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6화 〉176. 불안한 여인들을 위로하다.
* 불안한 여인들을 위로하다.*
항성 간 이주에 관한 일은 차근차근 진행되었다. 출발 날짜도 대략적으로 정해졌다.
남은 기간이 2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막상 출발할 날이 다가오자 지은이가 불안해했다.
여자들 중에는 결혼하기 전에 우울증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은 자신의 결혼생활에 대한 두려움과 환경이 바뀌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지은이의 경우 안유진 부회장과의 관계가 특별했다. 그것이 단절되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아바타와 유저의 관계지만, 그것보다는 훨씬 더 가까운 친자매, 아니 분신이었다.
그것은 머크나 마라, 토마스에게 느끼는 감정보다 더 큰 유대감이었다. 그리 오래 같이하지 않은 사신거미인 에이미를 잃었을 때에도 상실감이 컸었다.
지은이의 경우 안유진부회장과 함께한 기간이 오래되었다. 상실감을 비교 할 수 없을 것이었다.
지은이에게는 안유진 부회장과 떨어지는, 100년이라는 시간이 굉장히 크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성으로는 가야하는 것을 알지만, 감정적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여성들은 남성보다 감성적이었다.
지은이는 현재의 삶에 만족했다. 가기 싫은 감정이 자신을 지배했다. 이제 와서 위험을 무릅쓰고, 새로운 곳으로 가야 된다는 것에 대해 의문을 표했다.
"오빠. 저는 여기에 남으면 안 될까요?"
"그럼. 그동안 헤어지게 되는데? 괜찮아?"
"저는 괜찮아요. 100년 동안 이곳의 사람들과 같이 보내면 되죠. 여기에는 유진이 언니도 있을 거고요. 안젤라도 언니도 아직지원을 안했데요."
"안젤라가 지원을 안했다고?"
"아직. 고민인 것 같아요."
"지원 기간은 벌써 지났는데……. 그래도 방법은 있으니. 먼저 다시 이야기를 해봐야겠네. 우선 안젤라에게 연락해서 약속을 잡아봐."
"안젤라 언니도 그렇지만, 유진이 언니와 헤어지기가 싫어요. 오빠에게는 3년이라면서요. 오빠가 3년만 참으면 안 돼요? 그럼 다시 만날 수 있잖아요."
"그건 좀 그런데……. 지은이가 없는 삶은 생각하기도 싫어."
유진이와 헤어지는 것도 그런데, 안젤라에 지은이까지……. 지은이는 마음의 비중이 컸다. ‘그래 오빠가 다녀올테니깐, 그동안 잘 지내고 있어.’라고 싶게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회장이 여기에 남는 사람들도, 언젠가는 모두 외계 행성으로 보내질 거라고 했어. 이곳에 있는 사람들도 결국 떠나게 될 거야? 아는 사람들이 떠나는 와중에, 혼자 남아 있는 것도 쓸쓸하지 않을까? "
"아무리 회장이라도 함부로 사후세계의 사람들을 보낼 수 없어요. 그들과 회장은 -영생을 팝니다-라는 서비스에 대해 계약이 되어 있어요."
"그런데, 그 계약서에 몇 가지 예외 조항이 있다더군. 예를 들면 -AFTER LIFE사에서 더 이상 그 서비스를 유지 할 수 없을 경우 서비스는 종료된다.- 판타지월드도 그렇게 종료 되었잖아."
"그건 그렇지만……."
"그것 외에도 몇 가지 추가적인 예외 조항이 있다더군. 결국에는 사후세계의 사람들도 외계행성으로 가야하게 될 거야."
예전의 보험 약관도 마찬가지였다. 막상 보험금을 받으려면, 이런 저런 예외 조항을 걸려서 제대로 보상을 못 받았다.
AFTER LIFE사도 이런 일을 예상해서, 마찬가지 조항들을 달았다.
"저는 여기의 삶이 마음이 들어요. 이렇게 계속 여기서 살면 안 돼요?"
이럴 때에 남자는 보통 이성적으로 설득하려한다. -이번이 최고의 기회다.- - 오빠하고 가지 싫은 거야?- 이런건 여자들에게 먹히지 않았다. 한발을 물러섰다.
"그래 지은이 마음이 그렇다면, 내가 안갈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볼게."
