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28. 강제로 로그아웃을 당하다.
*강제로 로그아웃을 당하다.*
토벌단은 슬라임의 보물창고에 들어가서, 내가 모아온 아이템들을 뒤지기 시작하였다. 얼마 지나지않아 이들은 한 아름씩 보물들을 들고 와서, 수레에 담기 시작했다. 수레에서 가치가 떨어지는 짐들을 내리고, 그 자리를 보물로 채웠다.
"슬라임 녀석이 많이도 모아 놓았네. 하하."
"그러게, 드래곤도 아니고, 보물을 모으는 슬라임이라니 신기하군."
"야야. 슬라임이라고 앝보지마. 그 녀석에게 당한 모험가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 녀석이 나타나면 더 좋지……. 그 녀석에게 걸린 토벌 의뢰금이 얼마인지나 알아? 무려 100골드라고, 100골드. 여기에 있는 잡동사니들을 처분하고 퇴치 의뢰금을 받으면, 최소한 500골드는 넘을 거라고……. 한사람 당 못해도 30~40골드는 떨어질걸."
"야야. 그러다 큰코다친다. 그렇게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고. 모험가 조합에서 토벌 의뢰금이 100골드나 걸린 녀석이야. 일반 대형 동굴 슬라임으로 생각하면 안 돼."
"뭐가 그리 걱정이야. 여기에 기사에 마법사, 그리고 사제까지 있는데……. 그리고 상급 병사 3명에, 수습기사가 3명, 전사가 3명이나 되는 토벌단이야. 슬라임 따위를 처치하는 데는, 과잉전력이라고! 이 정도 전력이면 오우거도 잡을 수 있겠다."
녀석들은 주위를 살피지 않고, 신이 나서 떠들어 대고 있었다.
보물이 아깝고 이대로 물러서는 건 분하지만, 이럴 때는 도망이 정답이다.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나고 있는데, 마법사의 눈이 이쪽으로 향했다.
"라이트."
"체이스."
머리위로 크고 밝은 빛이 떠올랐다. 그 빛은 어두운 지하수로의 어둠을 밝히고, 슬라임이 숨을 수 있는 자리를 없애 버렸다.
당황하여 그 빛을 피해 지하수로의 어둠속으로 숨어 보지만, 체이스 마법이 걸린 빛은 슬라임의 머리 위에서 떠나지 않고 따라왔다.
"저기 슬라임이다. 기름통을 굴려라!"
그들은 수레에 실고 온, 기름통을 슬라임 쪽으로 밀었다.
하나, 둘, 셋…….
수레에 실려 있던 기름통은 병사들의 손에 의해, 빠르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눈 깜박 할 사이에, 기름통들이 슬라임이 숨어 있던 곳으로 굴러오고, 동시에 마법사의 마법이 발동 되었다.
"파이어 에로우."
마법사의 손에서 떠난 불화살이 굴러가는 기름통에 명중하였다.
-쾅.- -콰광.- -쾅쾅쾅.-
굴러오던 기름통들이 순차적으로 폭발하기 시작하고, 지하수로는 화염으로 가득찼다.
"지글. 지글." "칙." "칙." 칙."
슬라임의 피부는 불에 익어버리고, 흘러나온 체액이 바닥에 떨어져 불타올랐다.
-대형 동굴 슬라임이 화염에 피해를 입었습니다.-
-생명력이 대폭 하락합니다.-
-재생(중)스킬에 의해 상처를 치료합니다.-
-생명력이 소폭 상승합니다.-
-재생(중)스킬이 소폭 상승합니다.
슬라임은 화염에 약했다. 적들은 그걸 알고 슬라임이 도망 못 가게 기름통을 굴려 퇴로를 막은 것이다.
퇴로는 화염으로 막혀있고, 도망은 불가능해 보였다. 인간보다 움직임이 느린 슬라임은, 저들의 추격을 벗어나는 것은 가능해 보이지 않았다.
결국 도망을 포기하고 적들을 돌파하여 지나가기로 마음을 바꾸어 먹었다. 빠르게 방향을 전환하여, 적들의 빈틈사이로 파고들기 위해, 몸을 던졌다.
-슉.- -슉.- -슉.-
투창들이 날아와 몸을 꿰뚫었다.
-푸쉭.- -푸쉭.- -푸쉭.-
병사들의 창이 슬라임의 몸을 찔러, 산성용액이 창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몸에 박힌 투창을 매달고, 창날에 표피가 찢어진 상태에서도 토벌단을 향해서 돌진은 멈추지 않았다.
토벌단을 견제하기 위해, 그들에게 산성용액을 쏘아내며 계속 밀고 들어갔다. 나에게는 퇴로는 없다. 후퇴는 죽음을 의미한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어차피 죽을 거, 최대한 많은 적을 죽이고 죽기로 각오했다.
