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화 〉157. 잭으로부터 들어온 의뢰.
*잭으로부터 들어온 의뢰.*
그 후로도 다양한 유저의 관점에서 찍은 많은 동영상이 올라왔다. 그를 통해서 사건의전모를 알 수 있었다.
아바타가 유저의 지배를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다. 판타지월드에서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상식이 무너져 내렸다.
지하세계에 존재하던 악마들은, 처음부터 판타지월드의 아바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듯 했다.
AFTER LIFE사 회장이 무슨 이유로 그것들을 그곳에 두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짐작하는 것은 좋은 의도로 만들어진 존재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악마들의 행동은 그들에게서 인간에 대한 자비나 동정심을 제거한 것만 같았다. 지하세계에서 올라온 녀석들의 잔인성에 놀랐다.
그들은 모든 인간을 증오하도록 프로그램이 된 것 같았다. 악마들은 옛 제국의 주민을 모조리 학살을 하였다.
옛날 몽골군도 저항하는 도시를 약탈하고 초토화시킨 것으로 유명했다.
그들은 도시의 모든 주민을 죽여 그들의 목으로 세 개의 탑을 쌓았다. 사람을 말에 매달고 끌고 다녀서 죽이는 등 그 예는 셀 수 없이 많았다.
중세에도 잔인한 학살이 많이 일어났다. 날카로운 말뚝에 사람을 박아 죽인다던지, 마차 바퀴에 사람을 박아 죽이는 등, 그 잔인성에 대해서 적으면 책이 한권이 나올 정도였다.
일본인들의 잔학성도 유명했다. 서양의 중세처럼 잔인했다. 적의 두개골로 술잔을 만들어 마시기도 했다. 그리고 2차대전시기의 일본군도 마찬가지였다.
난징 대학살의 이야기에는 임산부의 배를 가른다거나, 아이를 꼬챙이에 질러죽인다거나, 사람의 목 베기 시합을 하는 등, 그 잔인성이 몽골군이나 중세의 잔학성을 뛰어넘었다.
악마들의 잔인성은 그들과 그 결이 달랐다.
앞선 사례들은 대부분 적에게 공포를 주기 위함이었다. 식인 풍습도 마찬가지였다. 식량의 수급의 목적보다는 적에게 공포를 주기 위함이 더 컸다.
그것을 진심으로 즐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런 것에 대한 거부감과 머뭇거림이 있었다.
인간에 새겨진 DNA에 의한 본성은 그것에 거부하도록 되어있었다. 그것을 양심의 가책 없이 하는 사람은 망가진 사람이거나 자기 자신을 속이는 행위였다.
화면 속 악마들은 그러한 인간들과 달랐다. 모두 사람을 죽이는데. 머뭇거림이나 망설임이 없었다. 마치 도축을 하는 기계처럼인간들을 죽였다. 그렇게 프로그래밍이 된 것처럼…….
지하세계의 군대는 도망가지 못한 옛 수도의 인간들을 모두 학살하였다.
이 땅에 인간이 존재 했다는 흔적을 지우듯이 수도를 폐허로 만들었다. 마치 지상의 인간은 단 한명이라도 살려놓지 않기로 작정을 한 것처럼…….
***
지은이가 일찍 캡슐에서 나왔다.
그녀는 아직도 판타지월드의 초보자를 지원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이제는 그만 두지 않겠느냐고 이야기를 해도, 그냥 집에 있는 것보다는 낮다고 계속 일하고 있었다.
"오빠. 오늘 일찍 마쳤네요?"
"으응. 요새는 판타지월드에 오래 접속하지 않아, 토마스가 알아서 잘해주고 있어서, 내가 신경을 쓸게 별로 없어. 그런데, 지은이도 오늘 일찍 일을 마쳤네?"
"네. 오늘 갑자기 잭이 저를 불러내었어요. 오빠와 함께 관리실로 방문해 달라고 하네요? 오빠. 또 뭔가 사고 쳤어요?"
"내가 매번 사고를 치는 사람이냐. 이번 일은 나하고 아무런 관련이 없어."
"그런데, 판타지월드에 무슨 일이 생겼어요? 잭이 오빠를 부를 정도면 큰일 같은데……."
"음……. 조금 심각한 일인데……. 아마 그것 때문에 나를 부르는 걸 거야."
"무슨 일인데요?"
"우선, 잭과 만나보고 이야기 해줄게. 내가 생각한 일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 그럼 같이 가볼까?"
지은이와 나는 그렇게 판타지월드 관리실로 접속을 했다.
***
지은이와 함께 오랜만에 판타지월드 관리실에 방문을 했다. 직원 대기실 아래로 보이는 풍경은 이제는 익숙했다.
머크로 시작한 아크론산맥 아래의 작은 숲과, 그 밑으로 남부왕국의 너른 평야지대, 그 위로는 제국 남부지역이 펼쳐졌다.
거기에는 제국 남부의 미르 유적과 거미로서 시작을 한 프라우나 대수림도 있었다. 서쪽으로 눈을 돌리니 현재 한창 확장공사 중인 신성도시의 모습도 보였다.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와는, 판타지월드의 풍경이 많이 달라져있었다.
예전의 판타지월드 영역 바깥에 몬스터 랜드가 생겨나 있었다. 이곳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그곳에서는 오늘도 몬스터 유저와 인간 유저가 전쟁을 벌이고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예전의 이곳의 풍경에 없었던 신성도시가 새로 생겨났다. 제국의 수도가 파괴되어 아직도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폐허가 된 그곳에는 아직도 가끔씩 불길이 솟아올랐다.
그러한 모습들을 바라보니 여러 가지 일들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각각의 장소에는 각자의 추억이 있었다.
처음에는 이곳에서 판타지월드의 세상을 바라보아도 어디가 어딘지 몰랐었다. 이제는 판타지월드의 대체적인 모습을 눈으로 그려 볼 수도 있었다.
그만큼 내가 판타지월드를 플레이한지도 상당한 시간이 흐른 것이었다.
그동안 판타지월드로 많은 돈도 벌었고, 여러 아바타도 떠나보냈다.
이렇게 다시 직원 대기실에 앉아서, 판타지월드를 위에서 바라보고 있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관리실의 문이 열리고 잭을 만났다.
잭은 예의 인상 좋은 아저씨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당황하고 있었다. 잭은 덥지도 않은데 땀을 닦으면서 우리에게 자리를 권했다.
"이석균씨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기 잠시 앉으시죠."
잭은 직원들과 회의를 하는 테이블에 자리를 권하고, 직원을 시켜 간단한 다과를 내어오게 했다.
"잭. 오랜만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판타지월드에 사소한 문제가 발생하여, 도움을 받고자 불렀습니다."
잭은 사소한 문제로 치부하고 있지만, 그의 표정은 달랐다. 진심으로 당황하고 있었다.
그가 무엇을 부탁할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잭이 아니더라도, 이 문제는 직접 나서서 해결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잭에게 의뢰가 들어온 이상, 이번 기회에 잭에게서 단단히 뜯어내기로 마음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