지은이의 마음이 그렇다면 잠시 생각해 볼 시간을 주는 것이 좋았다. 아직 우주선의 발사까지는 시간이 있었다.
지은이에 대한 설득은 안유진 부회장에게 맡기기로 했다. 나보다는 그녀가 설득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
떠나야 할 날이 다가오자 지은이와 지구를 떠나는 부분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 해보았다.
그동안 안유진 부회장이 잘 설득한 모양인지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역시 사람을 설득할 때는 직접 당사자가 설득하는 것보다, 그 사람의 지인을 통해 설득하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결국 지은이도 안유진 부회장을 통하여,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납득했다.
"이렇게 떠나도 괜찮겠어?"
"어차피 떠나는 것은 피할 수 없다면서요. 오빠와는 헤어질 수 없잖아요."
"아니 지은이가 떠나지 못한다면, 나도 여기를 떠나지 않을 거야!"
"아니요. 저나 오빠를 위해서도 지금 떠나는 게 맞아요. 출발까지 시간이 얼마 남았어요?"
"음, 이제 한 달도 안 남았지. 그동안 주변 정리라도 하고 있어. 대부분은 한동안 못 만날 거고, 그중 일부는 영영 못 볼 수도 있어."
"그런데 오빠! 한 가지 부탁드려도 되요?"
"말해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다 들어 줄게."
"안젤라 언니를 저희가 타는 우주선에, 다시 태울 수 있을까요?"
"안젤라를?"
지은이에게 저번에 안젤라와 약속을 잡으라고 했었다.
자신의 마음이 잡혀 있지 않아서 그런지, 아직 그녀와의 약속을 잡지 않았다. 이제 마음을 굳히니 그녀도 같이 태우자고 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촉박하기는 하지만, 그녀를 탑승자 명단에 올리는 것은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세상 모든 것은 사람이 하는 것이었다.
활주로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세우고, 탑승객 명단에 없던 사람을 태우기도 했다. 심지어는 상공에 뜬 비행기를 되돌리기도 했다.
‘권력이 좋은 게 뭐겠는가?’
출발하는 비행기를 세우고 승무원을 내리게 한, 땅콩은 지금도 유명했다.
"네. 저희가 타는 우주선이, 이주에 성공할 가능성이 제일 높다라면서요."
"그건 그렇지. 가장 가깝기도 하고, 그쪽 항성계에 대한 정보도 많아. 승무원이나 군인들도 정예들이기도 하고, AFTER LIFE사에서도 첫 시도라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 거기에다 뛰어난 단장이 지휘하니, 반드시 성공시킬 거야. 하하하."
"그러니 안젤라 언니도 데리고 가요. 언니는 AFTER LIFE사에 특별한 인맥도 없잖아요. 그러다 여기보다 훨씬 안 좋은 곳으로 가는, 우주선에 탈 수도 있잖아요. 그럼 다시 영영 못 볼 수도 있고요. 안젤라 언니와 같이 가고 싶어요."
사실 그녀를 우주선에 태우고 싶었다. 지은이가 권한다면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뭐, 내 권한으로 한명 정도 더 태우는 것은 문제가 아니지. 탐사대장에게 그렇게 말해 놓을게. 그런데, 안젤라에게 먼저 이야기 해놓아야 하지 않아? 저번에 너에게 안 간다고 이야기 했다며……."
"그건 그러네요. 언니의의견이 제일 중요하죠. 오늘 저녁에 언니하고, 3명이서 같이 식사 약속을 잡아도 되죠?"
"음……. 선약이 있긴 있는데, 그렇게 중요한 약속은 아니니, 내가 잘 이야기 해볼게. 오늘 약속 잡아."
우주선 발사 전에 이루어지는 사전미팅 하나가 잡혀 있지만, 그것을 예정보다 일찍 마치기로 마음먹었다. 그녀를 이번 우주선에 태우고 싶었다.
그녀가 아니라면, 일전의 복수는 그렇게 멋지게 성공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그 변태 영감탱이들을 상대하면서도, 도와준 대가로 그녀가 받은 것은 별로 없었다.
약간의 돈과 키스가 전부였다. 아직 그녀에게 마음의 빚이 남아있었다.
그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이번 이주선에 태우고 싶었다.