토벌단이 이곳에 왔을 때, 나의 운명은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터엉.- -터엉.- -터엉.- -터엉.- -터엉.-
회심의 반격으로 쏘아 보낸 산성용액은, 지하수로의 공간을 치밀하게 막은 강철방패에 막혔다. 결국 토벌단에게는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했다. 녀석들은 나에 대해 치밀하게 조사하고 그 대응 방법을 준비하고 여기에 왔다. 적들은 방패 뒤에 숨어서 창과 투창으로 계속 공격해왔다.
이들이 쌓아놓은 방패 벽을 넘어야 공격이 가능하다. 창과 투창에 찔리면서도 무식하게 병사들을 향해 밀고 들어갔다.
"뒤로 물러나라."
마법사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병사들은 방패와 함께 뒤로 물러났다.
"파이어 월."
슬라임이있는 앞에 불의 벽이 생겨나고, 파이어 월 뒤로 물러선 병사들은 다시 창으로 찔러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병사들 뒤에서 던지는 전사들의 투창이 계속 몸을 꿰뚫었다.
슬라임은 인간만큼 고통을 느끼는 정도로 감각이 세밀하게 발달되어 있지는 않았다. 원래 인간의 느끼는 최대 고통 10 중의, 7~8정도가 판타지 월드에서 느끼는 슬라임의 최대 고통이었다.
판타지 월드에서는 플레이어가 받는 고통을 일부 보정을 받으니, 몸이 꿰뚫리고 찢어져도 그 고통은 견딜 만 했다. 그래서 고블린을 대상으로 재생 스킬 작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뜨거운 불에 몸이 타들어 가는 고통은, 아무리 고통에 둔감한 슬라임이라도 견디기 힘들었다. 그리고 거기에다가 끝임 없이 찔러오는 창과 투창은, 슬라임의 낮은 통각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웠다.
슬라임에게 성대가 있었다면, 지하수로에 나의 고통에 찬 비명이 울려 퍼졌을 것이다. 전투를 시작하고 얼마 시간이 흐르지 않았음에도, 생명력의 반 이상 사라졌다.
극심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차라리 로그아웃을 하여 슬라임과 정신적인 연결을 끊고 싶었다. 하지만 슬라임과의 정신적인 연결이 끊어지면, 혼자서 발버둥 치다가 죽을 것이다. 슬라임으로서는 이 상황을 헤쳐 나갈 방법을 찾을 수 없을 것이었다.
여기서 내가 포기를 하면 슬라임은, 토벌단에 의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대신에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극심한 고통에서는 벗어 날 수 있다. 그리고 남은 목숨중 한 번의 목숨을 잃게 될 것이었다.
로그아웃을 하고 싶은 강한 유혹을 느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분했다. 이렇게 아무것도 못하고, 토벌 당하는 것은 억울했다. 그들에게 피해를 주고, 그들로부터 뭐라도 얻어야 했다.
내가 어릴 때 한대를 얻어맞으면, 두 대를 때려 주었다.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사회에서, 이 악물고 성공의 가도를 향해 달려왔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황색지라고 불리는 삼류 잡지사에 들어가 더러운 소리를 들어가며, 열심히 각종 스캔들 기사를 취재하였다. 그러한 노력을 나름 업계에서 인정받아, 정규 일간지의 정식기자로까지 올라 갈 수 있었다.
마지막에 X같은 인간들에게 죽임을 당했지만, 지금도 언젠가는 그들에게 복수를 하겠다는 마음은 버리지 않고 있다. 여기서 이들에게 피해도 못주고, 그냥 죽을 수는 없었다.
다시 한 번 병사들을 향해 부딪쳐 들어갔다. 두터운 방패 벽에 막혔지만, 방패를 기어 올라가 방패와 천장 사이의 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병사들은 방패를 들어 올려 틈을 막으려고 했지만, 슬라임의 유연하게 늘어나는 몸은, 좁아지는 틈을 쉽게 통과하였다. 방패 벽을 통과하자, 촉수로 병사들의 머리들 휘감았다.
투구들을 휘감은 촉수들을 통해, 투구와 몸통 갑옷사이의 공간에 대량의 산성용액을 부어 넣었다.
"으악." "으아악." "아악."
앞 열에 서 있던 세 명의 선임병사들은, 슬라임의 산성용액에 몸이 녹아 내렸다. 후열에 있던 사제가 치료를 위하여 가까이 다가왔다.
"힐." "힐." "힐."
사제의 몸에서 성스러운 휘광이 흐르며, 선임병사들의 몸에서 빛이 났다. 병사들의 비명은 잦아들며,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나는 이틈을 노려 사제에게 돌진했다. 수습 기사의 검이 몸을 갈랐다.
생명력은 바닥으로 향해가고, 그마나 재생스킬이 생명력이 떨어지는 속도를 늦추어 주고 있었다.
