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4. 두 세계가 만나다.
*두 세계가 만나다.*
화산을 조형화 한 돔은 마치 활화산이 폭발 하는 것처럼, 연기와 화염을 하늘로 품어내고 있었다.
이것이 사실이 아닌 홀로그램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뜨거운 열기와 유황냄새가 코끝을 스치는 게, 근처로 다가서기가 무서웠다.
돔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은, 흘러내리는 용암 폭포 바로 옆에 있어서, 지나가면 용암의 뜨거운 열기에 몸이 불타오를 것만 같았다. 흘러내린 용암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용암 웅덩이를 만들며 문 옆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앞서 문으로 들어간 지은씨를 보았지만, 그녀를 따라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지은씨는 내가 따라 들어오지 않자, 다시 나오면서 들어오기 주저하는 모습에 방긋 웃었다.
"여기 정말 진짜 화산과 용암 같죠? 방문객들을 위해 일부러 이렇게 입구를 만들었다고 하더라고요. AFTER LIFE사가 이 정도로 높은 기술력을 가졌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과 지금과 같이 가상현실과 현실의 경계가 구분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 라고 하는군요.
"정말 진짜 같군요."
가상현실에 들어와 있다면, 용암폭포가 그냥 잘 만든 가상현실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인데, 이렇게 가상현실이 아닌 현실에서, 실제와 똑같은 용암이 흘러내리는 모습은 그 느낌이 달랐다.
"잠깐만요. 방금 저에게 이 시설에 대한 안내서가 왔네요."
갑자기 지은씨가 국어책을 읽듯이 무언가를 읽어 내리는 모습을 보였다.
".......음 이 시설을 만든 AFTER LIFE사 설립자의 말에 따르면, '가상현실이 현실과 구별이 안 된다면, 그것을 가상현실로 볼 수 있는가? 라고 적혀 있네요."
"음……. 예전의 AFTER LIFE 설립자의 인터뷰 기사에서 들은 적 있는 말이군요. 'AFTER LIFE사는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가상세계 서비스를 추구한다.' 라고 말했었죠."
"아! 그런 인터뷰도 있었나요? 역시 기자 분은 다르시네요. 이곳에 방문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가상현실에 아직 의문을 품고 있는 분들이 많아요. 직접보고 확인하고 싶어 하시죠. 그런 분들을 위해서 일부러 더 이 시설을 현실감 있게 만들었다고 적혀있는데, 이 용암폭포는 지나치게 현실감 있게 만들었네요."
"정말 사실감이 있네요. 용암의 열기와 유황냄새까지, 증강현실이라는 것을 알지만 용암이 흐르는 폭포 옆을 지나가기란 쉽지 않네요. 하하."
"저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다시 죽을 일은 없어서 그런가 봐요. 헤헤. 저는 그래서 이런 게 두렵지 않지만,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두려움을 느낄 만하네요."
"아닙니다. 지은씨가 용기가 있는거예요. 인간에게 두려움이란 생존본능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거니가요. 부끄럽게도 제가 남자답지 않은 모습을 보였네요."
용암폭포 앞에서 머뭇거린 쑥스러움을 감추며, 재빨리 용암폭포 옆을 지나, 문 안으로 들어갔다.
돔 안은 바깥과 다르게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중앙에 작은 광장이 있고, 그 주위에는 벤치와 나무들이 심어져 있는 공원이 있어, 사람들이 앉아 쉬며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중앙 광장은 어느 유럽의 소도시처럼 공연을 하는 사람들과 강아지, 비둘기들이 어우러져 있었다. 광장 주변에는 수백 명이 공연을 구경하거나, 그 옆의 벤치에서 쉬면서 느긋하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광장 주위뿐만이 아니라, 공원 곳곳에 놓여 있는 벤치에도 많은 사람이 앉아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공원에는 산책로가 있어, 마치 연인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다정하게 공원을 산책을 하고 있었다. 바라만 보아도 정겨운 풍경이었다. 돔 안는 번잡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활기가 느껴질 정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하늘에는 밝게 태양이 빛나고 있었고, 구름은 뭉게구름으로, 솜사탕같이 하늘을 채우고 있었다. 마치 날씨 좋은 휴일 날, 유럽의 소도시의 한낮의 풍경 같았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마음 한편이 편안해지는, 낭만적인 분위기이었다.
"지은씨. 아까 가상현실에 의구심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하셨는데, 그런 사람들이 많은가요?"
"음. 저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인데……. 세계의 갑부들이나 권력자들 중에는 가상현실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네요."
"그래요? 의외이네요."
