아리스의 방향 쪽으로만.


'이걸?'

속으로 메이나의 마나 컨트롤 능력에 감탄했다.
한 쪽 방향으로만 폭압이 터지게, 마법을 제어할 수 있는 기술은 아무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아무래도 대마법사 칭호는 마냥 농담따먹기로 딴 건 아닌 모양이었다.


"괜찮아?"
"네."
"좀 쉬고 있어.

뒤로 빠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으며, 메이나가 대처하는 것을 잠시 감상했다.
결박 마법으로 리타의 몸을 간단히 구속하더니, 으르렁 대는 리타의 마기를 가볍게 정화하는 걸
정화가 끝나자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리타를 테오가 가볍게 받아 들었다.

"마기리나, 위험했어."

하지만 별로 큰 일은 아닌  메이나는대수롭지 않게 말하였다.
마기 잠식으로 놀란 건 아무래도  뿐인 모양이었다.
테오도 자신의 누나에게 "그깟  하나 못 다스리고......"라며 타박하는 걸 보면은.


"세린은 처음 보나보네."
"네, 뭐......."


난 그녀의 말에 대충 얼버무리며 몸을 일으켰다.
이 세상이 소설 속이란 것을.
 지금 내가 읽던 소설 속의 등장인물에 빙의해 당신들을 만나고 있는 것을 말할 수는없었다.
애초에 믿을리도 없었고.


"아직 미래를 보는 능력이 완전치 않은가 보네."

메이나의 말에 그냥 웃고 말았다.
오직 나만이, 홀로 이 세계에 대한 진실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외로움을 느끼면서.


"저는 좀 들어가서 쉴게요."


방금 자신의 말에 내가 무슨 감정을 느꼈는지 모를 메이나는 밝은 목소리로 "그래."라고 답해왔다.
난 빠르게 그 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간을 정지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멈춘 시간이 다시 흐르자, 소설이라는 허구 속 세상이 움직이는 걸 보며 뭔지 모를 괴리감이 느껴졌다.
침대에 누워 홀로 감정을 되새기며 시간의 자아가 얼른 이 감정을 죽여주길 바래었다.
하지만 자기가 원할 때에만 움직이는, 제멋대로인 이 스킬은 이번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나와 같은 빙의자였던 테인 일레인이 생각났다.
어쩌면, 그도 나처럼 이런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그가 죽은지 시간이 꽤 지났기에, 그를 되살려 낼 수 없어 진실을 물을 수가 없었다.


'만약에, 그때 죽이지 않았더라면 같은 빙의자로써 많은 정보를 얻었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내 곧 그 생각은 접어야만 했다.
어찌 되었든 이미 죽은자는 돌아올 수 없기에 지금의 나를 이해해 줄  있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결국 모든 생각의 결론은  세계가 소설 속 세상이란 걸,  혼자만 안다는 것으로 흘러 갔으니까.

그렇게 난 극심해지는 외로움 속에서 눈을 감아야만 했다.
아직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날 지켜보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온 걸 보지도 못한 채.


[ ???이 당신을 지켜봅니다. ]

*  * *

좋지 않은 몸 상태 덕에 거의 하루를 꼬박 자고 나서야 일어  수가 있었다
뭐, 덕분에 좀 회복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면서 좋게 일어날 수 있었지만.

"하아, 이런  진짜......."

물론 그렇다고 한들, 아직 하복부의 불쾌감과 약간의 통증이 사라진  아니었다.
속옷에 끼워둔, 새빨간 선혈이 묻은 생리대를 갈며 욕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건 덤이었다.

준비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기사단과 병력들은 이미 출발했는지, 성 안이 상당히 한가했다.
날은 이미 어느정도 어두워져 있었다.
아직 놈들이 들어오기 전까지 시간이 조금은 남아 있을테니, 얼른 미리 가서 자리를 잡아야했다.

"후우."

준비를 마치고 메이나가 테이블위에 올려 두었던 텔레포트 스크롤을 집어 들어 부욱 찢었다.
그러자 찢어진 스크롤이 환하게 빛났고, 마법 발동이 끝나자 미리 내가 알려준, 협곡 중심에서  벗어난 곳이 눈에 들어왔다.
여러 번 겪어봤음에도, 적응이 안 될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자리를 잡고 기다리기 시작했다.

"섬광 제거 모드 비활성화."