지은이가 이렇게 마음을 써주는 것이 고마웠다.
"장소는 제임스 올리버의 레스토랑으로 하면 될까요?"
"거기 괜찮지, 거기로 하자. 시간은 저녁 7시정도면 미팅을 마치고 올수 있을 거야."
"오빠. 그럼, 그때 봐요."
지은이와 헤어진 후, 이주단 본부로 가서 탐사단장과 사전 미팅을 하였다.
이번 이주와 관련해서는 오래전부터 준비가 되어 있던 일이라 특별한 일은 없었다. 정해진 일정에 따른 타임 스케줄에 따라, 진행 사항을 체크하는 수준이었다.
"탐사대장. 오늘은 일이 있어 좀 일찍 마칠 생각인데……. 괜찮겠죠?"
"네. 특별한 사항은 없으니까.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그리고, 탐사단장에게 하나 부탁 할게 있는데……."
"네. 말씀하십시오."
"이번 이주단에 한명을 추가로 태우고 싶은데……."
"네. 문제는 없습니다. 이주민의 문제는 단장님의 권한이시니,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시간이 되실 때, 그분의 고유번호만 알려 주십시오."
"그럼, 내일보세."
"네.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탐사단장은 젊은 녀석치고는 눈치가 빨랐다.
우주와 과학기술에 대한 뛰어난 지식과 저런 면 때문에, 다른 이들을 제치고 탐사대장으로 뽑혔는지도 모르겠다. 수다스럽기는 하지만…….
제임스 올리버의 식당에서 안젤라를 만났다.
"여기에요. 오빠!"
지은이가 테라스 자리에서 나를 보더니 손을 흔들었다.
안젤라는 지은이의 옆자리에서, 가슴이 파인 붉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반쯤 드러낸 가슴에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를 몰랐다.
안 그래도 저번 키스가 생각나는데, 이렇게 자극적인 옷을 입고 있으니 가슴이 설렜다.
"안젤라 잘 지냈어?"
"덕분에 잘 지내고 있지. 이렇게 셋이서 보는 것도 오랜만이네."
"그렇지. 요새 이주단 일으로 바쁘다보니……."
"너, 요즘 더 잘 생겨진 것 같아. 마음이 흔들어 놓으면 어떡해. 나쁜 남자야."
그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그전에는 지은이의 친한 언니였고, 복수를 위한 동료였다.
그래서 그녀의 외모에 그다지 신경을 안 썼었다. 그녀는 아주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여성을 남자로 태어나게 만든 것은, 신의 나쁜 장난이었다.
사후세계에서 그녀는 완벽한 여자였다. 과거는 그녀에게 아무런 흠이 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키스의 영향인지 나도 모르게 마음이 흔들렸다. 진짜 나쁜 남자는 안젤라였다.
"저번에는 고마웠어. 그래서 너에게 보답을 했으면 해."
"괜찮아. 저번에 충분한 보수를 받았어. 게다가 특별 보너스도 받았잖아."
"그것 가지고는 마음의 빚을 다 갚을 수 없을 것 같아."
"음……. 그럼, 더한 것도 줄 수 있어?"
그녀가 눈을 바라보면서 ,장난인지 진심인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물어왔다. 그때 곤란한 표정을 눈치 챈 지은이가 그녀를 말렸다.
"언니. 계속 장난 칠거에요. 오빠가 곤란해 하잖아요!"
"이 말……. 농담 아닌데?"
그녀가 웃음기를 지우고 말했다. 분위기가 더 어색해지기 전에, 만나자고 한 용건을 이야기 했다.
"지은이에게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번에 외계 행성으로 이주하는 이주단의 단장을 맡았어. 거기에 너를 태우고 싶어."
"아……. 하……. 여기 생활이 좋은데, 네가 가자고 하니, 내 마음이 흔들리네.정말 가야되나……."
"이건 진짜 좋은 기회야. 이번이 가장 조건이 좋아. 네가 우리와 같이 갔으면 해."
"네가 그렇게 이야기 하면, 내마음이 약해지잖아……. 좋아……. 나도 갈게."
"그래 잘 결정했어. 고유 번호를 알려줘."
"고유번호?"