"잠깐만요. 안내서 좀 읽고요. 사실 저도 이런 안내가 처음이라, 사실 안내서를 보면서 안내를 하고 있었거든요. 헤헤."
이제는 나를 편하게 느끼는지 솔직하게 말하며 부끄러운 듯 웃었다.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정말 귀여웠다. 꽉 안아주고 키스하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참았다.
"갑부들이나 권력자들은, 현실세계에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생각 외로 AFTER LIFE사의 가상현실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네요."
"........."
"AFTER LIFE사의 주 고객층은 의외로 중상층이나 중하층이 많다고 적혀있어요. 이들이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욕구를, 가상현실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고 해요. 그래서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캡슐을 사서 가상현실을 즐긴다고 보고서에 적혀 있네요."
"그건, 그럴 수도 있겠군요. 세계적인 갑부나 권력자는, 현실에서 하고 싶은걸 마음대로 할 수 있는데, 굳이 가상현실 캡슐에 들어가서, 대리만족을 추구 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겠군요."
지은양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동의하듯 설명을 이어나갔다.
"저와 같은 경우도 몸이 자유롭지 못했기에, 가상현실 기기에 매달린 케이스니까요. 제가 좀 더 자유로운 몸이었으면, 차라리 밖에 나가 놀았을지도 모르겠어요. 석균씨는 현실에서 충분한 즐거움을 찾을 수 있어서, 아직 가상현실 캡슐을 구입하지 않은 거예요?"
사실 기자라는 직업은 현실 세계에서 또 다른 권력자였다. 특히 내가 다니는 중앙지의 메인 기자의 경우는, 내 돈을 내고 밥을 먹는 경우도, 여자를 사는 경우도 없었다.
굳이 기자들이 거지 근성을 가져서 그렇기보다, 누구든 우리의 호의를 원했고, 그것을 위해 아낌없이 우리에게 돈을 썼다. 굳이 우리 자신의 돈을 쓸 필요가 없었다. 그런 생활이 몸에 배였다. 기자는 언론이 가진 권력의 단맛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직업이었다.
그래서 편집장이 되고 싶은 것이었고, 편집장이 되면 더 큰 혜택과 권력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순수한 그녀에게 그것을 사실대로 이야기 할 수는 없었다.
"하하. 제가 사실 활동적이라서 집에 있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평상시에는 취재를 다녀야하고, 취재가 끝나면 그것을 정리해 기사를 적어야 하기에, 사실 집에 들어가 쉴 시간이 별로 없었지요."
"........"
"그러다 보니 캡슐을 살 생각을 못했네요. 지은씨 같은 분을 가상현실에서 만날 수 있는 줄 알았으면, 바로 사는 건데 그랬습니다. 하하."
거짓말은 때로는 진실을 이야기 하는 것보다 나을 때가 있다. 지금이 그런 경우가 아닌가 싶다. 이 말은 들은 지은씨는 밝게 웃으며 이야기 했다.
"역시 석균씨는 성실한 사람이었네요. 처음 뵈었을 때부터 그렇게 느꼈어요. 기자라서 그런지 말도 참 잘하시고요. 호호."
지은씨는 밝게 웃으며 설명을 계속했다.
"음. 그리고 종교적인 이유로 가상현실 캡슐을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네요. 개신교, 카톨릭, 이슬람교의 상당수의 교파가, 가상현실 기기를 악마의 유혹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해요."
"........"
"저도 이런 사실은 처음 알았네요. 헤헤. 기자님을 안내하기를 하기 전에 좀 더 공부를 하고 왔어야 하는데……. 죄송해요."
그녀의 사과에 오히려 내가 미안해졌다.
"아닙니다. 충분히 안내를 잘해주고 있습니다."
그 말에 방긋이 웃으며, 다시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많은 종교단체에서 가상현실 기기를, 신의 권능을 모방한 사악한 기기라고 이야기 한데요. 그래서 중동 쪽 많은 국가에서는 가상현실 서비스가 금지 되어 있다고 되어있어요."
생각해보니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느낄 수도 있었다. 특히 -영생을 팝니다.- 서비스는 일종의 사후세계를 제공하는 서비스인데, 그쪽 종교의 입장에서는 불경스러운 일이었다.
이 서비스는 그들이 주장하는 천국과 지옥을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고, 신의 권능에 도전하는 일로 보일 것이다.
지은씨의 이야기를 듣자, 얼마 전에 크게 이슈가 된 기사가 머리에 떠올랐다.
'아마 일 년 전쯤인가?'
"지은씨의 이야기를 들으니, 작년에 이슬람 원리주의자 단체에서 AFTER LIFE 본사에 테러를 시도했다가 실패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나는군요."