마침내 사제 앞에 도착하여, 도망가는 사제를 한입에 삼켰다. 사제는 대형 동굴 슬라임의 뱃속에 삼켜져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사제의 힐은 녹아내리는 몸을 회복시키고, 산성용액은 회복되는 몸을 다시 녹였다.
슬라임이 사제를 녹여버리는 것이 빠른지, 기사들과 전사들이 슬라임을 찢어발기는 것이 빠른지가, 승패를 결정지을 것이다. 그때 기사가 고함을 쳤다.
"모두 물러나라!"
그 소리에 슬라임을 둘러싸고 있던 이들이, 일제히 물러났다.
"스킬! 십자 베기."
기사의 칼날에서 오러가 담긴, 십자형태의 검기가 나와, 슬라임을 십자로 갈랐다. 십자로 크게 벌려진 상처를 통해, 사제가 슬라임의 체액과 함께 흘러나왔다.
- 십자 베기 스킬에 의해, 대형 동굴 슬라임은 심각한 타격을 받았습니다.-
-생명력이 대폭 감소합니다.-
-동굴 슬라임은 빈사의 상태에 빠졌습니다.-
슬라임은 녹은 아이스크림처럼 되어, 바닥에 흘러내렸다.
토벌단은 슬라임이 퇴치되었다고 생각했는지, 상처입 은 병사와 정신을 잃은 사제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사제의 입에 포션을 억지로 밀어 넣고, 상처 입은 병사들도 포션을 마시기 시작했다.
"이 녀석. 정말 독하네요."
"그러게요. 하마터면 큰 피해를 입을 뻔 했습니다."
"제임스 기사님이 아니었으면, 사제님이 죽을 뻔했네요."
"아닙니다. 모두 잘 해주셔서 그렇습니다. 슬라임이녀석 만만하게 볼 녀석이 아니었네요."
"슬라임 치고는 특이한 녀석이네요. 보물을 모우는 것도 그렇고, 지능적으로 전투하는 것도 그렇고, 마치 사람 같습니다."
"소문으로는 추가 업데이트 후에 몬스터를 선택하는 것도 가능해진다는 소문이 있는데, 혹시 그와 관련된 녀석이 아닐까요? 그것을 위한 테스터들이 있다는 소문이, 제가 보는 사이트에 올라와 있더군요."
이들은 해변에 올라와 죽어있는 해파리처럼 퍼져 있는 슬라임을 툭툭 차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죽은 것이 아니었다. 빈사의 상태에서도 재생스킬은 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연히 바닥에 떨어져 있던 고블린의 -치료부적.-을 손에 넣었다. 나는 빠르게 상처를 치료하고 있었다.
-재생(중) 스킬이 상처를 치료합니다.-
-생명력이 소폭 상승합니다.-
-치료부적이 효과를 발휘합니다.-
-생명력이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재생(중) 스킬이 소폭 상승합니다.-
-치료부적이 효과를 발휘합니다.-
-생명력이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재생(중) 스킬이 상처를 치료합니다.-
-생명력이 소폭상승합니다.-
-재생(중) 스킬이 소폭 상승합니다.-
빈사 상태에서도 메시지는 계속 떠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동안 절실하게 원하던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재생(중)스킬이 재생(대)스킬로 상승합니다.-
-특성: 재생(소)가 재생(중)으로 상승합니다.-
-대형 동굴 슬라임이 빈사상태에서 벗어납니다.-
녹은 아이크림처럼 퍼졌던 몸이 다시 동그랗게 모여서, 다시 슬라임의 형태로 변하기 시작했다.
"모두 조심해라. 이 녀석 아직 살아있다!"
이러한 변화를 눈치 챈 누군가가 고함을 질렀지만, 슬라임은 벌써 마법사의 곁으로 가서 마법사를 집어 삼켰다.
"쉴드."
마법사는 자신의 몸을 쉴드로 산성용액의 침입을 막았다. 하지만 산성용액은 마법사의 실드를 갉아먹고 있었다.
병사와 기사, 전사들은 마법사를 구해내기 위해 칼을 휘둘렀지만, 재생(상)으로 변한 스킬은 빠르게 상처를 회복하였다.
마법사의 실드가 먼저 부서지는지, 슬라임이 생명이 먼저 다하는지의, 치킨게임이 시작되었다. 시간이 흐르자, 드디어 산성용액에 버티던 실드가 부서지고, 마법사는 산성용액에 녹아내렸다.
-대형 동굴 슬라임이 마법사를 해치웠습니다.-
-정산 금액을 산정합니다.-
-50,000달러를 획득하였습니다.-
마법사를 해치운 후, 구석에 쓰러져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사제를 향해 움직였다.
"모두 비켜!
"스킬! 일도양단!"
오러로 만들어진 거대한 일자의 검기가 나의 몸을 두 동강으로 만들었다.
극심한고통과 함께, 게임에서 강제종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