저격 모드로 변환시킨 에너지 건의 설정을 바꾸며 자리를 잡고 대기하기 시작했다.
오래 전, 내가 의뢰를 받아 저격 임무를 수행  당시의 기억이 떠올라 가슴이 답답해졌다.
에피소드를 깨기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 합리화를 함에도.


그렇게 얼마를 기다렸을까?
저 멀리서 일레인 놈들의 대군이 작은 개미떼처럼 스멀스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내가 할 일은 뒤에서 같이 따라 올 일레인 가문의 주요 인사들을 저격하고, 일부는 생포하는 것이었다.


"후우."

짙푸른 어둠 속, 놈들의 선두가 협곡으로 진입 하는  눈에 들어왔다.
앞장 선 기사 몇이 말을 타고 협곡을 올라가는 것을 시작으로 뒤에 놈들의 병사가 뒤따르고 있었다.
이제 곧 있으면 놈들의 후미가 진입하는 순간까지 기다려 내가 시간 방벽을 치고 저격을 개시하면, 이 협곡은 불바다가 되겠지.


[ 메인 타겟 ]


아무래도 아리스 가문을 박살내기 위해 상당한 준비를  모양인지, 행렬이 끊임 없이 이어졌다.
그러다 제일 뒤쪽에 메인 타겟이란 네 글자와 화살표가 머리위에 있는 한 남성이 눈에 들어왔다.
자기 자신은 전투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상정한 모양인지, 무장이 조금 가벼운 편이었다.


성공 조건 : 일레인 가문과의 전쟁에서 승리, 메인 타겟 처치 (0/1) ]

에피소드의 성공 조건을 상기하며,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내가  방아쇠를 당기는 것으로.


[ 메인 타겟 처지 (1/1) ]

놈들과의 전투가 시작 될 것이다.

"가, 가주님!"


일레인 가주의 머리가 날아가자 놈들이 당황하며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저격 모드 에너지 건을 권총 모드로 되돌림과 동시에, 시간을 멈추며 건블레이드 형태의 세느를 소환하고 앞으로 튀어 나갔다.
내 전략의 기본은 매복과 기습.
이걸 승리로 이끌어내려면무조건 저 놈들보다 한  빨리 대응하는 게 필수적이었다.


[ 스킬 - 시간 방벽을 사용합니다! ]
[ 사용자의 레벨에 맞는 통상의 한계를 벗어난 범위에 시전하여 시간의 힘이 대량으로 소모됩니다! ]

멈춘 시간을 품과 동시에 엄청난 양의 시간의 힘이 빠져나가는게 느껴졌다.
물론 계산한 범위 내에서의 소모기에 별로 신경쓰지 않고  놈들의 뒤 쪽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바닥에 마나로 그은 선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


그걸 보자마자 곧바로 발을 멈추었다.
메이나가 미리 설치한, 협곡의 좌우를 막아 세우는 마법 방벽이 높게 올라섰다.
 그걸 보며 올게 왔구나 싶어 바로 미리 봐 두었던 바위뒤로 몸을 숨겼다.
그러자마자, 마법 방벽 안에서 천지가 울리는 대폭발이 일어났다.

"모두 진격 하라!"


폭발의 후유증이 가시기 무섭게,  멀리서 레오나드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병사들과 기사들이 달려가는 소리를 들으며 바위 뒤에 숨었던 난 시간을 멈춤과 동시에달려나갔다.

"뭐, 뭐야 씨발!"
"빨리 이거 부셔!"


퇴로를 차단한 모랫빛 막에 놈들의 중심축들이 당황하는 것이 느껴졌다.
우리를 박살내기 위해 마법사들도 대동했는지, 마나가 움직이며  시간 방벽을 마법으로 두들기는 통에 시간의 힘이 빠르게 소진 되고 있었다.

[ 스킬 - 시간의 흐름을 사용 합니다. ]
[ 사용 대상 인물 - 김수현 ]
신체능력이 전반적으로 상승합니다. ]

일단 권총으로 내 시간 방벽을 두드리는마법사들의 머리부터 날리자 놈들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하였다.
세느에 시간의 힘을 불어넣은 난 시간 정지를 활용해 일레인의 기사들을 지나쳐 곧장 무장이 가벼운 녀석들에게로 돌진했다.


"어, 어느새!"
"도련님들을 지켜!"

기사들이 당황하는 것이 느껴졌다.
본래라면 높은 위치에서놈들을 저격했겠지만, 그 전에 내 시간의 힘이 동날 것 같아 한 선택이었다.
어그로를 끌어야 여기까지 아리스 기사단이 올 시간을 벌  있었으니까.