"실제 애프터 라이프 사에 대한 테러 시도는 상당히 많았다고 되어 있네요. 그 중 테러에 성공을 하고, 실제 기사화된 것은 몇 개가 되지 않았다고 해요. 그리고 이슬람이나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에 의한, 캡슐기기의 파괴는 수도 없이 많았다고 적혀 있어요."
그 이야기에 AFTER LIFE사나 지은씨가 걱정이 되어 물어 보았다.
"그럼 여기도 위험하지 않은가요? 지은씨가 피해를 입지 않을지 걱정이 됩니다."
"푸훕, 호호호. 저는 이미 죽은 몸이에요. 이미 죽은 사람이 어떻게 또 죽겠어요. 호호"
"아! 제가 괜한 걱정을 했네요. 하하."
"아니에요. 정말 고마워요. 저를 진짜 인간처럼 대해 주시니, 정말 고마워요. 사실 저도 가끔 저의 존재에 대해 의문이 있었거든요. 가끔은 제가 진짜 서지은인가 대한 고민이 있었어요."
"석균씨 이야기를 들으니, 그런 고민이 다 부질없었네요. 제가 서지은이라고 믿고, 다른 사람이 서지은으로 여겨준다면, 그걸로 충분한데 말이에요."
그리고 한결 기분이 좋아진 모습으로 마저 설명을 했다.
" 테러의 위험에 대해서는 걱정을 안 하셔도 되요. 영생교의 실제 방어벽은 저 낮은 돌담이 아니에요."
"........"
"자세히 설명은 못 드리지만, 영생교 부지 안에서는 테러나 영생교에 대한 나쁜 행동을 할 수 없게 되어 있어요. 충실하게 안전장치가 되어 있으니 그런 걱정은 안하셔도 되요."
내가 괜한 걱정을 하는 것 이 맞을 것이다. 이 정도 기술수준을 가진 AFTER LIFE사가 자신의 영역에서, 테러범의 활동을 모를 정도로 무능하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 오픈 베타테스트에 지원한 사람들의 대부분이 세계적인 갑부와 권력자, 종교 지도자들이라고 하네요."
"........"
"그들도 현세에서는 충분한 즐거움을 향유하고 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어요. 그리고 지금 현세에서 누리는 것을 내세에서 누리고 싶어 하지요."
"......."
"그들이 자신이 참여 하려하는 서비스에 테러를 지시할 이유가 있겠어요? 설사 자신의 부하들이 테러를 하려고 해도 적극적으로 막지 않겠어요?"
"........"
"그리고 사실 이런 분들은 가상현실 서비스에 대해 부정적이지만, 대신에 AFTER LIFE사의 증강현실 서비스는 생각보다 많이 이용하세요. 제가 여자라 말씀드리기가 쑥스러운데, AFTER LIFE사는 안드로이드도 만든답니다. 잠깐만요. 안내서에 따르면, 그중 가장 인기 있는 게 섹스돌……."
지은씨는 이 말을 하면서 얼굴이 새빨개지며 더듬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그만 말씀하셔도 되요. 더 이야기 하시다간 지은씨 얼굴이 익어버리겠네요. 하하"
자기가 말을 하고도 부끄러운지 어쩔 줄 몰라 했다. 나는 그런 모습이 재미있어, 오랜만에 유쾌하게 웃었다.
"하하하하"
"석균씨... 나빠요. 저를 놀리는 게 그렇게 재미있어요?"
"아닙니다. 너무 귀여워서 그런 거예요. 용서해 주시길……."
"아니에요. 제가 말해놓고, 저 혼자서 부끄러워서 그런걸요."
자신이 이야기 해놓고 너무 부끄러워하는 지은씨의 분위기 전환을 하였다. 주변을 둘러보며 지은씨에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여기에는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죠? 영생교의 사람이 모두 여기에 모여 있나요?"
나의 말에 자신의 본연의 임무를 떠올린 지은씨가, 다시 쾌활한 목소리로 떠들기 시작했다.
"석균씨 여기 진짜 사람이 몇 명이 있게요?"
"진짜 사람이 몇 명이란 말은, 사람이 아닌 존재가 있다는 건가요?"
"네. 그런데, 사람이 아닌 사람이라는 표현이 조금 이상하네요. 그럼 다시 말할게요.
현세의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다 현세의 사람 같은데, 그럼 지은씨 같은 내세의 사람도 있다는 건가요?"
"네 저와 같은 홀로그램의 형태로 내세에서 이곳에 온 사람도 있고, 인조인간(안드로이드), 인조나무, 인조동물까지 있어요.