지은이가 안젤라에게 영혼의 고유번호를 보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영혼에도 주민등록처럼 고유 번호가 있었다. 그 번호를 탐사단장에게 메시지로 알렸다.
그렇게 그녀도 우주선에 함께 타기로 되었다.
***
이렇게 안젤라의 일이 마무리되었지만, 또 관계를 마무리 할 사람이 있었다.
"이렇게 헤어져야 한다니 아쉽네요."
안유진 부회장이 지은이의 얼굴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게. 유진이와 헤어진다니 아쉽군. 최소한 백년은 만나지 못할 건데……. 그런데…….유진이와의 추억은, 대부분 지은이의 몸으로 이루어져서 좀 그러네. 유진이의 본 모습으로 한번 만나고 싶어."
"제, 본 모습요?"
"내가 처음 영생교로 왔을 때, 그 모습이 유진이의 본 모습이잖아. 맞지?"
"네 맞아요. 그날이 서로 처음 본 날이기도 하죠."
"그때의 모습으로 우리의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할까?"
유진이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말을 했다.
"좋아요. 그럼 거기로 가죠!"
갑자기 주변의 풍경이 바뀌었다.
하얀 모래사장과 부서지는 파도, 새파란 하늘과 흰 구름, 앞에 화려한 산호초 사이로 보이는 푸른 바다가 보였다.
처음 가상현실 룸에서 보았던, 몰디브의 바다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 하얀 백사장에 170정도의 키에, 모델 같은 몸매를 가진, 인기 아이돌보다 아름다운 여인이 방긋이 웃으며 서 있었다.
그녀는 맨 처음 보았을 때와 같은, 아름다운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머리에는 하얀 챙 넓은 모자로 따가운 햇살을 가리고 있었다.
그녀에게 다가가자 그녀의 몸매가 보였다.
얇은 원피스의 천 아래에, 봉긋이 솟아 오른 유두와 힙 라인에는, 브라와 팬티의 선이 보이지 않았다.
아름다운 여체가 원피스를 뚫고 나온 빛에 의해, 아름다운 실루엣을 그리고 있었다.
"안에 아무것도 안 입었네."
"네. 당신을 위해 준비했어요."
그녀에게 다가가, 입을 맞추고 뜨겁게 애무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은 지은이의 몸으로 할 때보다, 더욱 적극적이고 과감했다. 그런 색다른 느낌이 더욱 흥분시켰다.
지은이의 몸은 아직 덜 여문 과일을 먹는 느낌이라면, 그녀의 몸은 농밀하게 익은 과일을 맛보는 것 같았다.
색다른 향기와 감각, 터질 뜻이 부풀어 오른 그녀의 굴곡들은, 전에 그녀와 했던 감각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같은 몸에 영혼이 달라져도 다른 느낌이었다. 거기에 몸까지 달라지자, 완전히 신세계였다. 지은이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느낌이라면, 그녀는 미치도록 아름다웠다.
이러한 새로운 느낌은 더욱 달아오르게 했다. 내가 달아오르는 만큼 그녀도 달아올랐다.
흥분이 절정에 달해, 그녀의 원피스를 들어 올렸다.
새하얀 나신이 백사장에서 눈부셨다. 그녀와 하나가 되었다.
서로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태초의 모습으로, 아름다운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물놀이를 했다.
물놀이가 지치면, 야자나무 아래에서 시원한 해먹에 누워 시간을 보냈다.
먹고……. 자고……. 하나가 되는 일을……. 아름다운 바닷가에서 며칠 동안 계속하였다.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은 시간도, 결국 마지막이 다가왔다.
붉은 석양을 보면서, 서로에게 약속을 했다.
"반드시. 무사히 돌아와야 해요."
"응. 꼭 다시 돌아올게."
"그럼."
"그래."
갑자기 풍경이 다시 바뀌었다.
"오빠! 왜? 갑자기 그렇게 멍하게 있어요?"
"아니. 별거 아니야. 잠시 생각 할게 있어서."
"그래요?"
유진이와의 보낸 며칠의 시간은, 지은이와의 시간 속에서는 몇 초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는 수만 배의 가속된 가상세계 속에서, 시간을 보낸 것이었다.
다시 못 만날 것을 두려워하는 유진이를 달래주었다.
지은이에게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이 또 하나 생겼다.