"커, 커헉!"

세느에 하나 둘, 주요 간부 인원들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프로필 상으로 보았던 최중요 인물 둘을 제외하고, 나머지 다섯 정도의 놈들을 베자 뒤에서 기사들이 내게 달려드는 것이 느껴졌다.
몸의 컨디션을 확인한 난 한숨을 내쉬고 시간 역행을 사용했다.

스킬 - 시간 역행을 사용합니다. ]
[ 모든 사용 횟수를 소모하여 충전 대기 시간이 적용 됩니다.]
[ 충전 대기 시간 : 239시간 59분 58초 ]


내가 선택한 지점은, 망할 생리가 찾아오기 전, 최고의 컨디션을 갖췄을 때로.
사실 이 시점으로 돌아오고 싶진 않았지만, 놈들의 주요 전력이 많이 살아있는 탓에 어쩔  없었다.

스킬 - 시간의 흐름을 사용합니다. ]
[ 사용 대상 인물 - 테오 아리스 ]
[ 검을 다루는 능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

몸에 힘과 민첩성이 넘쳐흐르려는 것을 느끼며 에너지 건을 허리춤에 꽂고 세느를 손에 꼭 쥐었다.


본래 시간의 흐름은 한 번에 한 대상의 능력만 빌려올 수 있는 스킬이다.
하지만 시간 역행으로 쿨타임을 리셋하면, 지속시간 도중  다시 사용할 수 있어 한 번에 여러 인물의 능력을 빌려  수 있는 꼼수가 있었다.
덕분에 지금의 난, 중후반 회차의 세린이 초반에도 압도적인 힘으로 놈들을 박살내던, 그때의 세린에 근접한 힘을 가진 셈이었다.


"후우."


작게 숨을 내쉬자 살금살금 걸어온 일레인의 기사들이 일제히 내게 달려들었다.
놈들은 자기네 가주를  수 없는데서 저격하고, 마법사들의 머리통을 날려버린데다 자기들이 모시는 이를 벤 내게 상당히 분노해 있었다.
아마 여기서 잡히면 적어도 좋게 끝나지 않으리란  자명한 사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난 분노하는 놈들의 표정을 보며 무언가 살아간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죽어라!"


그 순간  녀석의 외침과 함께 내게 검 한자루가 휘둘러졌다.
이것 저것 생각  시간이 아니라는 거겠지.


'그래.'


날아든 검을 세느로 받아 치자, 전방으로 향한 폭발이 일어나며 놈을 뒤로 튕겨 보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많이 남아있는 놈들의 수를 보며 난 몸에 긴장을 불어넣었다.

'어디 한 번 제대로 싸워보자,  개자식들아.'

생각을 마친 난 그대로 앞으로 튀어나갔다.


[ '김수현' 남은 지속 시간 : 4분 37초 ]
[ '테오 아리스' 남은 지속 시간 : 7분 18초 ]

여러 방향에서 날 잡겠다고 검들이 날아왔다.
검을 쳐내며 폭발이 일어나 한 기사가 부상을 입으면, 최소한 세 군데에서 검들이 날아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놈들의 검은 내게 닿을 수가 없었다.


시간 방벽이 자동으로 발동 됩니다. ]


내가 미처 피하지못한 공격은 어김없이 시간 방벽이 발동 되어  대신 공격을 맞아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직감하고 있었다.
시간의 흐름에 전투력의 많은 부분을 의지하는 난 결국엔 이들에게 패배 할 것이라고.

능력이 상승했다 한들, 하드웨어는 그대로에다 그 상승한 능력도 오래가지 않는다.
이런 악조건으로 저 많은 기사들을 박살내는 건 그야말로 미친 짓이었다.
그렇게 싸우던 와중 푸른 메시지창이, 내가 의지하던 스킬의 지속 시간이 끝났음을 알려왔다.


스킬 - 시간의 흐름이 종료됩니다. ]
신체능력이 원래대로 되돌아 옵니다. ]


 메시지 창이 뜨기가 무섭게  녀석의 검과 세느가 부딪쳤고, 손목에 상당한 통증이 느껴져 세느를 놓치고 말았다.
몸에 기운이 다한 내가 주저앉자, 그런  붙잡기 위해 기사들이 걸어오는 걸 보며 난 이를 악물었다.
그렇게 끝났다고 생각 했다.


"내 기사한테서 떨어지지 그래?"

여기선 들려와선  될 목소리가 들려오기 전 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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