"아마 이 3가지 존재를 구분하기 힘드실 거예요. 여기는 현세와 내세가 공존하는 두 세계의 세계의 월드 퓨젼 안이니까요."
"아! 하~ 그런데 왜 이런 장소를 만들었죠? 이런 장소를 만드는데 많은 비용이 들었겠는데요."
"잠깐만요. 그러니까…….
"첫 번째로 아까 말씀 드린 대로 캡슐 기기를 이용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은 이곳에 와서 직접 자신의 지인을 만나지요. 이곳에서는 캡슐이나, 캡슐 룸을 이용하지 않고도 죽은 자신의 지인을 만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두 번째는 사후세계를 믿지 않거나, 의심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에요. 그런 분들은 모든 것을 직접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기를 원하시죠."
그건 그렇다. 나의 회사의 사주를 보면 알 수 있었다.
한국의 3대 언론사의 사주로서 누릴 건 다 누리고 살았음에도, 더 많은 것을 누리기 위해, 영생이라는 말에 몸이 달아있는 모습을…….
욕심은 많은데 거기에다 의심까지 많아서, 영생이라는 말에 그렇게 몸이 달았음에도, 자신이 직접 가지 않고 먼저 나를 보내 확인해 보는 모습은, 전형적인 가진 자의 행태이다.
누릴 수 있는 것은 자기가 다 누리고, 자신이 해야 할 것은 다른 사람에게 시키는…….
"그리고, 세 번째는 아직 -영생을 팝니다.- 라는 서비스는 현재 오픈베타 서비스라, 서비스가 지원이 되지 않는 지역과 새로운 캡슐과 캡슐 룸이 설치가 되지 않는 지역이 있어요."
"........"
"그런 곳에 있는 분은 내세에 있는 지인이나 가족을 보기 위해 일부러 여기까지 와야 하죠.
아마 오픈 테스트가 끝나면, 전 세계로 서비스가 확대 될 거예요."
이 오픈 베타가 성공을 하고 이 서비스가 전 세계에 보급된다면 우리의 가치관과 살아가는 모습이 많이 바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세가 있는 삶이라니…….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기대와 우려가 되었다.
"마지막 하나는 설립자의 의도인데, 설립자께서는 이 시설을 통해 현실과 가상세계의 경계가, AFTER LIFE 사의 서비스로 인해, 얼마나 구분하기 힘들어졌는지 보여주길 원하신 다네요."
사실 사람들이 여기에 와서 실제로 가상현실과 증강 현실 서비스를 보면, 어떤 게 현실이고 어떤 게 가상현실인지 구분하기 어렵거든요. 석균씨도 들어올 때, 문 옆의 용암폭포를 보고 조금 머뭇거렸잖아요. 헤헤"
"하하. 정말 그때는 놀랐습니다. 아예 용암 폭포 통과해야 문으로 들어 갈 수 있게 문을 만들었으면, 들어오지도 못했을 뻔 했습니다."
그때 겁을 먹은 것을 감추기 위해, 오히려 오버해서 말을 했다.
"여기를 둘러보시고 누가 진짜 사람이고, 누가 안드로이드인지, 아니면 저처럼 홀로그램인지 구분해보세요. 정확히 맞추시면, 제가 뺨에 키스를 해드릴게요."
지은씨는 자신이 말하고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나는 그 말과 지은씨의 부끄러워하는 모습에 다시 다리 사이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는 남자가 방심한 사이에 잽을 날려 이성의 방어벽을, 너무나 쉽게 부셔버리는 무서운 여자였다. 자신이 말하고 자신이 부끄러워하는 지은씨는 화제를, 돌리기 위해 재빨리 다른 주제를 꺼냈다.
"이 기자님 취재를 위해서, AFTER LIFE사에서 저명한 인사를 인터뷰 대상으로 예약 해두었어요. 구분들이 누군신지 아시면 깜짝 놀라실 거예요!"
" 혹시 그것을 맞추면, 다른 쪽 뺨에도 키스 해 주실 건가요?"
이번에는 내가 훅치고 들어갔다. 지은씨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런 지은씨를 바라보는 것은 즐거웠지만, 손도 못 대고 그런 그녀를 바라만 보고 있는 것도 고문이었다.
이렇게 연인처럼 지은씨와 투덕거리면서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에, 이제는 본업인 취재를 해야 할 때가 되었다.
그런데, 지은씨가 이야기한 AFTER LIFE에서 준비한 저명인사가 누군 일까 궁금하다.
머릿속에 최근에 사망한 인물 몇 명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